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른 사람의 존재 가치는?

함께 공존하며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야...

by 엠에스

타인은 지옥이다.

장폴 사르트르가 희곡 『닫힌 방(Huis Clos)』에서 남긴 유명한 말, “타인은 지옥이다(L’enfer, c’est les autres)”는 종종 인간관계의 본질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한 문장으로 인용된다. 사르트르의 의도는 “지옥이 곧 타인의 존재 그 자체”라는 단순한 비난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자신의 실존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재정의될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르트르의 의도와는 별개로 현실 속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문장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직관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우리 대부분은 타인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고통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가족, 친구, 동료, 연인 등 친밀한 관계이든 아니면 낯선 관계이든 간에 관계가 맺어지는 순간 필연적으로 이해관계가 서로 교차하며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며 때로는 치욕을 느끼고 슬픔을 겪는다.

왜 의식하는가?

알랭 드 보통은 『불안(Status Anxiety)』에서 인간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이유를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자기 가치에 대한 절대적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부심을 느끼기 위해서는 타인의 인정을 어느 정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벤자민 프랭클린도 “다른 사람의 눈은 우리를 파멸로 이끈다. 만약 주변 모든 이가 볼 수 없는 존재라면, 나 역시 좋은 집, 좋은 옷, 좋은 차를 그토록 원치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타인의 시선이 없으면 혹은 비교 대상이 사라지면 우리가 흔히 집착하는 물질적 가치와 지위, 명예 등이 설 자리를 잃는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단지 ‘돈’ 그 자체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돈이 주는 편의나 물질적 풍요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큰 동기는 “남들보다 우위에 있음으로써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이다.

인간의 유전병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명예욕과 허영심, 자부심을 “대대손손 내려오는 인간의 유전병”이라고 표현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혼자서는 생존하기가 쉽지 않으며, 본능적으로 무리 지어 살아간다. 그런데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서열을 어떻게 매길 것인가?”이다. 특히 자본주의가 발전한 현대에는 권력, 경제력, 직업, 학벌, 외모, 신체 능력, 나이 등 다양한 지표를 통해 언제든 서열화가 이루어진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가 낮아 보이거나 천대받는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하고 불안에 빠지게 된다.

토마스 홉스는 『시민론』에서 “인간은 인간에게 신과 같은 존재이자, 동시에 늑대와 같다”라고 썼다. 이는 타인을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적대하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드러낸 말이다. 사람은 극도로 이기적인 존재이므로 타인의 승리가 내 패배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끊임없이 경계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인정 투쟁은 계속된다. SNS에서 매일같이 누군가는 성공담과 멋진 사진을 올리고, 그 대조 속에서 불안해진 나머지 사람들은 더 많은 ‘좋아요’와 주목을 받으려 애쓴다. 결국 이러한 환경 자체가 서로에게 지옥을 만드는 구조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왜 내 안에 사는가?

“타인이 우리 안에 산다”는 말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증오하는 사람, 혹은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단 인식되는 순간 우리의 뇌리와 잠재의식 속에 자리 잡는다. 아무리 “나는 남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주장해도, 결국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실제 곁에 없어도 상대를 의식한다. 부모와 자식, 친구, 배우자, 직장 동료 등은 서로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마음 한구석에서 “저 사람에게 무시당하면 어떡하지?”, “내가 이 일을 하는 걸 어떻게 볼까?” 하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이러한 감정이 때로는 우리를 더 부지런히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을 ‘타인의 욕망’에 종속시키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변하는 환경, 변치 않는 본질

과거 유럽의 ‘결투 문화’는 명예욕과 인정 욕구가 얼마나 극단적으로 발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남이 자기 명예를 모욕했다고 느끼면 결투를 통해 싸워야 했고, 칼 솜씨나 총솜씨가 좋은 자가 곧 ‘옳은 사람’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죽음이나 중상해가 발생해도 “명예를 지키기 위해 치른 대가”로 여겨졌다.

