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익은 알곡을 모조리 걸러내면 남는 곡식이 없듯, 미운 사람을 다 밀어내면 곁에 둘 이가 남지 않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모자람과 넘침, 아름다움과 결함이 함께 어우러져 굴러가는 법이지요.
욕을 자주 입에 올리면 마음은 거칠어지고, 매를 자주 휘두르면 남의 고통에 무뎌집니다. 소중한 내 것이 남에게는 하찮아 보일 수 있고, 남의 귀한 것이 내겐 대수롭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기에, 조율과 배려가 없으면 우리는 끝내 홀로 서게 됩니다. 이는 곧 공멸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남을 비판하는 이는 정작 자신이 비판받고 있음을 모르고, 남을 비난하는 이는 자신도 그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잊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잴 때는 성인의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자신을 평가할 때는 한없이 너그러워집니다. 그래서 공자는 ‘중용’을 가리켜 가장 높으나 가장 지키기 어려운 도(道)라 했던 것이 아닐까요.
과유불급의 지혜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모자람과 다르지 않다는 말. 이는 단순한 절제가 아니라 인간 욕망에 대한 깊은 성찰입니다. 끝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하는 마음은 결국 스스로를 해치고 맙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덕은 과도와 결핍 사이의 중간’이라는 사유 역시 이와 맞닿아 있습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인간은 균형을 향한 갈망을 오래도록 노래해 온 셈이지요.
황희 정승의 이야기
조선의 황희 정승은 중용을 실천한 인물로 자주 회자됩니다. 안방에서는 아내 말이 옳다 하고, 마당에서는 머슴 말이 옳다 하며, 부엌에서는 종의 말을 따르고, 사랑방에서는 아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는 일화는 단순한 전설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태도 속에는 갈등을 키우지 않고 사람을 살리는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물론 중용이란 누구에게나 맞장구치는 줏대 없는 처세술이 아닙니다. 원칙을 잃지 않으면서도 상황에 따라 조화를 이루는 것, 다름을 포용할 수 그것이야말로 중용의 참된 길입니다.
삶의 균형
우리의 삶은 궁극적으로 균형이 중요합니다,
석가모니의 깨달음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은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통, 성공과 실패 등이 혼합된 것입니다.
이런 다양한 경험들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진정한 의미의 성장을 가져옵니다.
기쁨과 슬픔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은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감정의 다양성을 더 수용함으로써 한 사람이 더 성숙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기쁨만 계속되거나 슬픔만 계속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한쪽만 계속되는 경우에는 삶의 균형을 잃게 됩니다. 반드시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습니다.
다양한 경험들을 통한 깨달음만이 진정한 의미의 성장을 가져오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따라서 현재 기쁨으로 너무 자만하거나 슬픔으로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풍요로운 삶을 위한 성장의 과정일 뿐입니다.
삶의 균형을 찾고 지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자신만의 삶의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중심이 튼튼해야 흔들림이 없습니다.
오늘의 중용
오늘의 세상은 극단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정치의 진영 대립, 인터넷의 언어폭력, 경쟁에 내몰린 삶은 모두 균형을 잃은 시대의 자화상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 극단만을 고집하는 사회에는 화합이 없고, 지속도 없습니다. 중용은 개인의 미덕이자 공동체의 생존 원리이기도 합니다.
가정에서는 사랑과 훈육의 균형이 필요하고, 사회에서는 정의와 관용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리더는 강함과 부드러움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잡아야 하며, 한 개인은 욕망과 절제 사이에서 스스로의 조율을 배워야 합니다.
삶의 숙제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다짐할 수 있습니다.
있다고 다 내보이지 말고, 안다고 다 말하지 말며, 가졌다고 다 자랑하지 말고, 들었다고 다 믿지 말자.
중용은 삶의 허리를 곧게 세우는 지혜입니다. 절제 속에서 품위를 지키고, 침묵 속에서 깊이를 더하며, 균형 속에서 삶을 단단히 만들어 줍니다. 그것은 어느 하루의 지혜가 아니라, 평생을 두고 익혀야 할 삶의 숙제입니다.
마무리
중용은 모호한 타협이 아니라 지극한 균형입니다. 세상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품어내고,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조율하며, 타인과의 거리를 지혜롭게 가늠하는 것. 그 길 위에서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화합과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극렬 보수 진보로, 또 동과 서로 극치를 달릴 것이 아니라 중도와 중용이 나라를 지키고 이끌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사회의 보편적 합리적 공통 가치관이 존중이 되고 지켜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