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A-13

제23장 시와 인생(2)

by 김진광

제23장 시와 인생(2)


비파행(琵琶行)


장한가(長恨歌)로 유명한 백거이(白居易 772-846)는 중국 당나라의 시인으로, 자는 낙천(樂天)이다. 비파행은 백거이가 마흔다섯 살이던 816년, 강주(江州) 사마(司馬)로 좌천된 뒤 지은 616자의 서사시다.


후대의 학자나 서생들은 과거시험 중심의 학문 풍토에 익숙하여 소동파(蘇東坡 1037-1101)류의 시문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백거이의 시가 너무 통속적이라는 평가는, 역설적으로 그의 문학이 민중 속 깊이 파고들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유튜브에는 백거이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들이 여럿 보인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초대 주석 모택동(毛澤東 1893-1976)은 비파행을 너무 좋아하여, 일필휘지 초서로 써 내려 가보니 616자 가운데 다섯 글자만 다르고 나머지는 원문과 일치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나라 시대 반초(班超 32-102)가 서역을 개통한 이후, ‘호악(胡樂)’은 호무(胡舞)를 곁들여 남북조 시대 북위와 북주에서 크게 성행하였고, 수∙당 시대에 이르러 하나의 체계를 갖추었다. 여기에 중심적 역할을 한 악기가 비파(琵琶)였다.


정수일(鄭守一 1934-2025) 선생의 「고대문명교류사」에 따르면, 비파는 원래 말을 타고 연주하던 서역 악기로, 연주법이 손으로 밀고(批), 당기는(把) 동작에서 유래하여 ‘비파’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4현 비파는 페르시아에서 구자(龜玆)를 거쳐 중국에 유입되었으며, 5현 비파는 인도에서 전래되었다. 비파행의 한글 번역은 한문학자 송재소(宋載邵 1943-) 선생의 「당시(唐詩) 일백수」를 주로 참고하였다.


琵琶行

尋陽江頭夜送客(심양강두야송객)

심양강변에서 밤에 손님을 전송하려는데

楓葉荻花秋瑟瑟(풍엽적화추슬슬)

단풍잎과 갈대꽃에 가을 기운이 쓸쓸하다

主人下馬客在船(주인하마객재선)

주인은 말에서 내려서고 손님은 이미 배에 올라

擧酒欲飮無管絃(거주욕음무관현)

술을 한 잔 나누려 하니 풍악을 울릴 악기가 없다

醉不成歡慘將別(취불성환참장별)

취해도 흥이 나지 않고 이별은 서럽기만 한데

別時茫茫江浸月(별시망망강침월)

헤어질 참에 아득한 강물 위로 달빛이 잠겨든다

忽聞水上琵琶聲(홀문수상비파성)

문득 물 위에서 비파 소리가 들려오니

主人忘歸客不發(주인망귀객불발)

주인은 갈 생각을 잊고 손님도 떠나지 못한다

尋聲暗問彈者誰(심성암문탄자수)

소리 찾아 비파 타는 이가 뉘신지 조심스레 물어보니

琵琶聲停欲語遲(비파성정욕어지)

비파 소리가 멈추고 말하려다 머뭇거린다

移船相近邀相見(이선상근요상견)

배를 가까이 대어 서로 만나기를 청하고

添酒廻燈重開宴(첨주호등중개연)

술을 더하고 등불을 밝히며 다시 잔치를 연다

千呼萬喚始出來(천호만환시출래)

천번 만번 부르자 비로소 나오는데

猶抱琵琶半遮面(유포비파반차면)

비파를 안은 채 얼굴을 반쯤 가렸더라


轉軸發絃三兩聲(전축발현삼량성)

축을 돌리고 줄을 튕겨 두어 번 소리 내니

未成曲調先有情(미성곡조선유정)

곡조가 이어지기 전에 정이 먼저 묻어난다

絃絃掩抑聲聲思(현현엄억성성사)

줄마다 눌린듯한 음, 소리마다 그리움이 서려 있고

似訴平生不得志(사소평생부득지)

평생 이루지 못한 뜻을 하소연이나 하는 듯

低眉信手續續彈(저미신수속속탄)

고개 숙여 손 가는 대로 장단을 이어 타니

設盡心中無限事(설진심중무한사)

마음속 끝없는 사연을 다 쏟아내는 듯하다

輕攏慢撚撥復挑(경롱만연발부조)

가볍게 누르고 천천히 비비고 아래위로 튕기니

初爲霓裳後六幺(초위예상후육요)

처음엔 ‘예상(霓裳)’ 같고 나중엔 ‘육요(六么)’같다

大絃嘈嘈如急雨(대현조조여급우)

굵은 줄은 소낙비처럼 요란하고

小絃切切如私語(소현절절여사어)

가는 줄은 속삭임처럼 절절하다

嘈嘈切切錯雜彈(조조절절착잡탄)

