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인생은 한 권의 소설책과 같다.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끝이 어떻게 맺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만약 우리의 삶이 열 개의 장으로 구성된 소설이라면, 2장부터 4장까지는 청춘의 시절일 것이다. 설렘과 도전, 첫사랑의 기쁨과 좌절, 실패와 재기의 경험이 그곳에 빼곡히 담긴다.
그러나 소설의 초반부에 불과한 그 장면들이 우리의 전체 이야기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문학평론가 밀란 쿤데라는 “삶은 초고 없이 곧바로 쓰이는 원고”라고 말했다. 인생은 늘 미완성이며 현재진행형이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어떤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지가 곧 내 삶의 줄거리를 새롭게 써 내려가는 힘이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과거의 특정 장면에 붙잡힌다. 2장의 불행한 사랑 이야기, 4장의 쓰라린 실패담을 마음속에서 지워내지 못하고, 마치 그것이 책의 결말인 양 절망 속에 머문다.
그러나 소설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반전에 있다.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복선이 될 수도 있고, 한 번의 실패가 훗날 서사의 깊이를 더하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역사와 문학은 이를 잘 보여준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수차례 선거에서 낙선하고 사업에 실패했지만 결국 미국 대통령이 되어 새로운 역사를 썼다.
톨스토이 역시 방황과 좌절의 시기를 지나 『전쟁과 평화』라는 걸작을 완성했다. 개인의 삶 역시 그러하다. 우리가 지나온 장면은 결코 폐기물이 아니라 앞으로의 이야기를 빛나게 할 원료다.
철학적으로 보아도 삶은 현재진행형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Dasein)’라 부르며, 존재란 언제나 앞으로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는 존재라고 했다. 인간은 과거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늘 미래를 향해 스스로를 기획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불교의 무상(無常) 사상 또한 같은 맥락에서 우리에게 말한다. 모든 것은 변하고 머무르지 않으며, 지금의 고통도 지나가고 새로운 인연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에 묶이지 않고, 현재의 선택이 미래를 바꿀 수 있음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자유를 얻는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 진리는 유효하다. 은퇴 이후 제2의 삶을 준비하는 이들이 그렇다. 누군가는 60대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해 전시회를 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대학에 다시 입학해 새로운 학문을 탐구한다. 나이 듦이 곧 ‘마지막 장’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에는 70세에 창업해 지역 사회에 기여하거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와 연결되는 시니어들의 이야기도 많다. 그들의 삶은 과거의 경력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줄거리를 써 내려가는 생생한 증거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는 모두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을 맞이한다. 죽음은 소설의 끝이지만, 그것이 곧 이야기가 사라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떤 이는 그가 남긴 사상과 글로, 또 어떤 이는 자녀와 제자들의 삶을 통해, 혹은 작은 친절의 기억으로 세상에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소설의 후기를 쓰는 또 다른 저자가 되어, 우리의 삶을 다시 이어간다.
삶의 진정한 가치는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문장이 아니라,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어떤 영감을 얻고, 어떤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가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이 바로 유산(legacy)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죽음으로 닫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이들의 삶 속에서 새로운 문장으로 다시 열리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어느 장에 서 있는가가 아니라, 앞으로의 장을 어떤 주제로 써 내려갈 것인가이다. 잠시 불행하고 절망스러운 시기를 겪더라도 그것이 곧 망쳐버린 인생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생의 소설은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그 누구도 완전히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삶을 ‘현재진행형’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다. 과거의 실패에 사로잡히지 않고, 아직 쓰이지 않은 장면을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갈 수 있다.
결국 우리의 인생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쓰고 있는 문장과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삶은 언제나 현재진행형
우리는 흔히 인생을 ‘완성’하거나 ‘도착점에 다다르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인생은 결코 완성되는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늘 수정되고, 덧칠되고, 다시 쓰이는 원고와 같다.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했듯, 인간은 ‘아직-아님(noch-nicht-sein)’의 존재, 곧 끊임없이 되어가는 존재다.
사람들은 과거의 실패에 매달려 후회하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하며 현재를 흘려보내곤 한다. 그러나 삶은 과거의 기억도, 미래의 기대도 아닌, 오직 현재라는 무대 위에서만 펼쳐진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실재인 것이다.
물론 ‘현재에 충실하라’는 말은 순간의 쾌락에만 집착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교훈을 품고, 미래의 비전을 준비하면서도, 현재를 외면하지 말라는 지혜다. 마치 나무가 뿌리로부터 영양분을 끌어올려 미래의 열매를 맺되, 매 순간 햇빛과 바람을 받아내며 지금을 살아내는 것과 같다.
삶을 현재진행형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완벽함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난다. 끝까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 실패와 시행착오는 미완의 원고를 다듬는 과정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생이라는 책은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계속 이어지며, 그 끝조차도 새로운 독자들의 해석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실생활 속 현재진행형의 의미
예를 들어, 한 번의 사업 실패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는 좌절 속에서도 배운 것을 토대로 다시 도전했고, 두 번째 시도에서 비로소 길을 찾았다. 그의 성공은 첫 실패가 없었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삶이 ‘현재진행형’ 임을 깨달았기에, 실패를 끝이 아니라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예는 은퇴 후 공부를 시작한 노년의 이야기다. 어떤 이는 칠십이 넘어 대학에 입학해 평생 꿈꾸던 역사를 공부했다. 주변 사람들은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냐’고 묻곤 했다. 그러나 그는 담담히 대답했다. “지금이 내게 가장 좋은 때입니다. 배움은 젊은이의 전유물이 아니지요.” 그의 삶은 여전히 새로운 문장을 써 내려가는 중이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불안과 마주한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 불확실한 경제, 흔들리는 인간관계. 많은 이들이 “언제쯤 안정될까”를 묻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안정은 ‘과정에 머무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오늘 하루를 다해 살아내는 사람에게만 내일은 조금 더 단단하게 다가온다.
불완전함의 아름다움
현대 사회는 끊임없는 경쟁과 성과의 압박 속에서, 사람들에게 ‘완성된 모습’을 요구한다. 그러나 진정한 인간의 가치는 완성이 아니라 ‘과정’에서 드러난다. 화가가 미완의 스케치를 반복하듯, 우리는 실수와 고침을 통해 자기 자신을 빚어간다. 오히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인간적인 아름다움이 빛난다.
삶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어제의 후회와 내일의 불안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서 호흡하며, 쓰고, 사랑하고,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