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29 ~ 24.01.29
천 마디 말 중에서, 자네, 하나의 진실을 발견해 준다면 죽을만큼 기쁠걸세. 나는 자네를 사랑하고 있네. 자네도 내게 지지 않을 정도로 나를 사랑해주게.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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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그곳에 있었다. 추억도, 애정도, 원망도, 기다림도 모두 담겨 있었다.
-24.01.29 (독서록_해녀들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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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교지부 전원 폐부 결정
-24.02.07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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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고 긴 글에 앞서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너는 분명 불행한 사람이었고 또 그만큼 행복한 사람이기도 했다. 가끔, 너의 그 불행이 오히려 너를 행복하게 만드는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의 불행을 질투했다고 말한다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평소처럼 아무 표정 없이 나를 바라볼까. 아니면 그저 미소를 지어 보일까. 어느 쪽이든 그건 나를 불편하게 만들 터였다.
너는 무책임한 주제에 죄책감이 컸다.
-2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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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부를 꿈꾸는 모든 학생을 응원하며 이 글을 마치겠다.
-24.03.03 (충동적으로 교지부를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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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입양이란 말은 살아질 수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입양이라는 것은 그 행위를 지칭하는 말일뿐, 그 단어를 부정적으로, 그리고 비방으로 사용하는 사회가 잘못된 것이지 ‘입양’ 가족이 잘못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입양이라는 말이 사회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용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영상이 그런 사회의 교본이 되어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감사를 표합니다.
-2024.3.31 (가정 수행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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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아이들과 첫 단체 사진을 찍었다.
학교 뒷산에 올라가서 마음껏 봄을 유영했다.
-24.04.07 (어떤 행복은 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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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는 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특권
나는 그 아이가 상처 받기를 원해. 상처 받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한없이 아름다운 세상이 그 아이에게 조금은 벅찼으면 좋겠어. 그렇게 그 아이가 삶을 사랑하면 좋겠어.
너는 목소리가 건조한 탓에 목소리가 쉽게 갈라지고는 했다. 그건 네가 가진 유일한 콤플렉스였지만 나는 너의 그런 목소리를 좋아했다. 너의 갈라진 목소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네가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대한다는 증표였다. 너의 열정과 꿈을 대변하는 것이 그 목소리였다.
-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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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본디 재주가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글재주는 고사하고 말재주도 거의 없다시피 한 사람이라 대화하기가 까다로운 존재였다. 무뚝뚝한 사람은 아니지만, 다정하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어서 종종 의외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무덤덤하다 못해 곁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외로운 사람이었지만, 착실하게 인연을 쌓아 올리는 사람이었다. 뭐하나 빼어나지 못하고 수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너였다. 나는 그런 특출나지 못한 너를 조금 동경했던 것 같다.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된 인연이었다. 아마 너는 모르고 있을 어린 시절의 욕심이었다.
-2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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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팀의 작업이 마무리 되자, 우리는 그제서야 이별이 왔음을 알았다.
나의 1년은 그렇게 끝이 났다. 조금은 허무하고 또 애틋한 이별이었다.
-24.05.19 (마지막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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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지켜봐 주세요.
교지부는 사라졌지만 저희는 변함없이 여기에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24.05.26 (올해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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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가장 인접한 행성, 화성. 인류에게 있어 숙제처럼 내려오던 화성 개발 및 이주 프로젝트는 긴 세월 끝에 드디어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지구에 비해 지름은 절반 정도로 작고, 약한 자기장과 태양풍으로 인해 대기가 쓸려나가는 일이 많은, 인간에게는 고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화성을 선택했다. 망해가는 지구. 그 지구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인류. 그런 그들에게 있어 더 이상 윤리적인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K는 끊임없이 물었다. 무엇이 옳은 길이냐고. 그는 끝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스스로도 답을 내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K는 올바르게 있고 싶어했다.
-24.05.24 (동아리_K와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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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시를 느끼고 전율하며 마음으로 시를 가르쳤던 John Keating은 그의 독특한 교수법만큼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스스로를 '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이라 불렀다. 친애하는 독자여, 부디 이 글에서 Jhon Keating을 선장님이라 부르는 것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길 바란다. 이 호칭은 ‘죽은 시인의 사회’ 회원들의 한낱 어린 시절의 치기가 아니다. 교육의 힘을 믿고 진정으로 학생을 위했던 그들의 선장님을 향한 최고의 예우이다.
-24.06.04 (독서박람회_죽은 시인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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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별거 없다지만 너에게는 유독 그 행복이 너그럽지를 못했다. 그 참을 수 없는 불합립함을 아무렇지 않게 수용하는 너라서, 나는 너를 다정한 사람이라 불렀다.
