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성은 없다

by 김명준

데이비드 흄에 따르면 우리가 인과라고 믿는것들은 심리적 습관에 불과하지 논리적 필연성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당구공 A가 굴러간 뒤 당구공 B가 굴러가는 장면을 본다고 가정했을때 우리는 당구공 B가 굴러가게 된 원인이 당구공 A가 쳤기 때문이라고 추론한다. 그러나 거기엔 아무런 논리적 필연성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여기서 본건 당구공 A가 굴러갔다는 사건 다음에 당구공 B가 굴러갔다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것일뿐 당구공 A가 B를 움직이게 만든 힘의 작용을 직접적으로 본 적은 없다. 내일도 태양이 뜰것이라고 믿는 이유는 어제도 태양이 떴고 오늘도 태양이 떴고 태양이 뜬걸 너무 많이 봤으니 그냥 내일도 뜰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기대하는 것일 뿐이지 논리적 필연성이 아니다. 최근에 있었던 타이레놀-자폐 논쟁도 마찬가지다. 타이레놀을 복용한 산모가 자폐아를 낳을 확률이 높았다는 데이터가 곧바로 자폐의 원인이 타이레놀이라는 명제를 도출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그 산모가 타이레놀을 왜 먹었는지 생각해보면 발열, 감염, 두통 등 때문일 수도 있는데 그럼 자폐의 원인은 타이레놀이 아니라 발열이라는 교란 변수 때문일 수도 있다. 다시 흄의 얘기로 돌아가서 우리가 여기서 본건 산모가 타이레놀을 먹었다는 사건과 산모가 자폐아를 낳았다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것일뿐 타이레놀과 자폐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본 적은 없다. 영화 <엘리펀트(2003)> 역시 연관과 인과는 다르다는걸 잘 보여준다. 동성애, 슈팅게임, 나치 선전영상, 학교 내 왕따 등등 수많은 요소들이 등장하지만 비극의 원인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건 없다. 미국국립정신보건원의 소장이었던 토마스 인셀은 DSM-5가 신뢰도는 높으나 타당성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합의를 통해 진단명을 내리는건 신뢰도의 영역이다. 그러나 그 진단명이 병의 실체와 원인을 정확히 규명할 수 있는가는 타당도의 영역이다. DSM-5는 그 방대한 과학적 데이터에도 불구하고 후자에 여전히 한계가 있다. 흄은 종교든 과학이든 맹신이나 하지 말라고 못 박는다. 예수가 정말로 부활을 했는지 안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예수가 부활했다는걸 믿는게 정말 합리적인가에 대해선 한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인간은 죽으면 부활할 수 없다는 자연법칙이 깨질 확률보다 그 말을 전한 사람이 구라를 쳤거나 착각했을 확률이 더 낮아야 된다. 그러나 현실은? 자연법칙이 깨진걸 아직 나는 살면서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사람이 헛것을 본 경우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럼 과연 믿는게 합리적인 것일까? 안 믿는게 합리적인 것일까? 우주론적 논증에 근거한 창조설 역시 논리가 매우 빈약하다. 우주의 기원이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위에서 말했듯, 인과라는것 자체가 인간이 지상적 관점이라는 한계 내에서 만들어낸 심리적 습관에 불과하며 우주 전체에도 인과가 그대로 적용될거라는 기대는 구성의 오류다. 그리고 신이 원인없이 존재할 수 있다면 우주 역시 원인없이 그냥 존재할 수 있다. 쓸데없는 가설은 면도날로 잘라내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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