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찾아온 첫 눈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덮어버리는 그 눈 밑에 숨은 검은 흙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새하얗게 숨길 바랐던 흙은, 뒤늦게나마 자신이 숨 쉬고 싶었음을 깨달았다. 살고 싶다. 아니 그보다 더 원초적인 살아 숨 쉬고 싶다는 욕구만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하나, 흙은 비로소 자신을 감싸준 무언가를 만났음을 깨달았다. 품 안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닌 드디어 품어낼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었다. 화려히 피어나는 꽃도, 굳게 자라난 나무도, 무성히 자신을 덮는 잡초도 아닌 새하얀 이불이었다. 자신이 피워낸 것들을 꺾어 버리는, 자신이 일구어낸 존재마저 덮어버리는 아주 작은 하얀 무언가였다. 시린 눈이 자신의 품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흙은 자신을 용서했다. 움트려 피웠던 자신의 아픔을, 자신의 어린 과오를 조금 용서하였다.
비록 오랫동안 갈망했던 빗줄기가 아니었지만, 흙은 그제야 자신의 처지를 사랑할 수 있었다. 거센 빗줄기와 달리 조심스럽고 상냥한 손길. 그렇기에 더욱 아린 손길이었지만 흙은 마침내 결실을 맞이할 수 있었다. 고작 이런 허무함을 맞이하기 위해, 이러한 덧없음을 맞이했기에 끝끝내 새하얀 결실을 빚어냈다.
눈이 내린 하루의 풍경은, 덧없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허무했다.
-24.11.27. 첫눈 내리는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