조조절절 소리가 뒤섞여 울리고

大珠小珠落玉盤(대주소주락옥반)

큰 구슬 작은 구슬이 옥쟁반에 떨어지는 듯

間關鶯語花底滑(간관앵어화저활)

꾀꼬리 노랫소리 꽃 따라 미끄러지듯 흐르고

幽咽泉流氷下灘(유열천류빙하탄)

얼음 아래 흐르는 샘물처럼 목메어 흐느낀다

氷泉冷澁絃凝絶(빙천냉삽현응절)

차겁고 서늘한 기운이 줄을 얼게 하여

凝絶不通聲暫歇(응절불통성잠헐)

소리가 막혀 잠시 멈추는데

別有幽愁暗恨生(별유유수암한생)

그 틈에서 깊은 시름과 남모를 한이 피어난다

此時無聲勝有聲(차시무성승유성)

이 순간에 침묵이 소리보다 더 깊다

銀甁乍破水漿迸(은병사파수장병)

갑자기 은병이 깨져 물이 튀기듯 하고

鐵騎突出刀槍鳴(철기돌출도창명)

기마병이 돌진하는듯 칼과 창이 부딪쳐 울린다

曲終抽撥當心劃(곡종추발당심획)

곡이 끝나고 한가운데를 그으니

四絃一聲如裂帛(사현일성여렬백)

네 줄이 한 소리로 비단을 찢는 듯하다

東船西舫悄無言(동선서방초무언)

동쪽 배, 서쪽 배 말없이 고요하고

唯見江心秋月白(유견강심추월백)

강 가운데 밝은 가을 달만 떠 있다

沈吟收撥揷絃中(침음수발삽현중)

낮게 읇조리며 채를 거두어 줄 사이에 꽂고

整頓衣裳起斂容(정돈의상기렴용)

옷깃을 여미고 자세를 가다듬어 일어난다


自言本是京城女(자언본시경성녀)

스스로 말하길, 본래 장안의 여자로서

家在蝦螞陵下住(가재하마릉하주)

하마릉(蝦蟆陵) 아래서 살았다 한다

十三學得琵琶聲(십삼학득비파성)

열세 살에 비파를 배워 소리를 터득하였고

名屬敎坊第一部(명속교방제일부)

이름이 교방(敎坊) 제일부에 올랐다네

曲罷常敎善才服(곡파상교선재복)

곡을 마치면 선재(善才)들 감복하여 고개 숙이고

妝成每被秋娘妬(장성매피추랑투)

단장 하면 기녀들의 시샘을 받았다네

五陵年少爭纏頭(오릉년소쟁전두)

오릉(五陵) 공자들이 앞다투어 전두(纏頭·비단 두르는 예)를 바치고

一曲紅綃不知數(일곡홍초부지수)

곡조마다 붉은 비단 셀 수 없이 쌓였으며

鈿頭銀篦擊節碎(전두은비격절쇄)

전두(鈿頭)와 은비(銀蓖)는 장단에 맞춰 흔들리다 부서지고

血色羅裙翻酒汚(혈색라군번주오)

붉은 비단 치마는 엎질러진 술에 물들곤 했다

今年歡笑復明年(금년환소부명년)

그렇게 해마다 웃고 즐기며 세월을 보내며

秋月春風等閒度(추월춘풍등한도)

가을달 봄바람을 무심히 흘려보냈더니

弟徒從軍阿姨死(제주종군아이사)

아우는 군에 가고 이모는 세상을 떠나

暮去朝來顔色故(모거조래안색고)

저녁 가고 아침 오니 얼굴빛도 예전 같지 않게 시들어갔네

門前冷落車馬稀(문전냉락거마희)

문 전은 적막해지고 찾는 이 수레와 말 드물어지고

老大嫁作商人婦(노대가작상인부)

나이 들어 상인의 아내로 시집가게 되었다네

商人重利輕別離(상인중리경별리)

상인은 이익을 중히 여기고 이별은 가볍게 여겨

前月浮梁買茶去(전월부량매다거)

지난 달에 부량(浮梁)에 차(茶) 사러 떠나버렸고

去來江口守空船(거래강구수공선)

떠난 후 강가에서 빈 배만 지키고 있다네

遶船明月江水寒(요선명월강수한)

뱃전엔 달빛만 밝고 강물은 차갑기만 한데

夜深忽夢少年事(야심홀몽소년사)

밤 깊어 문득 젊은 시절 꿈꾸다가

夢啼粧淚紅闌干(몽제장루홍란간)

화장한 얼굴에 눈물이 흘러 붉은 난간을 적시네


我聞琵琶已歎息(아문비파이탄식)

나는 비파 소리 듣고서 이미 탄식했는데

又聞此語重喞喞(우문차어중즉즉)

