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아까운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

사소하지만 나를 붙잡은 순간/ 『일상의 블랙홀』34

by 글빛누리

시간이 아까운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

속도가 아닌 방향, '하는 것'이 아닌 '존재하는 것'에 대하여


어린 시절 혹은 젊은 시절, 우리는 "시간을 그렇게 허투로 쓰지 마라. 시간이 아깝지 않냐"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물론 뭔가를 왕성히 할 수 있는 나이 때에 방안에 앉아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거나 게임에 몰두하는 젊은이들에게, 스스로 그러한 삶을 살아왔고 이것을 후회하거나 자신의 과거를 잊어버린 어른들이 던지는 충고일 것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좋다. 젊은 시기는 많은 일을 더 할 수 있고 또 실패의 경험도 값지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저것 많이 해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특히 한국인들의 삶은 이러한 젊은 시절의 숨가쁜 생활이 전생애, 적어도 은퇴하기까지의 삶을 결정짓는 모습을 띤다.


하지만 은퇴를 겪게 되고 어쩌면 강요된 무위(無爲)의 삶 앞에서, 우리의 심장박동수는 예전의 달림 수준인데 할 일이 없다. 어쩌면 가족과의 관계도 단절되고 경제적으로 남은 것도 빈궁한 처지에 달할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탄식처럼 말하곤 한다.
"무엇을 위해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달려왔는가?"

삶을 판단하는 시점은 언제일까? 나는 삶의 마지막 단계일 거라 생각한다. 그때에 가서 노력과 실패, 영광과 배신, 허무와 절망의 순으로 점철된 삶이 주는 삶의 인식은 빨리 달린 사람이나 늦은 발걸음의 사람이 느끼는 강도가 좀 다를 거라고 생각된다.


빨리 달린 사람은 성취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스쳐 지나간 풍경들, 함께 걷지 못한 사람들, 귀 기울이지 못한 새소리를 떠올릴 것이다. 반면 천천히 걸은 사람은 어쩌면 덜 이룬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길 위에서 만난 얼굴들을, 계절이 바뀌는 순간들을, 자신의 발걸음 소리를 기억할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오직 한 가지 속도만을 정상으로 규정한다는 데 있다. 달리지 않으면 뒤처진다고, 쉬면 패배한다고 가르친다.

그렇게 우리는 젊은 시절에 속도를 내고, 중년에 속도를 유지하려 발버둥 치고, 노년에 이르러서야 멈춘다. 아니, 멈춰진다. 그리고 그제야 묻는다. 내가 지나온 길이 어떤 길이었는지를.


하지만 이 질문은 너무 늦게 던져진 것이 아닐까? 우리가 정작 물어야 할 것은 '얼마나 빨리 달렸는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살았는가'일 것이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양이 아니라 질이 중요한 것 아닐까.

릴케는 말했다. "살아라, 그러면 언젠가 답이 올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어쩌면 삶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질문과 함께 살아가는 과정 그 자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아깝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되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무엇을 위해 시간을 아끼려 하는가?"
그리고 "시간을 아낀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쩌면 진정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청년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묻지 않은 채 맹목적으로 달려온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채워야 할 그릇이 아니라 경험해야 할 흐름이다. 그 흐름 속에서 우리가 어떤 자세로 서 있는가, 그것이 중요하다.

은퇴 이후의 공허함은 단지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평생 '하는 것(Doing)'에만 몰두하다가 '존재하는 것(Being)'을 잊어버린 데서 오는 공허함이다. 우리는 생산성이라는 이름으로 존재의 가치를 측정하는 법을 배웠지만, 정작 그 생산성이 멈춘 순간 우리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배우지 못했다.

그러므로 시간이 아까운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어야 한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위해 시간을 아끼고 있습니까?"
"당신이 아낀 그 시간으로 무엇을 할 계획입니까?"
"당신은 삶의 마지막 순간, 무엇을 기억하고 싶습니까?"

답은 각자 다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질문들과 함께 살아간다면, 우리는 은퇴 후에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가"라는 공허한 질문 대신,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았다"는 조용한 긍정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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