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국민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은 『삐삐 롱스타킹』으로 유명하지만, 정치적 풍자를 담은 단편 「폼프리포사 인 모니스 마니엔(Pomperipossa in Monismanien)」(1976)으로도 한 시대를 뒤흔들었다.
그녀는 동화적 상상력을 빌려, 한 작가가 글을 써도 세금으로 소득의 102%가 빠져나가는 상황을 그렸다. 실제로 세율이 100%를 넘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스웨덴의 누진세 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과도했다는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이 사건은 국민적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복지국가 모델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시선을 촉발시켰다. 이후 “폼프리포사”는 과도한 복지와 세금으로 의욕을 상실한 ‘식물인간’적 존재를 상징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복지의 역설 ― 선의가 어떻게 의욕을 꺾는가
복지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문명의 성취다. 그러나 경제학에서는 오래전부터 “한계세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근로·창작·투자 의욕이 감소한다”는 것이 통설처럼 알려져 있다. 심리학적 연구에서도, 소득의 1/3 이상이 세금으로 환수될 때부터 노동의욕이 뚜렷하게 줄어드는 경향이 보고되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높은 조세와 두터운 복지를 결합시켜 이른바 “북유럽 모델”을 만들어냈지만, 1980년대 들어 경제 성장 둔화와 ‘복지 피로(welfare fatigue)’라는 부작용을 겪었다. 기업가와 예술가들이 조세 부담 때문에 해외로 빠져나가거나 창작 활동을 줄이는 현상도 나타났다.
복지의 목적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지만, 잘못 설계된 복지는 인간을 의존적 존재로 만들 수 있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말했듯이, “무위(無爲)의 삶은 인간을 쇠퇴하게 만든다.” 노력과 책임이 결여된 복지는 오히려 공동체의 활력을 앗아가는 독이 될 수 있다.
포퓰리즘의 덫과 역사적 교훈
역사는 복지와 포퓰리즘의 경계가 무너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그리스: 1980년대 사회당 정부가 대규모 복지를 남발하면서 재정적자가 누적되었고, 결국 2010년 국가부도 사태로 이어졌다. 아테네대 하치스 교수는 이를 두고 “정치권의 포퓰리즘 경쟁이 나라를 파괴했다”라고 평했다.
러시아: 1990년대 체제 전환기와 국가 부도 속에서 국민 다수가 빈곤층으로 추락했고, 사회 붕괴는 인신매매와 범죄 증가로 이어졌다.
아르헨티나: 반복되는 포퓰리즘 정책과 재정 위기로 2000년대 초 경제가 붕괴되자, 빈곤층은 극단적 결핍 속에서 생존을 위해 동물까지 잡아먹는 상황에 내몰렸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국가 재정의 붕괴는 가장 약한 계층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안긴다는 점이다. 복지를 위해 시작한 제도가 역설적으로 빈곤층을 더 깊은 절망에 빠뜨린 것이다.
한국 사회와 ‘폼프리포사화’의 위험
오늘의 한국은 저출산, 고령화, 가계부채, 저성장, 노동시장 경직성 등 여러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현금 살포식 포퓰리즘”은 미래 세대의 부담을 키운다. 재난지원금, 무분별한 기본소득 논의, 전 국민 고용보험 등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재정 기반과 정합적 설계 없이는 국가 재정을 갉아먹는 약속이 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국민의식의 변화다. “세금은 남이 내고, 복지는 내가 누린다”는 심리가 확산되면 사회 전체가 ‘폼프리포사’처럼 의존적이고 무기력한 존재로 변해간다. 이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윤리적 위기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공동체의 덕성은 개인의 습관에서 비롯된다. 복지는 권리가 아니라 책임과 균형 속에서만 온전히 작동한다.
철학적 성찰 ― 자유와 책임의 균형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경제는 불필요한 지출을 피하고 재산을 올바르게 관리하는 기술”이라 말했다. 이는 개인뿐 아니라 국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복지와 세금의 문제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자유와 책임, 공동체의 지속성에 대한 철학적 문제다.
복지는 인간을 보호하지만, 과잉 복지는 인간을 약화시킨다. 자유는 인간을 고양시키지만, 무책임한 자유는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따라서 복지와 자유, 연대와 책임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가 21세기 민주국가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맺으며
“폼프리포사”는 단지 북유럽의 한 시대적 일화를 넘어, 복지국가가 직면하는 보편적 위험을 상징한다. 한국이 같은 길을 걷지 않으려면, 국민 모두가 복지를 누릴 권리와 재정을 지탱할 책임을 동시에 자각해야 한다.
복지는 나눔의 제도이자 연대의 장치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의욕을 빼앗고 공동체의 활력을 마비시키는 순간, 우리는 모두 ‘폼프리포사’가 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복지”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복지”, 그리고 무엇보다 깨어 있는 시민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