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질서를 경멸한다, 규칙을 증오한다, 화음을 혐오한다, 세계는 난장판이며 그 난장판을 질서 따위로 바로잡아보겠다는 모든 시도는 추악한 오만함이자, 오만한 추악함이며 반드시 실패한다, 실패한다, 실패한다! 술에 찌든 술주정뱅이들, 그 앞에서 지구, 달, 태양, 모든 행성, 모든 우주, 모든 원리를 설명해보겠다는 모든 시도들, 모두 공허하다, 허무하다, 비참하다! 모든 믿음은 아니, 모든 오만은 모든 절망, 혼돈 앞에서 광기로 돌변하며, 고래를 서커스로 데려오겠다는 야망, 아니, 야만적인 인간들은 고래를 박제한다, 아니, 박제당한다, 카메라에 박제당한다, 컷도 없이, 효과도 없이, 미화도 없이 그대로 롱테이크에 박제당한다. 베르그송이 시간의 공간화를 거부했던거처럼, 제논이 시간의 분할을 조롱했던거처럼, 롱테이크는 시간의 컷을 거부한다. 그러나, 베르그송이 창조같은 뜬구름이나 잡는 단어를 말한거에 반해, 이건 창조가 아닌 박제를 한다, 박제된 상태에서 시간만 맹목적으로 지속한다. 하모니를 따르는자, 하모니를 거부하는 자, 하모니를 못참는자, 하모니에 조용히 균열을 가한 자, 그 균열로 인해 불안에 떠는 자, 균열을 회복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자, 균열에 희생되는 자 모두 롱테이크에 박제당한다. 질서는 균열을 낳고, 균열은 예외상태를 낳고, 예외상태는 호모 사케르를 낳고… 병원, 병원의 환자들, 약자들, 보호의 대상들은 한순간에 벌거벗은 생명이 되며, 그것이 바로 법의 이면, 법의 민낯, 법의 위선, 법의 허상, 법의 무능이자, 법과 불법, 보호와 방임, 정부와 부정은 종이 한장 차이라는 증거다. 정부는 자기를 부정한다. 정의를 외쳤던, 존엄을 외쳤던, 기본권을 외쳤던 과거의 자기를 배반한다, 세상을 배반한다, 배반된 세상 앞에서 질서는 무력하다, 무력한 질서 앞에서 세상은 붕괴한다, 파괴한다, 산산조각난다, 온 세상이 폐허다, 세상은 폐허다, 폐허는 세상이다, 아니, 폐허라는 말조차 사치다, 폐허는 여전히 무엇인가 남아 있다는 전제를 필요로 하지만, 여기엔 고래만이, 시체같은 고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 고래는 신이다, 최후의 신이다, 신의 눈으로 인간의 자멸을, 그 자멸의 과정을 바라본다. 아니, 방관한다. 화음에도, 불협화음에도, 구원 따윈 없으니 인간은 순수할수록 광기가 되어버리고, 광기는 도리어 자신을 파멸시킨다. 나는 이 영화를 싫어한다, 동시에 사랑한다, 영화는 절망을 말한다, 그러나 절망은 내 것이 아니다, 고독도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인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유일한 내 것이다, 유일한 정직함이다, 정직함엔 절망과 고독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따라온다,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