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장 식물의 세계
제21장 식물의 세계
식물학 개론
대부분의 시민들은 진달래와 철쭉을 구분하거나 갈대와 억새의 차이를 알아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감람나무가 올리브나무이고, 종려나무가 야자수라는 걸 알게 된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 한참 후의 일이었을 것이다.
지구 역사에서 최초로 광합성을 시작한 생물은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였다.
6CO₂ + 6H₂O → C₆H₁₂O₆ + 6O₂
광합성에서는 이산화탄소와 물이 햇빛 에너지에 반응하여 탄수화물인 포도당을 만들고 산소를 방출한다.
태양의 빛 에너지와 시아노박테리아의 엽록체가 협력하여,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리하는 작용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물을 인위적으로 전기분해하여 산소와 수소를 분리하기 위해서는 800도 이상의 고온과 촉매제가 필요하여 지금도 경제성이 확보되지 못하고 있는데, 이 어려운 일을 남세균(藍細菌)은 비교적 쉽게 수행하였다. 바다에 서식한 시아노박테리아가 독성을 가진 산소를 무제한 방출하기 시작하자, 지구는 산소에 적응한 생물 중심으로 재편되고 이들만 살아남아 번성하였다.
꽃을 피우는 식물인 속씨식물은 지금으로부터 1억 5천만 년 전과 6,600만 년 전에 걸치는 백악기에 등장하였다. 속씨식물은 꽃과 열매를 맺기 위해 중복수정이라는 복잡하고 신비스러운 과업을 수행하며, 그 결과물로서 배와 배의 영양분이 되는 배젖을 만들어낸다. 꽃가루가 암술머리(stigma)에 붙으면, 먼저 수색부대가 꽃가루관을 밑씨와 연결하는 작업을 수행하며, 이 관을 따라 정핵세포(n) 2개가 이동한다. 이 중 1개의 정핵세포는 난세포(n)와 결합하여 2배체인 배(2n, 胚 embryo)를 형성하고, 나머지 1개의 정핵세포는 극핵(2n)과 결합하여 3배체인 배젖(3n, endosperm)을 형성한다.
이성복 시인은 시론집 「무한화서(無限花序)」에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언어로 표현하려다 끝없이 실패하는 형식’이 시(詩)라고 주장한다. 무한화서란 꽃을 피우는 순서가 아래로부터 위로 향하는 꽃차례를 말한다. 반대로, 꽃차례가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꽃차례를 유한화서라고 일컫는다. 무한화서를 가진 나무는 꽃을 피우는 재량권이 위로 무한히 열려 있는 듯하지만, 태생적인 한계를 넘지는 못하고 중력과 타협하여 일정한 높이에서 제한된다.
1만 년 전, 인간과 식물의 합작으로 야생식물의 작물화가 진행되었다. 그때부터 식물을 재배하는 기술이 발달하였다. 이랑과 고랑을 구분하고, 씨를 뿌리는 방법도 식물의 식상과 지형에 따라 흩어 뿌리거나, 골을 타서 뿌리거나, 띄엄띄엄 뿌리거나, 한 곳에 여러 씨앗을 뿌리는 방식으로 다양화되었다. 씨앗을 발아시키거나 저장하는 기술도 발달하였다.
번식 방법도 종자번식 외에 잎, 줄기, 뿌리의 일부를 나누어 심는 영양번식(무성생식)으로 확장되었다. 영양번식은 대량생산에는 불리했으나, 생장이 빠르고 모체와 동일한 형질의 개체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였다. 실제로 마늘이나 바나나, 감귤, 감자 등은 영양번식이 거의 주된 번식 수단이기도 하다. 영양번식에는 꺾꽂이, 접붙이기, 휘묻이, 포기나누기, 뿌리나누기 등 다양한 방법이 활용되었다.