이야기까지 들으니 한숨이 거듭 나온다

同是天涯淪落人(동시천애륜락인)

그대와 나는 하늘 끝을 떠도는 신세라

相逢何必曾相識(상봉하필증상식)

만나보니 굳이 예전부터 알던 사이일 필요도 없구나

我從去年辭帝京(아종거년사제경)

나는 지난해 장안을 하직하고

謫居臥病潯陽城(적거와병심양성)

심양(潯陽)에 귀양 와 병들어 누워있는 신세라

潯陽地僻無音樂(심양지벽무음악)

심양 땅은 외지고 음악도 없어

終歲不聞絲竹聲(종세불문사죽성)

일년 내내 현악이나 피리 소리 들을 수 없네

住近湓江地低濕(주근분강지저습)

여기 분강(湓江) 근처는 땅이 낮고 습하여

黃蘆苦竹遶宅生(황로고죽요택생)

누런 갈대와 쓴 대나무가 집을 둘러 자라는데

其閒旦暮聞何物(기간단모문하물)

그 속에서 아침 저녁으로 들리는 것이라곤

杜鵑啼血猿哀鳴(두견제혈원애명)

두견이 피 토하는 소리와 원숭이 슬피우는 소리뿐이라

春江花朝秋月夜(춘강화조추월)

봄 강에 꽃피는 아침이나 가을 달 뜨는 밤이면

往往取酒還獨傾(왕왕취주환독경)

이따금 혼자 술 가져다 홀로 기울이곤 했다오

豈無山歌與村笛(기무산가여촌적

산촌이라 해서 노래와 피리가 없으리오마는

嘔啞嘲哳難爲聽(구아조찰난위청)

조잡하고 시끄러워 들을 만한 소리는 아니었다네

今夜聞君琵琶語(금야문군비파어)

오늘 밤 그대의 비파 소리를 들으니

如聽仙樂耳暫明(여청선락이잠명)

선악(仙樂)을 듣는 듯 귀가 잠시 밝아지오

莫辭更坐彈一曲(막사갱좌탄일곡)

사양 마시고 다시 한 곡조 타주시면

爲君翻作琵琶行(위군번작비파행)

내 그대를 위해 비파행을 지어 드리리라

感我此言良久立(감아차언양구입)

내 말을 듣고 감동하여 한참을 망설이다

却坐促絃絃轉急(각좌촉현현전급)

다시 앉아 줄을 조이니 소리가 점점 급해진다

凄凄不似向前聲(처처불사향전성)

먼저 소리와는 다르게 처량하기 그지없다

滿坐聞之皆掩泣(만좌문지개엄읍)

배 안의 사람들 모두 얼굴을 가리고 흐느낀다

就中泣下誰最多(취중읍하수최다)

그중 누가 제일 많이 눈물 흘리는가

江州司馬靑衫濕(강주사마청삼습)

강주사마의 푸른 적삼이 젖었다


장진주(將進酒)


달과 술을 사랑한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701-762)은 페르시아계 혼혈로 추정되는 중앙아시아 사람(현재의 키르기스스탄)이라는 게 정설이다.


將進酒


君不見(군불견)

黃河之水天上來(황하지수천상래)

奔流到海不復回(분류도해불복해)

그대는 알지 못하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다로 내달려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음을


君不見(군불견)

高堂明鏡悲白髮(고당명경비백발)

朝如靑絲暮成雪(조여청사모성설)

그대는 알지 못하는가

높은 집 밝은 거울 앞에서 백발을 슬퍼하는 사람을

아침엔 푸른 실 같던 머리가 저녁엔 눈처럼 희어지는 것을


人生得意須盡歡(인생득의수진환)

莫使金樽空對月(막사금준공대월)

인생이 뜻대로 될 때는 마땅히 마음껏 즐겨야 하니

황금 술잔을 달빛 아래 비워둔 채 외롭게 두지 말라


天生我材必有用(천생아재필유용)

千金散盡還復來(천금산진환부래)

하늘이 나에게 준 재능은 반드시 쓰일 곳이 있고

천금을 다 써버려도 다시 돌아오는 법이다


烹羊宰牛且爲樂(팽양재우저위락)

會須一飮三百杯(허수일음삼백배)

양을 삶고 소를 잡아 즐거움을 누리자

마실 때는 한 번에 삼백 잔이라도 들이켜야 한다


岑夫子(잠부자) 丹丘生(단구생)

將進酒(장진주) 君莫停(군막정)

잠부자, 단구생이여,

술을 권하니 멈추지 말게나


與君歌一曲(여군가일곡)

請君爲我傾耳聽(청군위아경이청)

그대들을 위해 한 곡 노래하리니

귀 기울여 들어주게나


鐘鼓饌玉不足貴(종고찬옥부족귀)

但願長醉不復醒(단원장취불복성)

