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뽀뽀뽀'가 있다면, 북미권에선 Sesame Street가 있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책으로도 엄청 다양하며 캐릭터들도 각자 개성이 뚜렷하며 팬 층 또한 다양하다.
영유아 어린이를 넘어 성인이 되어서도 팬 층을 유지하는 거대한 지적 자산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Sesame Street다.
캐나다에 이민 와서 내가 영어가 좀 트이고 적응해 나아갈 무렵 *가라지세일에서 새어머니가 Sesame Street 책을 여러 묶음을 들고 왔다.
*주말에 집 앞에서 중고물품 등을 거래하는 개인들의 중고장터
'나보고 읽으라는 건가? 내 생각해서 뭘 사 왔을 사람은 아닌데..'
빙고.
책은 이제 막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내 동생 몫이었다.
그런데, 아직 글도 모르는 이 녀석이 이 걸 읽을 수 있나?
왠지, 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야, 밤에 자기 전에 얘 이거 한 두 권 읽어줘라."
새어머니의 지령이 내려졌다.
자기가 읽어주지...
하긴, 내 발음이 가장 좋을 테니 일리가 있었다.
그날밤, 내 방바닥에 둘이 나란히 엎드려 책을 펼쳤다.
이 녀석은 생각보다 흥미를 보였다.
별 감정 없이 읽어 내려갔다.
읽는 나도 정말 핵노잼이었다.
안 되겠다.
이왕 읽는 거 감정을 몰입해서, 내가 이 캐릭터라면 어떻게 소리를 낼지 생각하며 읽어줬다.
동생 녀석의 리액션은 대박이었다.
적절한 곳에서 집중하고 깔깔거리고 빵빵 터지는 순간이 몇 번 있었다.
방문 앞을 지나가는 새어머니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매우 흡족해하는 표정이었다.
다행이다.
이 책 덕분에 한동안 나에게 태클 걸일 은 없을 것이다.
(그냥 그저 그런 어느 날 밤)
부모는 또 한바탕 싸우고 있었다.
뭐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으니 곧 서로 쌍욕을 처박을 타이밍이 다가왔다.
나나 동생이나 또 이 전쟁통을 넘겨야 했다.
동생을 방으로 불렀다.
Sesame Street를 펼쳤다.
평소보다 더 크게, 더 오버해서 읽기 시작했다.
방 밖에서는 전쟁의 소음이 점점 더 커져갔고 내 목소리도 더 커져만 갔다.
동생은 이 상황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책에 집중하는 듯했다.
한 시간 정도 흘렀을 까, 밖이 잠잠했다.
아버지는 나간 듯했고, 새어머니는 소파에 앉아 멍 때리는 듯했다.
우선 휴전이다.
밤도 늦었고 아버지는 밖에 나갔으니 오늘 다시 붙을 일은 없을 거 같았다.
이후에도 Sesame Street는 나와 동생에게 대피소 역할을 했다.
불과 몇 미터 떨어진 방문 밖은 온갖 상스러운 욕과 몸짓이 난무했지만 내 방에서는 광대 하나와 깔깔 거리는 관객 하나가 어떻게든 평화를 지키려 애썼다.
전쟁통에서도 아이는 태어나고 어느 정도의 일상이 살아지는 것은, 그들만의 Sesame Street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고등학교 때 과제로 '자신에게 큰 영감을 준 책'에 관하여 논술을 써야 했다.
주저 없이 Sesame Street을 택했다.
선생님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극찬을 받았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만점짜리 논술 과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