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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돌자 전국 한 바퀴 Ep.6

우동 한 그릇

by 언돌이

산이라 하면 지긋지긋하다. 어릴 적에 우리 가족은 추석에 무슨 이유때문인지 시골을 내려가지 않은 적이 한 번 있었다. 10시간 이상 소요되는 귀향길을 패스한다니 나로선 반가운 일이다. 그렇게 강원도를 향했다.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낡은 여관에서 온 가족이 도란도란 숙박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6시부터 일어나 오색약수터라는 곳에 가서 철분 가득한 맛없는 물을 마신 후 산을 올랐다. 이때까지 올라본 산이라곤 동네에 있는 아차산이 전부였다. 구리시에 접한 아차산입구에서 출발하여 형제약수터라는 곳까지는 그나마 어린 나이에도 가뿐하게 등산이 가능했다. 그 정도만 오르면 되겠거니 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올라갔다.


오색약수터에서 출발하여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까지는 5km에다가 1,282m를 올라야 한다. 보통 산 이름에 ‘악’ 자가 붙으면 꽤나 거친 산이라고 한다. 오르면 오를수록 점점 왜 가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2살 어린 동생은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래도 정상은 봐야 한다며 동생을 업고 오르셨다.(진심 대단하다.) 정상에는 산장이 하나 있다. 하룻밤 묵고 다음날 내려갈 수 있다. 보통의 사람들이 설악산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방법이다.(자식을 둘이나 데리고 왔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예약이라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었다. 그대로 하산해야 한다. 새벽부터 출발했는데 돌아올 때는 꽤나 어둑한 밤이 되었다. 산에 있을수록 어둠이 더 빨리 내려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헤드렌턴 따윈 없었다. 다행히도 뒤에 따르던 등산객들이 비쳐주셔서 겨우 내려올 수 있었다. 그때 내 나이가 10살이고 동생은 8살이었다. 다리가 후 들렸다. 내려오자마자 다시는 설악산에 오르지 않겠다고 아버지께 선언했다. 그 선언은 아직까지 지키고 있다. (최근 케이블카를 신설한다는 뉴스를 봤다. 케이블카 타고 가면 갈 수도 있을지도?)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보자. 한 학년 아래의 후배들은 수학여행 투표에서 제주도가 당선되었다.(억울) 후배들의 이야기로는 교복을 입고 한라산을 등반했다고 했다. 여자애들도 체육복이 아닌 교복치마를 입고 등산했다고 한다. 아차산보다 조금 더 힘들었지만 오를만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믿고 한라산은 오를만한 쉬운 산이라 판단했다. 이왕 제주도에 온 김에 모든 콘텐츠를 누리고 가자는 의견에 한라산 등상에 쉽사리 동의했다.


널찍한 주차장에 스쿠터를 세워두고 우린 등반하기 시작했다. 등산을 하면서 우린 고등학교 때 이야기를 주로 했다. 그래봤자 시덥잖은 동창 여자애들 이야기뿐이다.(누가누가 더 이쁘다는 이상형 월드컵 수준) 건강과 성 박물관을 다녀온 이후 이처럼 여자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한라산은 생각보다 길이 좁았다. 풀이 무성하게 자란 탓에 한 명 겨우 지나갈 정도인 등산로가 자주 등장했다. 나를 포함한 친구들이 점점 말을 잃어갔다. 중간에 건물 하나가 보인다. 아무도 없었고 건물 옆에 표지판이 하나 있었다. 13:00분까지 용진각대피소에 도착하여야 정산등산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행히도(?) 그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기 때문에 우린 계속 걸어갔다.


미리 싸갔던 물을 다 마셔버렸다. 이놈의 산은 끝이 나질 않는다. 그제야 설악산이 생각이 났다. 제발 물을 충전할 수 만 있다면 영혼까지 내놓을 수 있었다. 신기루처럼 약수터 하나가 나타났다. 영혼을 일부 내어드리고 물을 충전하고 더 올라갔다. 어느새 혼자 등반 중이시던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아저씨는 이제 거의 다 왔다고 말씀해 주셨다.(우리 아버지도 설악산에서 그 말을 수십 번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소싯적 자동차 딜러로 잘 나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돈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해병대도 나오셨다고 한다. 나는 그 부분이 제일 부러웠다. 아직 난 입대도 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뭉그적 걸어서 답답하셨는지 아저씨는 먼저 가겠다고 하시고 사라지셨다. 또 아저씨와의 인연이 생겼다. 또.


