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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csa Jun 13. 2023

마흔삶찾기

당신은 모빌리티에 특화되었습니다.

지난해 8월, 업무 변경이 있었다. 15년 동안 해왔던 업무를 그만두고, 새로운 업무를 맡으라 했다. 정신이 멍~ 해지는 상황이었고, 근처 선 후배와의 영역 싸움에서 밀린 것 같아 속상했다. 작지 않은 패배의식에 빠졌다.


지난 몇년동안, 같은 업무를 했지만 소속 부서가 여러 번 바뀌면서 어느 누군가의 오른팔 혹은 왼팔이 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부서 전배 인력으로 내가 선택되는 건, 쉽게 예측 가능한 상황이었다. 전배 인력 선정을 위한 개별 면담의 기회가 나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5분 정도 부서장과의 커피타임이 있었는데, 주변 모든 사람들의 개별 면담을 끝나고, 희망자가 없는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네가 가야겠다는 통보를 듣는 것이 전부였다. 이것도 면담은 면담이겠지만, 그때 꼬여버린 감정은 아직까지 선명하게 배배 꼬인 상태로 남아있다.


면담을 빙자한 통보의 자리. 짧은 5분동안 부서장은 상당히 많은 이야길 전달했다. 자신보다 두 단계 높은 리더십의 결정이니 어쩔 수 없다 했다. 내가 가야하는 부서는 지금 가장 이슈가 되는 부서여서 많은 사람이 근무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겐 모빌리티라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새로운 업무 빠르게 적응할 것이고 그곳은 나에게 커다란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버텨봤자 가야 할 상황이었고, 지난 몇 년간 평가가 나쁘지 않아 진급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기에, 반항 없이 조용하게 면담을 끝냈다.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이는 나를 보고, 대부분 너의 능력을 인정해서 뽑아간다며 착출 케이스로 박수를 쳐줬다. 모두의 마음속은 물론이고 내 마음 깊은 곳에 방출이란 단어가 박혔지만, 어쩌겠는가 벌어진 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지. 축하를 즐겁게 받아줬고, 씩씩하게 고맙다고 화답했다. 몇몇 나를 아끼던 선후배들과 진~한 술자리를 끝으로 나는 다른 부서로 훈훈하게 이동했다.


그 뒤로 반년이 흘렀다.  그동안 나 대신 잔류인력으로 선택됐던 후배는 육아휴직을 쓰고 사라져 버렸다.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했다. 그 결심, 조금만 빨리하지. 어쨌거나 나를 보낸 부서장은 당황해했고, 나의 의도하지 않은 복수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게 뭣이 중요한가. 나는 아직도 버거운 새로운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낮아진 학습 능력으로 업무는 매일 새롭다. 주변 동료들은 착하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시선과 태도를 감추지 못한다. 풋풋한 신입을 바랐을 턴인데 나 같은 후임을 받은 그들의 속상함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봄바람 살랑 불어, 여름이 오기 전, 아마도 한 달 전쯤 인 것 같다. 나의 장점이라 평가받은 모빌리티. 나의 직장생활 16년을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이고 직관적으로 요약하는 능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점이 현재 재직 중인 이곳에서만 통하는 능력이 아닐지도 모른다. 모빌리티! 스스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면서, 부서장의 설득을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이직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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