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베나타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읽기

by 김명준

1. 서론

“삶은 너무나 끔찍해서 아예 태어나지 않았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누가 그렇게 운이 좋은가? 십만 명 중에서 한 명도 찾을 수 없다!”

-유대인 속담-


베나타는 먼저 자신의 기본적이고도 꽤 단순한 통찰을 이야기하며 서론을 펼친다.

그 통찰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은 존재했을때 느꼈을 좋은 것들이 없다고 해서 박탈감을 느끼지 않지만

그러나 존재하는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았으면 입지 않았을 상당히 심각한 해악을 입는다는 것이다.


출산은 보통 섹스하다 보니 나온 결과이지 사람을 존재케 하려는 결정의 결과가 아니며 설령 그런 결정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어도(예: 아이를 낳으면 행복해질거다) 그건 ‘본인’을 위한 이유들이지 ‘태어날 아이’를 위한 이유가 아니라고 베나타는 처음부터 못박는다.


베나타는 자신의 논증이 모든 유정적 존재, 즉 비인간 동물에게도 적용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초점은 인간에게만 맞춰질 것이다. 그 이유엔 설득력을 높이기 위함과 실천적 중요성을 가지기 위함이 있다.


베나타는 존재한 적이 없는 사람이 문자 그대로 더 나아진다고는 주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프로이트도 지적했듯이, 비존재라는 개념 자체가 지시할 대상이 없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대신 존재하게 되는 것이 존재하게 된 사람들을 위해 항상 나쁘다고 논한다. 즉, 이 책의 제목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는 태어나지 않는 사람이 이득을 본 다는 의미 보다는 태어나게 되는 것이 항상 해악이라는 점을 가리키는 간접적인(혹은 편리한) 의미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어느 누구도(Nobody) 태어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운이 좋지는 않지만, 모든 사람 각자는(everybody) 태어났을 정도로 충분히 불운하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p.25-


한 개인이 존재하게 될 확률은 극도로 희박하다.


“누구의 존재라도 그 사람의 부모가 존재하게 되었으며 서로 만났다는 것에 의존할 뿐 아니라 그 부모가 그 사람을 임신한 바로 그 시점에 임신했다는 것에도 의존한다. 실제로 잠깐의 시간 차이조차도 어느 특정한 정자가 임신의 요소가 되었는지에 차이를 가져온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p.26-


그러므로, 베나타와 그가 지지하는 반출생주의 견해에 따르면 존재하게 된 것은 정말 정말 운이 나쁜 일이다. 그렇게 해를 입을 가능성이 아주 희박할 때 그 해를 입는다는 것은 더욱 나쁜 일이다.


베나타는 자신의 반출생주의를 아이에 대한 반감에 의해 출산하지 않는 집단이나 딩크하고는 확실히 다르다고 구분한다.


그의 반출생주의는 아이에 대한 반감이나 아이를 갖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자원과 자유를 누리겠다는 견해가 아니라 오히려 아이가 겪게 될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배려에서 나온다.


베나타는 아이를 낳아야 어른스럽다는 주장을 강력히 비판하는데, 아이를 갖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이 앎에 따라 자제력을 발휘하는 것은 성숙의 징표이지, 미성숙의 징표가 아니다. 또한, 계통발생적인 관점에서 출산하려는 충동은 극도로 원시적이다. 만일 ‘퇴행적인’ 것이 ‘원시적인’으로 이해된다면 출산하는 것이야말로 퇴행적이다. 그리고 합리적인 동기를 가지고서 출산하지 않는 것은 진화적으로 더 최근 일이고 더 진보된 일이다.


정부는 저출산에 대해서 우려하는데 여기서 우려라는 건 노동력 감소와 납세자 감소 때문이지 태어날 아이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전체주의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들도 출산을 옹호하고 이민보다 번식을 더 선호하는 방식은 특이하다. 베나타는 이에 대해서 왜 사람을 창조할 누군가의 자유는 친구나 가족이 이민하도록 하게 할 다른 사람의 자유보다 더 불가침인 것이냐고 묻는다.