점점 주변의 풍경이 달라졌다. 푸릇한 나무들은 어느새 앙상한 흰색 나무들로 가득 찼다. 고요한 안개도 끼었다. 사실 안개라기보다 구름일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땀에 찌들던 더위가 물러가고 누가 에어컨이라도 켜놓은 것처럼 시원했다. 드디어 정상이다. 백록담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울타리를 너머 백록담 물을 가까이 볼 수 없게 만들어놓았다. 보통 백록담은 구름에 가려 볼 수 없다고 한다. 우린 그나마 운이 좋았다.


우린 드디어 포일에 싸 온 김밥을 허겁지겁 먹었다. 그리고 정상에서 쉽게 내려가려 하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고 그 고통을 보상받을 만큼 제대로 누린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너무 추웠다. 우리 모두 반팔에 반바지를 입었다. 친구들은 나무 데크에 누워 티셔츠에 팔과 다리를 넣어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거지 같아서 사진을 찍었다. 추워서 못살겠다 그냥 내려가자!라는 결론이 나서 내려왔다.


추 후에 찾아보니 우리가 갔던 코스는 돈내코탐방로이다. 편도 9.1km이고 높이 1300m를 오르는 코스였다.난이도로 치면 두 번째로 힘든 길이지만 내 기준으로 가장 힘든 길이라 생각한다. 고등학교 후배들은 버스로 최대한 올라가서 잠깐 다녀올 수 있는 최대한 쉬운 코스로 다녀왔던 것이다. 설악산 등산 할 때가 생각이 났다. 다신 한라산을 오르지 않겠다 다짐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내려왔다. 어둑한 밤이 되었다. 특별한 보상이 필요했다. 텐트를 칠 힘도 없어 제주시에 모텔을 잡고 흑돼지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분명 엄청 맛있는데 살기 위해 먹었다.


다음날 제주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웬만한걸 다 수행한 우리는 완도행 배를 탔다. 손가락으로 버튼을 눌렀던(멀미) 두 녀석들은 경험치가 쌓여 오락기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되도록이면 갑판 위에서 경치를 바라봤다. 다행히도 목포에서 탄 제주행 배보다 흔들림도 적었다.


지루한 풍경을 못 참고 순돌이와 나는 담배를 태우기 위해 마련된 흡연실에 갔다. 은은한 조명에 스탠딩 테이블이 구비되어 있다. 테이블과 천장에 환풍기가 담배연기를 금세 빨아들였다. 왠지 이런 분위기의 담배바가 생길 것 같지 않겠냐면서 사업이야기를 했다. 세계의 여러 희귀 담배를 나열해서 한 대씩 태우는 바를 상상했다. 환기시설도 잘 갖추고 술은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이다. 주로 판매되는 물품은 담배인 것이다. 작은 TV도 두어 프리미어리그도 중계하고 그저 사람들은 담배만 태우다가 집에 돌아가는 가게를 상상하며 완도항에 도착했다. 이거 되겠는데?라는 말을 마지막에 했던 것 같다. 다행히도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런 사업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런 사업을 하지 않고 있다.


오늘의 목표는 순천에 있는 고모댁에 신세를 지는 것이다. 완도에서 순천시까지 135km 정도 된다. 이 정도 거리면 6시간 정도 걸리니 열심히 달려보아야 한다. 낭만, 꿈, 즐거움이 우선이던 우리는 첫날 사고와 스쿠터 고장에 정신 차려 무사고가 목표가 되었다. 시속 60km/h를 넘기지 않았고 1시간 운행하면 10분 이상은 쉬었다. 중간에 점심시간도 있고 담배도 펴야 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조사 겸 찾아봤던 지도사이트에서 ‘자전거로 가도 8시간’이라는 사실은 자존심이 상하니 애써 무시해 보자.


보성을 잠깐 들렀다. 보성 하면 녹차밭이고 이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수학여행 때 다녀왔던 곳이다. 층층이 녹차밭이 광활하게 펼쳐진 것이 인상적이었다. 비가 살짝 오기 시작해서 녹차내음이 물씬 풍겨왔다.


