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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터 Jul 04. 2022

2호선 짝사랑

2호선이 지나가는 곳에 살게 된 지도 몇 년이 지났다. 처음 상경했을 때만 해도 학교가 있는 1호선 근처에서만 살았다. (부정적인 의미로)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다이나믹 1호선. 나는 1호선 만이 지나가는 구역에 살고 있어 어딜 가더라도 꼭 1호선을 거쳐야만 했다. 1호선이 딱히 싫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탈 때마다 왠지 모르게 조금 불만이었다. 2호선은 젊은 유동 인구가 많이 사는 지역을 지나가는 쿨한 노선이라는 이미지가 깊게 박혀 있어, 어쩌다 홍대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시청 역에서 2호선을 갈아타며 2호선에 대한 동경을 키워갔다. 1호선에서 간혹 지하철 상인이나 구걸하는 낯선 이들을 마주하고 나면 그런 생각은 점점 더 커져 갔다.


남들은 이해 못할 나만의 2호선 짝사랑이었던 것도 같다. 2호선이 지나가는 지역에 살게 되며 그 사랑은 점점 옅어져 갔지만 그렇다고 완전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가끔 2호선을 타고 당산-합정 쪽을 지나며 노을 지는 바깥 풍경을 마주할 때면 그 사랑은 조금 더 굳건해지는 것도 같았다. 서울 속을 날마다 순환하는 연두색 노선. 어차피 대중교통인 만큼 타는 사람들은 전부 랜덤일텐데도, 이상한 나의 짝사랑은 계속되었다.


사실 나는 홍대와 합정을 향한 낭만도 가지고 있다. 젊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 어쩔 수 없는 외향형 인간이라 그런지 몰라도 홍대 속 인파에 섞여 걸어갈 때면 왠지 나도 그들 같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면서 긍정적 에너지를 듬뿍 받고 온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는 별 관심 없지만 그래도 머리는 언제나 말랑말랑한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이런 낭만과 바람이 사실은 다른 노선과 다를 바 없는 2호선에 혼자 어떤 이미지를 부여하는 걸지도.


내일도 모레도 나는 2호선을 타게 될 것이다. 홍대로 향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함께 홍대에서 내리고 제각기 흩어지는 일을 반복할 것이다. 이 낭만이 쉽게 스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2호선이 계속해서 달리는 한 나의 2호선 짝사랑은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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