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장 시와 인생(1)
제22장 시와 인생(1)
명비곡(明妃曲)
기원전 120년경, 한나라의 장수 위청과 곽거병의 서역 공략과 비단길 통제로 흉노의 전성시대는 저물어 갔다. 유목을 본업으로 하는 흉노 민족이 요충지인 기련산(祁連山)을 잃게 되자, 하서주랑의 오아시스 도시들에 대한 지배권을 잃게 되고, 기련산맥 북쪽의 비옥한 초원에서는 더 이상 육축(말, 소, 양, 닭, 개, 돼지)을 기를 수 없게 되었다. 고비사막 남쪽 오르도스 고원에 대한 영향력도 사라져서, 북쪽 몽골고원의 초원 지대로 다시 돌아가야 할 형편이 되었다. 여인들은 연지산(燕支山)에서 나는 화장품(燕脂, 여자가 화장할 때 입술이나 뺨에 바르는 붉은 빛깔의 염료)을 바를 수 없게 되었으니, 여인(燕支, 燕脂와 동음이어, 흉노가 아내를 부르던 말)들의 안색이 빛을 잃었다.
마침내 기원전 60년경에는 북흉노와 남흉노로 분열하고, 몽골고원을 고수하던 북흉노는 동흉노와 서흉노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였다. 한나라의 지원을 받아 남흉노의 선우(單于)의 자리에 오른 호한야(呼韓邪)는 한나라와 화친을 맺는 대신, 평화의 담보로 한나라 궁녀를 선우의 왕비로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다.
한나라의 원제는 호한야의 연지를 선발하기 위하여 화공들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려오도록 하였다. 내심 그 중, 추한 여성을 골라 보낼 심사였다. 그러나 결과는 어긋났다. 화공들은 뇌물을 주지 않는 여인들의 초상화를 흉하게 그려줄 만큼 비리에 유착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훗날 중국 역사상 4대 미녀에 꼽히는 왕소군(王昭君)이 선발되었다. 장자(莊子)에 ‘침어낙안(沉魚落雁)’이라는 말이 나온다. 미인을 보고 부끄러워서 물고기가 물속에 숨고, 기러기는 모래사장에 떨어진다는 뜻이다. 여기서 ‘침어’는 서시(西施), ‘낙안’은 왕소군을 가리킨다고 한다.
왕소군의 불행한 서사는 2천여 년이 흐르도록 마르지 않고 전해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에 맺힌 한을 노래하는 시들이 여럿 만들어졌다. 이백, 왕안석, 구양수가 왕소군을 노래하는 시는 고문진보(古文眞寶) 전집에 실려 있으며, 그밖에 두보, 동방규, 백거이의 시가 있다. 고려시대 문신 안축(安軸)의 시도 있다. 왕소군은 시라는 장르 외에도 수필이나 연극,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東方規)가 ‘소군원(昭君怨)’ 3수로 왕소군의 비참한 심정을 노래하였다. 3수째에 유명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昭君怨 三首
(제1수)
漢道初全盛(한도초전성) 한나라 국운이 융성하고
朝廷足武臣(조정족무신) 조정에는 무신도 넉넉했는데
何須薄命妾(하수박명첩) 어찌하여 박명한 여인이란 말인가
辛苦遠和親(심고원화진) 고통을 겪으며 멀리 화친을 가야 했던가
(제2수)
掩涕辭丹鳳(엄체사단봉) 흐르는 눈물 가리고 단봉성을 떠나
銜悲向白龍(함비향백룡) 슬픔을 삼키며 백룡대(白龍臺)로 향하네
單于浪驚喜(선우낭경희) 선우는 놀라면서도 기뻐했으나
無復舊時容(무복구시용) 더 이상 예전의 얼굴이 아니었다네
(제3수)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엔 꽃도 풀도 없으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촌)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허리에 두른 띠가 느슨해진 것은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결코 가는 허리를 위함이 아니라오
북송의 문장가이자 신법(新法)으로 유명한 정치가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이 왕소군을 이신전심 기리는 시를 지어 세상에 내놓았다.
明妃曲二首
(제1수)
明妃初出漢宮時 漏濕春風鬢脚垂(명비초출한궁시 누습춘풍빈각수)
명비가 처음으로 한나라 궁궐을 나올 때, 눈물은 봄바람에 젖고 머리카락은 힘없이 드리워졌네
低回顧影無顔色 尙得君王不自持(저회고영무안색 상득군왕부자지)
서성이면서 자신의 그림자를 돌아보는 안색은 변함없는데, 오히려 군왕이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네
歸來卻怪丹靑手 入眼平生未曾有(귀래각괴단청수 입안평생미증유)
군왕은 침실로 돌아와 화공의 솜씨를 의심하면서, 이렇게 눈에 들어온 적은 평생에 없었네
意態由來畫不成 當時枉殺毛延壽(의태유래화불성 당시왕살모연수)
일부러 잘못 그린 연유가 있는 것이라, 왕소군을 그린 화공 모연수를 잡아 죽이네
一去心知更不歸 可憐着盡漢宮衣(일거심지경불귀 가련착진한궁의)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알았고, 가엾게도 한나라 궁전에서 입었던 옷을 헤질 때까지 입었네
寄聲欲問塞南事 只有年年鴻雁飛(기성욕문새남사 지유년년홍안비)
인편에 소식 전하여 국경의 남쪽 한나라 궁전 소식을 묻고자 하였건만, 해마다 기러기만 날아올 뿐이네
佳人萬里傳消息 好在氈城莫相憶(가인만리전소식 호재전성막상억)
아름다운 이에게 만리 밖 소식 전하니, 천막이 드리워진 성에서 잘 지내고 서로 생각하지 말게나
君不見咫尺長門閉阿嬌 人生失意無南北(군불견지척장문폐아교 인생실의무남북)
그대는 모르는가, 지척인 거리의 문도 아교로 닫혀있고, 사람으로 태어나 뜻을 잃으면 남북이 따로 없음을
(제2수)
明妃出嫁與胡兒 氈車百兩皆胡兒(명비출가여호아 전거백량개호아)
명비가 오랑케 사람에게 시집을 가니, 짐승의 털로 만든 수레 백 대에 온통 오랑케 남자들뿐이네
含情欲語獨無處 傳與琵琶心自知(함정욕어독무처 전여비파심자지)
마음속에 품어둔 말 표현할 곳이 없어, 비파소리에 전하니 혼자만 아네
黃金捍撥春風手 彈看飛鴻勸胡酒(황금한발춘풍수 탄간비홍권호주)
황금 비파채를 봄바람 같은 손에 쥐고,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며 오랑케에게 술을 권하네
漢宮侍女暗垂淚 沙上行人卻回首(한궁시녀암수루 사상행인각회수)
한나라에서 같이 간 시녀들이 몰래 눈물 흘리니, 사막의 길손들이 고개를 돌리네
漢恩自淺胡自深 人生樂在相知心(한은자천호자심 인생낙재상지심)
한나라 은혜는 얕았으나 오랑케 은총은 깊었으니, 살아가는 즐거움은 서로 마음 알아주는 데 있으리
可憐青冢已蕪沒 尙有哀絃留至今(가련청총이무몰 상유애현유지금)
안타깝게도 푸른 무덤은 이미 잡초에 묻혀 있고, 여전히 슬픈 가락 소리만 남아 있구나
동시대의 구양수(歐陽修 1007-1072)가 왕안석의 ‘명비곡 2수(明妃曲二首)’에 화답하였다.