반면 출산을 제한하는 정책을 채택한 경우도 몇몇 있다는걸 베나타는 부정하지 않는다. 80년대 한국이나 중국 정부의 부부당 한 자녀 정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몇 가지 논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그러한 정책은 예외적이다. 둘째, 그 정책은 (그저 적당한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과잉인구에 대한 반응이다. 셋째, 그 정책이 애초에 요구되었던 이유가 정확히 대단히 강력한 친출생 편향을 교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2. 왜 존재하게 되는 것은 항상 해악인가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태어날 수밖에 없다면, 그 다음으로 좋은 것은 우리가 나왔던 곳으로 재빨리 돌아가는 것이다.”

-소포클레스 <Oedipus at Colonus>-


“잠은 좋지. 죽으면 더 좋고.

물론 가장 좋은거야 태어나지 않는 것이고.”

-하인리히 하이네 <모르핀>-


베나타는 ‘살 가치가 있는 삶’이라는 표현에 중대한 애매함(ambiguity)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시작할 가치가 있는 삶’과 ‘지속할 가치가 있는 삶’을 구분한다.


베나타는 지속할 가치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시작할 가치가 있다거나, 시작할 가치가 없다면 지속할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추론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삶을 시작하지 않는 결정보다 삶을 끝내는 결정은 더 강력한 정당화를 필요로 한다.(예를 들어 영화관에서의 저녁을 생각해 보라. 영화가 너무 나빠서 그걸 보러 가지 않았던 것이 더 나았을 것이면서도, 영화가 끝나기 전에 자리를 뜨는 것이 나을 정도까지는 나쁘지 않을 수 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p.49-


57페이지부터 베나타의 핵심 개념인 쾌락과 고통의 비대칭성이 나온다.


- 고통의 부재는 좋다. (설사 그 좋음이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향유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 쾌락의 부재는 나쁘지 않다. (그 부재가 박탈이 되는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고통의 부재가 좋다는 판단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의 (잠재적인) 이익을 준거로 하여 내려진 것이다.


고통의 부재가 좋다는건 존재하는 사람의 고통에 관해 이 고통의 부재는 설사 지금 그 고통을 겪는 사람이 부재함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좋았을 것이라는 의미기도 하다. 즉, 지금 존재하는 사람의 이익에 따라서 판단되었을 때, 그 고통의 부재는 설사 이 사람이 그 경우에는 존재한 적이 없을지라도 좋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역류성 식도염을 앓고 있는데 만약 역류성 식도염을 앓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역류성 식도염을 앓고 있는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것은 분명히 좋다. 굳이 건강한 내가 ’나는 역류성 식도염을 앓고 있지 않다‘는걸 24시간 내내 느끼지 않아도 말이다.)


”우리가 괴로움을 겪을 사람들을 존재하게 만들지 않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고통의 존재는 (그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나쁠 것이며, 그 고통의 부재는 (설사 그 고통의 부재를 향유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하더라도) 좋다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을 존재하게 할 아무런 의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들의 쾌락은 그들을 위해 좋기는 하겠지만, 그 쾌락의 부재는 (쾌락이 박탈당하게 될 누군가가 아예 없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들에게 나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p.60-


베나타는 이를 유비를 통해 설명한다.


”S(아픈 이)는 정기적으로 질병을 겪는 몸을 갖고 있다. 그에게는 다행인 일로, 그의 몸은 또한 매우 빨리 회복하기도 한다. H(건강한 이)는 빨리 회복하는 능력은 없지만, 결코 병에 걸리지 않는다. S가 병에 걸리는 것은 그에게 나쁘고, 그가 빨리 회복하는 것은 그에게 좋다. H가 결코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은 그에게 좋지만, 그가 빠르게 치유되는 능력이 없는 것은 나쁘지 않다. 빠른 회복 능력은 비록 S에게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H에 대한 진정한 우위점은 아니다. 이것은 그 능력의 결여가 H에게는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그 능력의 결여가 H에게는 박탈이 아니기 때문이다. H는 그가 S가 가진 회복을 돕는 능력을 갖췄을 경우에 그랬을 경우보다 더 못하지 않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p.73-


베나타는 또 다른 반출생주의자 시나 시프린 교수의 주장도 소개한다.


