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공유하기 불가능한 무언가로서, 부인될 수 없는 것이자 동시에 확증될 수도 없는 무언가로서 사람들 가운데 나타난다.
육체적 고통은 언어에 저항할 뿐만 아니라, 언어를 적극적으로 분쇄하여 인간이 언어를 배우기 전에 내는 소리와 울부짖음으로 즉각 되돌린다.
육체적 고통은 무언가에 ‘대한’ 것이거나 무언가를 ‘향한’ 것이 아니다. 대상을 갖지 않는다는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육체적 고통은 다른 어떤 현상보다도 더 언어로 대상화 되는 데 저항한다.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확신하는 것이며 고통에 관해 듣는 것은 의심하는 것이다.
고통의 강렬한 생생함이나 논박할 수 없는 실재성, 또는 고통이 지니는 확실성 등 몸으로 느낀 고통의 특성들이 몸에서 분리•전유되어 다른 무엇, 즉 그 자체로는 이러한 속성들을 결여한 무엇, 그 자체로는 생생하지 않거나 실재가 아니거나 확실하지 않은 무엇의 속성으로서 제시될 수 있다.
고통받는 느낌은 어떤 작용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수반해서, 사람들은 이 느낌을 세계가 자신에게 작용하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거나(칼이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자기 몸이 자신에게 작용하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한다(뼈가 ~를 뚫고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무기의 이미지를 가리키는 ‘작인 언어’라는 말은 상처의 이미지로도 의미가 연장된다.
고통(pain)이라는 말 자체의 어원이 처벌(punishment) 이라는 뜻의 포에나(poena)라는 사실은, 고통이라는 내밀한 사건에 이름을 붙이는 너무도 기본적인 행위를 하는 데도 정신적으로 공중제비를 넘는 일이 필요함을, 다시 말해 몸에 고통을 발생시킨 요인으로 제시할 수 있는 외부 사회 환경으로 전환하는 일이 필요함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