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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샤 Jun 05. 2024

사랑은 한국말을 한국말로 전달하는 것.

끼어들기, 편들기는 남편만의 사랑법.

사사로운 감정에 따라 아이 대하는 기준 흔들리지 않기. 훈육은 어려운 영역이었다. 흔히 말하는 양육자로서의 일관성 유지는 가장 난도가 높았다. 처음 해보는 엄마 역할에 한결같은 자세가 쉽지 않았다.


초보 엄마로서 모르는 게 많았다. 육아 관련 정보를 찾아보기에 열심이었고 실천하려 애썼다. 아이에 대한 지나친 몰입과 걱정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 말이 많아지고 잔소리가 늘었다. 엄마 말에 지쳐 있을 아이를 그분이 보듬고 달래주길 바랐다.


아이들을 훈계하는 과정은 늘 새치기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이를 야단치고 있을 때면 사고 현장을 알아서 찾아오는 레커차처럼 그분이 등장하곤 했다. 그러고는 앵무새처럼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하며 아이를 야단쳤다. 고개를 돌려 그분을 바라봤다. 응원의 눈길을 준 것이라 생각한 건지 마치 나와 전조 사인을 주고받은 것처럼 그분의 목소리 톤이 한 옥타브 올라간다. 어이가 없어서 난 말했다.


“내가 혼내고 있잖아. 당신이 여기서 같이 혼내고 있으면 어떡해?”

“그럼 난 못 혼내?”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동시에 아이 하나를 공격하는 꼴이잖아. 내가 혼내고 있을 땐 당신은 좀 빠져 있다가 아이가 상처받지 않고 기죽지 않게 다독여줬으면 좋겠다는 얘기지.”


결국 아이가 안쓰러워진 난 야단치다 말고 아이를 감싸야하는 일관성 없는 엄마가 되기 일쑤였다. 내 입장에서 그분은 한마디로 똥탕 튀기기 전문이었다.


“가만히 있다가 왜 내가 혼낼 때마다 나타나서 같이 혼내고 있냐고. 이러니까 내가 혼내다가 멈추고 애를 위로하게 되잖아. 이게 뭐야. 나만 일관성 없는 엄마 만들어 놓고!”

“나도 혼내고 싶어.”


으이그! 인간아, 꿀밤이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였다.


등교 준비하느라 바쁜 금요일 아침이었다. 고등학생 아들이 학교에서 하는 밤샘 체험프로그램 신청 했다며 삼겹살 구워 먹을 수 있는 프라이팬을 달라고 했다. 며칠 전에 얼핏 들은 기억은 나지만 허락해 준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안 된다고 한 적도 없었기에 아들은 신청을 해버렸단다.


다음날 주말이라 다른 일정이 여러 개 잡혀 있었기 때문에 밤샘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학교 필수 프로그램이 아닌 것 같았다. 아들에게 타협점을 제시했다. 선생님과 얘기해서 학교 밤샘 체험은 적당한 시간까지 참여하고 엄마나 아빠한테 연락하면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중간에 나오는 건 싫다는 아들은 ‘노빠꾸’였다. 고집부리며 말을 듣지 않았다. 밤새고 와도 피곤하다는 소리 일절하지 않고 다음날 일정에 절대 지장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내 기준에 아들의 체력은 약하게 느껴져서 걱정 됐다.


아들과 나누는 대화를 그분이 옆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또 내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 하며 아들에게 면박을 줄까 봐 불안했다. 그분이 말했다.


“중간에 나오는 건 싫대.”

“밤새고 와도 피곤하단 소리 안 하고 다음날 일정에 지장 주지 않겠대.”


아들 얘기를 구관조처럼 따라 하며 아들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한국 사람한테 한국어를 통역해 주는 것처럼 아들의 말을 그대로 따라서 나에게 읊어주고 있었다. 나도 한국말 알아듣는데 하아.... 왜 저러는 걸까. 그분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내 말을 따라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이쯤 되면 이길 것 같은 사람 편을 드는 건가 싶었다.


다음날 아침 그분은 밤샘한 아들을 데리고 아들의 첫 일정인 알레르기 치료를 위해 안과에 갔다. 그 후 잠깐 시간이 남아 아들과 함께 찜질방에 갔다고 문자로 알려 왔다. 걱정하고 있을 나를 위해 친절하게 아들이 곯아떨어져 자는 모습까지 사진 찍어 보내주었다.


아들은 약속을 지켰다. 내 앞에서 피곤하단 소리 따윈 하지 않았다. 그날 그분은 아들의 로드매니저를 자처했다. 생각해 보면 그분은 늘 나와 아이들의 로드매니저였다.


그분의 끼어들기가 아이들과 나 사이에 중재를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다면 성공이었다. 그분의 오묘하고 어설픈 기술에 깃든 진심을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아빠의 사랑을 느끼고 좋아하는 거 보면 당신 제대로 성공했어!




사진출처 : pexels _Elina fairyt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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