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_다시 피어난 봄

한 밤의 비행기 표

by jjoo

“나는 그날, 딸도 엄마도 아닌 나를 찾기로 했다.”


수술 날짜가 잡혔을 때, 이상하게도 마음이 덤덤했다.
정작 혼란스러웠던 건 가족들의 반응이었다.
남편은 “수술만 하면 괜찮데... 나도 담낭 하나 떼어냈잖아... 멀쩡한데 뭘.... ”라며

그러지 말라 했는데도 혼자 감당하기 버거운 듯

아이들에게 수술일정을 알리고 말았다.

위로한 거겠지? 애들 괜히 걱정하게....

하지만 기우였다.

군대 간 아들과 서울에 자취 중인 딸은

“그러게 잘 좀 먹으랬잖아요” "괜찮을 거예요""다들 많이 한데요""유전이죠?"

아니 다행이었다. 그래 그 이상 뭘 할 수 았을까?

5년 전 녹내장진단도, 한 달에 한번 돌아가면 일주일을 꼼짝 못 하는 고질병 디스크에도,

6개월 전 대상포진도

처방전 써주는 담당의 설레발은 항상 나 혼자 봐야 했고,

또 혼자 새파랗게 질려서

두 손 가득 약봉투를 들고 와도 다들 이상하리 만큼 고요했다

그런가 보다 했다.


그래 유전... 결혼 전 호주 유학 중이었다. 여름 크리스마스를 더없이 우울하게 보내며

향수병에 절어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을 무렵

"엉마 자궁적출 수술 했어. 수술 잘 돼서 퇴원하고 잘 있어. 걱정 마"

전화 끊고 뜨거운 눈물 훔치며, 주저 없이 가방 싸고 들어온 게 25년 전이었다.

그렇게 다시 출국하지 못하고 결혼해서 이제 내 나이 50

누구 닮아 허리도 눈도 자궁까지...

수술하고 말할까?.. 괜히 혼자 있는 늙은이.. 그것까지 나 닮아서,... 라며

미안해 하지나 않을까?

고민하다 어렵게 꺼낸 말

"엄마, 나 자궁선근증으로 많이 힘들어.. 적출해야 한데..."

'그래 나도 떼내고 나니까 아~무렇지 않더라, 빨리 해라. 더 늦추지 말고 빨리~~"

"일주일 뒤 내 생일은 어떻게 할 거야? 네 동생은 하루 전에 온단다."

"뭘 먹어야 하나?" "외식하까?"

무심했던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척추후만증으로 두 번의 수술을 했을 떼도,

수술소식 듣고 한달음에 귀국길에 올랐을 때처럼,

혼자된 엄마를 내 자식처럼 밤낮 간병에, 수험생 딸도 뒤로 한채

당시 겹쳐온 악재로 이혼위기까지 있었던 건 엄만 모른다.

두 집을 오가며 애달았던 때가 떠오른다.

내가 이상한가?

엄마 생일날로 수술일정을 당겨서 잡아 버렸다.


그렇게 흔하고, 하기만 하면 깨끗이 낫는다는 그 수술이

나는, 보란 듯이 후유증으로 예정보다 일주일을 더 입원했고 회복도 더디었다.

퇴원 후 상처도 한 달 이상 아물지 않아 상처부위 시술 두 차례와 느닷없는 하혈로 응급실행에도

엄마는 별 반응이 없었다. 입원 중 자기 생일밥이라며 국이며 나물, 바리바리 쌓인 거 말곤...

누군 친정엄마가 한약을 지어주네.. 애 낳은 것처럼 조리해야 한다고

친정에 한 달을 있었네... 하더니

내가 예민한가?


호르몬 부작용으로 두 눈은 뜨기가 힘들었다.

날렵하던 턱선은 술빵처럼 부풀어 올랐고

진드기에 물린 줄 알고 온 집안을 뒤집어 놨던 수포는 대상포진이었다.

직장생활 중 찾아온 녹내장은 하루 종일 투약해야 하는 세 가지 약으로

일상생활이 불가할 정도가 되었다.

그 숱 많던 머리는 누가 드잡이라도 한 듯 쥐꼬리만 남았다.

몸무게는 7킬로가 빠져 거울 속의 내 모습은 너무 추했다.

이 모든 것이 3달 동안 휘몰아친 일들이다.


그렇게 나이 50을 가로막기라도 하듯 달려든 훼방질에 나는 점점 지쳐갔고

남편과 방학, 휴가 나온 아이들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는 듯했다.

그런 내 모습을 외할머니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전했다.

어차피 별말 없을게 뻔하고

차라리 몰라서 별반응 없는 엄마인 게 내 맘이 편했다.


엄마가 힘들고 안 좋을 때 내가 어떻게 했느냐, 가 문제가 아니라

내 딸이 이렇게 날 닮아 힘들어한다면 난 어떻게 할까 가 떠 올랐고

내가 가엾은 엄마를 대했던 깊이와 지금 아이들에게 느끼는 감정들이

끝없이 비교되며 섭섭함보다 나 자신에 대한 반성과 자괴감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내가 잘 못하고 있나?

내가 이상한가?

내가 너무 예민한가?

내가 너무 많은걸 바라나?


어느 날, 밤 창가에 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눈, 코, 귀, 목.. 심장위쪽으로는 모두 도려낸 듯 하루하루 버티던 그날들

그 밤, 컴퓨터를 켰다.
검색창에 아래로 ‘벚꽃’이 보였다.
그냥 단지, 예쁜 걸 보고 싶었다.
일본행 비행기 결제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그냥, 이쁜 걸 보고.......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