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차 한 잔, 나를 멈춘다.

잠시 멈춰보는 하루

by jjoo

요즘 아침 공기가 다르다.

창문을 열면 한기가 살짝 스며들고,

햇살은 부드럽게 내 얼굴을 감싼다.

잠깐 멈춰 서서 그 온도를 느껴본다.
서둘러 나가야 할 일도 많지만,
오늘만큼은 천천히, 나의 속도로 걸어보고 싶다.

커다란 머그잔에 대추청 두 스푼 듬뿍 떠 넣는다.
달콤한 향이 퍼지면 마음이 먼저 녹는다.
뜨겁던 걸쭉한 대추차가 아침 공기에 적당히 식어, 목을 따뜻하게 녹여준다.
요즘 내 마음도 그렇다.
뜨거움 대신 오래 머무는 따뜻함이 남았다.



가을을 닮은 나의 하루

작년만 해도 나는 늘 조급했다.
다른 사람의 속도에 나를 맞추느라 숨이 찼고,
뒤처질까 봐 초조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가을의 낙엽도, 나무의 색도, 모두 ‘제 시간’에 물든다는 걸.
빨리 붉어진다고 더 아름다운 건 아니라는 걸.

추운 겨울이 오기 전 아주 잠시, 가진 모든 오색가지를 뽐내는 가을처럼

가을이 되면 나는 자주 멈춘다.
멈춰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창밖의 하늘, 따뜻한 차,
그리고 아직 나를 기다려주는 몇몇 사람들, 나의 가족들.



나의 자리, 나의 사람들

딸아이는 오늘도 전화는 없다.
졸업 전시 준비로 바빠서 밥 먹을 시간도 없다면서

내가 좋아하는 교정 단풍나무사진은 잊지 않고 보내주고
군대 간 아들은
“엄마, 이번엔 꼭 휴가 때 건강식단 만들어 줄게요”하며 넌지시 건강을 물어본다.
그 맘들이 참 따뜻했다.

가을 아침 애들 사진 보며 여기 창가,

나의 자리에서 차를 마신다.
아이들이 멀어질수록, 더 가까이 마주하게 된다.



지금, 나의 계절

폰 카메라 속 내 두 눈은 예전보다 부드럽다.
뭘 그리 잘하려고 애를 썼을까.
이제는 느려도 괜찮다.
조금 모자라도 좋다.
가을이 천천히 익어가듯
나도 그렇게 익어가면 된다.

어쩌면 인생의 중반부는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나를 다시 알아가는 연습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차 한 잔을 손에 들고,
조용히 창가에 앉는다.
세상은 바쁘게 달려가지만
나의 시간은 지금 여기 멈춤이다.

뜨거운 김이 사라지기 전에,
나는 오늘의 나를 천천히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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