우리는 푸른 예민함과 새까만 괴팍함을 품고 있고, 미련이란 달빛에 의존해 거대한 바다에서 살아간다.
네가 바다에 가겠다면,
푸르른 물이 보고 싶다고 말한다면,
나는 몇번이고 너를 따라갈 것이다.
-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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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직하지 못한 주제에 과묵했고, 화가 많은 주제에 감정 표현에 서툴렀다. 솔직하지 못했으면서, 거짓말에는 재능이 없었다. 바보 같이 착한 사람이었다. 타인을 볼 때면 무조건 그 사람의 좋은 부분만 보려고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냥. 그런 사람이니까.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네가 바다 건너 도착한 그곳에서 아무런 외로움 없이.
이건, 마지막이 될 너에 대한 내 기록이다.
오래된 추억이 되어버린 너를 향한 내 미련이다.
'오랜만이야'라는 다섯 글자가 안타까운 내 욕심이다.
-24.06.30 (조금 늦은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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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은 여름을 닮아서
찬란함보다 무더위가 길었다.
너는 나에게 푹푹 찌는듯한 폭염,
열기와 고온이 멈추지를 않아
이러다 숨을 쉬지 못한다는 두려움이었다.
너로 인해
뜨겁게 타오르는 마음이 불쾌했고,
숨기지 못하는 땀이 불편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이 좋아서
달아오르는 이 뺨이 사랑스러워서
나는 너를 사랑이라 불렀다.
-24.07.07 (한국지리 수행평가, 주제: 폭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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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체 예술가라는 족속들은 탄생보다 파괴에 가까운 삶을 살아간다. 그 번잡하고 혼란한 삶 속에서 모두가 고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술은 자신의 삶을 도려내 작품을 만드는 행위다. 오로지 본연의 삶을 파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삶을 부수고 자신을 조각내어 푸른 피가 묻은 그 무수한 조각들을 한 아름 안아 새롭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다. 작품은 탄생이 아닌 파괴다. 자신의 삶을 파괴한 대가. 예술은 그저 하늘이 건넨 심심한 위로일 뿐이다.
우리는 왜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창조해야 하는 걸까.
-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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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허구다. 모든 소설은 이상이고, 환상이며 현실이 되지 아니한다. 그것이 다른 책들과 다른 소설만의 매력이고, 소설이 갖고 있는 아쉬움이다. 그럼에도 나는 소설의 현실성을 따진다. 소설의 본 목적인 허구를 즐기라고 썼더니, 현실적이지 않은 내용은 싫다며 한탄하는 나 같은 독자를 작가들은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허구다. 희망과 꿈을 노래하다가도 우울과 공허를 토로하고 실존하면서도 실존하지 않는다.
소설은 모순. 실제로 저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저런 세상만큼은 드리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불러오는 모순이다.
누군가가 희망을 믿도록, 행복을 믿도록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타인을 납득시킬만한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와야 하므로, 이는 곧 논리적으로 허구를 설명함을 의미한다. 특히 책은 오로지 글로만 그 내용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독자가 흥미를 잃지 않도록, 계속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독자를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소설은 가치를 잃는다. 꼭 행복함과 희망을 납득시키지 않아도 된다. 작품의 상황을, 감정을 이해시킨다면 그것은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나는 김초엽 작가가 내뱉는 말들이 좋았다. 얼핏 평범한 말들이지만 우리가 한 번쯤은 말로 표현해 보고 싶었던 그런 문장들을 작가는 소설에 부드럽게 녹여냈다. SF소설이지만, 어느 순간 나의 이야기를 보는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얼기설기 얽혀 있는 감정들을 어르고 달래어 하나의 정제된 문장으로 완성했다. 형용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들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꾸려냈다.
그러니 우리들은 행복해지도록 하자. 우리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라도, 상처와 고통을 겪더라도 결국에는 행복해지도록 하자. 김초엽 작가가 보여준 미래의 모습처럼 각자의 최선을 믿고 사랑하며 살아가자. 후회와 미련에 오랜 시간 괴로워하다가도, 한순간의 변화가 자신의 삶을 이끌어줄 것이다. 어렵고 난해한 감정들은 어느 순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우린 정말로 ‘빛의 속도’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24.07.28 (사제동행_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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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비효율적인 사람이라 생각한다.
평소에는 무언가를 추진하고 사랑할 에너지를 구두쇠 마냥 아끼고 또 아끼더니, 막상 가벼운 계기 하나에 앞뒤 살피지 않고 돌진한다.
