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의 여운

사소하지만 나를 붙잡은 순간/ 『일상의 블랙홀』33

by 글빛누리

장례식장의 공기는 언제나 비슷하다.
검은 정장, 흰 국화, 절제된 울음, 정해진 동선.
위로의 말은 서로를 닮아 있고, 고개를 숙이는 각도마저 익숙하다.

나이가 나이다 보니, 부모를 떠나보낸 지인들의 상가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슬픔은 분명히 그 자리에 있는데, 이상하게도 장례식장은 점점 만남의 장소가 된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안부를 묻고, 근황을 나누고,
밥을 먹고, 술잔이 오가고, 목소리는 조금씩 커진다.

누군가는 말한다.
“연세도 많으셨고, 큰 병치레 없이 가셨으니 호상이죠.”
그 말은 틀리지 않다.
아마 남은 사람들이 서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고른 말일 것이다.
죽음 앞에서조차 우리는 의미를 정리하고, 다행을 붙이고,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슬픔을 접는다.

하지만 문득, 그런 순간이 있다.
빈소 한켠에 걸린 영정 사진을 바라보다가
그 사람이 더 이상 이 자리에 없다는 사실이
갑자기, 아주 늦게 도착한다.

사람들 사이의 웃음소리 사이에서
죽은 이는 점점 조용해지고,
산 사람들의 하루가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그 모습이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이렇게라도 살아가야 하니까.
장례식이 슬픔만의 공간이었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그 자리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가끔은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애도하는 법을 잃어버린 걸까,
아니면 애도를 이렇게 바꾸어 온 걸까.

추모보다 만남이 앞서고,
죽음보다 삶이 먼저 움직이는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조용히 한 가지를 마음속에 남겨본다.

저 자리에 누운 사람은,
이 소란 속에서도
과연 외롭지 않을까.

그리고 그 질문은
언젠가 내가 그 자리에 누웠을 때,
누군가의 마음에 잠시라도 스칠 수 있을지를
가만히 돌아보게 만든다.



그래도 한 세기 가까이 살아낸 흔적은
장례식장의 분주함이 모두 지나가고
사람들이 돌아가고
국화 향마저 옅어질 즈음,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그때 남는 것은
조문객의 얼굴도,
의례의 문장도 아니라
자식들의 마음속에 가만히 내려앉은
한 사람의 시간이다.

어릴 적 들었던 목소리,
무심히 건네던 말투,
때로는 이해하지 못했던 침묵들.
그 모든 것이 뒤늦게
하나의 생으로 정리된다.

그래서 장례식장은
어쩌면 슬픔을 다 써버리는 장소가 아니라
슬픔을 미뤄두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당장은 분주하고,
웃음이 섞이고,
술잔이 오가도
진짜 애도는 나중에,
아주 조용한 순간에 찾아온다.

그렇기에
장례식장이 분주할수록
그 삶은 복되다.

살아 있는 동안
사람들과의 인연이 끊이지 않았고,
떠나는 순간마저
사람들로 가득 찼다는 증거이니까.

그리고 그 분주함이 모두 사라진 뒤
남은 자식의 마음속에서
그 사람은
비로소 온전히,
아무 방해 없이
살아 있게 될 것이다.

조용히,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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