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합리적일 수 있다

by 김명준

데이비드 베나타 <인간의 곤경> 죽음 파트 핵심 논지


1. 객관적으로 살 가치가 있냐 없냐보다 그 사람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삶의 부담 정도가 더 중요하다. 인간들은 폴리아나 원칙(낙관 편향)에 빠진 사람에게는 아무 말 안한다. 객관적으로 봤을때 그 사람이 죽는게 더 나을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자살하고 싶다는 사람에게 인지왜곡이니 뭐니 하는건 내로남불이다.


”나는 수백 번 자살하기를 바랐다오. 그렇지만 삶에 대한 애착이 집요하게 계속되었다오. 이 바보 같은 약점이 아마도 우리의 결함 중 가장 치명적인 것 중 하나일 것이오. 왜냐하면 우리가 내려놓기를 늘 갈망하는 짐을 계속 지고 가는 것보다 더 멍청한 짓이 또 어디 있을 수 있단 말이겠소? 존재하기를 역겨워하면서도 거기에 매달리는 것보다? 간단히 말해 우리의 심장을 먹어치울 때까지 우리를 집어삼키는 뱀을 소중히 여기는 것보다.“

(볼테르 <캉디드> 중에서)


2. 자살이 불가역적이기 때문에 나쁘다는 말은 이해할 수 없다. 불가역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는 근거도 없고(중대한 수술을 받는 것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 나쁜가? 출산도 불가역적인 일인데 자살에 반대하는 자들은 출산도 반대하는가?) 불가역적이라고 해서 이것도 막고 저것도 영원히 막으면 그거야말로 또다른 불가역적인것이 된다.


3. 자살하려는 사람이 이기적이면 고통받는 사람에게 억지로 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똑같이 이기적이다.


4. 나중에 나아질 수도 있다는 말은 공허하다. 나중에 나아진다고 쳐도 그 나아질 동안 계속 겪게 될 부담과 고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것이다.


5. 사는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자살이 나쁘다는 말은 자연주의적 오류다.


“ “뭐 다 살려고 하는 일이죠.” 자신이 저지른 추악한 일들을 두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자주 쓰는 말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묻자. 살아야만 한다고? 일단 태어난 이상 살아야만 한다고? 뛰어내리기 직전의 순간 자살하려는 사람은 자연의 법칙을 깨뜨린다. 아예 이 자연법칙을 돌돌 뭉쳐 보이지 않는 권력자의 발 앞에 던져버린다. 마치 연극 무대 위의 관료가 상관에게 계약서를 집어던지듯. 이제 자연의 규정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한 뭉치의 휴지 조각일 따름이다. 자유죽음을 찾는 이는 누가 묻기도 전에 먼저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아니야! 혹은 둔중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한다. 살아야만 한다면 그렇게 해, 나는 아니야! 나는 원치 않아. 밖에서는 사회의 법으로, 안에서는 ‘자연법(lex naturae)’으로 느끼도록 충동하는 강제 앞에 굴복하지 않을 거야. 사회의 법이든, 자연법이든 나는 더는 인정하지 않겠어.“

(장 아메리 <자유죽음> 중에서)


6. 삶의 부담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이들은 오히려 그만큼 자신의 삶에 대해서 끊임없이 숙고하고 성찰하며 부담이 정신을 흐리게 하기 보다는 정신을 집중시키는 경우가 많다.


“성찰성이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삶’에 대한 지적 작용으로 여겨 져왔다. 기든스Giddens에 따르면 성찰성이란 자신의 과거의 삶을 돌아 보고 미래의 삶을 그림으로써 남아 있는 삶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찰성은 끊임없는 자기관찰에 근거하여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자신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하여 숙고하는 과정이다. 이 같은 숙고의 과정은‘먹을 것인지 말 것인지’ , 그리고‘무엇을 먹을 것인지’등과 같은 일상생활에서의‘선택’을 가능하게 한다(기든스, 1997).

이 같은 성찰성은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자신이 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 그리고‘왜, 어떻게 죽을지’ ,‘ 죽음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등과 같이 자살을 선택하기까지 자살자들 은 자신의 과거의 삶과 죽음의 결과에 대해 숙고하고 있는 것이다(벡, 1998).“

(박형민 <자살, 차악의 선택 자살의 성찰성과 소통 지향성> 중에서)


7. 죽음은 나쁘다.(토머스 네이글의 박탈 이론과 소멸 이론에 따르면) 하지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억지로 참고 살려는 것보단 덜 나쁘다.


8. 모든 인간의 삶이 우주적 관점에서 무의미하다고 논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자살을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엔 아무런 논리적 필연성도 찾아볼 수 없다. 삶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이 자살을 해야한다는 당위를 곧바로 도출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자살한다고 해서 우주적 의미가 생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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