오늘날에는 합법적인 결투 문화가 사라졌지만 다른 방식으로 변형된 결투가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는 ‘취업 시장’이라는 전장에 뛰어들고, ‘승진 경쟁’이라는 결투에 매달리며, SNS에서 끊임없이 ‘좋아요’와 구독자를 늘리기 위한 암묵적 싸움을 벌인다. 상대의 스펙과 실력을 넘어서고, 남보다 우월한 지위를 차지함으로써 안도감을 얻으려는 욕망이 작동한다. 동시에, 그 경쟁에서 뒤처지면 불안과 좌절을 느끼는 구조는 어쩌면 과거 결투 문화 못지않게 치열하고 잔혹하다.

왜 지옥인가?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문장이 사실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관계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수치심이 종종 극단적인 공격성과 파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평가절하하거나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우리는 내면 깊숙한 분노와 함께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이 감정이 제어되지 않으면 무의식 중에 상대에게 보복하거나 폭력적인 언행으로 표출될 수 있다.

일상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겪는다. 직장에서 상사가 잘못을 지적했을 때, 친구끼리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깊은 모멸감을 줄 때가 있다. 가정 내에서도 부부가 서로 존중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상대를 지옥의 문턱으로 끌고 간다. 이렇듯 타인을 통해 나 자신이 평가되기 때문에 상대방의 시선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자아와 타인 사이 균형 유지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타인에게서 도망쳐야만 할까? 아니면 영원히 타인이라는 이름의 지옥 속에 머물러야 할 운명인가? 문제는 조금 복합적이다. 앞서 말했듯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므로, 완전히 타인을 배제하고 살아갈 수는 없다.

결국 해법은 “타인의 시선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이고, 어디서부터 거리를 둘 것인가”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 균형을 찾는 데 있다. 자기 존재 가치를 순전히 타인의 시선에 의탁한 채 살면,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 무너지기 쉽다. 반대로, 타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되어 살려하면 현실적으로 생존이 어려워진다.

타인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문장은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역설적인 깨달음도 준다. 만약 우리가 “타인이 곧 지옥”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자칫 잘못하면 나도 누군가에게 지옥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면, 서로 간에 더 많은 관용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이므로 서로 달라 마땅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차이를 완전히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 상대를 내 방식대로 재단하거나 강압적으로 동화시키는 일을 경계하게 된다. 동시에 “나도 완벽하게 자신감을 가진 존재가 아니기에, 타인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자각하면, 내 앞에 있는 사람 또한 내게 관심을 요구하고 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

“모든 게 불안하고 힘들다”며 인간관계 자체를 기피하려 하거나, 의식적으로 타인의 평가에 무 감각해지려 애쓴다. 그러나 그 길 역시 온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사르트르의 말 대로, “우리는 단지 스스로를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친구와 애인 등 친밀한 이들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기쁨도 크다. “타인은 지옥”이지만, 역설적이게도 “타인은 천국”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타인으로 인한 괴로움은 때로 우리를 성장시킨다. 실패와 비난으로부터 우리는 부족함을 깨닫고, 더 나은 성취를 향해 노력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음으로써 자아존중감을 키우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통해 인생의 방향을 재정립하기도 한다. 결국 사람과의 관계는 끊임없이 상처 주고받으면서도 다시 회복하는 아주 복잡한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공존하는 지혜가 필요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 한마디는 인간의 근원적 불안과 군중 속 고독, 그리고 억눌린 자기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끝없이 높은 지위를 갈망하고 더 많은 돈과 권력을 통해 스스로를 과시하려 하며,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고통스러운 ‘지옥’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 지옥이 단지 부정적 의미만 갖는 것은 아니다. 지옥 같아 보이는 인간관계 안에서도 성장, 애정, 협력, 이해 같은 긍정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꼭 명예와 권력만을 좇지 않고도 서로의 삶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공존한다면, 타인이라는 존재가 조금은 덜 지옥같이 느껴질 수 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 시선을 현명하게 다루는 법을 익히고 동시에 “내가 누군가에게 지옥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태도를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