영양번식이나 조직배양은 식물 특유의 전체형성능(全體形成能, totipotency)을 이용하는 것으로서, 식물은 조직의 일부만으로도 새로운 개체를 재생하고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무척추동물인 플라나리아(planaria), 해삼, 불가사리에서도 전체형성능과 유사한 세포 재생능력을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척추동물은 진화 과정에서 살과 뼈를 주고 두 발로 걷기와 큰 뇌를 취하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전략을 선택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식물에는 암꽃과 수꽃이 같은 꽃 속에 함께 있는 양성화(兩性花)가 있는가 하면, 암꽃과 수꽃이 서로 떨어져 있는 단성화(單性花)가 있다. 단성화 중에서는 암꽃과 수꽃이 한 몸에 있지만 꽃의 위치가 다른 암수한몸의 자웅동주(雌雄同株, monoecious)가 있는가 하면, 암꽃 나무와 수꽃 나무가 별도로 독립적인 개체인 암수딴몸의 자웅이주(雌雄異株, dioecious)가 있다. 꽃이 피는 식물의 약 70퍼센트는 양성화다.
꽃은 평상시에는 바람이나 곤충을 이용하여 다른 꽃가루를 받아들이지만, 유사시에 빠른 번식이 필요할 때에는 자기 꽃가루를 선택하여 대가 끊기는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 그러나 근교약세로 인한 부담은 감수해야 한다. 단성화 중 자웅동주에는 옥수수, 오이, 호박, 소나무, 삼나무 등이 있으며, 자웅이주에는 은행나무, 뽕나무, 시금치, 아스파라거스 등이 있다.
양성화나 자웅동주이화(異花)는 근친교배로 인한 자식약세(自殖弱勢)를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를 두고 있다. 암술과 수술의 길이가 다르거나, 암술과 수술의 성숙 시점을 달리하거나, 화분관이나 배의 발달을 억제하여 자가수분이 불가능하도록 하는데, 이를 자가불화합성(self-incompatibility) 현상이라 한다. 여기에는 사과, 배, 복숭아, 백합, 피튜니아 등이 포함된다. 수술 자체에 원천적인 결함이 있어서 수정을 어렵게 하는 웅성불임성(male-sterility) 현상도 있다. 여기에는 토마토, 고추, 양파, 파, 당근, 옥수수 등이 있다. 자가불화합성이나 웅성불임성은 수분시기를 조절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인공적으로 타파할 수 있다.
식물에 따라서는 수정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배가 형성되어 종자가 생성되는 무수정생식(apomixis)이라는 현상도 있다. 여기에는 부정배형성(adventitious embryony, 감귤), 무포자생식(apospory, 부추), 복상포자생식(diplospory, 벼과·국화과 식물), 위수정생식(pseudogamy, 담배·목화), 웅성단위생식(male parthenogenesis, 달맞이꽃) 등이 보고된다.
위와 같이 식물은 동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생식 기작을 보인다. 단성화나 자웅동주, 자가불화합성과 웅성불임성, 아포믹시스 외에도 순종을 얻기 위한 역교배(back cross)나 씨 없는 수박과 같은 3배체(triploid) 교배, 그밖에 조직배양이나 유전자 조작과 같은 인공적인 실험도 가능하다. 식물을 통하여 우리는 윤리적 제약 없이 생명현상에 대해 진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종자의 세계는 다양하다. 상추나 담배와 같이 햇빛을 좋아하는 종자가 있는가 하면, 양파나 수박과 같이 햇빛을 싫어하는 종자도 있다. 보리, 밀, 감자와 같이 겨울을 지내고 봄에 개화하여 수확하는 장일식물(long-day plants)이 있는가 하면, 벼, 옥수수, 고구마, 들깨와 같이 봄에 심고 가을에 개화하여 수확하는 단일식물(short-day plants)이 있다. 옥수수, 오이, 토마토처럼 낮의 길이에 영향을 받지 않는 중성식물(day-neutral plants)도 있다.
인간은 식물의 일장성(日長性)을 극복하여 생산성을 높이기 위하여 춘화처리(vernalization)를 시도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녹체춘화와 종자춘화가 있으며, 인공조명으로 식물의 일장감각을 조절하는 방법도 있다.