和王介甫明妃曲二首
(제1수)
胡人以鞍馬爲家 射獵爲俗(호인이안마위가 사렵위속)
오랑케 사람들은 안장 얹은 말을 집으로 여기고, 활을 쏘아 사냥하는 것이 풍속이라
泉甘草美無常處 鳥驚獸駭爭馳逐(천감초미무상처 조경수해쟁치축)
물이 달고 풀이 맛있는 곳을 옮겨 다니니 일정한 거처가 없고, 새가 놀라고 짐승이 날뛰면 다투어 말 달려 쫓아가네
誰將漢女嫁胡兒 風沙無情面如玉(수장한녀가호아 풍사무정면여옥)
누가 한나라 여자를 오랑케에게 시집보냈는가, 모래바람이 무정하게 옥 같은 얼굴을 때린다
身行不遇中國人 馬上自作思歸曲(신행불우중국인 마상자작사귀곡)
가는 곳 어디에도 본토 사람을 만날 수 없어, 말 위에서 그리운 마음 담아 노래를 지었네
推手為琵琶 胡人共聽亦咨嗟(추수위비파 호인공청역자차)
손 밀고 당겨 비파를 타니, 오랑케 사람들이 듣고 모두 탄식하네
玉顔流落死天涯 琵琶傳來漢家(옥안유락사천애 비파전래한가)
옥 같은 얼굴 떠돌다 하늘가에 죽었으나, 비파 곡조는 한나라 왕실에 전해졌네
漢宮爭按新聲譜 遺恨已深聲更苦(한궁쟁안신성보 유한이심성갱고)
한나라 궁전에서 악보를 연주하니, 남긴 한이 너무 깊어 울리는 소리가 더욱 고통스럽다
纖纖女手生董房 學得琵琶不下堂(섬섬여수생동방 학득비파불하당)
섬섬옥수로 깊은 내실에서 자라, 비파 배우면서 마당에 내려선 적도 없었네
不識黃雲出塞路 豈知此聲能斷腸(불식황운출새로 기지차성능단장)
누런 먼지구름 국경 길에 나설 줄 몰랐을 터이니, 비파 소리가 애를 끊을 줄 어찌 알았으리오
(제2수)
漢宮有佳人 天子初未識(한궁유가인 천자초미식)
한나라 궁전에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는데, 천자는 처음에는 이를 알지 못하였네
一朝隨漢使 遠嫁單于國(일조수한사 원가선우국)
하루 아침 한나라 사신 따라, 멀리 흉노 왕에게 시집갔다네
絶色天下無 一失難再得(절색천하무 일실난재득)
이만한 절세미인 천하에 없어, 한번 잃었으니 다시 얻기 어렵네
雖能殺畫工 於事更何益(수능살화공 어사경하익)
비록 화공을 죽인다 해도, 무슨 이익이 돌아오겠는가
耳目所及尙如此 萬里安能制夷狄(이목소급상여차 만리안능제이적)
가까이 보고 듣는 일조차 이와 같으니, 만리 밖 오랑케들을 어찌 제압할 수 있으랴
漢計誠已拙 女色難自誇(한계성이졸 여색난자과)
한나라 계책이 실로 서툴렀으니, 여인이 스스로 자색을 뽐내기 어려웠으리
明妃去時淚 灑向枝上花(명비거시루 쇄향지상화)
명비가 떠날 때 흘린 눈물이, 나뭇가지 위 꽃들에 뿌려졌네
狂風日暮起 飄泊落誰家(광풍일모기 표박낙수가)
해 저물어 광풍이 일어나니, 꽃잎들이 마구 휘날려 어느 집에 떨어졌을까
紅顔勝人多薄命 莫怨春風當自嗟(홍안승인다박명 막원춘풍당자차)
미인박명한 법이니, 봄바람보다 자신의 운명을 탓하랴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701-762)은 ‘왕소군이수(王昭君二首)’를 헌사하였다 여기서는 제1수를 감상한다.
王昭君二首
(제1수)
漢家秦地月(한가진지월)
한나라 옛 진나라 땅에 뜬 달이
流影照明妃(유영조명비)
흔들리는 그림자 되어 명비를 비추네
一上玉關道(일상옥관도)
한번 옥문관 길에 들어서면
天涯去不歸(천애거불귀)
죽어도 돌아오지 못하네
漢月還從東海出(한월환종동해출)
한나라의 달 다시 동해에 뜨지만
明妃西嫁無來日(명비서가무래일)
서쪽 간 명비는 돌아올 기약 없네
燕支長寒雪作花(연지장한설작화)
연지산 긴 추위에 꽃처럼 눈 날리고
娥眉憔悴沒胡沙(아미초췌몰호사)
미인은 오랑캐 땅 모래 속에 초췌하게 잠들었다네
生乏黃金枉畫圖(생핍황금왕화도)
살아서는 돈 없어 추녀로 잘못 그려지더니
死留青冢使人嗟(사류청총사인차)
죽어서는 푸른 무덤으로 사람들을 탄식하게 하네
장한가와 비파행으로 유명한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 일명 백낙천)도 ‘왕소군이수(王昭君二首)’를 남겼다.
王昭君二首
(제1수)
滿面胡沙滿鬢風(만면호사만빈풍)
얼굴 가득 오랑케 먼지 쓰고 머리카락 바람에 흩날리니
眉銷殘黛瞼銷紅(미소잔대검소홍)
눈썹 먹 지워지고 뺨의 연지도 지워졌네
愁苦辛勤憔悴晉(수고신근초췌진)
슬픔과 괴로움 참고 견디느라 초췌해졌으니
如今卻似畫圖中(여금각사화도중)
지금 그 모습은 초상화 그대로고
(제2수)
漢使卻回憑寄語(한사각회빙기어)
한나라 사신 돌아가는 편에 그녀가 남기는 말
黃金何時贖蛾眉(황금하시속아미)
황금으로 언젠가 눈썹 되살릴거니
君王若問妾顔色(군왕약문첩안색)
임금님이 혹여 내 안색 물어보시면
莫道不如宮裏時(막도부여궁리시)
대궐에 있을 때보다 못하다 하진 마세요
고려말 학자 안축(安軸)의 ‘왕소군’이 있다. 안축은 고려의 문과와 원나라의 과거시험(제과 制科)에 둘 다 급제하였음에도 소소한 관직에 만족하며 풍류를 즐긴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王昭君
君王曉開黃金闕(군왕효개황금궐)
군왕의 조정인 황금궁궐이 새벽에 열리니
氈車轔轔北使發(전거린린북사발)
전거를 덜커덕거리며 북으로 가는 사자가 떠난다
明妃含淚出椒房(명비함루출초방)
명비가 눈물을 머금고 초방을 나서니
有意春風吹鬢髮(유의춘풍취빈발)
의미심장한 봄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든다
漢山秦塞漸茫茫(한산진새점방망)
옛날 진나라 국경은 멀기만 한데
逆耳悲笳秋夜長(역이비가추야장)
슬픈 피리 소리에 가을밤은 길기만 하구나
可憐穹廬一眉月(가련궁려일미월)
가련하도다 궁려에 뜬 눈썹 같은 조각달이여
曾照臺前宮樣粧(증조대전궁양장)
일찍이 궁전 앞 누대를 비추던 달이 아니더냐
將身已與胡兒老(장신이여호아노)
장차 이 몸은 호족의 여자로 살아갈거니
唯恐紅顔凋不早(유공홍안조부조)
다만 고운 얼굴이 빨리 시들어질까 걱정이다
琵琶絃中不盡情(비파현중불진정)
비파의 가락소리에 다하지 못한 정을 어이할고
塚上年年見青草(총상년년견청초)
해마다 무덤 위에 나는 푸른 풀을 보게 되리라
왕소군은 흉노 호한야 선우의 셋째 부인으로 들어간다. 기원전 31년 호한야가 죽고, 둘째 부인의 아들인 복주루약제(復株累若鞮)가 선우에 등극한다. 흉노의 풍습에 따라 왕소군은 복주루약제의 부인이 되어 딸 둘을 낳았으니, 수복공주(須卜居次)와 당우공주(當于居次)가 그들이다. 복주루약제 선우는 재위기간 11년 동안, 왕소군 외에 다른 부인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왕소군은 영호알씨(寧胡閼氏, 군주의 정식 부인)로 봉하여졌으며, 호한야 왕 사이에 태어난 아들인 이도지아사(伊屠斉牙師)는 일축왕에 봉하여졌다.
