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머씨 윈터양 이야기 5화:침묵의 소통

고요한 걷기에서 피어나는 관계와 회복의 서사

by 글빛누리


5침묵의 소통

그들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하지만 침묵 속에는 매일 다른 대화가 있었다. 나뭇잎이 흩날리는 소리, 자갈이 밟히는 소리, 바람에 스치는 옷자락 소리. 좀머 씨와 윈터 양은 모든 감각을 나누고 있었다.


12월의 눈이 내리던 , 소년은 창가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눈송이들이 거리를 덮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때 소년은 그들을 보았다. 좀머 씨와 윈터 양은 천천히 눈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의 발자국은 하얀 위에 나란히 찍혀 있었다.

소년은 서둘러 두꺼운 파카를 입고 목도리를 두른 밖으로 나갔다. 학교 수업은 이미 끝났고, 어머니는 늦게 퇴근한다고 했으니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눈은 점점 굵어졌고,

거리는 점점 하얗게 변해갔다. 소년은 조금 멀리서 그들을 따라갔다. 윈터 양의 검은 코트 위로 눈송이들이 내려앉았고, 좀머 씨의 회색 모자도 하얗게 변했다.

"인사해볼까?" 소년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세계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만들어낸 침묵의 리듬, 말없는 대화의 리듬을 깨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소년은 그저 뒤에서 조용히 따라갔다. 마치 자신도 침묵의 일부가 것처럼.

블록, 블록,

그들은 계속 걸었다. 좀머 씨의 완고한 표정, 굳게 다물린 입술이 언뜻언뜻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얼음이 서서히 녹아내리듯, 그의 얼굴에는 미세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말이 새어나올 듯한 틈이 생기고, 시선은 점차 수평을 이루었다. 이제는 그가 종종 윈터 양을 향해 흘끔 눈길을 주는 것을 소년은 놓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소년은 궁금했다. 과연 둘은 서로에게 어떤 의미일까?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침묵 속에서도 조화를 이룰 있는 걸까?


침묵의 대화.png 세상과 연결되기 시작하는 걷기


예전의 좀머 씨는 굽어 있었고, 땅만 바라보았고, 걷는다는 세상과의 단절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가끔 멈췄고, 고개를 들었고, 곁을 의식했다. 그는 이상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사람이 아니었다.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그는 다시 세상과 연결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중앙 공원에 도착했을 , 윈터 양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공원 한가운데 눈으로 뒤덮인 분수대를 바라보았다. 좀머 씨도 따라서 멈췄다. 그들은 나란히 서서 분수대를 바라보았다.

소년은 가까운 벤치 뒤에 숨어 그들을 관찰했다. 그때였다. 윈터 양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 덮인 분수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기색이 있었다. 좀머 씨도 따라 멈추어 섰다.

윈터 양은 조심스럽게 눈 덮인 분수대 가장자리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눈의 감촉을 느끼는 듯한 행동을 했다. 그녀의 얼굴엔 작은 미소가 번졌다.

눈덮인 중앙공원.png 그들이 무엇인가를 함께하는 시간, 이제 좀머씨의 행동에 혼자만의 흔적은 희미해져 갔다.

좀머 씨는 그저 조용히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소년은 좀머 씨의 표정에서 미세한 변화를 감지했다. 그것은 이전의 경직된 모습이 아닌, 조금 더 부드러워진 인상이었다.

윈터 양이 다시 걸을 준비를 하자, 좀머 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단순한 확인의 제스처였지만, 두 사람 사이에 조금씩 형성되고 있는 이해의 기반을 엿볼 수 있었다. 소년은 이 소소한 순간이 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음을 느꼈다.

그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좀머 씨가 윈터 양에게 조금 가까이 서서 걸었다. 그들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간격이 조금 좁아진 것을 소년은 알아차렸다. 이것은 물리적인 거리만큼이나 심리적인 거리의 변화를 의미했다.

몸짓의 작은 , 리듬의 부드러운 곡선,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발걸음 사이에 생겨난 기다림. 그것은 세상에 보내는 새로운 방식의 신호 같았다. 좀머 씨는 이상 자신만의 폐쇄된 세계 속에 살지 않았다. 그는 이제 누군가를 자신의 걸음 속에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을의 서쪽 끝에 이르렀을 , 해가 지기 시작했다. 주황빛 석양이 덮인 거리에 따스한 색을 입혔다. 좀머 씨와 윈터 양은 어느 작은 교차로에서 멈추었다. 그곳은 그들이 항상 각자의 길로 흩어지는 지점이었다.

윈터 양이 먼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했다. 좀머 씨도 그에 답하듯 모자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윈터 양은 동쪽으로, 좀머 씨는 북쪽으로.

소년은 그들이 헤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걷기는 여전히 무겁고, 깊고, 고요했지만, 이제는 안에 누군가를 담고 있었다. 저항하듯 걷던 몸짓은 점차 타인의 숨결을 품는 걷기로 바뀌어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 소년은 자신이 목격한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이 나눈 침묵의 대화, 말없이도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속에서 점차 형성되어가는 신뢰와 친밀감. 그것은 소년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소통이란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헤어지고 있는 두사람.png 그들의 헤어짐은 하나의 새로운 약속이었다.


그날 저녁, 소년은 관찰일지에 새로운 항목을 기록했다.

12월 5일 - 눈이 내리는 날, 좀머 씨와 윈터 양은 나란히 걸었다. 그들의 발자국은 눈 위에 완벽한 리듬으로 찍혔다. 좀머 씨의 얼굴은 예전보다 부드러워졌다. 윈터 양을 향한 그의 시선이 더 길어졌다.
오늘 나는 그들이 분수대 앞에서 멈춘 것을 보았다. 윈터 양이 눈의 감촉을 느껴보는 듯 했고 좀머 씨는 그저 바라보았지만 그의 눈빛은 공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말을 하지 않지만, 함께 걷는 방식 자체가 대화인 것 같다. 발걸음의 리듬, 시선의 교환, 거리의 조절. 그 모든 것이 그들의 언어다. 나는 점점 더 그들의 침묵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좀머 씨의 걸음에는 이제 기다림이 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 그는 이제 누군가를 기다리고, 그 사람과 함께 걷는다. 그것은 아주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좀머 씨에게는 엄청난 변화일 것이다.
나는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각자의 침묵 속에 어떤 비밀이 담겨 있는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의 침묵이 말로 변할 그 날까지, 나는 계속 관찰할 것이다.


소년은 관찰일지를 덮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고, 가로등 아래 눈송이들이 빛나고 있었다. 소년은 내일 그들이 어떤 침묵의 대화를 나눌지 상상하며 미소지었다.

그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말은 끝내 없었지만, 좀머 씨의 걷기는 이미 누군가를 품은 걷기가 되어 있었다.


� 《좀머 씨와 윈터 양》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2편씩 연재됩니다.

✍️ 당신은 혼자 걷는 사람인가요, 함께 걷고 싶은 사람인가요?

— 이 이야기는 혼자에서 함께로 이어지는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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