과일과 채소를 구분하는 실익은 의외로 크다. 18세기 말 미국에서는 채소에만 관세를 매기고 과일에는 관세를 매기지 않았다. 1893년 토마토 수입업자 존 닉스(John Nix)가 관세청을 상대로 한 법정 소송에서, 토마토는 과일이기 때문에 관세 부과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토마토는 오이, 호박, 아보카도, 피망과 같이 과일로 분류되고 있었음에도, 미국 대법원은 토마토를 채소라고 판결하였다. 토마토는 디저트라기보다는 주식에 들어가는 식재료이므로 채소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가지, 오이, 호박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이 판결은 생물에 이름을 붙이는 방식을 혼란에 빠뜨렸다(사이먼 반즈 Simon Barnes, 「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
과일은 꽃이 핀 다음 씨방이 발달한 것을 말하는 반면, 채소는 식용이 가능한 잎, 줄기, 뿌리를 말한다. 열매이지만 채소로 분류되는 열매채소(果菜類, fruit vegetables)도 있다. 오이, 호박, 가지, 고추, 토마토, 딸기, 수박, 콩 등 주로 가지과 또는 박과, 콩과 식물을 말한다. 과일이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인 반면, 과채류는 풀에서 나는 열매이다. 과일은 달콤하고 상큼한 향과 맛이 나는 반면, 채소는 담백하며 약간 쌉쌀한 맛을 낸다. 버섯은 과일도 채소도 아니며 동물도 식물도 아닌 균류로 분류된다. 과일과 채소를 막론하고 빨간색은 라이코펜, 노란색은 베타카로틴, 보라색은 안토시아닌, 녹색은 루테인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발효
인류는 남조류가 무한정 배출하는 산소와 소행성 충돌과 식물의 광합성 작용 덕분에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할 수 있게 되었지만, 탄수화물을 섭취하고 산소를 호흡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며 살아갈 수 없었다. 생존 욕구를 넘어 문화적 욕구를 충족하기에는 산소가 아닌 또 다른 화학작용이 필요하였다.
산소혁명으로 산소를 싫어하는 생명체의 대규모 소멸이 발생했다고 해서 미생물이 모두 멸종한 것은 아니었다.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탄수화물을 분해하여 운동에너지를 얻는 방법에는 산소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산소호흡이 인간의 생존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라면, 미생물 작용은 문화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특권이 되었다.
다양한 문화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대표적인 식품이 발효식품이다. 발효(醱酵, fermentation)는 미생물이 산소의 도움 없이 또는 산소와 함께 유기물을 분해하는 과정이나 그 결과물을 말한다. 발효를 일으키는 균으로는 누룩, 효모(酵母, yeast), 유산균 등이 있으며, 발효의 부산물에는 알코올, 젖산, 식초 등이 있다. 김치나 치즈, 요구르트, 빵, 포도주, 맥주 등은 발효를 통하여 얻어진다.
효모는 균류(fungi)에 속한다. 세포핵이 있는 생물을 진핵생물(eukaryote)이라 하며 동물도 식물도 아닌 균류로 분류한다. 대략 1,500종이 알려져 있는 효모 중에서, 대표적으로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지에(Saccharomyces cerevisiae)’는 포도주나 맥주를 양조하거나 빵을 발효시켜 부풀게 하는 효모균이다.
기원전 1만 년 전에도 맥주가 존재했다는 증거가 있다. 술은 인류 문명의 발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종교 의식과 황홀한 경험과 신들과의 교감 그리고 일상의 즐거움과 흥겨움을 위하여 인류는 술을 마셨다. 오늘날에는 효모를 추출하여 만든 건강보조식품들이 유행하고 있다. 효모가 노화방지와 DNA 수선에 유용하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효모와 인간의 협력관계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발효는 세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술이나 빵을 만드는 알코올 발효, 김치나 요구르트를 만드는 젖산 발효, 식초를 만드는 초산(아세트산 발효)가 그것이다.
1) 알코올 발효
C₆H₁₂O₆ → 2C₃H₄O₃ → 2C₂H₅OH + 2CO₂
(포도당) → (피루브산) → (에탄올) + (이산화탄소)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는 효모와 같은 혐기성 세균이 작용하여 포도당의 해당과정(glycolysis)을 거쳐 피루브산(pyruvate)을 만들고, 부산물로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를 생성한다. 재미있는 것은 발효에 관여한 효모는 자기가 만든 에탄올을 견디지 못하고 할 일을 다 한 후 죽는다는 사실이다.