왕안석이 ‘명비곡’에서, 왕소군이 ‘한나라 왕에게서 받은 은혜는 얕고, 흉노 선우에게서 받은 은혜는 깊으니’라고 노래한다. 인생이란, 상대가 나를 알아줄 때 즐거운 것이라 하여, 왕소군의 운명을 존중하고 있다. 왕소군은 평민 출신으로 16세의 나이에 궁녀로 선발되어 입궁하였으나 황제의 총애를 얻지 못하였다. 한 원제는 왕소군이 흉노 선우의 연지(또는 閼氏 알씨)로 선발되고서야, 처음으로 그녀를 본 듯하다. 왕소군은 흉노 왕실에서 72세의 천수를 누렸다. 흉노는 그녀와 자식들에게 충분한 경의와 후의를 보여주었다.
왕소군의 이야기는 시대를 이어가며 리텔링의 소재로 다루어졌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은래 총리는 극작가 조우(曹禺 1910-1996)를 시켜, 왕소군을 주인공으로 하는 극본을 창작할 것을 지시하였다. 조우는 직접 내몽골에 가서 왕소군의 무덤(청총 青塚)을 답사하고 그녀를 둘러싼 각종 신화를 수집한 뒤, 1978년, 역사극 ‘왕소군’을 발표하였다. 중국 정부는 한족과 이민족과의 교류를 장려하려는 목적에서 왕소군을 적극 활용한 것이었다. 이민족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은 수천 년 중국 역사에서 이어져 온 역사적 교훈이다.
애너벨 리(Annabel Lee)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가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렇게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포는 1849년 볼티모어 길거리에서 행려병자의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사망원인은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포의 시와 소설은 사후,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에 의해 재발견되어 유럽 전역에 알려졌으며 그런 후에서야, 미국에서도 포를 재평가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포는 태어난지 1년 후, 아버지가 가출하고 어머니는 포가 2살 때 결444 핵으로 사망하였다. 2남 1녀 중, 형은 선원생활을 하다 객사하였다. 14살에 양부모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하였다가, 17살에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 버지니아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상위권 성적이었음에도 술과 도박에 빠져 1년 만에 퇴학당한다. 포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미 육군에 들어가 입대 2년 만에 특무상사로 진급한다. 그 후, 장교를 꿈꾸어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였으나, 여기에서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퇴학당하여 불명예 전역을 하게 된다. 그 뒤로는 고모의 집에 얹혀살면서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836년 27세의 포는 13세의 사촌 동생 버지니아 클램과 결혼한다. 결혼문서에는 버지니아가 미성년자임을 감추기 위해 나이를 허위 신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즈음에, 소설 ‘어셔가의 몰락(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을 쓴다. 당시 고모 집에서의 결혼생활은 형편이 없어서, 겨울에는 원고지를 태워서 난로를 때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33살인 1841년에 ‘모르그가의 살인사건(The Murders in Rue Morgue)’, 1842년에 ‘함정과 진자(The PIT and the Pendulum)’, ‘붉은 죽음의 가면(The Masque of The Red Death)’, 1843년에 ‘검은 고양이(The Black Cat)’, ‘황금충(The Gold Bug)’을 쓰고 1844년에 ‘도둑맞은 편지(The Purloined Letter)’를 탈고하였다.
여러 잡지의 편집장 생활을 전전하면서도, 귀족적인 성격의 문단과 관계가 좋지 않아 작가로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였다. 1845년에 숨겨두었던 시 ‘까마귀(The Raven)’를 발표한다. 1846년에는 ‘아몬틸라도의 술통(The Cask of Amontillado)‘을 집필한다. 1847년 병약했던 버지니아가 24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포는 ‘애너벨 리(Annabel Lee)’라는 명시를 남겼다.
포는 버지니아 사망 후 2년 되던 해, 뉴욕으로 가는 길에 볼티모어의 한 술집 앞에서 혼수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실려 간다. 며칠 후, 40세의 나이로 병상에서 숨을 거둔다. 사망 다음 날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되어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 숨을 거두기 전 마지막 말은, ‘신이여 불쌍한 영혼을 거두어주소서’였다고 한다.
26년이 지난 1875년, 포의 작품을 알게 된 팬들의 도움으로 웨스트민스터 장로교회 묘지에 이장되었다. 에드가 앨런 포에게서는 고아, 가난, 천재, 부적응, 술, 도박으로 점철된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그의 작품 도처에서 발견되는 천재성과 영감은 AI와 디스토피아가 득세하는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서 더욱더 평가를 받을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보들레르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와 같은 류의 작가들에게서 인정을 받은 것일 것이다. ‘애너벨 리’와 ‘까마귀’를 통해 에드가 앨런 포의 인생을 들여다보기로 하겠다.
Annabel Lee
It was many and many a year ago,
In a kingdom by the sea,
That a maiden there lived whom you may know
By the name of Annabel Lee;
And this maiden she lived with no other thought
Than to love and be loved by me.
아주 오래전 바닷가 왕국에
당신도 알 법한 한 소녀가 살고 있었지
그녀의 이름은 애너벨 리
소녀는 나를 사랑하고 내 사랑을 받는 일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살았다네
I was a child and she was a child,
In this kingdom by the sea:
But we loved with a love that was more than love —
I and my Annabel Lee;
With a love that the winged seraphs of heaven
Coveted her and me.
바닷가 왕국에서
그녀는 어렸고 나도 어렸지만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
사랑보다 더한 사랑을 하였다네
하늘의 날개 달린 천사들조차 그녀와 나의 사랑을 시기했네
And this was the reason that, long ago,
In this kingdom by the sea,
A wind blew out of a cloud, chilling
My beautiful Annabel Lee;
So that her highborn kinsmen came
And bore her away from me,
To shut her up in a sepulchre
In this kingdom by the sea.
그것이 이유였지 오래전 바닷가 왕국에서
구름에서 불어온 바람이
나의 아름다운 애너벨 리를 얼어붙게 했네
그래서 그녀의 잘난 친척들이 와서
그녀를 내게서 빼앗아갔지
바닷가 왕국의 무덤 속에 가두기 위해
The angels, not half so happy in heaven,
Went envying her and me —
Yes! — that was the reason (as all men know,
In this kingdom by the sea)
That the wind came out of the cloud by night,
Chilling and killing my Annabel Lee.
천상에서도 별로 행복하지 못했던 천사들이
그녀와 날 시기한 탓에
그렇지, 그것이 이유였다네
(바닷가 왕국 사람들이 다 알 듯이)
한밤 중 구름으로부터 찬바람이 불어와
그녀를 얼어붙게 하고 나의 애너벨 리를 죽게 한 것을
But our love it was stronger by far than the love
Of those who were older than we —
Of many far wiser than we —
And neither the angels in heaven above,
Nor the demons down under the sea,
Can ever dissever my soul from the soul
Of the beautiful Annabel Lee.
