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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죽음과 새로운 탄생

by 엠에스

<관계의 죽음과 새로운 탄생>


관계의 죽음 예


부부관계: 결혼 20년 차 부부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소한 일에도 다투고 서운해했지만, 그 싸움 속에는 여전히 서로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다툼조차 사라지고,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무심해집니다. 늦게 귀가해도, 약속을 잊어도,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을 때—그것이 바로 관계가 이미 생명을 다했다는 신호입니다. 갈등이 없는 평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관심의 냉기가 관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죠.


우정 관계: 어릴 적 절친했던 친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오해가 생기면 밤새 이야기하며 풀었는데, 이제는 서운한 일이 있어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갑니다. 만나도 대화가 깊어지지 않고, 서로의 삶에 별다른 감흥도 없습니다. “연락이 끊겨도 괜찮다”는 마음이 들 때, 그 우정은 이미 조용히 끝나버린 것입니다.


직장·사회적 관계: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깁니다. 상사가 직원에게 기대가 있을 때는 실망도 하고, 불만도 표현합니다. 그러나 더 이상 어떤 지적이나 충고도 하지 않고, 오직 형식적인 말만 오갈 때, 그것은 사실상 관계가 단절된 상태입니다. 조직에서 더 이상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관계의 수명은 다한 셈이죠.


문학적 사례: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안나와 남편 카레닌의 관계가 “무관심”의 국면에 들어서면서 사실상 죽은 관계임이 드러납니다. 증오가 아닌 무심함이, 오히려 안나를 더 고독하게 만들지요.


이청준의 소설에서도 가족 간의 단절이 종종 ‘무심함’으로 표현됩니다. 더 이상 분노도 대화도 없는 상태—그것이 관계의 가장 깊은 파탄임을 보여줍니다.


관계의 생명 주기


인간의 모든 관계는 생명체처럼 태어나고 자라며 성숙하고, 언젠가는 사라진다. 관계에도 리듬과 시간이 있다. 설렘으로 시작된 만남은 친밀함으로 깊어지고, 그 안에서 갈등과 화해를 반복한다. 그러나 그 생명이 다할 때가 오면, 관계는 더 이상 우리를 흔들지 못한다.


심리학에서는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 말한다. 무관심은 감정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상태다. 예전 같으면 가슴이 흔들렸을 말에도 무덤덤하고, 마음을 아프게 했을 행동조차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때, 그 관계는 이미 종말에 이른 것이다.


끝을 받아들인다는 것


많은 이들이 관계의 종말을 인정하지 못한다. 지난 시간을 부정할 수 없기에, 추억을 붙드는 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끝난 관계를 억지로 이어가려는 것은 살아 있는 이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일과 같다. 니체는 “새로운 탄생을 위해 오래된 세계를 파괴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말했다. 관계의 끝 역시 하나의 작은 죽음이자, 새로운 삶을 위한 전제다.


이별은 상실이 아니라 변형이다. 떠나보냄 속에서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관계의 형태가 무엇인지, 또 무엇을 감내할 수 없는지 깨닫게 된다.


자연이 가르쳐 주는 순환의 지혜


자연은 끊임없이 이 진리를 보여준다. 낙엽이 떨어져야 새 잎이 돋고, 겨울이 지나야 봄이 찾아온다. 강물이 고여 있으면 썩듯, 관계 또한 흐름과 순환 속에서 새로워져야 한다. 떠남은 단절이 아니라 다음 단계를 위한 비움이다.


유교의 고전 『예기(禮記)』에는 “옛것을 버리지 않으면 새것이 들어오지 않는다(去舊不去, 新不來)”는 말이 있다. 이는 단순한 의례의 교훈이 아니라, 삶 전체에 적용되는 원리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닫힌 문을 붙잡고 있으면 새로운 문은 열리지 않는다.


관계의 끝에서 배울 것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이렇게 말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관계의 종말은 알을 깨는 순간과 같다. 그것은 고통스럽고 파괴적인 경험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더 넓은 세계가 열린다.


이별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가르친다. 첫째, 관계는 영원하지 않다는 깨달음. 둘째, 끝은 새로운 시작의 조건이라는 사실. 그러므로 끝난 관계에 미련을 두는 대신, 그 자리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새로운 탄생을 향해


관계가 수명을 다했다면, 가장 성숙한 선택은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며 놓아주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과거의 자신보다 더 단단해지고, 더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바로 그 자유로움 위에 새로운 인연이 찾아온다.


삶은 결국 만남과 이별의 반복 속에서 성숙해지는 여정이다. 관계의 죽음을 애도하는 동시에, 그 자리를 채워올 새로운 관계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인간으로서 배워야 할 성숙의 예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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