“우리는 죽음과 같이 그 사람에게 벌어질 더 큰 해악을 막기 위하여 (동의가 없는) 무의식 상태의 사람의 팔을 부러뜨리는 것을 용인한다.(이것이 ‘구조 사안’ 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더 큰 이득, 이를테면 ‘비상한 기억력, 백과사전적 지식의 유용한 암기, 아이큐 20점만큼의 추가 지적 능력 또는 부작용 없이 많은 양의 알코올이나 지방을 소비할 수 있는 능력’ 같은 것을 확보해 주기 위하여 그 사람의 팔을 부러뜨리는 것을 비난할 것이다.(이것을 ‘순 이득 사안’ 이라고 하자) (…) 우리가 그 사람을 창조하지 않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해를 입는것이 아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p.84-


3. 존재하게 되는 것은 얼마나 나쁜가?


“삶은 비존재의 축복받은 고요를 방해하는, 이로울 것이 없는 사건으로 여길 수 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on the sufferings of the world>-


“태어났다는 사실은 불멸에는 매우 나쁜 전조다.”

-조지 산타야나 <reason in religion>-


베나타는 이 장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폴리아나 원칙(낙관 편향)이라 불리는 심리적 현상 때문에 자신의 삶의 총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데에 방해를 받는다고 지적한다.


일상에 지속적으로 만연해있는 불편함들은 그것에 적응되는 순간 과소평가되며 드물게 나타나는 즐거움은 이벤트화되어 과대표집된다.


만약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망각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했다면 인류는 다 자살하거나 진작에 멸종했을것이다.


이는 노르웨이의 심리학자 시리 레크네스의 실험과도 비슷하다. 실험에 따르면 예상보다 고통이 덜 할때 사람들은 그것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하며 심지어는 쾌락으로 받아들이기까지 한다.


“개인의 복지가 더 못하게 변하면, 처음에는 상당한 주관적인 불만족이 생긴다. 그러나 이후에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여 자신의 기대를 그에 따라 조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적응이 얼마나 크게 일어나는가, 그리고 적응의 정도가 삶의 상이한 영역에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에 관하여 얼마간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적응이 일어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합의가 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p.106-


이는 hedonic treadmill 이라고도 불리는 현상이다.


“자기 삶이 얼마나 잘되어 가는지에 돤한 개인의 판단을 결정하는 것은 자기 삶이 그 자체로 얼마나 잘되어 가는지보다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얼마나 잘되어 가는지이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p.107-


이는 레온 페스팅거의 사회비교이론으로도 잘 알려진 현상이다.


그리고 이를 아까 말했던 낙관편향과 연결하면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하고 자신을 비교하기가 더 쉬우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보다 혹은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 점은 Brown, Jonathon D., and Dutton, Keith A., ‘Truth and Conse-quences: the Costs and Benefits of Accurate Self-Knowledge’,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21/12 (1995) p.1292 에서도 논의되었다.


그리고 베나타는 삶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편향적이고 왜곡되어 있으며 왜 인간이라는 종 자체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우리 중 누구도 240세까지 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나이까지 살지 못한다고 해서 삶이 덜 잘되어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40세에 죽으면 비극적인 일이라 여긴다. 그러나 40세의 죽음이 비극이라면 왜 90세의 죽음이 비극적이지 않아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가 닿을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것은 중대한 좋음이 될 무엇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왜 좋은 삶은 우리가 닿을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음이 틀림없다고 보아야 하는가? 아마도 좋은 삶은 얻기가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p.125-


“우리는 12세가 12세에 적합한 규준으로 A를 받는다는 이유로 그 아이가 저명한 대학 물리학 교수 자리를 제의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위험에 절대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의 삶이 인간의 규준에서 잘되어 간다는 이유로 그 삶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 으로 잘되어 간다고 자주 생각한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p.129-


핵심 네줄 요약:

인간들은 낙관편향에 빠져서 지 쾌락을 과대평가 하는데

쾌락이 크던 적던 태어나지 않았을때에 비해서 아무런 순 이득도 되지 않는다.

태어나지 않았으면 쾌락이 없다고 해서 박탈감을 느낄 주체도 없기 때문이다.

화성에 행복한 생명체가 없다고 해서 슬퍼하는 사람은 없는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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