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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 엄마가 우산을 들고 나와 주길 기대했다

비오는 날의 추억

by 아나스타샤

TV 채널을 돌리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와 이야기하는 모습에 집중하며 보게 됐다. 그녀는 부잣집에서 사랑만 받고 자랐을 것 같은 외모와 달리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힘들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힘들게 일하느라 여유가 없는 부모님 모습에 혼자 해결하는 법을 자연스레 익혔다고 한다. 학창 시절 비 오는 날 엄마가 우산을 들고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말을 하며 눈시울 붉히는 그녀.


“어? 내 얘긴데?”


자연스레 나의 그 시절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말이 없었다. 한창 궁금한 게 많아지는 나이였던 난 엄마에게 요것조것 물어보며 말을 걸었다. 먹고살기 바빴던 엄마는 내 얘기가 들릴 리가 없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차가운 벽처럼 느껴지는 엄마의 분주한 뒷모습이 나를 대했다. 엄마 삶에 다정함은 사치였다. 말 없는 젊고 예쁜 엄마. 일찌감치 자신의 삶이 순탄치 않은 항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을 엄마가 말이 없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학창 시절 예상치 못한 비가 오는 날이면 엄마가 우산을 들고 나와 주길 기대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엄마를 대신해 책가방이나 신발주머니로 우산 역할을 대신할 만한 것에 기대어 집에 가곤 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우산을 대신할 수 없을 때는 그냥 비를 맞고 집에 가는 때도 있었다. 그날의 나는 우산이 없어도 찰박찰박 젖은 신발이 내는 소리가 좋았다. 비에 젖은 옷에서 풍겨 나는 섬유 냄새와 체온에서 피어오르는 살 냄새, 촉촉이 내리는 비를 타고 오는 흙냄새를 좋아했다. 토 독 토 독- 내리는 빗소리와 자연이 만들어내는 향기, 비에 섞여 나는 냄새가 코끝을 적시면 포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런 날은 이런대로 저런 날은 저런 대로 흘러가듯 지냈던 초등학생 시절,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른 엄마들에 비해 젊었던 우리 엄마는 어린 나이에 결혼해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철이 없는 엄마라고. 나중에 내가 아이를 낳으면 아이들이 하는 질문은 빠짐없이 대답해 주고, 비 오는 날 꼭 우산을 챙겨 마중 나가는 엄마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비가 온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날의 냄새를 좋아한다. 바쁜 생활 속에 잠시나마 빗소리와 비 냄새에 집중하려 애쓴다. 그 시절 그 냄새는 이미 옅어졌다. 어릴 때 수많은 날들 중에 예기치 않게 비가 왔던 날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남편에게 내가 어릴 적 비 오는 날 엄마가 오지 않아 비를 맞고 다닌 이야기를 했다. 나는 나름의 슬픔 감성으로 이야기하는데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나도 그랬어. 우리 엄마는 집에 계셔도 안 오셨어. 그때는 마중 나오는 부모가 거의 없었을 걸?”

“그런가?”


남편이 나에게 건넨 별거 아닌 말은 나와 우리 엄마를 보통의 범주에 데려다 놓았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가정환경이 좋았다면 비 맞은 기억도 대수롭지 않게 남았을까. 남편처럼 말이다.


세월이 흘러 내가 아이를 낳고 길러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다정함과 따스함을 갖추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어릴 적 괜한 다짐을 했다. 끝없이 반복되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에 반응하다 보니 말이 많은 엄마가 되어 있었다. 나의 현실은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갈 시간적 여유가 없는 엄마였고, 날씨 애플리케이션이 너무 잘되어 있어 “내일 비 온대.” 한 마디면 각자 우산을 알아서 챙겨 나간다.


지금생각하면 엄마를 철이 없는 엄마라고 생각한 건 맹랑하고 발칙한 생각임에 틀림없다. 20대 중반 나이에 가장이 되어 아이 둘을 데리고 엄마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힘든 일이 분명했다. 다정함은 버리고 우리 자매를 품었을 엄마에게 위로와 함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 드리고 싶다.




사진출처 : pexels-joelpapal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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