종과 북, 옥 같은 진수성찬도 귀할 것이 못 되니

그저 오래 취해 다시는 깨지 않디를 바랄 뿐


古來聖賢皆寂寞(고래성현개적막)

惟有飮者留其名(유유음자류기명)

예부터 성현들은 모두 쓸쓸히 사라졌지만

오직 술 마시는 이들만 이름을 남겼다


陳王昔時宴平樂(진왕석시연평락)

斗酒十千恣歡謔(두주십천자환학)

엣날 진(陳)왕이 평락관에서 연회를 열었을 때

한 말(斗) 술이 만 전(錢)이었어도 마음껏 흥겹게 즐겼다


主人何爲言少錢(주인하위언소전)

徑須沽取對君酌(경수고취대군작)

주인장은 어찌 돈이 모자라다 하는가

당장 술을 사와 그대와 함께 잔을 기울이리라


五花馬(오화마) 千金裘(천금구)

呼兒將出換美酒(호아장출환미)

與爾同銷萬古愁(여이동소만고수)

오화마(五花馬)와 천금구(千金裘)가 있으니

아이를 불러 좋은 술과 바꾸어 오게 하리라

그대와 함께 만고의 시름을 녹여버리리라


준시(樽柿)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형식인 ‘하이쿠(俳句)’를 완성한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 1694)는 17세기 에도 막부 시대 일본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는 가난한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하였으며, 평생을 독신으로 에도 변두리의 오두막에서 살았다. 향락과 유희가 만연하던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고, 영감을 얻기 위해 암자에 칩거하거나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도보 여행을 떠나곤 하였다. 바람에 잘 꺾이는 파초(芭蕉)를 좋아하여 호(號)도 파초로 바꾸었다. 마침내 46세에 약 2,400 킬로미터를 150일 동안 걸으며 여행한 기록을 담아「오쿠노호소미치(奧の細道)」라는 기행문집으로 남겼다. 51세에 또다시 방랑길에 올랐다가 오사카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하이쿠는 17음(音)이 5-7-5로 나누어지는 짧은 시이면서도 그 안에 자연과 계절의 변화를 나타내는 계절어(季語)를 포함해야 한다. 짧은 형식 안에 많은 의미를 담아내는 간결함, 일상의 소소한 경험을 포착하는 섬세함, 그리고 명확한 결말을 피함으로써 여운을 남기는 것이 특징이다. 하이쿠의 본령이, 치고 빠지되 설명하거나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본의 정서와 매치되는 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하이쿠의 문학세계에서는 설명과 주장이 필요하지 않다. 바쇼의 ‘17음의 단검’ 같은 시를 2수 감상해 보기로 한다. 류시화의 「바쇼 하이쿠 선집」과 정끝별의 「세계의 명시」, 기타 자료에서 선별하였다. 해설에는 간혹 珍光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가미해 보았다.


古池や蛙飛こむ水のおと

(ふるいけや かわずとびこむ みずのおと)

(후루이께야 가와스도비코무 미스노오토)

오래된 연못 / 개구리 뛰어들며 / 물 치는 소리


(해설) 나는 오래된 연못가에 서 있다. 우수(雨水)가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를 깨우니 어느새 경칩(驚蟄)이다. 개구리가 물을 차니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閑さや岩にしみ入る蟬の聲

(しずかさや いわにしみいる せみのこえ)

(시즈카사야 이와니시미이루 세미노고에)

고요함이여 / 바위에 스며드는 / 매미의 울음


(해설) 소설 「위대한 신세계(Brave New World)」를 쓴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1894-1963)는 이 시를 극찬하며, 바위들 사이의 공간을 채우는 ‘음악적인 텅 빈 고요’ 즉, 절대 고요를 묘사하고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


樽柿の渋き昔を忘るるな

(たるがきの しぶきむかしを わするるな)

(타루가키노 시부키무카시오 와스루루다)

준시여, 떫었던 옛날을 잊지 말라


(해설) 준시(樽柿)는 납작하게 말린 감을 뜻한다. 꼬챙이나 실을 사용하여 말리는 곶감(乾柿)과는 다르다. ‘준시’에 해당하는 마땅한 우리말이 없다보니 부득이 홍시(紅柿)라고들 번역한 것 같으나, 말린 감의 일종인 준시를 홍시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건조 기술이 발달하여, 한국에서도 ‘준시’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판매하고 있다. 준시(樽柿)는 나쓰메 소세끼(夏目漱石 1867-1916)의 작품이다. 그는 메이지 시대의 작가이며 근대 일본 문학의 선구자로 알려지고 있으며, 하이쿠에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한문과 영문에 능하여 다양한 장르에서 개성있는 문체를 구사하였다. 향년 49세에 지병인 위궤양으로 사망하였으며, 오늘날까지도 일본의 셰익스피어로 추앙받고 있다.