2) 젖산 발효
C₆H₁₂O₆ → 2C₃H₄O₃ → 2C₃H₆O₃
(포도당) → (피루브산) → (젖산)
알코올 발효와 마찬가지로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유산균과 같은 종류의 세균이 작용하여 젖산(lactate)을 생성한다.
3) 초산 발효
C₂H₅OH + O₂ → CH₃COOH + H₂O
(에탄올) + (산소) → (아세트산) + (물)
루이 파스퇴르는 ‘아세토박터 아세티(Acetobacter aceti)’에 의한 식초의 발효 작용을 규명하였다. 아세토박터 아세티는 식초 속에서도 잘 살아남는다.
버드나무
흔히 ‘엔세이드(NSAID)’라고 하는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치료제에는 ‘아스피린’이라 부르는 아세틸살리실산(Acetylsalicylic acid)과 이부프로펜(Ibuprofen)과 나프록센(Naproxen)이 있다. 이밖에 ‘타이레놀’이 대표하는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 phen)이 있다.
살리실산이 주성분인 아스피린은 해열, 진통과 심혈관 질환에 효과가 있으나 위장 출혈을 일으키거나 혈액 응고를 억제하는 부작용이 있다. 특히, 소아에게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보고되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이부프로펜과 나프록센이 개발되었다. 이부프로펜은 진통제뿐만 아니라 종합감기약으로도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다. 나프록센은 약효가 오래 가고 심혈관계 부작용도 적은 것으로 검증되고 있다. 아세트아미노펜(또는 파라세타몰)은 진통 효과가 빠르고 내성이 생기지 않는 등 부작용이 거의 없다고 하나, 해열 작용은 강한 데 비해 소염 작용은 약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장기 복용하면 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예컨대 염증을 동반하는 통증인 치통 같은 경우에는 이부프로펜이 아세트아미노펜보다 더 효과가 뚜렷하다. 그러나 발치하고 일단 소염제를 사용하였다면, 추가적인 처방으로는 아세트아미노펜이 효과적이다. 타이레놀은 아스피린이나 이부프로펜, 나프록센에 비해 내성은 적고 진통 효과는 빠르나, 항염 효과는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아세트아미노펜과 카페인을 같이 섭취하면 약리효과가 증대된다고 하며 감정적 고통을 완화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라는 보고도 있다.
버드나무 껍질의 씁쓸한 수액에는 통증을 줄이고 열을 내리는 살리실산이 풍부히 함유되어 있다. 이 물질에 대한 언급은 고대 수메르 점토판과 이집트 파피루스 기록에도 남아 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도 이 약의 효능에 주목하였다. 1897년 독일 바이엘 제약회사의 연구원 펠릭스 호프만(Felix Hoffmann, 1868-1946)은 살리실산의 부작용인 소화장애를 억제하기 위한 연구를 하던 중, 아세틸살리실산(ASA)을 합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바이엘은 이를 ‘아스피린’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하였다.
사토 겐타로의 저서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에서는 비타민C, 퀴닌, 모르핀, 마취제, 소독약, 살바르산, 설파제, 페니실린, 아스피린, 에이즈 치료제를 소개한다. 이 중 퀴닌(Quinine)은 모기를 매개로 하는 말라리아(Malaria)의 치료제이자 예방약으로서 남미가 원산지인 키나나무(Quinine tree) 껍질에서 추출한 알칼로이드(alkaloid) 유기물이다. 매년 50만 명 이상이 말라리아로 사망하고 있는 현실에서, 퀴닌은 스페인이 점령한 남아메리카에서 독점 생산되어 유럽인이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퀴닌계 합성약물인 퀴나크린(Quinacrine)과 클로로퀸(Chloroquine)이 개발되면서 키나나무는 착취를 피해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현재, 퀴닌은 형광색을 띤 토닉워터의 주성분이며, 항암제로서도 재발견되고 있다.
사상의학
이제마(李濟馬, 1837-1900)는 함경도 함흥 출신으로 조선 말기의 무관이자 한의학자였다. 동네 진사와 주막집 주모의 딸 사이에서 서출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 질병을 앓다 보니 자연스럽게 의학 공부에 열중하게 되었다.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올랐으나 오래하지 못하고 귀향하여 보원국(保元局)이라는 한의원을 운영하다 1900년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중국의 『황제내경』 등을 참고하여 1894년, 사상의학을 결집한 『동의수세보원』을 편찬하였다.
