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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서 3중 추돌 교통사고

약 주세요

by 아나스타샤

고등학생인 아들은 아침 일찍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느새 혼자서 시외버스를 타고 관심사를 찾아다닐 정도로 훌쩍 자란 아들. 덕분에 나는 모처럼 지인과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초저녁쯤 집에 도착할 아들을 기다리는 목적도 있는 지인과의 커피숍 데이트였다. 지인과의 오랜 대화로 엉덩이가 들썩이던 때, 곧 있으면 아들이 도착한다는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고속도로에서 3중 추돌 교통사고 소식을 알려 온 아들.


뜬금없는 아들의 사고소식에 나는 순간 회로가 정지됐다. 조금 전까지 커피 향과 어울리는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공기마저 편안했던 일상에 비상등이 켜졌다. 수화기너머로 들려오는 아들의 무덤덤한 목소리에 특별히 다친 곳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잘 자고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아들의 말투. 팔이 살짝 저렸지만 괜찮다는 말을 끝으로 사고현장에 경찰이 왔는지, 현장이 어떤지, 수습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와 같은 내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엄마는 왜 전화해서 계속 내가 모르는 질문만 쏟아내냐는 듯 "응. 아니. 몰라."라고 무심하게 답했다. 침착하고 담담한 아들 목소리에 진짜 사고가 난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아들과의 대화는 마치 놀란 가슴에 고구마 10개를 한꺼번에 집어삼킨 것 같이 콱 막힌 느낌이 들었다. 나는 조급한 마음에 한국도로공사에 전화해서 사고 지점을 알려주고 사고 수습은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 문의했다. 상담원은 내가 알려준 정보로 도로 상황을 살펴보았지만 사고현장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상담원은 고속도로 CCTV로 사고 현황을 좀 더 찾아보고 다시 연락 주기로 했다. 상담원의 위로와 친절한 응대로 마음을 조금 가라앉힐 수 있었다. 나는 침착하려 애썼지만 경황이 없는 게 분명했다. 도로공사 상담원과 나의 통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사실. 내가 상담원에게 아들이 인천출발 버스를 타고 오다가 중부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다고 했단다. 흐음.


고속도로 사고현장에 경찰이 도착한 후 버스 환승을 했고 아들은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다음날, 아들은 어깨가 뻐근하다고 했다. 나는 교통사고보험접수 문의를 하기 위해 버스회사에 전화했다. 담당자와 통화를 하는데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답변으로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들었다. 한국도로공사 상담원과의 통화와는 사뭇 달랐다.


그날 아들을 데리고 병원 진료를 보는데도 어이없고 황당한 기분이 들긴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어깨가 뻐근하다고 못 견딜 정도의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기에 진료는 더없이 가벼이 진행되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x-ray 검사상에서 뼈에 이상소견은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아들에게 약이 필요하냐고 물었고 필요하면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아들 입에서 "네."라는 대답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역시 아들의 대답은 내가 생각한 대로였다.


"으음... 아뇨. 안 먹어도 될 것 같아요."


약 필요하냐는 의사의 간단한 질문과 아들의 짧은 대답에 속상했다. 교통사고라는 게 크게 아픈 경우가 많지 않다는 의사 선생님의 부연설명은 더욱더 나를 화나게 했다. 엄마인 나는 아들이 외관상 눈에 띄는 상처를 입지 않았어도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기 때문에 좀 더 신중하게 살피고 싶었다. 그날 아들의 교통사고를 가볍게 대하는 이들에게 마음이 상하고 있었다.


새삼 아들이 성인처럼 권리와 의무를 완전히 가지지 못한 청소년기라는 것을 실감했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 체격은 남편을 넘어선 지 오래고 마치 성인인 양 허세도 부린다. 독립적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욕구는 강하지만 사회적인 경험이 부족해 문제 처리가 미숙한 과도기적 시기.


나는 다음 진료예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말했다.


"약 주세요."




사진출처 : pexels-imjimmyq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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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스타샤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작가지망생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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