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친구야
늦은 저녁시간 카톡 알림음이 두세 차례 울렸다. 밤 시간 울리는 휴대폰 메시지 알림에 “이 시간에 누구지?”라는 혼잣말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어머!!”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아 잊고 지냈던 친구 M에게서 온 메시지로 분주해진 나의 손과 입. 휴대폰 메시지 창에 답장을 하며 나도 모르게 “난 잘 지내. 넌 잘 지냈어?”라고 음성지원을 하고 있었다. 마음을 못 따라가는 손가락이다. 이럴 땐 전화통화가 빠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메시지엔 메시지로 답하려고 애쓴다. 말보다 느리게 메시지 입력을 하고 있는데 곧 전화벨이 울린다.
근 30년 지기 친구, 15년 정도 연락 하지 않고 지냈던 친구인 M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M도 나처럼 휴대폰 자판에 꾹꾹 눌러 글자를 완성시키는 것이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분명 내 휴대폰에 오래도록 자리하고 있던 번호지만 15년 넘게 눌려지지 않았던 M의 전화번호. 마지막 연락에서 M은 심적으로 힘든 일을 겪으며 상처 회복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정도만 알려 왔었다. 그렇게 오래도록 연락을 하지 못했다.
잽싸게 전화를 받고 M의 목소리가 들리자 반가움에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더 이상 동전이 없어 곧 끊길 공중전화로 통화하는 사람처럼 빨리 말하고 있었다. 시간제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너무 반가울 때 왜 말이 다급해지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러다 M 옆에 나를 아는 또 다른 친구 J와 같이 있다며, J도 내 소식을 궁금해한다고 전화기를 넘겼다. 내 기억에 J는 부모님을 도와 꽃집을 했었다. 꽃을 다뤄서 인지 J는 조곤조곤 애교 섞인 말투에 천상 꽃집아가씨 같은 친구였다.
전화기를 넘겨받자마자 “잘 지내?” 한마디만 했을 뿐인데 우린 서로 까르르 깔깔깔 하하하 호호호. 20대로 돌아간 듯 서로의 말 한마디에 그저 웃음만 나왔다. J의 말투는 내 기억처럼 여전했다. M과 J도 오랜만에 만나 술 한 잔 하다가 문득 내 소식이 궁금하고 보고 싶어 연락했다고 한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J는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했다. J가 말했다.
“너 나랑 OO초등학교 같이 다녔잖아. 너 착했잖아. 호호호호호.”
나와 J는 초등학교 동창 겸 사회친구이기도 했다. J의 말처럼 착했던 나는 한때 인간관계 확장에서 오는 피로감을 느꼈다. 결혼과 출산, 육아 그리고 각자의 상황들로 서로에게 뜸했고 소홀해졌다. 터전을 옮기며 사회생활을 하고 인연들이 겹겹이 쌓여 저 밑에 원래 있었던 묵은 인연들을 잊고 지냈다. 각기 다른 편견들을 가지고 사는 세상에 그날의 통화는 오롯이 M과 J여서 기뻤다.
J는 통화하는 내내 “너 많이 성숙해졌다.”는 말을 했고 목소리가 변했다며 신기해했다. 나는 결혼한 후 남편과 대화에서 목소리를 높여 말해야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발성이 바뀌었나 싶었다. ‘아이들 키우며 남편까지 키운다 생각하고 살았으니 내가 성숙해지지 않고 배기남?’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십 넘긴 나이에 친구에게 성숙해졌다는 말을 들으니 재밌어서 또 한 번 웃음이 터졌다.
전화기 너머 멈출 줄 모르는 웃음 끝에 “우리 보자. 꼭 보자.”라는 말만 반복했다. 친구들은 서울에 살고 있고 나는 지방으로 내려온 지 15년이 다되어 간다. 내가 살고 있는 시골로 바람 쐰다 생각하고 놀러 오라고 구두초대장을 날렸다. 주말에 와서 합숙하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보자고 제안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내 입 꼬리는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통화하는 모습을 지켜본 후 말했다.
“아주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네. 정말 좋은가 봐?”
짧은 통화에서 세월의 공백을 전부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굳이 어떻게 지냈는지 알지 않아도 M은 M이었고, J는 J였다. 그날 M과 J와 전화통화로 나는 감정의 정화를 경험했다. 훌쩍 지나온 시간들이 원망스럽거나 아쉽지 않을 정도로 친구들은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조건 없는 기쁨과 행복감을 선물해 준 친구들에게 고맙다.
반갑다. 친구야.
사진출처 : pexels-alinevianaf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