일찍이 히포크라테스는 인체는 네 가지 종류의 액체인 혈액, 점액, 담즙, 흑담즙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으며, 이들 성분의 강도에 따라 성격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혈액 성분이 강하면 다혈질, 점액이 많으면 점액질, 담즙이 많으면 담즙질, 흑담즙이 많으면 우울질로 분류하였다.
이제마는 주역의 원리와 관상철학, 인체의 구조와 성격을 결합하여 여기에 맞는 약재를 처방하였다. 예를 들어, 몸이 차가운 사람은 오이, 감자, 두부 등의 음식이 맞지 않으나, 역으로 장기간 섭취함으로써 체질을 개선할 수도 있다. 여러 음식 중 자신도 모르게 손이 가는 음식을 보면, 그것이 체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어 놀라곤 한다. 우리는 남에게 좋다는 약도 나에게는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사상의학에 의하면 인간의 체질은 태양인, 소양인, 소음인, 태음인의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태양인은 가장 수가 적어 구별하기 어려운 체질이다. 태음인은 체형이 뚜렷해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으나 판별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소양인은 수가 많아 비교적 구별하기 쉽다. 소음인은 상체보다 하체가 균형 있게 발달하였고, 대체로 체격이 말랐다. 이제마의 기록에 따르면, 1만 명 중 태음인이 5천 명, 소양인이 3천 명, 소음인이 2천 명, 태양인은 3~10명 정도라고 한다.
이제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 첫째, 그는 전문 의료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둘째, 체질 진단에 일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셋째, 체질론 자체에 대한 의문이다. 작위적인 체질론은 유사의학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ABO 혈액형이나 에니어그램, MBTI로 성격을 판별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체질은 서로 다르며, 이에 맞게 처방도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근거는 없다.
이는 삶의 지혜로서 누구도 이를 부정할 수 없다. 이를 주술적 또는 영리 목적으로 과도하게 이용하려는 시도가 문제가 될 뿐이다.
비주류의 본초학
중국 명나라 약리학자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은 1590년, 52권으로 편찬한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1,892 종의 약재를 기록하였다.
이 책에서 분류한 약초를 종류별로 살펴보면,
산에서 나는 약초에는 감초, 고사리, 도라지, 두릅(독활), 방풍, 할미꽃, 삽주(백출), 더덕, 수선화, 미나리, 음양곽(삼지구엽초), 인삼, 주목, 천마 등이 있다.
향기성 약초에는 강황, 당귀, 목단(모란), 박하, 울금, 백작약(함박꽃), 향부자, 매자기(형삼릉) 등이 있다.
습지성 약초에는 갈대뿌리, 결명자, 머위, 맨드라미, 패랭이꽃(계관화), 국화, 조릿대잎, 엉겅퀴, 마황, 맥문동, 부자, 봉선화, 쑥, 반하, 닭의장풀, 박새, 구절초(들국화), 개나리, 영춘화, 옥잠, 까마중, 우엉, 익모초, 모시풀, 질경이, 도꼬마리, 바나나, 철쭉, 마디풀, 피마자, 홍화 등이 있다.
덩굴성 약초에는 갈근, 나팔꽃씨앗, 인동덩굴, 복분자, 뱀딸기, 찔레꽃, 오미자, 능소화, 하수오, 산딸기 등이 있다.
약용 곡식에는 녹두, 메밀, 엿기름(맥아), 아편(앵속), 아마, 옥수수, 완도, 율무, 적두(팥), 피 등이 있다.
약용 채소류에는 가지, 씀바귀, 여주, 마늘, 쇠비름, 명아주, 목이버섯, 부추, 백합, 생강, 마, 미나리, 수세미, 어성초, 상추, 유채, 죽순, 시금치, 비름, 민들레, 당근, 조롱박, 오이 등이 있다.