早乙女や子の泣くほうへ植えていく

(さおとめや ごのなくほうへ うえていく)

(사오토메야 고노나쿠호우에 우에테이쿠)

모 심는 여인 / 아이 우는 쪽으로 / 모가 기운다


(해설)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 1763-1828)는 에도 시대의 시인이다. 쉰세 살에 얻은 첫아들이 한 달 만에 죽고, 둘째를 천연두로 잃었다. 셋째를 낳다가 아내와 태아가 함께 세상을 떠난다. 이때 자신은 뇌졸중으로 몸에 마비가 찾아온다. 지옥을 경험한 사람답게 한 줄짜리 시가 단검처럼 번뜩인다. 엄마가 모를 심고 있는데 논둑에 눕혀 놓은 아기가 울고 있다. 여인은 하던 일을 멈출 순 없지만, 모 심는 줄이 자신도 모르게 우는 아이 쪽으로 기울어져 간다.


하이쿠는 17음의 정형 안에 촌철살인을 담아야 하는 문학으로서, 시인들에게는 소재와 영감을 찾기 위한 지난한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다만, 한시와 마찬가지로 하이쿠는 뜻과 운과 율이 어울려야 하는데, 외국인이 뜻만 가지고 그 깊은 의미를 헤아리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 아쉽다. 여기에는 일본 문학 전문가들의 도움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이쿠에는 강한 중독성이 있다고 한다. 아마츄어인 珍光이 보기에, 하이쿠는 도를 닦는 심정으로 선문답의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잠시 인기를 끌다가 사라지고 말 유행가 가사에 그칠 가능성도 크다.


바쇼는 문하생들에게 ‘소나무에 대해서는 소나무에게 배우고 대나무에 대해서는 대나무에게 배우라’고 가르쳤다 한다. 자신의 시를 ‘하로동선(夏爐冬扇)’에 비유하여 여름 화로와 겨울 부채처럼 쓸모가 없다고 낮추기도 하였다. 하로동선이라는 말은 중국 후한(後漢) 시대의 자연철학자 왕충(王充 27- ?)의 저서 「논형(論衡)」에 나온다.


동양의 이름난 시인들은 대부분 관직에서 밀려나거나 지방으로 좌천되거나 유배를 당했을 때, 비로소 위대한 시상(詩想)이 생겨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이치인 것인가 보다. 유배로부터 자유로웠던 자들도 또 다른 아픔이 불쏘시개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청사에 남을 멋있는 한마디 말과 그 말을 한 인간은 서로 다를 때가 많으니, 말로 말을 오염시키기도 한다. 인간사에서 복수는 나의 것인가?


관저(關雎)


‘시(詩)’라는 말의 기원인 「시경(詩經)」은 중국 주(周)나라 시대(기원전 9세기-7세기)의 시가집이다. 제후국의 민요를 모은 풍(風), 궁중 음악에 가사를 붙인 아(雅), 종묘 제례에 쓰이던 송(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305편이 전해진다.


시경의 대표적 주석서로서는 당나라 공영달(孔穎達 574-648)의 「모시정의(毛詩正義)」, 송나라 구양수(歐陽修 1007-1072)의 「모시본의(毛詩本義)」, 주희(朱熹 1130-1200)의 「시경집전(詩經集傳)」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는 해석상 견해 차이가 크다. 공자나 주희 역시 시경을 해석하면서 유학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오늘날에는 시경을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나 음시(淫詩)로 매도할 게 아니라, 남녀 간의 연정이나 민요적 감정 그대로 읽어야 한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시경으로부터 천년 후, 중국의 시(詩)가 한반도와 일본으로 흘러들어와 신라 향가(鄕歌)와 일본의 만엽집(萬葉集)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자못 흥미롭다.


시경(詩經) 국풍(國風)의 주남(周南) 편에 맨처음 나오는 ‘관저(關雎)’라는 시를 풀이해 본다. 한글 번역은 여러 자료와 의견을 종합하였다.


關雎

1.

關關雎鳩(관관저구) 꾸우꾸우 물새 한 쌍

在河之洲(재하지주) 모래섬에 노니는구나

窈窕淑女(요조숙녀) 아름다운 아가씨여

君子好逑(군자호구)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짝이로다

2.

參差荇菜(참치행채) 들쭉날쭉 물풀들이

左右流之(좌우류지) 이리저리 흔들리네

窈窕淑女(요조숙녀) 아름다운 아가씨여

寤寐求之(오매구지) 자나깨나 찾아봐도

求之不得(구지부득) 찾아도 얻지못하네

寤寐思服(오매사복) 자나깨나 그리할뿐

悠哉悠哉(유재유재) 아득하고 아득하여

輾轉反側(전전반측) 잠못이뤄 뒤척이네

3.

