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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선거권, 민주주의의 경계에서

by 엠에스

<외국인 선거권, 민주주의의 경계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피와 눈물로 세워진 체제다. 거리의 함성, 시민의 촛불, 그리고 국민의 투표 한 장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찬란한 민주주의의 이면에서 지금, 새로운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국민이 아닌 사람에게도 투표권을 주는 것이 과연 옳은가?”


이 질문은 단순한 법리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과 민주주의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물음이다.


외국인에게 열린 문


한국은 2006년 지방선거부터 일정 조건을 갖춘 외국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15조에 따르면, 3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 영주권자(F-5 비자)는 주민등록에 올라 있을 경우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원 선거에 투표할 수 있다. 이는 OECD 국가 중에서도 상당히 진보적인 제도로, 한국이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치였다.


당시 제도의 도입 배경은 이렇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급증하면서, 이들이 세금을 내고 지역사회에 기여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권리를 전혀 행사하지 못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따라서 일정한 거주 요건과 합법적 체류 조건을 충족한 외국인에게는 ‘지역 구성원으로서의 정치 참여’ 기회를 주자는 취지였다.


이념적으로 보면 이는 분명 포용적 민주주의의 구현이었다. 민주주의가 국민의 독점적 권리로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구성원 전체로 확장되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선의의 제도, 그러나 현실의 그림자


그러나 제도는 언제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품고 있다. 외국인 선거권은 출발부터 ‘지역 참여’라는 명분 아래 시행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부작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과 조선족 출신 외국인이 급증한 일부 지역에서 외국인 유권자가 선거의 향배를 좌우하는 사례가 보고되었다. 서울 구로구, 인천 중구·서구, 경기 안산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외국인 유권자 수가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한다. 정당이나 후보자 입장에서는 이 수치가 결코 작지 않다. 실제로 일부 정치 세력은 특정 외국인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조직적 지지 활동’을 전개하거나, 편파적 지원 약속을 통해 표심을 유도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국민들로 하여금 근본적인 불신을 불러일으켰다.


“우리의 지역 정치가 과연 우리 국민의 손에 달려 있는가?”


“세금은 우리가 내는데, 왜 외국인이 지도자를 함께 뽑는가?”


이 불안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주권과 공동체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되었다.


민주주의의 철학적 균열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국민주권’을 기반으로 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는 그 정신의 근간이다. 그렇다면 외국인의 투표권은 이 원칙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


민주주의의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는 “정의로운 사회는 사회 구성원 간의 합의에 의해 유지된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사회 구성원’이란 단순히 거주하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그 사회의 법질서, 역사, 가치관, 그리고 공동체의 운명에 동의하고 참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즉, 단순한 ‘거주자’와 ‘시민’은 다르다. 시민은 공동체의 이익과 미래를 함께 책임지는 존재이지만, 외국인은 자신의 모국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관계를 달리할 수 있다. 따라서 정치적 의사결정의 권한을 시민 아닌 자에게 부여할 때, 민주주의의 철학적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


국민의 불안, 정치의 악용


국민이 느끼는 불안의 본질은 ‘차별’이 아니라 ‘불공정’이다. 한국은 세계에서도 드물게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허용하고 있지만, 정작 국민이 외국에서 동일한 대우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영주권자에게도 지방선거권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국은 ‘열린 제도’를 택했다. 문제는 그 열린 제도가 때로는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악용된다는 점이다. 일부 후보는 외국인 커뮤니티에 ‘특혜 공약’을 내세워지지를 얻고, 외국인 단체는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표를 거래하듯 행사한다. 이러한 행태는 민주주의의 신뢰 기반을 무너뜨리고, 지역사회의 통합보다는 갈등을 증폭시킨다.


국민의 불만이 고조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치가 국민을 설득하기보다 외국인 표를 끌어모으는 데 집중할 때,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의 문장은 공허한 수사가 된다.


신뢰의 복원, 그리고 제도 개선


그렇다고 해서 외국인 선거권 자체를 전면 폐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외국인을 영원히 정치적 주변인으로 남겨두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중요한 것은 ‘열린 제도’와 ‘국가 주권’ 사이의 균형이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개선이 필요하다.


(1) 투표권 부여 요건 강화

단순 거주기간(3년)만이 아니라, 납세·범죄 이력·한국어 능력·시민교육 이수 등의 추가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법적으로만 존재하는 시민”이 아니라 “문화적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확보해야 한다.


(2) 시민교육 의무화

투표권을 가진 외국인은 한국의 정치제도, 헌법 가치, 지방자치 구조에 대한 기본 교육을 이수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권리 행사 이전의 책임을 부여하는 시민훈련의 과정이다.


(3) 투명한 선거 관리 체계

외국인 유권자 등록 및 투표 절차를 국민에게 공개하고, 외국인 표심을 노린 정치적 유착을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4) 정치권의 자정 노력

외국인 표를 ‘정치적 자산’으로 계산하는 풍토를 근절하지 않으면, 제도는 아무리 정비해도 근본적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국민의 자각과 성숙한 시민의식


이 문제의 근본적 해답은 결국 ‘국민 각자의 성찰’에서 나온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강점은 제도의 완벽함이 아니라, 시민의 자각 수준이다. 외국인 선거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배타적 국수주의로 흐를 수도, 무비판적 포용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사실’과 ‘책임’에 기초한 판단이다.


외국인은 이미 우리의 이웃이자 동료이며, 한국 사회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존재다. 그러나 그들이 정치적 시민으로 참여할 때, 그 책임 또한 한국 사회의 규범과 헌법적 가치 안에서 공유되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공존의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험대


외국인 선거권 논쟁은 단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숙했는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곧 우리 정치문화의 품격을 결정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시험대 위에 있다. 과도한 배타성은 우리를 고립시킬 것이고, 무조건적인 개방은 주권을 약화시킬 것이다. 이 두 극단을 넘어서는 균형의 정치, 성숙한 시민의식, 투명한 제도 운영이야말로 21세기 한국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맺음말


외국인 선거권은 결국 우리 사회가 던져야 할 질문이다 “민주주의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공동체의 경계는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가?”


그 답은 법률이 아니라, 우리의 철학 속에 있다. 국가의 정체성과 포용의 정신, 주권과 인권의 조화 — 그 사이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다시 한번 진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포용의 이름으로 주권을 잃지 않고, 배타의 이름으로 인간을 배척하지 않는 길, 그 길을 찾는 것이야말로 21세기 대한민국의 성숙한 민주주의가 풀어야 할 가장 근본적인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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