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본래 공적 삶을 꾸려가는 예술이다. 각기 다른 목소리를 품고, 서로의 이해를 조율하며, 공동의 선을 찾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정치의 풍경은 그 본래의 의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국회는 논쟁의 장이 아니라 진영 간 전투의 장이 되었고, 합리적 토론은 실종된 채 언어의 칼날만 번득인다. 민주주의는 성숙해 가는 대신 뒷걸음질 치고 있으며, 마치 연극 무대에서 서로를 향해 돌을 던지는 배우들처럼 정치는 갈등의 극장으로 변해버렸다.
진영에 묶인 정치, 사라진 합리성
정치가 합리성을 잃은 자리는 적대의 언어로 채워지고 있다. 여야는 마치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교전 세력처럼 움직이며, 중요한 개혁 과제들은 뒤로 밀려난다. 저출산, 고령화, 경제 전환, 교육 개혁과 같은 국가적 과제는 방치된 채, “누가 더 상대를 무너뜨릴 것인가”가 정치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국민은 정치인들의 목소리에서 국가 비전보다 적대적 구호를 더 자주 듣는다. 그 결과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일상어가 되고, ‘정치 혐오’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뿌리 깊은 진영 논리의 토양
이 현상은 단순히 정치인 몇 명의 문제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승자독식 구조를 고착화한 대통령제, 타협을 막는 소선거구제, 분단과 권위주의가 남긴 정치적 유산, 그리고 언론과 SNS가 증폭하는 자극적 갈등 구조가 모두 얽혀 있다. 마치 땅 속 깊이 얽힌 뿌리처럼, 이 구조적 요인들이 정치의 토양을 오염시키고 있다.
여기에 시민사회는 아직 성숙한 중재자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다양한 이익 집단과 단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사회적 갈등은 국회에서 합의되지 못하고 거리의 시위나 온라인의 혐오로 분출된다. 정치는 더 협소해지고, 사회는 더 갈라진다.
민주주의의 후퇴, 잃어버린 공공의 꿈
정치가 이렇게 분열과 대립의 장으로 변할 때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다. 정책은 표류하고, 사회적 양극화는 심화되며, 젊은 세대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는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선거 절차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고, 속은 텅 빈 채 위태롭게 서 있다.
길을 찾기 위한 제언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까.
제도적으로는, 권력의 독점을 줄이고 다양한 목소리가 국회에 들어올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다당제는 정치인들에게 타협을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으로 만든다.
문화적으로는, 합의와 조정의 가치를 새롭게 배워야 한다. 동양의 지혜인 중용(中庸), 서구 민주주의의 원리인 견제와 균형, 현대 사회의 다원주의를 우리의 생활 속에 다시 심어야 한다.
시민적으로는, ‘내 진영’이라는 안경을 벗고 정책과 가치 기준으로 투표하고, 언론과 SNS의 자극적 정보에 휘둘리지 않으며, 생활 속에서 토론하고 합의를 시도하는 작은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
맺음말: 깨어 있는 시민이 희망이다
민주주의는 정치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 개개인의 태도와 삶의 방식 속에서 자라난다. 우리가 서로를 적으로 보지 않고, 다른 목소리를 존중하며,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합리적 선택을 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다시 숨을 돌릴 수 있다.
정치는 바다와 같다. 바다가 파도에 흔들려도 결국 수평선을 향해 흐르듯, 정치는 늘 공동체라는 더 큰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오늘의 한국 정치는 그 바닷속에서 진영의 폭풍우에 갇혀 있다. 그러나 국민이 깨어나 바람을 가라앉히고, 다시금 넓은 수평선을 바라볼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본래의 항로를 되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