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을 놓자마자 집 밖에 나왔다. 순간 쎄했다. 빨리 걸으려고 엉덩이에 힘을 주는 찰나였다. 배 안의 움직임이 보통이 아니었다. 설마? 다시 들어가 속을 비울지 말지 결정해야 했다. 요가 인생에서도 순발력은 필수였다. 이때의 잘못된 결정으로 요가 수련이 끝날 때까지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렸다.
대장(大腸)이 나에게 주는 신호, 대변을 해결하라는 명령은 지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일념 아래 묻히고 말았다. 오전 아홉 시에 시작하는 요가 수업은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적응이 안 됐다. 보통 열 시에 시작하는 요가 교실을 주로 다녀서, 한 시간 먼저 출발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십오 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데, 아슬아슬하게 현관문을 박차고 나온 나였다.
요가 교실이 있는 건물은 그 시간대에 인파들이 몰렸다. 엘리베이터 복불복이란 게 있었다. 층마다 멈출 때가 있었고 안 그럴 때가 있었다. 특히 요양원에 출입하려는 어르신들의 느린 움직임 때문에 시간 지체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때문에라도 나는 경보 선수처럼 걸어야만 했다. 오 분쯤 지났을까. 대장의 명령을 항문이 적극적으로 반발하고 있었다. 괄약근에 점점 힘을 줘야만 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 요가 건물에서가 당연한 결정이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대장의 파워는 강력해져만 갔다.
이때부터 지각 걱정은 사라졌다. 건물의 화장실까지 어떻게 잘 가느냐가 관건이었다. 요가 GX(Group EXercise) 수업을 개설해 준 우리 헬스장은 건물의 11층과 12층 두 개 층에 넓게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왜, 화장실은 11층에만 있는 것인가. 아니, 당최 왜 GX 공간이 있는 12층에 화장실을 설치하지 않았는가. 건물에 더욱 가까워지자, 머릿속은 하얘졌다.
어떻게든 이분을 깨끗(!)하게 밖으로 내보내야만 했다. 요가하려면. 언제부터 시계를 안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지각이 확실했다. 그럼에도 천천히 천천히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이 있는 11층에서부터는 모든 것이 슬로비디오가 됐다. 문제의 엘리베이터 구간도 잘 통과했겠다, 고지가 눈앞이었다. 롱파카의 지퍼는 이미 열려 있다. 레깅스와 속옷을 어떻게 내릴 것인가가 지상 최대 고민일 뿐이다. 출입 바코드를 찍었다. 드디어 여자 화장실이 나왔다. 제발 칸이 비어 있길. 개인 칸 문을 열 때는 덮개가 열려 있느냐도 중요했다. 최대한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다소곳이 하지만 재빨리 변기 위에 앉았다. 마침내 하늘에서 은총이 쏟아졌다. 천국이 여기였다. 그제야 시계를 봤다.
십 분쯤 늦은 줄 알았는데 벌써 아홉 시 십오 분. 락커에 겉옷을 쑤셔 넣고 교실에 들어갔다. 강사와 수강생들 볼 면목이 없었다. 없어도 너무 없었다. 이 시기 나는 뉴비였던지라 넉살 좋게 대장의 사정을 그들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쏟아지는 무언의 눈치를 온몸으로 받기로 했다. 요가할 수 있다는 기쁨에 비하면 그건 약과.
이제 요가 동작만 잘 따라 하면 됐다. 다 종료된 거 아닌가? 오산이었다. 방금 한바탕 한 대장은 본격적으로 대장(大將) 짓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배출하실 고객님은 방귀였다. 솔직히 요가 하면서 가스 한 번 안 참은 사람 있을까. 엎드려서 하는 동작은 물론이거니와 활자세처럼 복부를 납작하게 하는 포즈가 자주 나온다. 출석했을 당시의 내 상태는 급변(다급한 대변)사태는 아니고 방9 수준이 확실했다. 다시 화장실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반, 혹시나 하는 마음 반이었다. 지각한 신참 주제에 이번에는 화생방 공격? 말도 안 됐다. 아까만큼 참아야 했다. 소리도 안 되고 냄새는 절대 안 됐다. 수업이 끝나려면 삼십 분이나 남았는데……
내 인생의 그 삼십 분. 요가 수업 오십 분 중의 삼십 분이면 핵심 중의 핵심이다. 이 하이라이트의 시간을 나는 방귀와의 전투, 대장과의 전쟁에 몰두했다. 십삼 년 전 첫 수업 이후 이렇게 강사의 동작에 집중하지 못한 날은 없었으리. 강사가 대장이 아니라, 내 대장이 대장이었다. 자세 하나마다 강사가 조이라고 했다. 근육을 잠가서 에너지가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이른바 ‘반다’를 주문하는 것이다. 강사가 아니라 대장 속 압력 때문에 나는 죽을힘을 다해 괄약근을 짜냈다. 진심으로 묶어야만 했다. 어떤 동작이든 더 버틸 수 있었고, 더 벌릴 수 있었지만 교실을 초토화시킬 수 없었다.
내 신체 능력의 6~70퍼센트만 겨우겨우 허용했다. 무사히 수업을 마쳤다. 돌아가는 길에 비실비실 웃음이 빠져나왔다. 이렇게까지 요가를 한 게 어딘가. 요가 수련이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했던가. 나는 요가 동료들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나를 눌렀다. 이 얼마나 숭고한 자기 절제인가! 왜 이렇게 소화가 잘 된거냥. 아침에 먹었던 카레가 지뢰였을까, 아니면 커피? 아, 몰라 밥 먹은 직후라면 요가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