하지만 우리들의 사랑은
우리보다 나이 든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강하고
우리보다 현명한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강한 것을
그래서 천상의 천사들도, 심연의 악마들도
내 영혼을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영혼과 갈라놓을 수는 없네
For the moon never beams, without bringing me dreams
Of the beautiful Annabel Lee;
And the stars never rise, but I feel the bright eyes
Of the beautiful Annabel Lee;
And so, all the night-tide, I lie down by the side
Of my darling — my darling — my life and my bride,
In her sepulchre there by the sea,
In her tomb by the sounding sea.
달빛도 언제나 내게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가져다주네
별빛도 언제나 내게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눈을 보이게하네
그래서 나는 밤새도록 나의 사랑, 나의 생명, 나의 신부 곁에 누워 있네
바닷가 그곳 그녀의 무덤, 파도 소리 들리는 그녀의 무덤 속에
포와 버지니아의 관계는 기괴하기까지 하다. 아일랜드계 부친의 가출과 모친의 병사, 선원이었던 형의 사망과 누이동생의 병사, 나이를 속여 입대하는가 하면 십대인 사촌 버지니아와 결혼.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차가운 방에서 병든 버지니아는 고양이를 껴안고 이불을 덮은 채 자고 있고, 포와 장모인 고모는 교대로 버지니아의 차가운 손을 잡아가며 체온을 지탱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곳이 바닷가 왕국 그녀의 무덤이었다
레이븐(Raven)
포의 대표작 ‘까마귀’는 버지니아가 죽기 2년 전에, ‘애너벨 리’는 1년 전에 만들어졌다. 그의 결혼생활 12년 중, 버지니아가 앓아누운 기간 5년을 빼고 나면 정상적인 결혼기간은 7년에 불과하다. 그의 버지니아에 대한 사랑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자기연민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포의 잘못된 유전자 조합은 약자에 대한 관심이 동병상련의 의무감으로까지 발전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포의 여성에 대한 관심이 버지니아 한 사람에게만 집착한 것만도 아니었다. 포의 여성에 대한 관심은 그를 둘러싼 핸디캡 예를 들면, 가난과 알콜, 도박중독 등으로 인하여 플라토닉 러브에 그치고 말 운명이었다. 내세울 것이라고는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적 문학성뿐이었다. 그것이 경제적 풍요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The Raven 시집을 발표하고 출판사 측으로부터 달랑 9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미국 노동자의 주급이 10달러 미만이었으니, 어쩌다 알려져 발표하는 행운을 얻는다 해도, 시집 한 권이 일주일 생활비에 불과했던 셈이다. 당시 문학이 귀족의 고상한 취미활동으로 취급당하던 여건에서, 전업 작가에 매달렸으니 포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불행해졌다. 유럽의 계몽주의 시절, 루소나 볼테르와 같은 삶은 척박한 신대륙에서 글을 노동 삼아 쓰는 자에게는 꿈도 못 꿀 언감생심였던 것이다.
그의 유전적 천재성은 가난과 불우한 환경과 연대하여 그로테스크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남들에게는 상상력의 산물인 소재들이 그에게는 실존적 현실이고 절박한 경험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단편소설과 시의 형식을 빌려 낭만주의에 기괴함과 난해한 어휘와 운율을 섞어가면서 울분을 토해 내었다.
버지니아의 죽음은 그의 죽음도 임박한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버지니아가 죽기 전에 이미, 죽음의 저승사자인 까마귀와 대화하면서 바닷가에 아내의 무덤을 준비하였다. ‘nevermore’는 그의 운명이 변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시켜주는 암시였다. 바닷가의 무덤은 에드가 앨런 포가 묻힐 무덤이기도 하였다. 그 무덤을 벗어나기 위하여 무던히 발버둥 쳤지만, 신은 그에게 주어진 숙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경고하였다. 운명의 신은 그에게 조용히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속삭였을 것만 같다. 죽음을 앞두고 영혼을 신에게 맡기는 모습은 신에게는 이미 예정된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신은 그의 짧고 불행한 인생을 만회할 선물을 잊지 않았다. 그가 사망한 지 100년이 되던 해인 1949년부터 2012년까지, 그의 묘지에는 이름 모를 숭배자에 의하여, 매년 꼬냑 한 병과 장미꽃 세 송이가 바쳐졌다. 생전에 물질적 풍요에만 집착하다 방향을 잃고 이름 없이 사라지는 중생들에 비하면, 비록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꼬냑 60병과 장미꽃 180송이는 시대를 200년 정도 앞서가는 천재에게는 선택할 만한 옵션이었다고 할 수 있다. 포의 버지니아에 대한 서사적 추도사인 애너벨 리에 이어서, 저승사자와의 대화를 감상해 보기로 하자. 약간의 난해함과 지루함은 평소에 느껴보지 못한 어둠의 미학과 퇴폐적 쾌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The Raven
Once upon a midnight dreary, while I pondered, weak and weary,
Over many a quaint and curious volume of forgotten lore
While I nodded, nearly napping, suddenly there came a tapping,
As of some one gently rapping, rapping at my chamber door.
“Tis some visitor,” I muttered,“ tapping at my chamber door
Only this and nothing more.”
어느 쓸쓸한 한밤중, 지치고 피곤한 채, 지금은 잊혀진 기묘한 전설들에 관한 책을 뒤적이다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와서 방문을 두드리는 걸까, 별일 아닐거야”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Ah, distinctly I remember it was in the bleak December;
And each separate dying ember wrought its ghost upon the floor
Eagerly I wished the morrow; vainly I had sought to borrow
From my books surcease of sorrow, sorrow for the lost Lenore
For the rare and radiant maiden whom the angels name Lenore
Nameless here for evermore
아, 나는 그것이 음산한 12월이었다는 것을 또렷이 기억한다 꺼져가는 불씨 하나하나가 바닥 위에 유령 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나는 간절히 아침이 오기를 바랐고, 잃어버린 레노어에 대한 슬픔을 책 속에서라도 잠시 잊어보려 했으나, 헛된 일이었다 천사들이 레노어라 부르는 그 빛나는 소녀는 이제 더이상 이름조차 불리지 않는다
And the silken, sad, uncertain rustling of each purple curtain
Thrilled me—filled me with fantastic terrors never felt before;
So that now, to still the beating of my heart, I stood repeating
“Tis some visitor entreating entrance at my chamber door—
Some late visitor entreating entrance at my chamber door;—
This it is and nothing more.”
그러자 자주빛 커튼의 비단처럼 부드럽고, 슬프고, 어딘가 불확실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를 전율하게 했다 이전에 느껴본 적 없는 기묘한 공포가 온몸을 채웠다 심장이 뛰는 것을 가라앉히려 나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누군가 내 방 문 앞에서 들어오게 해달라고 두드리는 거야, 밤늦게 찾아온 방문객이 문을 두드리는 것일뿐이야 그뿐이야”
Presently my soul grew stronger; hesitating then no longer,
“Sir,” said I, “or Madam, truly your forgiveness I implore;
But the fact is I was napping, and so gently you came rapping,
And so faintly you came tapping, tapping at my chamber door,
That I scarce was sure I heard you”—here I opened wide the door;
Darkness there and nothing more
나는 곧 마음을 다잡아 더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실례합니다만, 제가 졸고 있었던 터라, 당신이 너무 살며시, 너무 희미하게 문을 두드리셔서 소리를 들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었다 그러나 밖에는 어둠뿐, 아무것도 없었다
Deep into that darkness peering, long I stood there wondering, fearing, Doubting, dreaming dreams no mortal ever dared to dream before;
But the silence was unbroken, and the stillness gave no token,
And the only word there spoken was the whispered word,
“Lenore?”
