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서도 성적, 실력 별로 반이 나뉜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냉정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도입이 되어야 하는 시스템이다.
학원은, 비즈니스다.
수업하는 요일에 레벨 차이를 두기도 하고 반 이름에 따라서 나뉘기도 한다.
A반, B반, C반 등 말이다.
어떤 학원에서는 대학교 랭킹 별로 반을 구성해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소식도 들었다.
내가 있던 학원은 초등학생은 3개월, 중학생은 5개월마다 레벨 테스트를 쳐서 반을 나눈다.
오랜 기간 학원을 다녔던 아이들에겐 큰 곤욕이다.
여기서 반 등급을 못 하거나 하면 자존심의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심할 경우, 퇴원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정말 관심이 많던 엄마가 있었다. (그냥 참 피곤하게... 극성맞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우리 애가 이 학원을 1년 넘게 다녔는데 왜 한참 높은 반으로 진급을 못하냐고.
'아이가 실력이 그만큼 안 돼서요. 평소에 수업 태도가 좋은 것도 아니고. 숙제를 성실히 해오는 것도 아니고. 툭하면 교재를 안 들고 오고요.'라고 솔직히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실상은...'아, 어머님. 이번에 너무 안타깝네요! 우리 00 이가 문법에서 점수가 아슬아슬하게 나오는 바람에... 아시잖아요 어머님, 이 반에 00 이도 있고 00 이도 있어서... 경쟁이 너무 치열했어요. 다음번엔 꼭 올라갈 수 있게 열심히 지도하겠습니다!'로 마무리된다.
어떨 때는 높은 반에 있으면 안 되는 학생도 더러 있다.
"이번에 들어올 아이 레벨 테스트 시험인데, 점수는 C반인데... 어쩔 수 없이 A반에 넣어야 할 듯합니다."
"왜요 원장님?"
"얘가 00, 00이랑 절친이어서 이 학원에 소개받고 온 건데. 다른 두 친구들만큼 안 돼요. 어머님한테도 충분히 설명을 드렸지만 아이나 어머니가 너무 완고해서. 보강이든 뭐든 해서 어떻게든 열심히 따라갈 거니까 꼭 A반에서 수업하길 희망한다네요."
항상 입버릇 처럼, 무조건 성적별로 반을 나뉘어야 한다는 원장님이 만든 본인의 방침은 이미 저세상 이야기이다.
여긴 잘 나가는 서울 대치동에 있는 학원이 아니라 지방에 있는 고만고만한 학원이다.
학원은 절대적인 을이다.
돈만 내면 다 되냐고?
법적 문제만 안 된다면, 그렇다고 봐야 한다.
배짱장사, 그런 건 옛말이다.
과거의 영광만 믿고 떵떵거리던 학원들은 그냥 싹 다 자빠졌다.
아이들끼리도 레벨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어떤 아이들은 이것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벨테스트 점수만 유독 엉망인 경우도 있다.
선생님이나 학부모나 아이의 멘탈을 문제 삼곤 한다.
2,3,4 학년 꼬마들에게 레벨 압박을 주는 게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학원에서는 어쨌거나 돈이 되고 학부모에게는 큰 만족감을 준다고 하니... 뭐 그런가 보다.
레벨테스트 직후에 아이들은 상위권 반으로 진급을 못하면 어떡하나 고민이다.
아주 소수 빼고는 대부분 학생들은 기존 반에서 수업을 이어간다.
간혹 밑에 반으로 떨어질까 염려를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럴 일은 절대 없다.
떨어 뜨리는 순간 퇴원이 거의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내가 나름 큰돈 주고 보냈는데, 애 성적이 떨어졌는데... 너흰 뭐 한 거냐?'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담임 선생님들은 레벨테스트 관련 상담 전화를 마치고 나면 넋이 나간다.
왜 아이가 레벨업을 못했는지 말도 안 되는(?) 해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냥, 성적이 안 나와서요. 아이 공부머리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네요.'
꿈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성적이 잘 안 나온 이유는 어떻게든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 결코 아이 탓으로 돌리면 안 된다.
'우리 00 이가 평소에도 비염이 심하더니, 이번에도 그것 때문에 집중을 잘 못 했나 봐요.'
'우리 00 이가 장기간 여행을 다녀와서 감을 좀 잃었나 봐요.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우리 00 이가 시험을 잘 보긴 했는데 간발의 차로 다른 아이들의 점수가 조금 더 잘 나왔네요.'
확실히 잘하는 친구들끼리 모여있으면 시너지 효과도 있고 장점도 있다.
언제까지나 모르는 걸 배우고 부족한 점을 채워야 한다는 목적이 더 뚜렷해야 하지만... 단지 레벨업을 위해서만 시스템이 형성되는 것 같아서 씁쓸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