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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Ep.7

오소리와 두꺼비친구

by 언돌이

섬진강을 끼고 왼쪽은 전라도 오른쪽은 경상도인 광양-하동에 도착하였다. 화개장터라는 곳이 유명하고 봄철에는 벚꽃 길이 수 km가 장관을 이룬다. 쌍계사라는 절도 있고 쌍계명차라는 건물도 있으니 그곳에서 차 한잔 마시면서 벚꽃놀이 하는 것을 추천하다. 벚꽃은 워낙 시간을 맞추기 힘들다. 조금만 일찍 가면 꽃이 피지 않고 조금만 늦으면 반은 초록잎이 대신해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럴 경우엔 하동시 홈페이지에 가면 실시간 벚꽃 상황을 중계하고 있다.


우린 한 여름에 갔으니 벚꽃은 볼 수 없었다. 대신 배가 고파 인절미를 먹었고 그로 인해 막힌 목을 식혜로 달랬다. 그때의 그 청량감은 잊을 수가 없어 몇 년 뒤에 또 가서 같은 코스로 즐겼다. 너무 옛날에 방영해서 나 조차도 본 적 없었던 드라마 [토지] 촬영지에 갔다. 초가집으로 이루어진 마을이 꽤나 그럴싸하다. 항아리가 수 백개가 있던 매실농장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은 은근히 잘 나와 인화해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한량처럼 여행을 하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아는 형님의 아버지 비보가 문자로 왔다. 이대로 고향으로 돌아가 조문을 해야 하지만 서울에서 너무 멀리 와버렸다. 못 가게 되어서 죄송하다고 전화를 드리고 다시 한량처럼 여행을 계속했다. 그때도 죄송하다 말씀드렸지만 늘 관심과 도움만 주시던 형님이기에 이 자리를 빌려 또 한 번 죄송하다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하동에서 마산시까지는 끊임없이 달려가기만 했다. 마산에 도착하니 밤이 되었다. 마산의 시내에 접어들었을 때 도시의 분위기는 왠지 험악했다. 8층 정도 되는 상가에 노래방-노래주점-단란주점이 빼곡하게 자리 잡았다. 마산이라는 이름 자체가 좀 쌔보이는 것도 한 몫했다. 우린 주눅 들어 감히 텐트를 칠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바로 모텔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마산이 무서워서 도망가듯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은 제2의 수도라 할 수 있을 만큼 큰 도시로 유명하지만 처음 가봤다. 서울 보다는 낮은 건물이 즐비했지만 도로는 서울보다 더 복잡했다. 내비게이션이 생활화된 요즘에도 고가도로를 타야 하는지 판단이 안될 때가 많은데, 종이지도로 여행했으니 모르고 고가도로를 탈 뻔했다. 주로 고가도로는 자동차전용도로이다. 전 세계 7개국만 있다는 자동차전용도로가 한국에 있다. 미국의 할리데이비슨 회장도 한국의 자동차전용도로를 보고 경악했다고 했다. 오토바이 시장이 그만큼 불모지인 것도 한몫한다. 그리고 부산의 자동차는 거침없다. 우리가 있다는 걸 알고도 차선변경을 한다. 몇 번을 치일뻔했는지 모르겠다.


해운대에 도착했다. 제주도의 수많은 해수욕장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는 해수욕장은 처음이다. 우리 셋은 너나 할 것 없이 선글라스를 꼈다. 비키니 입은 누나들은 우릴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은데, 우린 그녀들을 엄청 신경 썼다. 부산은 자동차도 해수욕장 누나들도 참 열정적인 도시이다.


오늘의 베이스캠프는 밀양이다. 작은아버지께서 거주하고 계신 곳이다. 역시나 미리 연락해 신세를 지기로 했고 이로써 마지막 친척집이다. 가는 길에 오토바이보다 우리가 너무 힘들어 길바닥에 잠깐 세워놓고 쉬고 있었다. 항상 모자를 거꾸로 쓰고 뿔테안경을 쓴 진돌이가 부산의 자동차 매연에 갑갑했는지 모두 던져버리고 쉬고 있었다. 머리는 떡져있고 얼굴은 모자와 안경을 제외하고 새까맣게 타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초췌해서 부산거지다!라고 놀렸다. 너무 웃겨서 10분 이상 웃었다.


밀양에 도착했다. 작은아버지의 자식은 3명인데, 내 사촌동생이다. 큰 놈과 막내 동생은 집에 없었고 둘째 동생은 워낙 붙힘성 있는 녀석이라 우리와 함께 pc방도 가고 노래방도 갔다. 피파온라인 할 때도 2:2가 형성돼서 더 재밌게 게임했다. 다음날 작은아버지께서 우릴 태우고 밀양시장에 있는 백반집에 데리고 가 밥을 사주셨다. 또 호사를 누렸다. 그때 그 평범해 보이는 반찬들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밀양에서는 얼음골이라는 곳이 유명하다. 신기하게도 38도가 넘는 더위에서도 그곳은 에어컨 킨 것 마냥 시원했다. 근처에 충렬사를 가는 도중에 저 멀리 지렁이 한 마리가 있었다. 이 더위에 지렁이가 땅 밖에 있는 것이 신기해 가까이 가서 봤더니 세모난 머리에 혀를 날름 거렸다. 우리가 다가가자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갔는데, 뱀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도 그 정도 속도로 도망갔다. 벌레보다 뱀이 천 억배 무섭다.


