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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내가 잃어버린 것이었다

항아리 같은 남편

by 아나스타샤

도통 신나는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하루하루 놀이동산에 간 아이처럼 신나고 싶은 생각은 아니었다. 새로운 직장에 취업한 기쁨도 잠시, 한동안 나는 김 빠진 콜라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냥 시커먼 단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설탕물만도 못한 콜라. 어느 순간부터 내 주변에 무례한 사람들이 즐비하다고 생각됐고 불쾌감으로 에너지는 고갈되어 갔다. 퇴근하고 들어가면 어서 몸을 뉘이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폭풍 수다를 떨고 뭔가 해소되는 듯 느껴도 그때뿐이었다. 일시적 위로감이었다. 사람과의 대화에서 오는 위로는 공허함으로 남을 때가 종종 있다. 직장생활에서의 만족도는 떨어졌고 매 순간 선택에 대한 후회와 자책이 늘어갔다. 후회와 자책이라는 놈은 고약했다. 생각의 꼬리를 잡고 현재보다 조금 더 과거로 과거로 나를 끌어다 놓는다.


비효율적인 업무에 대한 불만! 소통이 어려운 직장 동료! 엄마 말을 귓등으로 듣는 아이들! 공감해주지 않는 남편!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불만이 폭발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나는 일상에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고 있었다. 행복하지 않은 날들이었다. 매일 출근길이 즐겁지 않았고 집에 가도 나를 공감하는 사람은 없다고 단정 지었다. 행복을 도둑맞은 상태였다. 그런 날을 살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말수는 줄어들고 사람이 싫어졌다.


그날은 업무상 출장을 나가는 날이었다. 내 기분 탓일까. 잘 다니던 길도 이상하게 꼬여 있었다. 길은 가도 가도 낯설었다. 다리 밑 어딘가 좁디좁은 길, 굳이 좁고 험한 길로 안내해 나를 곤경에 빠트리고 마는 내비게이션. 며칠 전 내린 비 때문에 땅이 질퍽해 차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바퀴가 헛돌았다. 액셀을 계속 밝으니 차량이 "부 아아아앙." 거친 소리를 내며 성을 내는 것 같았다. 앞으로 가지도 뒤로 가지도 못했다. 하아.... 깊은 한숨이 나왔다.


나는 머리가 복잡해진다.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항상 내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내비게이션은 왜 넓은 길 놔두고 이렇게 좁고 이상한 길로만 안내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매 순간, 매번, 항상, 나한테만 이라고 구시렁 거리며 입으로 흑구슬을 꿰고 있었다. 잠시 멍하니 손을 놓고 앉아 있었다. 이 순간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긴급출동을 부를 것인가, 남편에게 전화를 할 것인가. 잠시 갈등 끝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의 도움으로 문제가 해결되고 출장을 다니는데도 내 기분은 원래 궤도로 돌아오지 않았다. 출장을 마치고 회사 복귀 도중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 교통카드 재발급받아야 해서 당신 회사 근처로 나가야 하니까 저녁 외식하고 집에 같이 들어가자.”

“교통카드를 또 재발급받아?”


아들은 과거 두 번의 카드분실로 재발급받은 이력이 있었다. 이번에도 잔소리 들을게 뻔하니 나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남편과의 통화에서 나 혼자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간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들은 교통카드를 세 번이나 잃어버리고 만들기를 반복했고, 유난히 물건을 잘 잃어버렸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나아지지 않는 아이들의 행동에 화가 났다.


출장지에서 이미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린 나는 그날따라 혼자 허우적대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 나고 짜증이 차올라 애들에 대한 실망감을 남편에게 쏟아냈다.


"우리 애들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나아지질 않지?”

“에휴, 삐뚤어지지 않은 것 만해도 땡큐지. 뭐.”


요즘 일상에서 쌓였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래. 지금이야!'라며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려는데 남편의 엉뚱한 답변으로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도 한참을 웃었다. 남편의 답변이 특별한 깨달음을 주는 대답은 아니었다. 늘 그렇듯 그는 항아리처럼 담는다. 남편의 말대로 우리 애들은 물건도 자주 잃어버리고 늦잠을 자느라 해야 할 일을 놓치기도 하지만 비뚤어지지 않았다. 땡큐다. 도둑맞은 것 같았던 행복은 내가 잃어버린 것이었다. 일상은 매 순간 감사할 것 투성이라는 것을 제대로 일깨워준 항아리 같은 남편. 나는 자주 실수하고 잃어버리는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했지만 내가 행복을 잃어버렸을 땐 아무도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사진출처 : pexels-wanderingpick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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