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와 메기 - 불편함이 빚어내는 공생의 지혜

by 엠에스

<미꾸라지와 메기 ― 불편함이 빚어내는 공생의 지혜>


공생의 지혜, 위기와 기회


인생에는 뜻하지 않은 위기와 도전이 찾아옵니다. 그것은 때로 억울하고, 불필요하며, 피하고 싶은 불편함처럼 보이지만, 지나고 보면 성장의 불씨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사실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삼성그룹 창업주로 알려진 故 이병철 회장의 젊은 시절 일화로 전해지는 ‘미꾸라지와 메기’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일본 유학을 중도에 마치고 경남 의령의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던 시절, 색다른 실험을 했습니다. 한 논에는 벼를 심고, 다른 논에는 미꾸라지를 길러 수익을 비교해 본 것이지요. 놀랍게도 미꾸라지는 쌀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남겼습니다.


이듬해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미꾸라지와 함께 그들의 천적인 메기를 넣어 기르기로 했습니다.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천적이 있음에도 미꾸라지는 오히려 더 많이 늘었고, 메기도 함께 번식해 전체 수익은 배가 되었습니다. 잡아먹힐 위기 속에서 미꾸라지들은 더욱 활발히 움직이고 강인해졌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흔히 ‘메기 효과’라 부르는 현상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메기 효과


연못은 고요했습니다. 먹을 것은 넉넉했고, 위협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미꾸라지들은 그 안에서 한가로이 유영했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몸은 둔해지고, 생명력은 점차 약해집니다. 역설적이게도, 안전만이 지배하는 연못은 오히려 죽음을 향한 가장 빠른 길일 수 있습니다.


반면, 메기가 풀려 있는 연못은 긴장으로 가득합니다. 언제 잡아먹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미꾸라지들을 더욱 빠르고 강하게 만들고, 더 많은 새끼를 퍼뜨리도록 합니다. 생존의 위기 속에서 비로소 생명은 가장 활발히 움직입니다.


이 단순한 생태적 사실은 인간의 삶을 비추는 투명한 은유가 됩니다.


고난은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도끼다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말했다. “풍랑은 능숙한 항해자를 길러낸다.”


고요한 바다 위에서 항해술은 결코 자라지 않는다. 인생 또한 그렇다. 평탄한 나날 속에서는 내면의 힘이 시험받지 않는다. 돌부리가 가득한 길에서만 발걸음은 단단해지고, 풍랑 속에서만 우리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알게 된다.


니체의 말 역시 같은 맥락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삶의 역경은 우리의 한계를 시험하지만, 동시에 내면의 잠재력을 흔들어 깨우는 손길이다. 고통은 우리를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단단하게 빚어내는 조각가다.


현대 심리학의 ‘스트레스 역설’


오늘날 심리학은 이러한 철학적 직관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한다. 연구에 따르면 적당한 수준의 스트레스는 인간의 집중력과 창의성을 자극하며, 새로운 학습과 성취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좋은 스트레스’, 곧 유스트레스(eustress)라 불린다.


완전한 편안함 속에서는 인간은 나태해지고, 과도한 압박 속에서는 무너진다. 그러나 적정한 도전과 긴장은 인간을 더 민첩하게, 더 현명하게 만든다. 메기가 함께 사는 연못의 미꾸라지와 다르지 않다.


문명과 사회도 메기 덕분에 자라났다


이 원리는 개인의 삶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 전체가 그러하다. 기후 변화와 기근, 전쟁과 전염병 같은 위협이 없었다면, 과학과 기술, 제도와 철학은 지금처럼 발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르네상스의 창조성은 중세의 억압을 뚫고 나온 반작용이었고, 산업혁명은 생존을 위한 절박한 필요에서 시작되었다. 불편함과 위협이야말로 문명의 메기였다. 역사는 우리에게 말한다. 위기는 단순한 재앙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여는 문지기라고.


균형의 철학 ― 평화와 풍랑 사이


그러나 메기가 지나치게 많아진 연못에서는 미꾸라지가 살아남을 수 없다. 위기는 성장을 자극하지만, 동시에 파괴의 가능성도 품고 있다.


삶의 지혜는 고통과 평안, 도전과 휴식 사이의 균형을 아는 데 있다. 고요만이 지배하는 연못은 정체되고, 폭풍만이 몰아치는 바다는 항해자를 삼킨다. 인간이 도달해야 할 곳은 그 중간, 곧 긴장과 평온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거기서 생은 가장 풍요롭게 열린다.


불편함을 사랑하라


우리는 누구나 삶 속에서 원치 않는 ‘메기’를 만난다. 경쟁자의 도전, 예상치 못한 실패,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그렇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한 불행으로만 여기지 않고, 나를 단련시키는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위기는 더 이상 저주가 아니다.


미꾸라지와 메기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불편함을 피하지 말라. 그것은 당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름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메기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살아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의 얼굴을 함께 지니고 있으며, 불편함은 인간을 더 큰 존재로 빚어내는 은밀한 손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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