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돈룩업>
살아있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 돈, 명예, 사랑 전부 살아있어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종종 사람들은 이 경중을 잊어버린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했지만,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내일 지구가 멸망하든 말든, 자신이 더 큰 이득을 얻으려고만 한다. 개인주의라는 가면 뒤엔 이기주의와 반지성주의가 만연하다. 그리고 영화 <돈 룩 업>은 이를 정면으로 풍자한다.
6개월 뒤에 운석이 떨어져 지구가 멸망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미시건 대학교의 교수와 대학원생은 정부를 찾아간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들의 방문을 가장 차순위로 미룬다. 지지율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지지율을 염려해 이를 기밀에 붙이라고 요구한다. 참다못한 교수와 대학원생은 신문사를 찾아간다. 이들은 이 사실을 믿지는 않지만, 화제를 불러 일으킬만하다며 방송국과 연결을 시켜준다. 정작 그들이 출연한 TV쇼는 웃음만을 추구한다며, 시덥잖은 농담으로 이들의 주장을 웃어넘긴다. 앞서 출연한 슈퍼스타 라일리 비나는 매너티를 지켜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더니, 갑자기 결별한 연인에게 프러포즈를 받는다. 겨우 그들의 주장이 사실임이 밝혀지지만, 대통령은 이를 끝까지 지지율로 써먹을 생각만 한다. 피터라는 CEO는 혜성의 자원을 탐내며 혜성 파괴보다 지구에 떨어뜨려 활용하자고 대통령을 꼬드긴다. 6개월 뒤에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다들 자기 욕심을 채우기 바쁘다. 다 죽으면 모든 게 의미가 없지만, 다들 모두 죽을 거라는 걸 믿지 않는 눈치다.
위에서 세상을 주무르는 사람들의 반지성주의는 곧 모든 대중들에게 퍼진다. 그들은 혜성충돌은 믿지 않고, 그저 교수가 매력이 있다며 성적인 캐릭터로 만들어버리거나, 케이트를 미친 여자라고 하며 많은 밈이 생산되어 퍼진다. 이들은 혜성을 그들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혜성의 존재를 크게 믿지 않으며 그저 가십거리로 소비해버린다. 혜성이 직접 존재를 드러낸 뒤엔,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과 민디 교수 측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나뉘어 황색선전이 계속된다. 그렇다고 대중들이 실질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결국 대통령의 의도대로 피터의 계획에 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맡기는 꼴이 되어버린다. 대중들의 모습은 결국 오늘날의 우리와 매우 닮았다. 윗사람들의 갈라치기에 놀아나며 서로 싸우고, 심각한 이슈는 그저 가십거리로 치부되어 일주일도 못가 우리에게서 외면당한다. 지지에 대한 논리와 이유는 사라지고 그저 자기편이라서, 이미지 때문이라는 비논리적인 주장만이 남겨진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행동하지 않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 대신 똑똑함을 담당하는 작은 전자기기의 빛에 비치는 친목의 장에서만 열심히 떠들어댄다. 정부, 회사 등의 횡포를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들의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물론 단순히 대중들의 반지성주의가 이 영화 속의 재난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윗선에서 이뤄지는 통제와 은폐에 모두가 속아 넘어가는 것이 모든 재앙의 시작이다. 영화 제목이 <돈 룩 업>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들의 집단에 순응하는 사람들만 받아들인다. 초중반의 민디교수도 이러한 이유로 정부 회의에 편입됐지만, 정부에 대항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케이트와 오글소프 박사는 작은 방에 감금시켜버린다. 이후 민디 교수가 피터의 로봇이 검증이 되지 않았고,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자, 민디 또한 그 집단에서 제외시키고, 그의 입을 막으려 한다. 대통령 측이 외친 “돈 룩 업”은 혜성이 아닌 그들을 올려다보지 말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상류층 인물들은 대중들, 심지어 대통령의 아들조차 올려보지 못한 새에 우주선을 타고 탈출해버린다. 결국 상류층은 자신들을 올려보지 않으며 순응한 사람조차 버리고, 자신들만 생존한다. 물론 그 끝조차 그리 유쾌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며 영화가 끝나긴 하지만 말이다.
<빅쇼트>, <바이스>에서도 보여줬지만, 아담 멕케이의 상류층 돌려 까기는 일품이다. 앞선 작품과 다르게 SF적인 요소를 가미해 블랙 코미디의 장르로 풀어낸 것도 신박했다. 영화를 볼 때는 분명 웃음도 터뜨리고, 영화에 몰입해 다른 생각을 잊어버렸지만, 영화관 문을 나서 현실로 돌아왔을 땐, 텁텁하고 찝찝함이 입안에 맴돈다. 아마 이 영화가 킬링 타임 이상의 역할을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