This I whispered, and an echo murmured back the word,
“Lenore!”
Merely this and nothing more
나는 두려움과 의심 속에서 어둠을 깊이 들여다보며 어느 누구도 감히 꾸어본 적 없는 꿈을 꾸듯 오래도록 서 있었다 그러나 침묵은 깨지지 않았고, 정적은 아무런 기척도 주지 않았다 그때 내가 속삭인 유일한 말은 “레노어?”였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메아리처럼 “레노어…”라는 중얼거림이 되돌아왔다 그뿐이었고, 더는 아무것도 없었다
Back into the chamber turning, all my soul within me burning,
Soon again I heard a tapping somewhat louder than before.
“Surely,” said I, “surely that is something at my window lattice;
Let me see, then, what thereat is, and this mystery explore
Let my heart be still a moment and this mystery explore;
Tis the wind and nothing more!”
방으로 돌아오며 내 영혼은 불안과 긴장으로 들끓고 있었다 곧 전보다 더 크게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분명히 창살에 무언가 있는 게 틀림없어. 가서 무엇인지 확인해 보자.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 수수께끼를 풀어보자. 그래, 바람일 뿐이야. 아무것도 아닐거야.”
Open here I flung the shutter, when, with many a flirt and flutter,
In there stepped a stately Raven of the saintly days of yore;
Not the least obeisance made he; not a minute stopped or stayed he;
But, with mien of lord or lady, perched above my chamber door,
Perched upon a bust of Pallas just above my chamber door,
Perched, and sat, and nothing more.
내가 창문을 홱 열어젖히자, 퍼덕이며 휘날리는 소리와 함께 옛 성스러운 시대에서 온 듯이 위엄 있는 까마귀 한 마리가 들어왔다 그는 인사도 하지 않고,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마치 귀족 같은 태도로 내 방 문 위에 있는 팔라스의 흉상 위에 날아올라 앉았다 그저 올라앉아 앉아 있을 뿐, 그뿐이었다.
Then this ebony bird beguiling my sad fancy into smiling,
By the grave and stern decorum of the countenance it wore,
“Though thy crest be shorn and shaven, thou,” I said, “art sure no craven, Ghastly grim and ancient Raven wandering from the Nightly shore
Tell me what thy lordly name is on the Night’s Plutonian shore!”
Quoth the Raven “Nevermore.”
이 새까만 새가 하도 준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바람에 나는 슬픔 가운데서도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벼슬은 잘려 있어도, 겁쟁이는 아니구나. 지하세계의어두운 해변을 떠돌다온 섬뜩하고 오래된 까마귀여, 그대의 고귀한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내가 묻자 까마귀는 대답했다 “영영 없다”
Much I marvelled this ungainly fowl to hear discourse so plainly,
Though its answer little meaning—little relevancy bore;
For we cannot help agreeing that no living human being
Ever yet was blessed with seeing bird above his chamber door
Bird or beast upon the sculptured bust above his chamber door,
With such name as “Nevermore.”
나는 이 볼품없는 새가 그렇게 분명하게 말하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그 대답이 별 의미도, 관련성도 없었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어떤 인간도 자기 방문 위의 흉상 위에 앉아 있는 ‘영영 없다’라는 이름을 가진 새나 짐승을 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But the Raven, sitting lonely on the placid bust, spoke only
That one word, as if his soul in that one word he did outpour.
Nothing farther then he uttered—not a feather then he fluttered
Till I scarcely more than muttered “Other friends have flown before
On the morrow he will leave me, as my Hopes have flown before.”
Then the bird said “Nevermore.”
그러나 까마귀는 고요한 흉상 위에 외롭게 앉아 영혼을 쏟아내듯 그 한마디만을 내뱉었을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깃털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중얼거리며 말했다 “다른 친구들이 예전에 떠나갔듯이 내일이면 이 새도 나를 떠나겠지 예전에 내 희망이 날아가 버렸듯이…” 그러자 까마귀가 말했다 “영영 없다”
Startled at the stillness broken by reply so aptly spoken,
“Doubtless,” said I, “what it utters is its only stock and store
Caught from some unhappy master whom unmerciful Disaster
Followed fast and followed faster till his songs one burden bore
Till the dirges of his Hope that melancholy burden bore
Of ‘Never—nevermore’.”
그토록 적절한 한마디로 정적을 깨뜨린 것에 놀라 나는 말했다 “그래, 분명 그렇겠지. 이 새가 내뱉는 말은 어느 불행한 주인에게서 배운 말버릇일 거야 무자비한 재앙이 그 주인을 뒤쫓고 또 뒤쫓아 그의 노래는 하나의 후렴만 남게 되었겠지. 희망의 장송곡조차 그 음울한 후렴을 되뇌었겠지. '영영, 영영 없다'”
But the Raven still beguiling all my fancy into smiling,
Straight I wheeled a cushioned seat in front of bird, and bust and door; Then, upon the velvet sinking, I betook myself to linking
Fancy unto fancy, thinking what this ominous bird of yore
What this grim, ungainly, ghastly, gaunt, and ominous bird of yore
Meant in croaking “Nevermore.”
그럼에도 이 까마귀는 내 슬픈 마음을 미소 짓게 하여, 나는 새와 흉상과 문이 보이는 곳에 쿠션 의자를 끌어다 놓았다 벨벳에 몸을 묻고, 상상에 상상을 이어가며 생각했다 이 불길한 새, 음울하고 볼품없고 섬뜩하고 여윈 이 옛날의 새가 “영영 없다”라고 까욱거리는 뜻이 과연 무엇인가
This I sat engaged in guessing, but no syllable expressing
To the fowl whose fiery eyes now burned into my bosom’s core;
This and more I sat divining, with my head at ease reclining
On the cushion’s velvet lining that the lamp-light gloated over,
But whose velvet-violet lining with the lamp-light gloating over,
She shall press, ah, nevermore!
나는 이런 생각에 잠겨 앉아 있으면서도 내 가슴 깊숙이 불을 지르는 듯한 새의 눈빛을 향해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등잔불이 비추는 자주빛 벨벳 안감에 머리를 기대고 더 많은 생각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 그 자주빛 벨벳에 그녀가 다시 머리를 기댈 일은 이제 “영영 없다”
Then, me thought, the air grew denser, perfumed from an unseen censer
Swung by Seraphim whose foot-falls tinkled on the tufted floor.
“Wretch,” I cried, “thy God hath lent thee—by these angels he hath sent thee Respite—respite and nepenthe from thy memories of Lenore;
Quaff, oh quaff this kind nepenthe and forget this lost Lenore!”
Quoth the Raven “Nevermore.”
그러자 내게는 방 안의 공기가 더욱 짙어지며 보이지 않는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향처럼 느껴졌다 카펫 위로 천사들의 발걸음이 은은히 울리는 듯했다 나는 외쳤다 “가엾은 존재여, 신이 너에게 보내신 것이구나 이 천사들을 통해 레노어의 기억을 잊게 할 위안과 망각의 약을 보내주셨구나 이 자비로운 망각의 약을 마시고, 잃어버린 레노어를 잊게 해다오!” 그러자 까마귀가 말했다 “영영 없다”
“Prophet!” said I, “thing of evil!—prophet still, if bird or devil!
