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규민 Dec 07. 2023

1. 달리기, 그리고 기대

초보 러너의 첫 웃음

6킬로미터 직전


오늘 살면서 처음으로 달리면서 웃음이 나왔다. 아니, 웃음이 터졌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이게 말로만 듣던 러너스하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건 아무렴 좋다. 그냥 오늘의 나와 나의 몸은 날아갈 듯 기뻤다.

그리고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내가 좋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일상에서 만난 평범한 우연 덕분이다.


나는 어느 운동 코칭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코치가 유산소 운동량이 부족하니 오늘은 꼭 조금이라도 뛰어보시라고 제안했던 것이다.


사실 나는 달리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달리기가 몸에 좋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나의 코 한쪽을 막아 숨을 쉬기 힘들게 하는 비염과 뛰고 나면 생기는 이상한 편두통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껏해야 내가 했던 유산소 운동은 빠르고 강도가 높은 - 이른바 가성비가 좋은 - 4분짜리 타바타운동이나, 7분짜리 맨몸 모닝유산소 루틴 같은 것들이었다. 그 친구들은 마음이 바쁜 나에게 '나는 유산소를 하고 있어'라는 적절한 안도감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염에도 크게 개의치 않았고, 나를 괴롭히는 편두통도 없었다. 거기다 시간도 짧았으니 마음이 바쁜 나에게는 금상첨화였다.


그런데 코치님이 달리기를 제안한 그날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뛰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삶과 생활이 바뀌는 데에는 그렇게 큰 계기가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전부터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거창한 계기가 아니라, 그냥 코치님의 말을 듣고 '나가서 조금만 뛰어봐야지' 했던 게 다였다.


그래서 그날은 어땠을까?, 결론은 '나쁘지 않았다'였다.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주인공처럼 극적으로 달리기에 엄청난 기쁨을 알게 되었다던지, 낭만을 느꼈다던지 하는 그런 건 없었다. 그냥 달렸을 뿐이고, 숨은 턱밑까지 차올랐을 뿐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막힌 한쪽코는 콧소리로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그래도 뭐랄까, 가장 큰 소득은 '다음에도 뛰어봐야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맛집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고 '또 먹으러 가야지'하면서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맛집'카테고리에 저장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엄청 맛있는 5점짜리는 아니고, 4점 정도의 애매하지만 그래도 또 찾아가고 싶은 그런 느낌.




그렇게 시작한 달리기로부터 어느덧 거의 3주일이 지나고 어느덧 나는 달리기를 조금은 - 사실은 조금 많이 - 좋아하게 되었다.


새만금 방파제를 드라이브하며 '음 여기는 달리기 좋겠군, 경사도 없고, 뻥 뚫린 도로니 도로 통제도 필요 없겠어'라고 생각하는 내가 되었으니 말이다.


사람은 시간이라는 굴레 속에서 계속해서 변한다고 하는데, 그 말이 딱 어울리는 내가 아닐 수 없다.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같은 코스라고 하더라도, 마주치는 사람들, 풍경, 바람, 새소리, 풍경, 모든 게 항상 다르다. 그리고 내 마음가짐 또한 다르다.


어느 날은 힘들어도 의무감으로 뛰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느 날은 몸이 근질근질해서 내가 먼저 나가고 싶은 날도 있다. 그리고 어느 날은 3킬로 구간만가도 힘들어서 숨이 헉헉거리는 날도 있지만, 어느 날은 6킬로 골인지점에 와도 그다지 힘들지 않은 날도 있다.


매일 다른 나, 다른 풍경과 마주치고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이 달리기의 또 하나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내일은 또 어떤 나와 풍경을 마주칠까?

은은한 향기처럼 기대감의 향이 내 마음에 퍼지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