약용 과일에는 감꼭지, 개암나무, 귤껍질, 대추, 무화과, 매실, 모과, 밤, 배, 복숭아, 비자나무, 사과, 살구, 상수리, 석류, 수박, 앵두, 연꽃씨, 연뿌리, 오렌지, 유자, 은행씨, 자두, 헛개나무, 포도, 호도, 후추, 참외 등이 있다.
약용 나무에는 가래나무, 계수나무, 구기자, 오동나무, 알로에, 장뇌(녹나무), 느릅나무, 동백나무, 두충, 무궁화, 박태기나무, 버드나무, 자작나무, 벽오동씨앗, 삼나무, 뽕나무껍질, 뽕나무열매, 뽕나무잎, 뽕나무가지, 산수유, 뽕나무겨우살이, 상사나무, 소나무, 안식향, 엄나무, 오갈피나무, 가시오갈피, 옻나무, 자귀나무껍질, 쥐엄나무, 종려나무, 물푸레나무, 참죽나무, 측백나무, 치자나무, 침향, 탱자나무, 화살나무, 회양목, 회화나무, 후박나무 등이 포함된다.
본초강목으로부터 60년이 지난 1652년, 영국의 니콜라스 컬페퍼(Nicholas Culpeper, 1616-1654)가 「영국 의사(English Physician)」를 저술하여 서양판 본초학(herbalism)을 개척하였다. 그는 점성술과 약재를 혼합한 처방으로 큰 호응을 얻었으나, 기독교와 자연과학을 기반으로 한 의사들로부터 황당하고 악마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1616년, 유복자로 태어난 컬페퍼는 목사인 할아버지 집안에서 자랐다. 16세가 되던 해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보내졌으나, 우연한 사건으로 2년 만에 그 꿈은 좌절되었다. 그는 대학 생활 중에 한 소녀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소녀와 결혼하고 도피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결혼식을 앞두고, 약혼녀가 타고 가던 마차가 번개를 맞아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약혼녀가 죽고 나서 며칠 후,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런던에 있는 약국의 도제로 들어갔다.
컬페퍼는 점점 점성술과 종교적 급진주의에 몰두하게 되었으며, 약제사협회 회원으로 선출된 후에는 점성가이자 식물학자로서 직접 약국을 운영하였다. 소위 ‘데쿰비쳐(decumbiture)’라 부르는 점성술과 약재를 혼합한 처방은 선풍적인 평판을 얻으며 퍼져나갔다.
당시 영국의 의과대학은 약제사 집단과 서로 경계를 놓고서 분쟁 중에 있었다. 마침내 대학에서는 약전(藥典)을 발표하여, 약제사들의 제약 활동을 한정하고 치료행위를 하거나 치료약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규제하였다. 영국이 시민전쟁으로 내전 상태에 있던 상황에서, 컬페퍼는 마법을 써서 의료행위를 하였다는 죄목으로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다. 수감생활을 마치고 민병대에 합류하였으며,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중 가슴에 파편을 맞았다.
그로부터 컬페퍼는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37살의 나이에 생을 마쳤다. 컬페퍼는 부상을 치료하는 10여 년간 본격적인 저술 활동을 한다. 그는 공개된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리처드 메이비(Richard Maybey)의 『WEEDS』에서 인용하였다.
“국민의 자유는 대부분 세 가지 종류의 인간들, 사제와 의사, 법률가에 의해 침해된다. 사제는 사람의 영혼에 속하는 문제들에서 국민을 속이고, 의사는 사람의 몸에 관한 문제에서 국민을 속이며, 법률가는 사람의 재산에 관한 문제에서 국민을 기만한다.”
컬페퍼는 하루아침에 40명 이상의 환자를 상담하고 약초를 사용하여 치료하는 열정을 보였다. 그가 민들레와 여뀌와 쑥과 쐐기풀에 점성술을 연결하여 처방하고 치료하는 방식은, 기독교와 자연과학을 기반으로 한 의사들로부터 황당하고 악마적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다. 이 점에서 컬페퍼는 본초강목을 저술한 동양의 약제사들에 비해 불리한 여건이었다.