參差荇菜(참치행채) 들쭉날쭉 물풀들을

左右采之(좌우채지) 이리저리 따모으네

窈窕淑女(요조숙녀) 아름다운 아가씨여

琴瑟友之(금슬우지) 금과 슬을 타며 친해볼까

參差荇菜(참치행채) 들쭉날쭉 물풀들

左右芼之(좌우모지) 이리저리 무성한데

窈窕淑女(요조숙녀) 아름다운 아가씨여

鍾鼓樂之(종고악지) 종과 북으로 꾀어볼까


시경집전이나 모시정의 모두, 이 시를 주문왕(周文王)과 후비(后妃)의 덕을 찬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해설을 보면 꿈보다 해몽이 물량 면에서 막강하다. 그러나 이 시를 민간에서 채집할 당시에는 그런 고매한 의미가 아니었을 것이다. 굳이 남녀 간의 본능까지 지배자의 소유권의 대상으로 넘겨짚어서 과잉해석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처용(處容)이 동해 용왕의 아들일 것도 없고, 서동방(薯童房)이 백제의 무왕일 것도 없다. 인간 사회에서 흔하게 일어날 법한 흔한 일들이다. 이런 낭만시를 과거시험 보는 유생들이 달달 외우고 시험장에 가야 했으니, 아무래도 임금님과 결부시키지 않으면 체면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저구(雎鳩)는 물새이고 행채(荇菜)는 물가에서 흔히 보는 수초이다. 시인은 다정한 물새의 이미지를 요조숙녀에게 투사하고 물풀을 채집하는 동작에 자신의 감정의 흐름을 병치한다. 단순한 그리움에 그치지 않고 금,슬,종,북까지 동원하여 여인의 마음을 얻으려는 열망으로 확장한다.


가지 않은 길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Lee Frost 1874-1963)는 방황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를 지었다. 30대 후반에는 영국으로 건너가 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부인의 병사와 아들의 자살 등 가정적으로는 불우하였다.


퓰리처상을 네 차례 수상한 그는 지금도 국민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가지 않은 길’은 여러 나라에서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배우는 작품이라 식상하기까지 하지만, 들여다볼수록, 외국인에게는 쉽게 읽혀지는 시는 아닌 것 같다. 珍光은 이 글을 쓰기 위해 상당히 많은 번역문을 읽어보았지만, 외국어의 해석과 운율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맘에 드는 번역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고대 페르시아의 시를 포함하여 잠자고 있는 명시들은 다음 기회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가지 않은 길’에서 프로스트는 젊어서 마이너리티의 길을 선택하였고, 그 결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 점은 젊은 시절 여러 차례 기회를 잡거나 놓쳐본 경험이 있는 자는 누구나 공감하는 일일 것이다. 아마도 둘 중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했고, 그 결과가 수십 년에 걸쳐 어떻게 나타났는지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더구나, 아흔아홉 가지의 기적이 단 한 차례의 우연으로 무너지는 소중한 경험을 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설령 길을 잘못 들었더라도 열심히 살았기만 한다면, 예상하지 않았던 부산물이 오히려 후생가외(後生可畏)로 다가오는 행운도 있었을 것이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위대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대부분의 번역자들이 놓치고 있는 지점이기도 한다. 삶의 굴곡을 깊이 경험한 프로스트는 세월이 흐른 뒤 돌아보며 깨닫는다. 갈림길에서 어느 길을 선택했든 근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다는 사실을. 두 길은 실제로 “거의 같았고”, “똑같이 앞에 놓여 있었으며”, “아무도 밟지 않은 낙엽 위에” 있었다. 그럼에도 인간은 훗날 그 선택을 특별한 선택으로 미화한다. 결국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이고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프로스트는 서양판 노장철학(老莊哲學)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두 갈래 길 앞에서 인간의 선택은 선택할 당시에는 자유의지의 발로였을지라도 종국적으로는 두 길 다 만날 수밖에 없고, 비록 두 길이 이 생에서 만나지 않을지라도 자기가 만든 신화(self‑mythologizing)일 뿐이다.


기대수명이 길어지는 추세에서 제2의 인생을 찾을 기회도 많아졌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스트의 시대 보다 ‘가지 않은 길’을 다시 만회할 기회는 훨씬 높아졌다. 프로스트는 훗날을 기약하면서도, 그런 기회가 다시 올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지만 이제는 예전보다 실패를 감수하고 선택을 감행하기 쉬운 시대이다. 그만큼 리스크가 줄었다는 것이지만 여전히 리스크는 아프다. 불변의 사실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는 점이다. 끝도 없는 회한에 방황하지만 않는다면.


