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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샤 Jun 27. 2024

여러분들은 눈이 몇 개인가요?

눈이 2개여서 다행이야!!

몇 개월간의 실업기간이 끝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면접을 봤다. 두 개의 사업팀에서 각각 1명씩 최종 2명을 모집하기 위한 면접이었다. 면접장에 나타난 지원자는 나 포함 단 둘. 경쟁률은 황금비율이었고 오후쯤 초고속 합격 문자를 받았다. 내심 함께 긴장하며 대기했던 상대지원자도 문자를 받았길 바랐다. 워낙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해서인지 결과에 덤덤했다.


첫 출근. 기대했던 입사동기가 있었다가 없어진 사연을 들었다. 입사동기가 될 뻔 한 다른 응시자는 첫 출근을 앞두고 타 지역으로 가게 되어 입사를 포기했다는 소식이었다. 직장에서 입사동기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고 있었기에 아쉬움은 컸다. 낯선 환경에 아쉬움이 의기소침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의 이상한 나라 입성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무실 분위기는 고요한 바다에 무관심 부표가 둥둥 떠있는 것 같았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코털의 작은 흔들림까지 들릴 것 같이 조용했다. 코털이 움직이지 않도록 조심해서 호흡을 내뱉었다.


전임자의 오랜 부재로 그동안 밀린 업무 목록이 퇴적층처럼 쌓여 있었다. 신입이었던 내겐 일목요연하게 작성된 인수인계서는 그저 단어와 문장들의 나열일 뿐이었다. 기관의 특성상 대면 인수인계가 아닌 서면 인수인계는 당연한 행태였다. 인수인계서에는 경력직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업무들이 나를 비웃고 있었다.


정적을 깨는 총괄팀장 목소리가 들렸다. "00 선생님." 한번 시작된 호출은 멈추지 않고 반복적으로 울렸다. 한 사람에 대한 호명은 계속되었다. "00 선생님." "00 선생님." "00 선생님." 야무진 호명 소리의 반복으로 나는 두통이 시작됐다.


사무실은 꽤 넓은 편이었다. 호출에 불려 다니는 직원들이 다람쥐 통을 돌듯 종종걸음으로 오가는 걸음수는 얼마나 될까. 요즘 같으면 걸음수대로 보상금이라도 받았을 텐데. 하하하


팀장은 책상 앞에 선 직원에게 다소 날카로운 목소리로 업무의 관한 이야기를 했다. 공개된 공간에서 직원들에게 쏟아지는 지적과 다그침을 의도치 않게 직관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50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신입이던 나는 다소 경직되어 있는 사무실 분위기에  눈 뜨고 자는 척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불쾌한 감정이 전이되어 하루가 무겁게 흘러갔다.


종종 직설적인 표현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후볐고 자존감에 무한 스크래치를 냈다. 수십 차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도 서류는 통과되지 않았다. 심지어 수정을 요구한 부분을 고쳐 가도 기억 하지 못해 그 부분을 다시 지적하며 수정하라고 하는 것은 애교로 보였다.


어쩌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직원은 미운털 박히기 일쑤였다. 직원들 간에 서로를 걱정하거나 위로할 만한 여유 따윈 없었다. 불똥은 어디로 튈지 예측불허니까. 제대로 된 의인이 나타나 자신들을 구제해 주길 바라는 눈치게임 중이었다.


잦은 질책으로 직원들의 감정은 사막화된 듯 보였다. 진짜 괜찮은 건가, 아님 괜찮은 척하는 건가. 직원들 간에 눈이 마주칠 때면 머쓱한 미소를 보이며 지나갔다. 너나 잘하라는 듯 밀린 업무들이 내 등을 밀어대고 있었다. 이런 기류 속에 나는 한숨이 늘었고 두통은 갈수록 심해졌다. 이 분위기 누가 만들어가는 걸까...


자신의 감정을 얼마나 잘 컨트롤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이 달리 보이기도 했다. 내 사수가 그랬다. 항상 같은 페이스로 나를 대했고 그 때문에 위로가 되었고 편안함을 느꼈다. 사수는 폭풍이 휘몰아치는 사무실 분위기 속에서도 늘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자신의 평정심을 잃진 않았지만 타인의 평정심을 위해 싸워주진 않았다. 나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배울게 많은 사람이었다.


회계를 담당하는 동갑내기 팀장이 있었다. 회계 업무 특성상 그랬을 수 있지만 유독 예민한 팀장과 나 사이에 묘한 감정기류가 오가고 있었다. 회계팀원이 아닌 나에게 과도하게 업무를 알려주며 쉬지 않고 지적을 했다. 나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도무지 이해가지 않는 호의에 반문을 했다. 팀장은 적절한 비유로 나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선생님, 눈이 3개인 사람들 마을에 들어와서 눈 3개가 이상하다고 말하면 그 말이 먹히겠어요?”

“이상하다고 말하는 순간 선생님은 타깃이 돼요. 그러니 그냥 눈 3개인 척하고 살던가, 아니면 그만두던지 둘 중에 하나예요.”


그 설명을 듣기 전까진 몰랐다. 생각과 의견을 얘기하면 되는 줄 알았다. 난 왜 문화를 하찮게 봤을까? 문화는 가볍게 생각하고 쉽게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사람에 의해 형성된 것. 문화를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마을에서 잘못된 것은 눈이 2개인 나였다. 나는 눈이 3개인 척을 하지 못했다. 언젠가 나도 눈이 3개 달린 척하는 기술을 터득할지도 모른다. 아님 정말 눈이 하나 더 생겨 3개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이다. 척하는 기술을 터득하기에도 눈이 3개가 되기에도 이미 난 나이가 너무 많았다. 음하하하하.




사진출처 : pexels-hernantoro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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