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피어도 소리가 없고,
산새는 울어도 눈물이 없으며,
사랑은 불타도 연기는 없다.
한 어머니가 계셨다.
큰아들은 바다 건너 미국에서 학자가 되었고,
작은아들은 서울의 빌딩 숲에서 임원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 어머니는 여주 들녘에서
홀로 늙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자식을 너무 잘 키우면 국가의 자식이 되고,
그보다 덜 잘 키우면 사돈의 자식이 되며,
적당히 키운 자식만이 내 곁을 지켜준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막상 막힌 하수도 앞에서,
꺼진 전구 아래에서,
부를 수 있는 아들,
곁에 남아 있는 아들이야말로
참된 내 자식임을 알게 된다.
옛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곧고 수려한 소나무는
귀한 재목이 되어 잘려 나가고,
괴이한 모양의 소나무는
분재로 뽑혀 가 버린다.
그러나 바람 세차고 땅이 척박한 자리에
휘어지고 뒤틀린 소나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 소나무는
산을 지킨다.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추운 겨울이 되어야만,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이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품은 정신도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흔히 잘난 이를 우러러본다.
그러나 세상을 버티게 하는 것은
눈부신 몇 그루가 아니라
못난 수많은 소나무들이다.
도연명은 읊었다.
“도처에 잡초가 무성하나,
한 그루 소나무는 홀로 사시청(四時靑)이라.”
평범 속에서 끝내 푸르름을 지키는 존재의 의미를 일깨운다.
우리 대부분은 못난 소나무다.
우리의 자식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평범한 자식들이
부모의 산소를 지키고,
고향의 들판을 지키고,
노년에 우리의 곁을 지킬 것이다.
못난 소나무가 모이면 숲이 된다.
숲은 비바람을 막아내고,
새들을 품으며,
사람들에게 그늘을 내어준다.
서정주는 시에서 노래했다.
“국화꽃 향기 속에 술 익어가듯,
우리의 삶도 저 혼자 익어가리라.”
평범한 숨결들이 모여,
결국 세상을 익히고 지탱하는 것이다.
잘난 소나무가 없어도 숲은 무너지지 않지만,
못난 소나무가 없으면 숲은 사라진다.
현대 사회는 유난히 ‘잘난 소나무’만을 길러내려 한다.
명문대 진학률, 대기업 취업률, 화려한 스펙이
교육과 부모의 성공 잣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정작 우리 곁을 지켜줄 이는
평범하게 자란 아이들 일지 모른다.
돌봄이 필요한 부모,
텅 빈 고향 마을,
사라져 가는 지역 공동체를 끝내 지켜낼 이들은
성공의 무대에 오른 소수의 인재가 아니라
수많은 평범한 이웃들이다.
못난 소나무가 숲을 이루듯,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지탱한다.
그러므로 교육과 정책도
‘잘난 아이’만이 아니라
‘평범한 아이’에게 더 많은 애정과 투자를 기울여야 한다.
성공한 한 명의 엘리트보다,
곁을 지키는 수많은 평범한 시민들이
세상을 건강하게 만든다.
김소월은 읊조렸다.
“고향에 돌아와도 나는 고향이 없다.”
떠난 이에게는 고향이 사라지지만,
곁에 남아 지켜낸 이에게는
고향이 뿌리처럼 살아남는다.
그리하여 언젠가,
우리의 삶도 누군가의 선산을 지키는
한 그루 소나무로 남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