경주로 향했다. 중학교 수학여행으로 왔었을 땐 그저 지루하기만 했다.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등등 유적지가 봐야 하니까 봤다. 하지만 나 스스로 친구들과 함께 찾아오니 새삼스럽게 좋았다. 불국사의 두 개의 탑도 볼만했고 석굴암의 부처상은 신비스러웠다. 밤이 되자 우리는 대충 아무 곳에 숙소를 잡고 밤산책을 했다. 이제는 밤공기가 선선하니 걷기 너무 좋았다. 무령왕릉의 내부 전시물도 구경하고 밤에 보는 첨성대는 노란색 은은한 조명을 비춰 놓아 훨씬 더 분위기가 좋았다. 넋 놓고 첨성대를 구경하는데 아까부터 은은하게 들리는 기타 연주곡이 우릴 더욱 낭만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경주시가 참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어두운 나무 아래에서 어떤 아저씨가 혼자 클래식 기타를 들고 연주 중이셨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경주시는 첨성대 근처에 은은한 기타 연주곡을 스피커로 틀어놓으면 안그래도 많은 관광객이 더 증가할 것이다.


평화로운 여행이 지속되었다. 평택에서 사고가 나고 금산에서 귀신이 들리고 보성에서 폭풍우를 맞이한 지난날에 비하면 너무 대비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 평화는 영덕으로 가는 길에 깨졌다. 산길을 올라가는 도중에 갑자기 길가에 오소리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선두를 달리던 순돌이는 피할 새도 없이 오소리를 밟았고 그 뒤를 따르던 나도 앞바퀴로 오소리를 밟았다. 이 녀석은 꽤나 당황했는지 초인적인 힘을 내서 다시 숲 속으로 사라졌다. 행여나 쓰러졌으면 동물병원이라도 데리고 갈터이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은 우리 둘 다 넘어지진 않았다.


놀란 가슴을 쓸어안고 영덕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해변을 발견하였다. 아무래도 8월 말이다 보니 해수욕장은 폐장한 것으로 보인다. 대충 텐트를 치고 아무 식당으로 향했다. 편의점 앞에 두꺼비 한 마리가 있었다. 꽤나 큼직했다. 이 녀석은 누가 뭐라 한들 가만히 있을 뿐이다. 식당에 도착해 메뉴판을 살펴보았다. 영덕대게는 가격이 싯가라고 적혀있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우린 대게탕 3만 원짜리를 먹었다. 댜게탕은 가격이 적혀있었다. 대게 다리 몇 개로 푹 고운 맑은 탕이 나왔다. 이마저도 맛있게 먹었다. 맛의 기준은 3분 카레인데, 그보다 맛있으니 만족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까 그 편의점을 지나쳤다. 두꺼비는 자동차에 밟혀 피자처럼 되었다. 불쌍한 두꺼비.


아무도 없는 해변 주변을 살펴보니 널브러진 나무합판이나 쓰레기들이 널려있었다. 모두 끌어모아 불을 지폈다. 캠프파이어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내 말없이 불멍을 했다. 모두 한마음 한 뜻으로 해운대의 누나들을 떠올랐다. 그중에는 백인도 있었다. 진돌이가 한 마디 했다.


-아.. 외롭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성행위를) 하면 좋겠지? 좋을 거야? 따위의 말들이 오갔다. 더 이상의 말은 너무 저급해서 생략하겠다. 희한하게도 이 상황이 너무 3인칭처럼 보였다. 머릿속에 동영상처럼 저장이 되었다. 어제나 그저께처럼 이 순간도 순식간에 지나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이 여행이 너무 소중해졌다. 잊힐 법한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영덕의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했던 헛소리와 더불어 모든 여행의 순간이 생생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마무리가 되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텐트 밖을 보니 수 백 마리의 갈매기가 우릴 향해 쳐다보았다. 담배를 태우러 밖에 나오니 도시 속 비둘기처럼 걸어서 도망치는 갈매기이다. 뒤이어 순돌이가 나와 담배를 같이 폈다. 간밤에 이상한 꿈을 꿨다고 한다.


-밤 새 오소리가 내 등을 치면서 나를 왜 죽였냐~라고 하소연 했어. 곧이어 두꺼비도 나를 왜 죽였냐며 등을 때렸어. 오소리는 그렇다 쳐도 두꺼비는 억울해.


숲 속으로 돌아간 오소리는 그대로 무지개다리를 건너지 않았을까? 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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