The Road Not Taken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단풍이 물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두 길을 다 가볼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한 사람의 여행자로서 나는 한참을 서 있다가

길이 굽어져 숲속으로 사라지는 곳까지

볼 수 있는 한 멀리 길을 바라 보았습니다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그리고 나는 다른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 길도 먼저 본 길만큼 근사해 보였습니다

풀도 더 우거져 있어

아직 덜 다닌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나온 발자욱만 놓고 보면

두 길은 사실 거의 비슷하게 닳아 있었습니다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아무 발자국도 남기지 않은 채

낙엽만 쌓여 있었습니다

나는 첫 번째 길은 언젠가를 위해 남겨 두었지만

길이 길로 이어지는 법을 알고 있기에

과연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습니다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어디선가

나는 아마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노라고

그리고 그것이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노라고


‘가지 않은 길’이 쉽고도 어려운 것은, 시인이 운명이라는 메타포를 철저하게 자연 속에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가지 않은 길이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리라. 산을 오르다 보면 자주 두 갈래 길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일부러 찾아가는 경우는 드물다. 산의 정상에 오르려는 목표가 정해진 이상, 가는 경로는 가장 안전한 길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앞서간 사람들이 시행착오로 만들어놓은 길이 가장 안전하다. 인생의 길을 가는 데에서도 대체로 등산의 원리가 적용되겠지만,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보는 기회는 항상 열려있다. 물론 원인도 결과도 자기책임이다.


프로스트는 단순히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이 아니었다. 천성적인 마이너리티에 가정의 불우함과 전쟁의 참혹함을 목도한 시대의 증인이었다. 그래서 그가 노래하는 자연은 비자연을 노래하기 위한 마중물이었다. 세속을 살아가는 시인이 시를 담아내기 위한 그릇으로 자연을 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인간에게 자연은 아는 만큼 더 잘 보이는 위대한 질서이자 상상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도연명이 무릉도원을 노래할 때는 유토피아에 대한 시인의 사상을 숨기고 있다. 그리고 그 사상이 인위적이지 않도록, 자연스럽도록 표현하는 것은 시인의 재능이다. ‘가지 않은 길’의 한글 번역에는 피천득 선생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버전을 참조하였으나, 번역본의 뉘앙스가 상이하고 배경지식도 너무 달랐다. 부득이 珍光의 주관적 해석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


한국에는 「무한화서」라는 시론을 발표한 이성복 시인이 있다. 꽃들은 이기적 유전자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장기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판게이아 이전의 지남력을 가지고 태양과 중력을 향하여 꽃을 피우며, 아직은 열매를 맺을 시간이 아깝다는 듯 각자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식물의 꽃차례에 대해서 조사하다 보면, 각자 그 나름의 신묘함에 감탄하게 된다. 무한화서만 예를 들어 보더라도 접시꽃이나 히아신스와 같이 꽃자루가 마주 보거나 어긋나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꽃이 피는 총상화서(Raceme)가 있는가 하면, 수국(水菊)이나 개망초처럼 꽃자루의 길이가 서로 다르나 꽃은 거의 같은 위치에서 완만하게 수평을 이루어 피는 산방화서(Corymb)라는 것도 있다.


미나리나 산수유처럼 같은 위치에서 우산의 살처럼 집중적으로 꽃대가 올라온 후, 우산이 펼쳐진 모양으로 일제히 꽃이 피는 산형화서(Umbel)가 있는가 하면, 맥문동이나 보리처럼 꽃이 이삭 모양으로 피는 수상화서(Spike)도 있다. 해바라기나 국화와 같이 꽃대가 없이 꽃들이 한곳에 모여 머리 모양을 하고 피는 두상화서(Capitulum), 버드나무나 참나무처럼 꽃잎이 없이 꽃들이 밑으로 축 처지는 유이화서(Ament 柔荑花序)도 있다.


오늘 하루 무심코 걷다가 주변의 화단이나 길가에서 평소 지나치던 이름 모를 꽃의 차례가 어디에 해당하는지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 오늘 하루가 꽃에 대하여, 들풀에 대하여, 또는 잡초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첫날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생명은 선의의 관심에 반응한다.


앞 장 어디선가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성복 시인은 시(詩)라는 것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다 끝없이 실패하는 형식’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곤, ‘신라 사람이 다 사라져도 포석정은 남아 있으며, 쳐다보던 사람들이 다 지나가도 하늘의 애드벌룬은 그대로 떠 있다. 그처럼 우리가 없어져도 ‘시’는 남을 것이다. 뇌수가 빠져나간 해골처럼, 슬픔도 기쁨도, 꿈도, 꿈꾸는 사람도 없이......’


