오늘날 우리는 자유로운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며,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수많은 선택지를 제공받는다. 직업을 선택할 자유, 종교와 표현의 자유, 소비와 여가를 누릴 자유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그래서 흔히 우리는 자유를 ‘이미 얻은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막상 일상을 되돌아보면, 그 자유가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인지, 아니면 구조가 허락한 범위 안에서만 누리는 제한된 자유인지 의문이 생긴다.
실존주의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창조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철학적 선언. 자유는 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숙명이며, 동시에 감당해야 할 무게라는 통찰이다.
실존주의의 탄생 ― 전통의 붕괴와 새로운 물음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서구 사회는 거대한 격변을 맞이했다.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달, 1·2차 세계대전의 파괴는 기존의 가치 체계를 무너뜨렸다. 신의 권위가 흔들리고, 공동체가 제공하던 확고한 의미가 붕괴되면서, 인간은 더 이상 외부의 절대적 진리에 의존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의미는 스스로 찾아야 하는 과제가 되었다.
실존주의자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오는가?”, “고통과 불안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집요하게 물었다.
불안과 자유 ― 키르케고르의 단독자
‘실존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키르케고르는 개인을 ‘하느님 앞에 선 단독자’로 보았다. 그는 “진리는 주체성”이라고 말하며, 사회가 강요하는 길이나 제도적 신앙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에게 자유는 불안을 동반한다. 왜냐하면 진정한 결단은 타인의 보증 없이 홀로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불안은 자유의 그림자이자, 우리가 스스로 존재한다는 증거다.
신의 죽음과 새로운 가치 ― 니체의 능동적 자유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선언으로 기존 도덕 질서를 해체했다. 더 이상 초월적 가치에 의존할 수 없기에, 인간은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야 했다.
그가 제시한 ‘초인(Übermensch)’은 바로 그 자유를 온전히 긍정하고 자기 삶을 창조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니체가 말한 자유는 단순히 기존 규범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는 힘을 뜻했다.
죽음과 본래성 ― 하이데거의 현존재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Dasein)’, 즉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라 불렀다. 우리는 특정 시대, 언어, 사회적 조건 속에 태어나며, 그것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죽음을 자각하는 순간에 비로소 본래적 존재가 된다”라고 말했다.
죽음은 자유의 종착지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유한성을 직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본래성(Eigentlichkeit)’을 향해 나아갈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자유의 무게를 체험한다.
자유와 책임 ― 사르트르의 선택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로 잘 알려져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본질을 지니지 않으며, 살아가면서 스스로 그것을 만들어간다.
그는 “인간은 자유롭도록 정해져 있다”라고 말했다. 즉, 선택하지 않는 것조차 하나의 선택이며, 우리는 매 순간 자유를 행사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자유는 ‘앙구아(angoisse)’, 즉 불안과 공포를 불러온다. 자유란 피할 수 없는 책임의 이름이기도 하다.
타인과 사회 ― 보부아르의 여성 해방
시몬 드 보부아르는 실존주의를 여성해방의 사상으로 확장했다. 그녀의 선언 ―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 는 자유가 사회적 맥락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은 타자의 시선과 사회적 제약 속에서 규정되지만, 그 안에서도 주체로서 스스로를 선택하고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다. 보부아르는 자유가 결코 고립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조건과 관계 속에서 실현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대인의 자유 ― 제도적 권리와 가짜 자유
21세기의 우리는 제도적으로는 자유를 누린다. 그러나 현실은 복잡하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어도, 경제적 압박 속에서 많은 이들이 원치 않는 길을 걷는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만, SNS의 시선과 평가에 갇혀 자기 검열에 시달린다. 선택지는 넘쳐나지만, 오히려 무엇을 원하는지 혼란스러워진다.
실존주의는 이 상황을 꿰뚫는다. “결국 네가 무엇을 선택할 것이며, 그 결과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자유는 외부의 선언이 아니라 내면의 결단으로 증명된다.
자유의 역설 ― 무거운 숙명
실존주의가 일깨우는 자유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기쁨과 해방을 약속하는 동시에 불안과 책임을 요구한다. 그래서 자유는 ‘선물’이 아니라 ‘숙명’이며, 매일 새롭게 맞이해야 하는 과제다.
물론 실존주의가 개인의 책임만 강조하여 사회 구조의 문제를 간과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보여주었듯, 자유는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실천으로 확장될 수 있다. 자유는 고립이 아니라 연대 속에서 더 깊은 의미를 얻는다.
맺음말 ― 자유, 존재의 도전
“우리는 정말 자유로운가?”라는 질문에 실존주의는 단순한 긍정도 부정도 내놓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던져진 조건 속에서도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이 곧 너 자신을 만든다. 그러나 그 자유는 달콤하기보다 무겁다.”
오늘날 자유는 소비문화나 정치적 구호 속에서 가볍게 소비되기 쉽다. 하지만 실존주의가 던지는 메시지는 다르다. 진정한 자유는 도망칠 수 없는 질문 ― “지금, 너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에 정직하게 답하는 순간에만 주어진다.
자유는 결국 존재의 도전이다. 그것을 회피할 수도, 타인에게 전가할 수도 없다. 오직 나 자신이 감내해야 할, 인간됨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