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베나타 명언 2

by 김명준

“사람들의 삶이 지속할 가치가 없지 않은 한, 그들의 삶을 갑자기 중단시키는 것은 그들의 삶을 더 못하게 만든다. 존재하게 된 것의 다른 모든 해악에다가 때 이른 죽음이라는 해악을 또 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멸종은 이런 방식으로 발생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추가적인 사람들을 창조하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 미래의 사람들의 삶이 갑자기 중단되지 않도록 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 삶이 갑자기 중단될 어떠한 사람들도 아예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니 말이다.”


”비인간 종의 멸종에 관하여 우려하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멸종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그 삶이 중단되는 개별 동물들에 관하여 우려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멸종을 우려할 가장 강한 이유 가운데 하나임에도 불구한데도 말이다. 동물 멸종에 관한 대중적인 우려는 보통 인간들에 대한 우려이다.“


“인류가 끝이 나게 될 때가 언제이건 마지막 사람들은 심각한 비용을 치를 것이다. 인구가 감소하고 사회 기반 시설이 붕괴되어 고통을 겪을 것이다. 모든 사정이 동일하다면, 이런 일이 더 나중에 벌어진다고 해서 아무것도 얻어지지 않는다. 동일한 괴로움이 발생한다. 그러나 만일 멸종이 더 일찍 일어난다면 치르지 않아도 되는 비용이 있다. 련재 세대와 미래 세대 사이에 존재하게 되는 중간의 세 새대들이 치료는 비용 말이다. 더 이른 멸종을 찬성하는 논거는 따라서 강하다.”


“아무런 사람들도 없는 세계는 멸종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존재했을 사람들에게 나쁠 수 없다. 실제로 내가 논했듯이 그들이 존재하게 되었을 대안적 시나리오는 그들에게 나빴을 것이다. 그러한 존재가 없는 세계는 이런 면에서 더 나은 세계다. 그러한 세계에는 아무런 해악도 없다.“


“다리가 여섯인 동물을 가진 세계는 내재적으로 더 나은가? 만일 그렇다면 왜 그런가? 다리가 여섯 개인 동물 또한 있다면 그 세계는 한층 더 나을 것인가? 비록 인간들이 도덕적 행위자성과 합리적 숙고를 가치 있게 여길 수는 있겠으나, 우리 세계의 이러한 특성이 영원의 관점에서 가치를 가진다는 것은 전혀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만일 더 이상 아무런 인간들이 없다면, 그 사태를 유감스러워할 아무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왜 덜 다양한 세계가 그 다양성으로 아무도 박탈을 겪지 않는다면, 더 못한지도 분명하지 않다.“


“내가 옹호한 견해는 그 유관성을 보자면 자기 관여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 관여적인 것이다. 그 견해는 자기 자신의 존재를 유감스러워할 기반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지 않을 기반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아직 쏟지 않았으며 쏟아질 필요가 없는 우유와 유관성을 갖는다.“


“자신의 축복을 감사히 여기라는 명령은 자신을 속여서 존재하게 된 것이 실제로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수반하는 경우에는 훨씬 덜 납득이 가는 것이 된다. 그것은 수장되기를 기다리면서 마치 타이타닉 1등석에 있다는 점에 감사하는 것과 같다. 최하급 선실에 있는 것보다는 1등 객실에 있는 것이 낫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를 매우 운 좋다고 여길 정도로 그렇게 더 낫지는 않다.”


“인생을 최대한 활용하고 즐기는 일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존재의 해악을 포함하여) 괴로움을 확산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을 지키면서 그것을 덜 나쁜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존재하는 이는 존재를 계속하는 데 이익을 가질 수 있으며, 그래서 삶을 지속할 가치가 없도록 만드는 해악은 이 이익을 무효화할 정도로 충분히 가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들은 존재하게 되는 것에 아무런 이익도 갖지 않고 있다.“


“존재하게 되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그것이 필연적으로 존재를 중단하는 해악에 이르기 때문에 나쁘다. 그것이 ”태어났다는 사실은 불멸성에는 매우 나쁜 전조다.“라는 조지 산타야나의 주장 뒤에 놓여 있는 발상일 것이다. 이 견해에서는 우리가 죽을 운명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거대한 해악이다.”


“우리는 이미 존재하게 되었다. 우리의 존재를 끝내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배려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야기한다. 잠재적인 출산자들은 후손들을 낳을 때 그들이 놓는 이 덫을 고려하는 것이 온당하다. 그들이 존재하게 된 것에 기뻐하지 않는다면 간단히 자살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은 참이 아니다. 일단 누군가가 존재하게 되고 그 사람과의 애착이 형성되면 자살은 원래부터 자식이 없는 고통은 상대적으로 약한 것으로 만들 정도의 고통을 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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