Whether Tempter sent, or whether tempest tossed thee here ashore,
Desolate yet all undaunted, on this desert land enchanted—
On this home by Horror haunted—tell me truly, I implore—
Is there—is there balm in Gilead?—tell me—tell me, I implore!”
Quoth the Raven “Nevermore.”
“예언자여!” 내가 말했다. “새든 악마든 간에, 악한 자여! 유혹의 신이 너를 보냈든, 폭풍이 너를 이 해안으로 몰아왔든, 황량하고 마법에 걸린 이 땅에서, 공포가 깃든 이 집에서조차 홀로 의연한 그대여, 간절히 묻노니 진실을 말해다오 저 길르앗에는 치유의 향유가 있는가? 말해다오, 간청하노니!” 그러자 까마귀가 말했다 “영영 없다”
“Prophet!” said I, “thing of evil!—prophet still, if bird or devil!
By that Heaven that bends above us—by that God we both adore
Tell this soul with sorrow laden if, within the distant Aidenn,
It shall clasp a sainted maiden whom the angels name Lenore
Clasp a rare and radiant maiden whom the angels name Lenore.”
Quoth the Raven “Nevermore.”
“예언자여!” 내가 말했다 “새든 악마든 간에, 악한 자여! 우리 위에 굽어 있는 하늘의 이름으로, 우리가 섬기는 신의 이름으로 슬픔에 잠긴 이 영혼에게 말해다오 머나먼 에덴에서는 천사들이 레노어라 부르는 그 성스러운 여인을 다시 끌어안을 수 있는지, 그 보기드물고 빛나는 여인을 다시 만날 수 있는지 말해다오” 그러자 까마귀가 말했다 “영영 없다”
“Be that word our sign of parting, bird or fiend!” I shrieked, upstarting
“Get thee back into the tempest and the Night’s Plutonian shore!
Leave no black plume as a token of that lie thy soul hath spoken!
Leave my loneliness unbroken!—quit the bust above my door!
Take thy beak from out my heart, and take thy form from off my door!” Quoth the Raven “Nevermore.”
나는 벌떡 일어나 절규했다 “그 말을 우리의 작별 신호로 하자, 새든 악마든! 폭풍 속으로, 밤의 플루토니안 해안으로 돌아가라! 네 영혼이 내뱉는 거짓의 증표인 검은 깃털 하나도 남기지 말라! 내 고독을 깨뜨리지 말고, 내 방문 위의 흉상에서 당장 떠나라! 내 심장에서 네 부리를 빼고, 내 문에서 네 모습을 거두어라!” 그러자 까마귀가 말했다 “영영 없다”
And the Raven, never flitting, still is sitting, still is sitting
On the pallid bust of Pallas just above my chamber door;
And his eyes have all the seeming of a demon’s that is dreaming,
And the lamp-light over him streaming throws his shadow on the floor;
And my soul from out that shadow that lies floating on the floor
Shall be lifted—nevermore!
그리하여 까마귀는 날아갈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내 방문 바로 위, 창백한 팔라스의 흉상 위에 여전히, 또 여전히 앉아 있다. 그 눈은 꿈꾸는 악마의 눈처럼 보이고, 등잔불은 그 위로 비쳐 바닥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리고 그 그림자 속에서 떠도는 나의 영혼은 결코 ‘영영’ 벗어나지 못하리라
정신과 의사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 1926-2004)는 인간이 죽음에 임하는 다섯 단계를 제시하였다. 그녀의 모델에 따르면, 부정(denial)의 단계에서 분노(anger)의 단계로 이행하고, 타협(bargaining)의 단계를 지나 우울(depression)의 단계를 거쳐, 마침내 수용(acceptance)의 단계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잠시 포의 표현법을 빌려 창작놀이를 해보자면, 임종은 “부분적으로 타협하고 우수에 젖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까마귀’에서 포는 분노, 타협, 우울의 단계까지를 보여준다. 아직 수용의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이 작품이 버지니아가 죽기 2년 전에 발표되었음을 고려하면, 수용의 단계는 버니지아가 죽기 1년 전에 발표된 ‘애너벨 리’에서 받아들여진다. 버지니아가 오랜 기간 투병 중에 있었기 때문에, 포는 두 편의 시를 통해 마음의 준비를 해온 셈이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을 바꾸어 가상의 바닷가 무덤에 안장하고, 자신 또한 거기에 묻힐 준비를 함으로써 승화의 단계에 이른다. 실제로 포는 2년 뒤 버지니아가 묻힌 무덤으로 돌아가게 된다.
‘까마귀’는 사랑하는 여인 레노어(Lenore)의 죽음을 예고하는 전령사로 등장하지만, 애궂은 집주인에게 붙들려 대화 상대가 되고 만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네버모어’ 밖에 없으니, 매번 같은 말로 응대할 수밖에 없다. 주인공은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하자 일희일비하며, 자신의 영혼을 까마귀와 동일시하여 둘을 방 안에 가둬버린다. 그러나 까마귀는 언젠가 떠날 것이다. 죽음의 전령사는 할 일이 많고 바쁘다. 어디서든 누가 묻기만 하면 그는 ‘네버모어’를 외칠 수밖에 없다. 까마귀는 운명을 전달하는 심부름꾼일 뿐,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네버모아’는 불가역적 선언이다. 주인공은 어려운 부탁을 할 상대를 잘못 골랐다.
‘까마귀’는 지독한 가난, 배고픔, 무시, 실연, 고독과 독불장군, 가족의 질병과 죽음 등이 추위와 술과 함께 버무러지지 않으면 탄생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극한의 처연함과 비참함으로 점철된 의식의 흐름을 담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의 디스토피아에서는 다소 퇴폐적일지라도 위선이나 사치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진실성이 느껴진다. 그만큼 그의 삶 자체가 소설과 시의 재료였기 때문일 것이다.
포는 1845년 신대륙이라는 공간과 시대가 낳은 변종이었다. 프로메테우스 이후 이처럼 시대를 거슬러 오르다 무너지고 만 삶을 산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의 아픔은 최소 200년을 앞서 있다. 그의 무덤에 술 한 병 바치고 싶은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레이븐’에 중독되어 감정이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부사(漁父辭)
굴원(屈原 기원전 343-277)은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시인이다. 초 회왕(懷王)을 보좌하는 관직에서 잘 나가다가 먼 남쪽 심양에 밀려나 있었다. 멀리서 나라가 기울어져 가는 것을 보고 돌덩이를 품에 안고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졌다. 후세 사람들은 굴원이 죽은 5월 5일을 단오절로 기념하여 대나무잎이나 갈잎으로 싼 밥을 강에 던지는 풍습이 있다. 물고기들이 굴원의 시신을 훼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다.
시경(詩經)이 북방 문학을 대표하는 것이라면, ‘어부사(漁父辭)’는 남방 문학 특유의 초사(楚辭)의 효시가 되었다.