조선 후기에 명문 가문으로 부상한 명문 성씨로 풍산 홍씨(豐山洪氏)와 달성 서씨(達成徐氏)가 있다. 이들을 합쳐서 ‘풍홍달서(豊洪達徐)’라고 한다. 이들 집안의 자제들은 현모양처인 모친의 지극정성에 힘입어, 젊은 나이에 과거에 합격하고 실학을 바탕으로 한 저술들을 쏟아내었다. 대표적으로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은 「산림경제」를 편찬하고, 서유구(徐有榘, 1764-1845)는 「임원경제지」를 저술하였다. 「산림경제」는 제1권 치포편에서 약초류 재배법을 다루고 있으며, 「임원경제지」는 113권에 달하는 방대한 백과사전으로서 이 중, 관휴지(灌眭志)와 인제지(仁濟志)에서 약용식물과 약재를 다루고 있다.
두 가문을 연결하는 여성 인재도 배출하였으니, 풍산 홍씨 가문에 들어가 집안을 일으켜 세운 서영수합(徐令壽閤, 1753-1823)이 대표적이다.
무화과나무 아래
서아시아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는 무화과나무는 인류가 1만여 년 전부터 재배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가 사과가 아니라 무화과라는 유력한 설이 제기되기도 한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1장에 예수와 바돌로메(Bartholomew 혹은 Nathanael)과의 대화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어찌 나를 아시나이까?”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보았노라”
예수의 시공을 초월한 한마디에, 바돌로메는 갈릴리 어부의 신분을 벗어던지고 제자의 길로 들어섰다. 예수 사후, 바돌로메는 인도를 거쳐 아르메니아에서 선교하다, 순교하였다고 전해진다. 아르메니아는 로마보다 앞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으며 지금도 주변의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영국의 탐험가이자 생물학자인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는 동남아시아를 탐험하는 중에 ‘숲에서 가장 비범한 나무’인 무화과나무를 관찰하고, ‘자연선택’에 대한 견해를 찰스 다윈에게 피력하였다. 이에 자극을 받은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을 서둘러 발표하였다.
무화과나무는 지구 역사에서 식물로서의 생존기간이 길었던 만큼 다양한 생존 기술을 축적해 왔다. 무화과와 무화과 말벌의 협력관계에 관해서는 이미 설명한 바와 같다. 무화과나무는 교살목(strangler)으로서도 비범한 재주를 발휘한다. 새들을 이용하여 숙주나무에 착생하여 뿌리를 내리고 기생하다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숙주나무를 버리고 거대한 수형을 형성하고 독자적으로 살아간다.
무화과나무는 꽃을 숨김으로써 수정도 하기 전에 조기 소멸 위험을 회피하며, 달콤한 냄새로 말벌을 유혹하여 열매 속 분해효소(ficin)를 이용하여 동물성 단백질을 흡수한다. 밀림이나 사막과 같은 험악한 환경에서는 숙주나무에 기생하는 방식으로 성장한다. 협력적 공생관계와 기생숙주관계를 다 보여주는 셈이다. 베지테리안 입장에서는 무화과 열매를 먹을 때, 수정이 된 열매와 무수정 열매를 구분해서 먹어야 할지 고민이 될 수 있다.
보리수 그늘
인도산 보리수는 뽕나무과의 활엽수로서 물이 잘 빠지는 토양과 따뜻하고 습한 기후에서 최대 30미터까지 자란다. 석가모니가 이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설화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반야심경 마지막에 나오는 ‘보리 사바하(菩提 娑婆訶)’에서 ‘보리(bodhi)’는 깨달음, ‘사바하’는 성경의 할렐루야 아멘(Hallelujah Amen)의 의미를 가진다고 볼 때, ‘깨달음이여 영원하소서’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석가모니 싯다르타는 인도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녹야원(鹿野苑)에서 최초의 설법으로 4가지 진리(四聖諦)를 설파하였다. 네 가지의 진리는 고집멸도(苦集滅道)로 축약된다.
석가모니는 시간과 공간의 유한함 또는 무한함에 대해서 논하지 않는다. 또한 육체의 죽음과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는다. 이는 지혜와 깨달음과 열반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고집멸도만이 있을 뿐이다. 석가모니는, 너 자신의 문제도 해결 못하면서 우주 삼라만상의 원리를 알고자 함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게는 과유불급이라고 일깨우는 듯하다.
