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평전> 안도현
백석 시인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배우며 ‘시인’ 백석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윤동주, 김소월, 이육사처럼 익숙하지만 많은 부분이 낯선 그 시인에 대해서 알기 위해 집 한구석에 꽂혀 있던 안도현 시인의 <백석 평전>을 꺼내 들었다.
백석의 삶을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느끼는 울컥함에 당황스러웠다. 나는 이제껏 빈말로나마 백석의 삶이 이육사처럼 불같지도, 윤동주처럼 여운을 주지도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스스로를 백석의 팬이라 자칭하는 안도현 시인 덕에 나는 백석을 다시 읽었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외롭고 쓸쓸함과 동시에 낭만을 토로한다고 여겼던 것과 달리 백석은 아주 커다란 공허를 시로 표현했다. 일제 강점기, 모두가 ‘무언가’를 잃은 사회 속 백석이 잃은 것 중 가장 큰 부분은 ‘고향’이란 존재였다.
백석의 시는 유독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시가 많다.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비롯하여 <흰 바람벽이 있어>, <고향> 등 다양한 시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백석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로, 훗날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통영, 만주를 오가면 살았던 그가 평생토록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곳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행위는 자연히 쓸쓸하고 외로운 정서와 연결된다. 그럼에도 백석의 시가 우리에게 단순히 ‘그리움’의 선에서만 기억되지 않는 이유는 그가 그 외로움을 이겨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백석의 시와 삶은 끊임없이 시련 앞에 일어선다. 그는 자신의 처지에 체념하고 외로워하지만 이내 다시금 일어설 것을 결심한다.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中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 그러하듯 백석의 시에는 고향의 향수를 지역의 ‘방언’으로 소화한다. 저녁을 뜻하는 평안도 방언인 ‘나줏손’, 바위 옆을 의미하는 ‘바우섶’ 등 그는 고향의 그리움을 아름다운 ‘향토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1930년대 일제는 한국 민족 말살 정책을 적극적으로 강화하였다. 그들은 한국어를 말살시키는 것이 한국 민족 말살의 모체라 판단하였고, 한국어 교육과 한국어 사용을 엄금하였다. 이 시기에 고향의 방언을 시에 담아 발표하는 것은 백석에게 단순한 표현 이상의 도전이었다.
백석은 식민지로 인해 오염되고 왜곡되기 전의 고향을 묘사하고자 고향의 방언을 사용하여 시를 발표하였다. 그의 시는 단순한 고향을 향한 그리움, 그리고 사랑을 넘어 백석의 시대를 향한 저항이었다. 백석의 시에서 ‘향토적’이란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방언을 사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문화적 자존심을 지키고, 민족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일종의 문화적 저항이었으며, 백석의 시가 단순히 고향의 향수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인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잘 나타낸다.
유독 우리에게 백석의 시가 아름답게 읽히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언어와 문화의 가치가 점차 사라져 가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점점 사라져 가는 방언의 쇠퇴는 우리가 백석의 시를 매력적으로 느끼도록 만드는 이유기이기도 하다. 최근 평안도 지역 방언 사전을 집필 중인 곽충구 서강대 교수는 방언을 연구하는 이유를 ‘표준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방언들이 있다. 그 지역만의 독특한 민속을 담은 말들. 그게 사라지면 민속을 지칭하는 단어가 사라지는 거다. 단어가 사라지면 민속도 사라진다’라고 설명했다.
방언은 단순한 지역적 특성을 넘어, 특정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반영하는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방언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으며, 표준어가 지배적인 언어로 자리 잡으면서 지역마다 고유의 방언이 점차 잊히고 있다. 방언의 사용은 점차적인 쇠퇴를 겪고 있으며, 특히 젊은 세대는 방언을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그 의미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지역 사회의 정체성이나 특성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의 축소로 이어질 위험을 초래한다.
방언 쇠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방안이 필요하다. 우선, 교육을 통해 방언의 중요성을 학생들에게 인식시키고, 학교 교육 과정에 방언 학습을 포함해 젊은 세대가 방언에 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방언의 보존을 위해 방언의 사전 제작과 음성 자료 디지털화 작업을 진행하여, 후세가 쉽게 방언을 학습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방언을 활성화하기 위한 지역 문화 행사나 축제 등을 개최하여, 사람들이 방언을 실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통해 방언의 사용을 장려하고, 지역 사회에서 방언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방언 연구와 학술적 지원이 필요하다. 방언의 가치를 연구하고 그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인식시키는 일이 선행되어야 방언 보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방안을 통해 방언의 쇠퇴를 막고, 고유한 지역 문화와 언어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 시대와 문화를 읽는다. 방언은 시의 분위기를 가장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요소이며, 그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다. 섬세하고 다정한 백석의 시는 우리에게 하여금 ‘방언’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만든다. 방언의 쇠퇴는 단순히 언어의 변화가 아니라,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사라져 가는 중요한 신호이다.
우리가 백석의 시를 통해 여전한 애틋함과 그리움을 느낄 수 있는 건, 모두 백석의 섬세한 언어 선택 덕분이다. 그의 시 속 방언은 오늘날 그 방언이 점차 사라지는 우리의 삶에 큰 경고를 던진다. 우리가 방언의 가치를 되새기지 않으면, 그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까지 잃게 될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