부슬부슬 비가 오기 시작했다. 서둘러 순천으로 향했다. 점차 굵아진 빗방울이 폭우가 되어 온몸을 때렸다. 기특하게도 세 명 다 하프페이스 헬멧을 썼다. 패션의 개념이 더 치우친 보호 안경을 처음 사용해 보았다. 비가 눈에 들이닥치진 않았다. 하지만 거센 폭우가 지속되자 시야가 전혀 보이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시간을 맞춰 가야 된다는 사명감에 비바람을 뚫고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운행 중에 블루투스 오디오로 서로 대화를 하며 어떻게 할지 정하겠지만 우린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비 올 때를 대비했던 우비는 속옷까지 젖어 이미 무용지물이 되었다. 한 여름이지만 비를 맞으니 너무 추웠다. 이럴 때 진짜 우동 한 그릇을 먹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태까지 여행해 본 결과 이런 시골 국도에서 휴게소를 본 적이 없었다. 온 몸을 때리는 빗줄기가 이제는 아플 지경이다. 선두를 달리던 순자가 수신호로 갓길에 휴식을 취하자 했다. 출발한 지 20분도 안되어서 쉬는 것이라 이례이다. 울창한 나무 밑에 피신했지만 여전히 비를 맞고 있다. 20분 전에 폈던 담배를 한 대 더 태우며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회의했다.


-뜨끈한 우동 한 그릇 너무 먹고 싶다.

-어? 너도? 나도 그 생각했는데?

-엥? 나돈데?


텔레파시가 통한 우리는 상상 우동을 들이키며 자위했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데 이런 고생을 왜 이렇게 사서 하나 싶었다. 폭풍우로 몰아치던 빗줄기가 살짝 가늘어졌다. 이 틈에 꾸역꾸역 스쿠터에 올라 운전을 했다. 가기 싫었다. 하지만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밤과 추위가 걱정되었다. 그렇게 출발했다. 산을 둘러싼 코너를 크게 돌자마자 말도 안 되게 휴게소가 나타났다. 셋 다 함성을 질렀다. 블루투스 오디오 따윈 필요 없을 정도로 괴성을 질렀기에 들을 수 있었다. 신기루 같았다. 출발한 지 3분도 안되어 일어난 일이다.


우동 세 그릇을 주문했다. 앞으로도 그런 우동은 먹을 수 없을 것이다. 걸신 걸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국물까지 다 마시고 그릇까지 핥았다. 이제 다시 출발하려 휴게소 밖을 나왔다. 폭풍이 몰아치던 성난 하늘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화창한 날씨가 펼쳐졌다. 자판기 코코아나 율무차 같은 걸 마시면서 출발하기 위해 짐정리를 했다. 이제 우비 따위는 필요 없기 때문에 고이 접어 가방에 넣어놨다. 한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이제는 꽤 익숙한 일이다. 이 귀여운 스쿠터가 얼마인지, 어디서 왔는지, 얼마나 여행했는지 등등 대답할 준비가 되었다.


-너네 이렇게 비 올 때 비상 깜빡이라도 키고 다녀. 아까 운전하는데 너네 하나도 안보였어.


이 말을 듣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운빨 하나로 빗속을 뚫고 온 우리였다. 밤이 깊어질 때 즈음 순천으로 도착했다. 오토바이 여행을 하면서 첫 도시를 마주할 때 왠지 모를 첫인상이라는 것이 있다. 순천은 처음 와보는데, 꽤나 아파트가 많은 발전된 도시이다. 상가건물도 높지 않고 꽤나 도시가 친절하게 느껴졌다.


밤이라 그런지 또 길을 헤맸다. 다행히도 고모의 안내에 따라 겨우 도착했다. 고모는 매우 멋진 분이다. 우리에게 소고기를 사줬고 드넓은 아파트의 거실도 내어주셨다. 참 청춘이다 너네도 라는 응원도 해주었다. 컴퓨터도 집에 있어서 가뜩이나 모자란 SD카드의 사진들을 메일로 보낼 수 있었다. 오늘도 고단한 하루가 끝이 났다. 여행도 어느새 반 이상이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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