권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라 생각했던 것이 정작 또 다른 권태가 되어버려도 나는 계속해서 사랑할 무언가를 찾는다.
-24.08.13 (日, 권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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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옵니다. 좌절과 실패, 성공과 도전. 무엇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지만, 우리도 박상영 선수처럼 굳게 믿고, 올곧게 나아간다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수 있을 것입니다.
-24.08.21 (체육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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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조용히 입으로 굴려 말하는 ‘사랑’이 좋았다. 동글동글한 그 모양새가 퍽 마음에 들었다. 심장을 소리내어 말하면 이런 모양일까, 심장박동 소리는 곧 사랑을 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소리일까. 누군가는 그 소리가 새어나지 않기 위해 안달이라는데, 어찌 나는 그 소리가 새어나길 간절히 바랐다.
당신이 천체를 사랑한 이유는, 그것이 고요했기 때문이다. 그 누구보다 필사적이고 열렬하지만, 이 세상 무엇보다도 고요해서 천체를 연구하였노라 말하였다. 당신의 사랑은 늘 조용했고, 열렬했다. 두 눈에는 거대한 신뢰와 희망을 품었고, 손으로 그 해석을 늘어놓았다. 자신의 사랑을 타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사랑이란 이름을 증명하기 위해서 기록하고 정리하였다. 당신 덕분에 외롭지 않은 사랑을 하였다. 비록, 사랑을 뱉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한치의 의심없이 당신의 사랑을 믿을 수 있었다.
-2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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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외계인이라 자처하는 네게, 세상은 거대했고 사소했다. 세상은 거칠고 투박해서 꼬마였던 너는 언제나 울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 집초자 네게 제대로 된 품이 되어주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조차 가늠하지 못했던 너는 언제나 특별했고, 또 평범했으며 놀라웠다. 너는 자기 자신을 지키는 법을 금새 터득했다. 처음 보는 거대한 것들에 겁을 먹기도 잠시, 자기 자신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듯이 가르쳐 주지도 않은 무시와 호기심이라는 것을 익혀왔다.
-2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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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을 용서했다. 착한 사람이고 싶었으니까. 그래야만 내가 다시 미움받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들이 나를 미워하는 이유는 오로지 나에게 있었으니까. 내가 그들에게 나를 미워할 거리를 건네주었으니까. 나는 그들에게 절대로 1순위가 되지 못했으니까. 아니, 100순위, 1000순위도 되지 못했으니까. 오히려 그들이 미워하는 사람의 1순위였으니까. 그리고 말하고 싶었다. 주제넘은 건 그쪽들도 마찬가지라고. 남의 행동을 멋대로 위선이라 칭하는 당신들도 마찬가지라고. 난 아직 당신들을 제대로 용서하지 못했다고. 내가 한 건 용서가 아니라 당신들을 용서하고 싶은 나의 마음과 노력이라라고.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다. 나를 '위선'이라 부르는 사람들 속에서, 나의 행동에 '감히'라는 말을 붙이는 사람들 속에서, 나를 착하다며 '칭찬'하는 사람들 속에서 끝까지 착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나의 이 마음은 위선이 아니니까. 조금씩 사람들은 나를 이해래주니까. 그래서 그저 그렇게 조금씩 나를 완전하게 사랑하고 싶다.
-24.10.01 (보통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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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처럼 갯벌을 본 적은 없지만, 가족들과 바다를 보러 간 적은 많았다. 가족들과 본 바다는 언제나 겨울 바다였다. 우리 가족에게 여름은 언제나 복작였고 바빴기에, 겨울에만 연휴다운 연휴를 보낼 수 있었다. 겨울에 만난 바다는 파도 소리만을 내었다. 사람이라곤 우리 가족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고 파도는 조용히 부서졌다. (...) 파도에 부딪혀 산산이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그 흰색 거품을 보면서 나는 용기를 얻었었던 것 같다. 부서져도 사라져도 언젠가 다시 모인다면 나는 다시 바다를 이룰 것이다.
-24.10.16 (문학 수행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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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은 삶에 순응하기보다 절망에 저항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이다. 극심한 혼란과 절망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저항과 변화의 삶을 살았다. 루쉰은 중국의 변화를 위한 열렬한 싸움꾼으로서 세상을 개혁하는 데 헌신했다.
루쉰이 품은 원동력은 단순히 후대를 위해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문학을 통해 여러 지식인을 만나고자 하였고, 여전히 현재 우리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다. 문학가이자, 사상가 혁명가로서 그는 청년들의 영원한 사다리가 되었다.
