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윈터 Jun 12. 2022

어머니와 빈티지 의류

나는 한참 어떤 스타일에 빠져 사는 주기가 있다. 내 생각엔 아닌 척 하면서 그 때 유행하는 옷을 적당히 따라 입는 듯 하다. 언젠가는 하와이안 셔츠에 히피펌을, 언젠가는 스포티한 룩에 층낸 브릿지 머리. 그리고 현재의 나는 빈티지 의류 쇼핑에 빠져있다. 그래니룩 등등 부르는 이름들은 많은데 어쨌든 그런 옷들에 심취해 있는 것 같다. 제일 좋아하는 카페에서 집으로 향하는 방향에 좋아하는 빈티지샵이 있는데 그곳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안 그래도 혼자 사는 집에 옷장이 크면 얼마나 크다고 자꾸 사 모으는 바람에 옷장이 점점 차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내가 오랜만에 본가에서 낮잠을 길게 자고 일어난 날이었다.

고향에 내려와 긴장이 풀렸는지 하루 종일 졸렸고, 결국 꿀맛 같은 2시간을 보내고 일어나니 닫힌 문 아래에서 환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당연히 가족들도 낮잠을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누가 벌써 일어났는지 의아해하며 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문 바로 앞 부엌 테이블에 앉아 구멍난 내 빈티지 의류를 손보고 계셨다.


내 서울 집은 다 좋은데 근처에 마땅한 세탁소가 없다. 그나마 얼마 전 새로운 코인세탁소가 문을 열었길래 망정이지, 그거 말고는 어느 정도 씩은 걸어야 작은 세탁소들이 나온다. 거길 가는 것이 여즉 귀찮아 아직까지 수선 못한 옷들이 한가득이었다. 참 게으르게도.


모두가 잠들어있고 불 꺼져 있는 조용한 공간에서 어머니가 손바느질하는 사부작사부작 소리가 듣기가 좋아 맞은편에 앉아 어머니를 구경했다. 약간 불효녀 같다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떠올랐으나 잠시 모른 체 하기로 했다. 어머니가 능숙한 솜씨로 구멍난 곳을 꼬매고 고무줄을 맞춰주는 모습은 너무도 멋있었으므로. 


나는 엄마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그런 말이 튀어 나왔다. 어머니는 웃으면서 당연하다고, 그리고 당신도 내가 없으면 못 산다고, 그런 뼈있는 대답을 해오셨다. 목숨의 무게가 무거워지는 이런 순간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 목숨의 무게가 그저 하염없이 가벼워져서 연약한 바람에도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으면 싶었다. 내 주변 사람들마저 나라는 생명이 있었는지 알아차리지조차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 앞에서 어머니는 꼬맨 실을 단단하게 매듭짓는다. 장바늘이 옷을 계속해서 관통하며 찢어진 곳들을 꿰매낸다. 다 늘어져 입기 힘든 치마는 다시금 새것처럼 튼튼한 치마가 되었다. 아마 질릴 때까지 입게 될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끝까지 보고 관찰하고 느끼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계에 겨울이 찾아올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