漁父辭
屈原旣放 游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憔悴 形容枯槁
(굴원기방 유어강담 행음택반 안색초췌 형용고고)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 何故至於斯
(어부견이문지왈 자비삼려대부여 하고지어사)
屈原曰 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是以見放
(굴원왈 거세개탁 아독청 중인개취 아독성 시이견방)
漁父曰 聖人不凝滯於物 而能與世推移 世人皆濁 何不淈其泥而揚其波 衆人皆醉 何不飽其糟而歠其醨 何故深思高擧 自令放爲
(어부왈 성인불응체어물 이능여세추이 세인개탁 하불굴기니이양기파 중인개취 하불포기조이철기리 하고심사고거 자령방위)
屈原曰 吾聞之 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 安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 寧赴湘流 葬於江魚之腹中 安能以皓皓之白 而蒙世俗之塵埃乎
(굴원왈 오문지 신목자필탄관 신욕자필진의 안능이신지찰찰 수물지문문자호 영부상류 장어강어지복중 안능이호호지백 이몽세속지진애호)
漁父莞爾而笑 鼓枻而去 乃歌曰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遂去 不復與言
(어부완이이소 고예이거 내가왈 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영 창랑지수탁혜 가이탁오족 수거 불부여언)
굴원이 추방되어 물가를 거닐면서 시나 읊조리고 다니는데 안색은 초췌하고 모습은 부쩍 야위었다. 어부가 그를 보고 물었다.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시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소?” 굴원이 말했다. “온 세상이 모두 흐린데 나만 홀로 깨끗하고, 사람들이 모두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으니, 이렇게 내쳐지게 되었소.” 어부가 물었다. “대체로 성인은 사물에 얽매여 막히지 않고, 세상과 더불어 변화할 줄 아는 법이오 세상이 흐리면 그 흐린 물에 몸을 적셔 물결을 함께 일으키면 될 터인데, 어찌 그러지 않으시오? 사람들이 취해 있거든 그 술지게미를 배불리 먹고 묽은 술도 함께 마시면 될 터인데, 어찌 그러지 않으시오? 무슨 연유로 고결한 뜻을 가지신 분이 내쫓기는 일을 자초하셨소?” 굴원이 말했다. “내가 듣기로는 머리를 새로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의 먼지를 털어서 쓰고, 목욕을 새로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의 티끌을 털어 입는다고 하였소. 내 뭄이 이렇게 깨끗한데 어찌 세상의 더러움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차라리 상강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 묻히는 편이 낫겠소, 어찌 희고 깨끗한 몸으로 속세의 더러운 먼지를 뒤집어쓴단 말이오” 어부가 빙그레 웃고는 노로 배를 두드리면서 노래하였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 어부가 떠나가서 더 이상 말할 수가 없었다.
‘어부사’의 백미라 할 수 있는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는 ‘맹자(孟子)’의 이루편(離婁篇)에 있는 말로서 ‘유자가(孺子歌)’라고도 불리운다.
사마천의 「사기」 굴원∙가생(屈原賈生) 열전을 보면, 굴원의 어부사와 상당 부분 일치하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어부사’가 후대에서 누군가 사기를 바탕으로 지어 낸 시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珍光이 살펴본 바에 의하면, 굴원 특유의 묻고 답하는 형식의 문답시를 사마천이 풀어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장시(長詩) ‘천문(天問)’에서 굴원은 끝없이 질문하고 있다.
遂古之初 誰傳道之(수고지초 수전도지)
아득한 태초의 처음, 그 이치를 누가 전해 주었는가
上下未形 何由考之(상하미형 하유고지)
하늘과 땅이 형체도 없던 때, 그 근원을 어찌 헤아릴 수 있었겠는가
冥昭瞢闇 誰能極之(명소몽암 수능극지)
어두움과 밝음이 뒤섞여 혼미하던 시절, 그 본질을 누가 밝힐 수 있었겠는가
馮翼惟像 何以識之(풍익유상 하이식지)
혼돈이 마치 날개 펴고 떠다니는 듯한 형상, 그것을 어찌 알아볼 수 있었겠는가
明明暗暗 惟時何爲(명명암암 유시하위)
밝았다 어두웠다 하던 그때,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가
陰陽三合 何本何化(음양삼합 하본하화)
음과 양과 기가 합해졌을 때, 그 근본은 무엇이며 변화는 어찌 시작한 것인가
圜則九重 孰營度之(환칙구중 숙영탁지)
하늘이 아홉 겹으로 둥글다는데, 그 구조를 누가 재고 만들었는가
惟玆何功 孰初作之(유자하공 숙초작지)
이런 대단한 일을 누구의 손에서 처음 이루어졌는가
斡維焉繫 天極焉加(알유언계 천극언가)
하늘을 돌리는 축은 어디에 매여 있으며, 하늘의 끝은 어디에 닿아 있는가
사마천은 굴원에 대해서 말한다.
“장사(長沙)에 가서 굴원이 투신한 멱라수를 바라보다가, 눈물을 떨구며 그의 사람 됨됨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삶과 죽음을 한가지로 보고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을 가벼이 여겼으니, 나는 마음에 깨달은 바가 있어 상쾌해지며 스스로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자살한 전 대통령의 유서에,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라는 글귀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굴원 사후 2천 년이 넘게 흐른 1845년, 미국의 작가 에드가 앨런 포가 ‘까마귀(Raven)’라는 기괴하고도 낭만적인 문답시를 발표하고 4년 후에 객사하였으며, 이로부터 1백 년쯤 지난 1941년,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돌덩이를 안고 우즈(Ouse) 강에 투신하였다. 위대한 시인이나 작가들은 왜 제명대로 살지 못하는가.
기원후 633년 신라 선덕여왕 시절,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인 첨성대(瞻星臺)가 고도(古都) 경주(慶州)에 세워졌다. 1990년 2월 14일, 미국의 과학자 칼 세이건의 주도하에, 지구에서 약 60억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운행하고 있던 보이저 1호의 카메라를 뒤로 돌려, 지구를 포함한 여섯 행성의 가족사진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에서 보이는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으로 이름 지어졌다. 세이건은 우주에서 보면 창백한 점에 불과한 지구라는 행성에서 아웅다웅하는 인간들의 꼴불견을 지적한다. 하지만 인간은 호연지기를 외치며 산에 올라가지만 내려오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상생활의 계산법으로 돌아가는 미약한 존재인 것을 어찌하랴. 그러나 너무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인류는 아직 Pale Dot Blues를 즐길 정도의 여유는 남아 있으니까.
2025년 5월, 중국 국가우주국은 지구 주변을 도는 소행성 탐사를 위해 우주탐사선 ‘톈원(天問)’ 2호를 발사하였다. 탐사선의 이름은 굴원의 시 ‘천문’에서 비롯되었다. 실패한 지식인 굴원의 하늘에 대한 물음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도화원기(桃花源記)
도화원기(桃花源記)와 귀거래사(歸去來辭)로 유명한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중국 동진(東晋)의 시인이다. 정치적 혼란기였던 위진남북조 시대에서, 한직을 전전하다 낙향하여 속세와 인연을 끊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전원시(田園詩)의 개조(開祖)로 불린다.
桃花源記
晋太元中武陵人捕魚爲業(진태원중무릉인포어위업)
緣溪行忘路之遠近(연계행망로지원근)
忽逢桃花林 夾岸數百步 中無雜樹(홀봉도화림 협안수백보 중무잡수)
芳草鮮美 落英繽紛(방초선미 낙영빈분)
漁人甚異之復前行欲窮其林(어인심이지부전행욕궁기림)
진(晉)나라 태원 연간에 무릉 사람 하나가 고기를 잡아 생업을 삼고 있었다. 어느 날 시냇물을 따라 올라가다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도 모른 채 길을 잃고 말았다. 그러다 문득 복숭아나무 숲을 만났는데, 양쪽 언덕을 따라 수백 걸음에 걸쳐 복숭아나무만 가득하고 다른 나무는 하나도 섞여 있지 않았다. 향기로운 꽃이 곱게 피어 있고, 떨어진 꽃잎은 어지러이 흩날리고 있었다. 어부가 이를 이상히 여겨 숲의 끝까지 가보고자 하였다.