-24.10.23 (중국어_루쉰, 청년들을 위한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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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무력감의 연속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무력감을 어떻게 안아주냐는 것이다. 우리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창조할 힘을 가지고 있다. 삶과 죽음은 그저 존재할 뿐 그것이 우리의 전부가 될 수 없다. 삶 혹은 인생의 의미는 태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지독하리만큼 무심하고 인간 또한 그렇다.
-24.10.24 (고전 읽기 수행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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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볼 때면 사랑의 편안함을 믿은 건 아니지만, 사랑만큼 쉬운 관계는 없을 거란 생각을 했다. 당신에게 있어 관계를 정의할 때 가장 쉽고, 편안하며 이해 받기 쉬운 이유는 모두 사랑이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해서. 어쩌면 평생을 사랑받고 자란 당신이어서, 그것이 너무 당연하고 익숙한 것들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사랑만큼 숨기 좋은 이유도, 또 드러내기 쉬운 이유도 없었다. 가장 뱉기 힘든 고백이 사랑 고백이라지만, 어쩌면, 정말 어쩌면 사랑만큼 거리낌 없는 고백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은 사랑을 고백하나 원망을 고백하지는 않는다. 존경도, 동경도 모두 사랑으로 귀결될 뿐 아무도 그 본질을 말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동경이 아니라 사랑이었다면 쉬웠을까요.
증오라는 건 사랑만큼이나 강렬한 것이었다. 지우려 할수록 더 지워지지 않는 첫인상은 모든 신경이 그 사람을 쫓도록 만든다. 그 사람의 사소한 행동에 쉽게 웃고 간단히 무너진다. 사랑과 증오를 착각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 하여 너를 향한 감정이 사랑뿐이었다고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것이 사랑인지, 증오인지 나조차도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매듭지어 버린 마음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증오였을,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사랑이었을 그 감정은 유독 너를 부인했다. 지독하리만큼 닮은 그 한 끗 속에서 사람들은 용케 미치지 않고 사랑을 했다.
-2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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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오랫동안 갈망했던 빗줄기가 아니었지만, 흙은 그제야 자신의 처지를 사랑할 수 있었다. 거센 빗줄기와 달리 조심스럽고 상냥한 손길. 그렇기에 더욱 아린 손길이었지만 흙은 마침내 결실을 맞이할 수 있었다. 고작 이런 허무함을 맞이하기 위해, 이러한 덧없음을 맞이했기에 끝끝내 새하얀 결실을 빚어냈다.
눈이 내린 하루의 풍경은, 덧없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허무했다.
-2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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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과 구하라 씨의 이야기는 '효'와 '부모의 도리'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효’는 가족 화합의 기초로서 부모에 대한 자녀의 존경, 감사, 보살핌이자 자녀를 양육하고 돌보는 데 있어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는 것임을 상기시켜 준다. 이러한 이해는 부모가 자신의 의무를 다함으로써 진정한 존경과 보살핌을 얻는 상호 책임을 기반으로 효도가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효의 개념을 접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때 이러한 가치를 재해석하여 존중, 책임감, 강한 가족 유대를 조성하는 데 열려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질문을 더 많이 탐구할수록 우리는 가족 내에서 우리의 역할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24.11.08 (동아리_윤리와 사상, 변화하는 시대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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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연한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애쓰는 편이다.
나는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사람이다. 시간에 따라, 공간에 따라, 사람에 따라 나는 두 부류 중 적절한 부류의 사람이 된다.
-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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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텁텁한 끝맛이 나는 방이었다. 누군가의 세상이라기엔 비좁고, 누군가의 소망이라기엔 벅찬 곳이었다.
그 누구도 너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곳에서, 그저 너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들 속에서 너는 존재한다. 그들을 따라 웃고 울며, 방 한구석의 하얀 그림자로 아주 오랫동안을 머문다. 그 누구도 너의 멈춤을, 너의 등장을 반기지 않는다. 끝내 이곳을 떠나지 않는 너를, 돌아서지 않는 너를 이해할 수도 없다.
늘 그렇듯,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은 채 홀연히 사라진 너를 기다리는 건 우리의 몫이었다. 그건 아주 오래된 습관 같은 것으로 더 이상 고쳐지지도, 사라지지도 못할 버릇이 되어 우리의 품에 자리 잡았다.
-2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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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공동체를 이끄는 가장 높은 자리의 인물이지만, 동시에 가장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궂은 일을 도맡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상적인 리더란, 이 위치의 무게를 분명히 인식하고 행동으로 증명하는 인물이어야 합니다. 마키아벨리가 주장한 ‘악’을 능숙하게 활용할 줄 아는 현실적 면모를 갖추되, 그 ‘악’을 공동체의 신뢰와 공익을 위해 통제하고 활용할 줄 아는 도덕성을 겸비한 리더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필요로 하는 리더의 모습에 적합하지 않을까요?
