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TA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를 읽고
찬 바람이 옷깃 사이를 힘 있게 파고들던 1월의 마지막 날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던 나는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게시물을 하나 보고 독서 모임에 가보자는 결심을 하게 된다. 늘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자리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이다 말았었다. 그러던 차에 독서 모임 신청자 모집글이 눈에 띄었고 드디어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군 하고 주저 없이 신청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일주일 가량 흘렀다. 그 사이 작은 단톡방이 하나 파졌고 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열심히 읽었다. 독서 모임에서 다룰 책은 독일 작가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였는데, 우선 이 책은 정말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책의 분량이 적은 것은 마음에 들었으나 (ㅋㅋㅋ) 읽으면 읽을수록 내용이 상당히 섬뜩하고 이상했다. 책은 끝나가고 유명한 고전이니 이쯤 읽었으면 작은 깨달음 하나쯤 느껴질 법한데 뚝. 주인공의 자살로 이야기가 끝이 났다.
아 뭐 그래도 소설 초반에 쓰인 편지 형식과 작가가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하는 뮤지컬스러운 전개는 아주 좋았다. 하지만 나는 원래 판타지 장르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비현실적인 순간들이 개입할 때마다 몰입이 자주 깨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이 책에는 그런 요소가 유독 많았다. 그래도 나의 감상을 다져야 하기에 한 번 더 읽었는데 역시나 주인공의 결핍에 이입해 안쓰러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고 이 판타지 안에서 나는 또 인간적인 것을 쫓고 있었다. 독서 모임에서도 난 주로 그런 얘기들을 꺼냈다. 우리 세상은 왜 약자를 보호하지 않고 일반화 시키는지 뭐 이런 것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 생각과는 정반대로 얘가 뭐가 그리 불쌍하냐는 식의 얘기부터 내가 그다지 집중하지 않았던 인물만 집어서 이야기를 하던 사람, 굳이 시간을 쏟지 않으며 가볍게 읽은 부분을 깊게 파고들어 읽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모임이 진행되는 동안 속으로 이 사람은 이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하는 섣부른 판단도 해보고 나의 집중력에 한계가 찾아왔을 땐 각자의 개성 짙은 말투에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난 이 한 시간 반 남짓한 시간동안 내 눈과 귀에 모든 것을 담아 가고 싶어서 바쁘게 감각을 소모시켰다.
결론적으로 이게 사람 사는 거지! 하고 느낀 시간이었다. 여기저기서 말소리가 빠르게 모였다가 흩어지던 순간들과 적막한 공기를 타고 흘러가던 그 얘기들은 그리 잔잔하지 않았다. 방금 처음 만난 누군가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경청해 주고 깊이 동감하던 그 시간들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또 모임이 끝나고 건물을 나서던 내 기분은 성황리에 첫 소설의 판권을 팔아넘기고 나온 작가처럼 벅찼다. 살면서 이런 기분을 느낄 순간이 얼마나 자주 찾아올까?
책상 앞에 앉아 얇은 종잇 자락 앞뒤를 꼼꼼히 살피며 내 생각을 정리한다. 사람들 앞에서 말로 내뱉는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전날 밤을 보냈을 앞 사람을 약간 상상해 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 모든 순간이 전부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실존하지 않는 소설 속 인물과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책 한 권씩을 안고 이곳저곳에서 발걸음을 한다는 것...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매력적이다.
2월의 마지막 날에도 다른 책으로 독서 모임이 열린다고 했다. 아직 시간이 꽤 남았지만 벌써 마음이 들뜬다. 인생에 권태를 느끼고 사고의 확장을 경험하고 싶다면 독서 모임에 나가보길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