林盡水源 便得一山(임진수원 변득일산)
山有小口 彷彿若有光(산유소구 방불약유광)
便舍船從口入 初極狹纔通人(변사선종구입 초극협재통인)
複行數十步 豁然開朗(부행수십보 활연개랑)
土地平曠 屋舍儼然 有良田美池桑竹之屬(토지평광 옥사엄연 유양전미지상죽지속)
阡陌交通 雞犬相聞(천맥교통 계견상문)
其中往來種作 男女衣著悉如外人(기중왕래종작 남녀의착실여외인)
黃髮垂髫幷怡然自樂(황발수초병이연자락)
복숭아나무 숲은 물의 근원에서 끝나고, 그곳에 산 하나가 나타났다. 산에는 작은 입구가 있었는데, 어렴풋이 빛이 새어 나오는 듯하였다. 배를 버리고 그 입구로 들어가니 처음에는 매우 좁아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였다. 다시 수십 보를 걸어 들어가자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며 밝아졌다. 땅은 평평하고 넓었으며, 집들은 가지런히 서 있었다. 밭은 기름지고 연못은 아름다웠으며, 뽕나무와 대나무가 무성하였다. 밭두둑과 길은 사방으로 통하고,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려왔다. 그 사이를 오가며 농사짓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었고, 노인과 아이들 모두가 평화롭게 웃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見漁人 乃大驚 問所從來(견어인 내대경 문소종래)
具答之 便要還家 設酒殺鷄作食(구답지 변요환가 설주살계작사)
村中聞有此人 咸來問訊(촌중문유차인 함래문신)
自云先世避秦大亂 率妻子邑人 來此絶境(자운선세피진시란 솔처자읍인 내차절경)
不復出焉 遂與外人間隔(불부출언 수여외인간격)
問今世何世 乃不知有漢 無論魏晉(문금시하세 내부지유한 무론위진)
此人一一爲具言所聞 皆歎惋(차인일일위구언소문 개탄완)
餘人各復延至其家 皆出酒食(여인각부연지기가 개출주식)
그들은 어부를 보자 크게 놀라며 어떻게 왔는지를 물었다. 어부가 자세히 대답하자 집으로 초대하여 술을 내고 닭을 잡아 대접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모두 찾아와 묻고 또 물었다. 그들이 말하기를, 옛날 진(秦)나라의 큰 난리를 피해 처자식과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이곳까지 들어오게 되었으며, 그 뒤로는 다시 밖으로 나가지 않아 외부와의 왕래가 끊어졌다고 하였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 묻자, 한(漢)나라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니 위(魏)와 진(晉)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부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차례로 말해 주자 모두 탄식하며 놀라워하였다. 다른 사람들도 차례로 어부를 집으로 초대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하였다.
停數日 辭去 此中人語云 不足爲外人道也(정수일 사거 차중인어운 부족위외인도야) 旣出 得其船 便扶向路 處處誌之(기출 득기선 변부향로 처처지지)
及郡下 詣太守 說如此(급군하 예태수 설여차)
太守即遣人隨其往 尋向所誌 遂迷不復得路(태수견인수기왕 침향소지 수미불부득로)
南陽劉子驥 高尙士也(남양류자기 고상사야)
聞之 欣然規往(문지 흔연규왕)
未果 尋病終 後遂無問津者(미과 심병종 후수무문진자)
며칠 머물다가 떠나려 하자, 마을 사람 중 한 사람이 바깥에 이곳의 일을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마을을 나와 배를 찾은 뒤, 왔던 길을 따라 내려가며 곳곳에 표식을 남겨두었다. 군현에 도착하여 태수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태수는 즉시 사람을 보내 그 길을 따라가게 하였으나 표식을 찾지 못해 끝내 길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남양 사람 유자기(劉子驥)가 이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보고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병들어 죽었다. 그 후로는 다시 길을 묻는 사람이 없었다.
도연명은 겉으로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인 듯 담담하게 서술해가지만, 그 속에는 깊은 낭만이 숨어 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듯하면서도 어느 순간 은밀히 감추어둔 상상력을 드러낸다.
유서(遺書)
1987년 학생운동이 극렬하던 당시, 안치환이 대한민국 최초의 노동자 시인 박영근(1958–2006)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라는 곳을 발표하였다. 이 노래는 민중가요 노래패들에 의하여 애창되었다. 청년 노동자 전태일(全泰壹 1948-1970)의 서거 50주기인 2020년 5월, 청계천 무대에서 가수 치타(Cheetah)가 이 곡을 젊은이들 취향으로 재해석하여 반향을 일으켰다.
서울 종로구 관수동에 자리한 전태일 기념관은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을 지나 광장을 내려와 청계천을 따라가면 수표교를 바라보는 왼쪽에 위치한다. 건물 외관의 유리 벽면에는 1969년 전태일이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진정서가 급히 쓴 필체로 그대로 새겨져 있다. 1960년대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재봉사로 일하던 전태일은 여러 차례 강제해고를 당하면서도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투쟁하던 중에,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입구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치르고 분신하였다.
珍光은 앞서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국민 모두가 전태일 열사에게 크고 작은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서구 자본주의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경험한 사우스 코리아는 이념과 계급의 소용돌이 속에서 크나큰 희생을 치렀다. 그 시대의 현장에 있었던 이들은 민주항쟁의 광장에서, 창살 없는 감옥에서, 안기부와 치안본부 지하실에서, 학교 옥상에서 삐라를 뿌리며, 만원 버스 안에서, 변두리의 니나노 집에서 소리치다 지금은 침묵 속에 사라졌다. 지금쯤은 자본주의의 달콤한 맛에 중독되어 무력하게 나이만 축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푸르른 솔이 되어 샛바람에 떨지 말고 살아서 다시 만나기만을 기원하던 그 애절한 희망은 정녕 잊혀지고 만 것인가. 전태일 사후 5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를 기억하고 되새기는 일은 여전히 큰 의미가 있다.
첫 번째 유서(1969년 9월)
친구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기억해 주기 바라네. 그러면 뇌성 번개가 천지를 무너뜨려도, 하늘 바닥이 꺼져 내려도 나는 두렵지 않을 걸세. 그 순간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두려워서야 되겠는가. 오히려 평온해야 할 걸세. 조금이라도 두려움을 가진다면 나는 나를 버릴 걸세. 완전한 형태의 안정을 구하네. 순간, 그 순간만이 중요한 거야. 순간이 지나면 그 후로는 거짓이 존재하지 않네. 그 후로는 아주 안전한 완성된 ‘백(白)’일세. 그 순간은 향기를 발하는 백합의 오후였다고 이야기하게. 그리고 내 자리는 항상 마련해 주게. 테이블 중간이면 더욱 만족하겠네. 그럼 이만 작별을 고하네. 안녕히.
아, 너는 나의 나다. 친구여, 만족하네. 안녕.
두 번째 유서(1970년 4월)
사랑하는 친우여, 받아 읽어주게.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나를 간직해 주기를.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 버린다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무너져 내린다 해도, 그대들의 추억 속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해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해 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사이면 좋겠네.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태일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녀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아니 구애되지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세 번째 유서(1970년 8월)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간,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감아,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해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는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오늘은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의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어가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1970년 8월 9일, 삼각산에서.
전태일은 그해 11월 13일 평화시장 입구에서 분신하였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2011년 9월, 아들이 못다 이룬 일을 이어온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대구 와룡산 기슭에서 시작된 이소선 여사의 삶에는 일본제국주의, 625전쟁, 염천교 다리 밑 판자촌, 청계피복노조, 구로공단, 삼각산 기도원,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어두운 산 역사가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