이성복이 주는 암시를 이어받아 시경의 맨 처음에 나오는 ‘관저(關雎)’라는 시에 대해서 재해석해 보자. ‘관저’에 대해서 공자님과 주자님을 포함한 대부분의 유학사대부들은 현명하고 정숙한 왕비가 왕을 걱정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담은 내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서경을 편집한 편집자들은 ‘관저’를 맨 앞에 내세울 만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면에, ‘관저’는 김삿갓이 즐겨 사용하던 중의적 표현의 방식을 빌어서, 남녀 간의 애틋함을 상당히 노골적으로 표현한 시라는 관점이 있다. 아마도 각 지방을 돌며 채집해 온 민요 중에는 상당수가 풍속을 해친다고 생각할 만한 시들이 많았을 것이다. 채집관들은 이들을 걸러내느라 나름 노력하였으나, ‘관저’는 정교하게 채집하는 자의 그물을 빠져나와 오히려 용비어천가로 자리매김하였다. 시(詩)라는 형식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을 표현하려다 온전한 전달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효자노릇을 하며 살아남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 잡아봐라는 듯이 교태를 부리는 글자의 배열들은 분서갱유에도 살아남은 오만과 뻔뻔함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관저’는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같이 스스로를 구원하였다.


애초에 시경의 편집자나 시험감독관이 ‘관저’에서 남녀상열지사를 읽었다면, 이를 시경 풍(風)의 맨 앞에 내걸고 무조건 외우기부터 가르치는 당시 과거시험의 필수과목에 포함시켰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관저를 음시(淫詩)로 해석하면 관관저구, 재하지주, 요조숙녀, 참치행채, 좌우유지, 좌우채지, 좌우모지, 전전반측, 금슬우지, 종고악지가 다 음어(淫語)로 해석될 수 있다. 금슬(琴瑟)은 악기의 이름을 넘어 성교하는 남녀의 신음소리로 변한다. 그러므로 ‘끝없이 실패하는 형식’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정확한 해석을 유보하고 독자의 상상력을 유발하는, 아마도 ‘관저’를 지은 민중 시인 자신도 잘 몰랐을 메타포, 그리하여 3천 년 동안 감추어진 비밀과 신비주의를 앞세운 밀당이 화석이 되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공자님이 시경에 나오는 ‘절차탁마(切磋琢磨)’를 이야기하실 때에는 학문이나 덕행을 갈고 닦음을 뜻하였다. 그러나 동네 아낙이 절차탁마를 이야기할 때에는 조각처럼 멋진 남정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꽃들을 창조 혹은 진화라는 과학자들의 형식에 담아내기에는 너무 다양하고 아름답다. 꽃을 꽃병에 담는 순간부터 아름다움이 시한부로 시들어가는 것처럼, 사물을 어떤 그릇에 담으려는 노력들은 어쩌면 허망한 노릇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시인보다 시를 평하는 사람들이 더 멋있는 어휘를 동원하려 애를 쓰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수천 년 동안 몰랐던 것, 말이라도 멋스럽게 해보자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珍光과 같은 아마추어의 취향으로는, 기왕이면 문학은 러시아식 장편소설이거나 아니면, 길가메시 정도의 서사시여야 한다. 한반도에도 천 년 동안의 고독이 어느 곳 못지 않아서, 판소리가 회한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박성현 시인의 ‘사과의 회전’은 다분히 물리적이다. 먼 옛날, 시공간은 무너지고 빛은 중력에 휘어졌다. 인간과 동물, 동물과 식물,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가 허물어진 퀀텀공간에서, 나와 타자는 쉬뢰딩거의 고민하는 고양이일 뿐이다. 이들은 아무런 감정이입 없이 다시 말하면, 아무런 실존적 고민 없이 서로 중첩과 얽힘과 도약을 반복한다. 그들은 니체의 원형회귀를 꿈꾸며 권태도 없이 고독도 없이 무한궤도를 반복할 뿐이다.


결국은 디스토피아인가? 빛은 어쩌다 주어진 선물이었고 암흑물질이 본질이었던가? 나와 타자에게 생물과 무생물과 인공지능을 포함하는 세상은 철학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 모두 우주의 주인으로서 은하계를 하나씩 소유하고 있는데, 아직 등기부 열람을 못하여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무튼, 생전에 나를 대행하는 로봇 하나쯤 가져볼 수 있을지 하는 현실적 기대 정도는 가져봄 직하다.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에서 뉴턴의 사과는 무력하긴 마찬가지다. 사과는 웃으면서 아스팔트 위에 떨어져 썩어간다. 시간을 재는 시계는 역할을 상실한 채 서랍 속에 구겨져 있다. 회전목마가 거주하는 서랍에서 문서로 된 서류는 무중력의 공간을 떠다닌다. 시간은 불일치하고 빛은 역할을 찾지 못하여 모서리에 앉아 있다. 원근도 의미를 상실한 채 죽음을 향한 고요만이 가득 차 있다. 화자는 우주의 암흑 한가운데 있다. 암흑의 공간에서 중력의 법칙은 작동하지 않으며, 시간과 빛도 그 역할을 잃은 지 오래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회전목마처럼 원운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화자에게 남은 것은 무기력하거나 권태로움을 애써 피하고자 유쾌함으로 가장한 자유의지의 놀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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