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고를 통해,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혼자 하는 해외여행은 내 평생 처음이었다.
설렘보다 긴장과 이상하리 만치 덤덤한 맘으로 공항에 도착하였다.
발권할 땐 사람이 제일 없는 곳을 가고 싶었다.
나는 꽃보다 나무를, 봄보다 가을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상하게 '벚꽃'이 보고 싶었다.
벚꽃 시즌으로 북적이는 간사이 공항
이렇게 북적이는 공간에 혼자 서 있는 것도
공항 짐을 혼자 기다리는 것도 처음이다.
트렁크 하나 겨우 찾아 예약해 둔 하루카 특급열차를 타러 이동했다.
걱정되는 남편과 아이들이 번갈아가며 아이폰을 울린다.
시즌으로 남편이 힘들게 잡아준 료칸에 짐을 두고
대기줄 없는 근처 라멘집에서 늦은 점심을 해본다.
좁은 바에 몸을 한껏 구겨가며 최대한 옆사람과의 접촉을 없앴다.
간간히 한국말이 들린다.
같이 나온 반숙계란이 자꾸 생각난다.
그래도 일본은 혼자 다니기 좋은 여행지 같다는 생각을 한 거 같다.
밤이 되니 꽤 쌀쌀하다.
숙소에서 내준 따뜻한 정종 한잔을 칼칼한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메말라있던 내 모든 장기들을 촉촉이 적셔주며 생기를 불어넣는 듯했다.
"엄마, 혼자 벚꽃 보니 좋아요? 좀 만 있다가 같이 가자니까.."
휴가 나온 아들의 전화기 너머로 숙소 잡느라 정말 힘들었다는 남편의 너스레가 들린다.
내가 없어도, 아니 내가 없어서 다들 더 편안해 보였다.
엄마에게 전화하려다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빠진 머리카락으로 다다미방이 더욱 폭신한 거 같다.
혼자 있지만 외롭지가 않았다.
다음날 은각사를 가기 위해 일찍 눈이 떠졌다.
아직 더운 봄날의 교토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버스를 탈 수 없어 택시 타고 가는 길 가에는
추억을 남기는 사람들로 붐볐고 택시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상하게 보고 싶던 벚꽃은 말라비틀어진 팝콘 같았다.
사람에 떠밀려 서둘러 은각사 구경을 마치고
철학의 길에 들어서니 오후의 햇볕이 작열했다.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걸으며
왜 난데없이 꽃을 보러 와서는 이 고생인가 후회되던 순간
어디선가 자전거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넘어져 버렸다.
“다이조부 데스까?”
코트자락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닦아주는 파란 손수건과 주름진 손이 보였다.
하얀 모자를 쓴 할머니, 그리고 그위에서 조용히 미소 짓는 할아버지였다.
그들은 번역 앱을 켜서 물었다.
“발목 괜찮습니까?”
기계음이었지만 이상하게 따뜻했다.
지켜보던 바로 앞 벤치에 아이가 자리를 비켜주어서 노부부와 자리를 잡았다.
앱을 사이에 두고 짧은 대화가 이어졌다.
그들의 딸은 오래전 한국에서 유학하다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했다.
살아있다면 딱 내 나이라고
여긴 딸이 엄청나게 좋아하던 곳이어서 매년 봄, 빠지지 않고 찾아왔던 곳 이었고
딸이 남긴 말은 “벚꽃이 질 무렵 여기 와서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였다고.
그래서 그들은 매년 이 자리에 와서 딸을 그리워 한다고 했다.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파파고에 글을 쳤다.
“그 그리움이 아프지 않으세요?”
앱은 천천히 번역했다.
“아픔도 닦아야 빛이 납니다.”
그 한 문장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다.
마치 닦아내려는 아픔이 있는 듯
나는 물어보지 않은 내 이야기를 술술 했다.
수술, 가족의 무관심, 아이들과의 거리, 그리고 끝없는 공허함.
그들은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혼자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에요.”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얼마나 쏟아 냈는지
갑자기 미안해졌고
당연한 대답이겠지만 정말 묻고 싶었던 말은 물어보지 못했다.
딸을 사랑하셨나요?
그날 밤은
호텔 창문 너머로 보이는 벚꽃 잎이
솜털처럼 부드럽게 나부낀다.
이쁘다.
"아픔도 닦아야 빛이 난다."
인생에 아픔도 슬픔도 필수 옵션,
나는 혹시 아픔 없이 일평생을 살고 싶었을까?
곱씹을수록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혼자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에요.”
다시 살아도 괜찮다는 허락 같았다.
더이상 뭘 바랬을까.
"엄마, 나 일본 왔어. 벚꽃이 너무 이쁘네. 다음엔 꼭 같이 오자."
"그래 말도 없이 갔네. 일본에 다시마 젤리하고 와사비 유명하다드라. 좀 사 와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