-24.12.14 (정치와 법 발표_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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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때로 범죄자를 연민하기도 합니다. 이는 단순히 그들의 행위를 용서하거나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범죄가 발생한 배경에 자리한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직시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빈곤, 교육 부족, 차별과 같은 사회적 요인들은 종종 범죄로 이어지는 환경을 만들어 냅니다. 이런 상황에서 범죄자 개인의 선택만을 문제 삼는 것은 불공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범죄자를 바라보며 연민을 느끼는 이유는, 그들이 처한 환경이 더 나은 선택을 할 기회를 빼앗았다는 점을 인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범죄를 단순히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법이란 개인의 잘못을 심판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법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는 ‘법이 완벽하지 않다’라는 불신 혹은 ‘법은 무의미하다’는 단언이 아닙니다. 법이 가진 한계를 인식하고, 그 한계 안에서 공정과 정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이야말로 법의 진정한 역할을 완성하는 길입니다. 페르디난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법이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인간성과 사회적 공존을 위한 필수적인 기초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법은 때로 우리에게 실망을 줄 수 있지만, 결국 우리는 법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꿈꿀 수 있습니다. 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단순히 죄를 처벌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법을 개선하고 믿음을 지속할 때, 비로소 법은 인간을 위한 진정한 매개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24.12.16 (자율발표_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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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많은 사람은 꼭 어딘가로 도망쳐야만 외로움을 잊을 수 있다. 그게 사람의 곁이든, 인형의 품속이든, 영화나 드라마 속 세상이든 간에 외로운 사람들은 많이들 도망친다. 이유 없는 외로움이란 건 그랬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충동과 머물고 싶은 욕구가 충돌하는 과정이다. 내게는 책이 그랬다.
-2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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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 꼭 나쁜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걸 말해준 너조차도 그걸 포기했기 때문이겠지. 언제나 최악과 차악을 대비했기에 너는 살아갈 수 있었을 거야. 근데, 그러면 너의 포기는 어쩌면 최악이 아닌 차악이었던 걸까.
있잖아. 내가 감히 어떻게 너를 힐난할 수 있을까. 한없이 사랑하고 또 그만큼 원망하던 너를 이제 와서 용서할 수도 용서를 구할 수도 없잖아.
-24.12.18 (종현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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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무더위는 길었다. 푹푹 찌는 날에 익숙하지 않던 그녀는 곧잘 그늘에서 몸을 가누고는 했다. 타들어 가는 살에도 방긋방긋 웃을 수 있었다고, 고향에서는 절대 겪지 못했을 야만적인 꿈이었다고 고백했다.
-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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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시인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배우며 ‘시인’ 백석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윤동주, 김소월, 이육사처럼 익숙하지만 많은 부분이 낯선 그 시인에 대해서 알기 위해 집 한구석에 꽂혀 있던 안도현 시인의 <백석 평전>을 꺼내 들었다.
백석의 삶을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느끼는 울컥함에 당황스러웠다. 나는 이제껏 빈말로나마 백석의 삶이 이육사처럼 불같지도, 윤동주처럼 여운을 주지도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스스로를 백석의 팬이라 자칭하는 안도현 시인 덕에 나는 백석을 다시 읽었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외롭고 쓸쓸함과 동시에 낭만을 토로한다고 여겼던 것과 달리 백석은 아주 커다란 공허를 시로 표현했다. 일제 강점기, 모두가 ‘무언가’를 잃은 사회 속 백석이 잃은 것 중 가장 큰 부분은 ‘고향’이란 존재였다.
백석의 시는 유독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시가 많다.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비롯하여 <흰 바람벽이 있어>, <고향> 등 다양한 시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백석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로, 훗날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통영, 만주를 오가면 살았던 그가 평생토록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곳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행위는 자연히 쓸쓸하고 외로운 정서와 연결된다. 그럼에도 백석의 시가 우리에게 단순히 ‘그리움’의 선에서만 기억되지 않는 이유는 그가 그 외로움을 이겨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백석의 시와 삶은 끊임없이 시련 앞에 일어선다. 그는 자신의 처지에 체념하고 외로워하지만 이내 다시금 일어설 것을 결심한다.
-24.12.23 (문학_백석의 시와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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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나타난 너는 너무나도 서글픈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또다시 아무것도 묻지 못한 채 너를 보내어야만 했다.
-24.12.25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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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곳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돼.
-2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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