존재는 그 자체 고통이다(生則苦). 생노병사(生老病死)에 더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 누군가를 미워하는 괴로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 오온(五蘊) 즉,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물질, 지각, 표상, 욕구, 의식)의 괴로움만 있을 뿐이다(苦諦 Duhkha Satya).
고통의 원인이 업(業)과 번뇌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無知 無明) 때문에 여기에 집착함으로써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集諦 Samudaya Satya).
인간은 고통의 원인을 알고 이를 소멸시킴으로써 해탈하여 열반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滅諦 Nirodha Satya).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괴로움의 불을 끄기 위한 수행과 실천을 끊임없이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불교의 근본 교리이자 길이다(道諦 Marga Satya).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상호 모순적이다. 징기스칸의 손자 훌라구(Hulaku)는 네스토리안 기독교도인 여성들 분위기에서 자랐음에도, 독실한 불교도였던 그가 1258년, 바그다드에서 저지른 대학살과 살생을 불교와 함께 설명하기는 어렵다.
석가모니가 중생들에게 설법을 시행하던 중에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보였다. 제자 중 한 명인 마하가섭(摩訶迦葉)이 이를 보고 그 뜻을 알아차리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데에는 말이나 설명이 필요 없었다.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만으로도 충분하였다.
연꽃은 수질의 청탁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며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점에서 불교나 힌두교, 도교에서 신성시된다. 연근과 연잎밥이나 연꽃잎차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애용되고 있다. 씨앗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단단하다. 2천 년 묵은 씨앗이 발아에 성공하기도 하였다. 지구 역사에서 식물이 물에서 육지로 옮겨가는 동안 겪어야 했을 엄청난 환경 변화와 이에 살아남기 위한 끈질긴 생명력의 투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가지와 옥수수
가지과 식물에는 가지, 고추, 파프리카, 감자, 담배, 토마토 등이 있다. 원산지는 중남미 또는 아프리카 대륙이며 대부분 오늘날의 식생활을 풍요롭게 해주는 작물들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콜럼버스와 코르테스와 피사로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전세계 10억 명 이상의 인구가 기호식품으로 담배를 선호하고 있으며, 토마토는 한국에서 마늘이 선호되는 만큼이나 서양에서도 즐겨 먹는 식재료다. 붉은색 성분인 라이코펜은 항산화 효과에 탁월하며 가열하면 신체 내에서 흡수율이 더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
과학자들은 우장춘 박사의 ‘종의 합성’ 이론에 따라 토마토를 같은 종인 감자와 접붙여서, 줄기는 감자이면서 토마토 열매를 얻는 ‘포마토(Pomato)’를 실험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실험으로 무와 배추를 접붙인 ‘무추’라는 상품이 시도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가지과와 가까운 친척이 되는 작물로 고구마가 있는데 이 역시 아메리카대륙이 원산지다.
박과 식물에는 오이, 수박, 참외, 호박 등이 있으며 이 중, 아메리카가 원산지인 호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인도·아프리카가 원산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과 작물은 덩굴 전지작업이 중요한데 오이나 수박은 손자덩굴에서 결실이 잘 됨에 유의하여 어미덩굴을 버리고 새끼덩굴을 남기는 전지를 하여야 한다.
한반도를 기준으로 보자면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고추와 담배가 전래되었다. 감자와 고구마는 조선시대 후기에 들어와 구황작물로서 몫을 든든히 한 작물이다. 특히, 동학혁명 이후 중일전쟁 기간 중에, 일본제국의 무자비한 군량미 공출로 아사 직전에 처한 호남지방 주민을 살려낸 은혜의 작물이기도 하다. 19세기 중반 감자잎마름병으로 유럽의 감자들이 거의 전멸 수준에 이르렀다. 아일랜드는 4년 기근과 감자잎마름병이 겹쳐 100만 명이 사망하였다. 오늘날은 국가 차원에서 고립된 고랭지를 선정하여 건강한 씨감자를 생산해 내고 있다. 여기에도 우장춘 박사의 노고가 숨어 있다. 벼와 밀과 옥수수와 콩 그리고 대체작물로서의 감자와 고구마의 원산지가 다른 것처럼, 서로 다른 작물의 포트폴리오 전략이 중요하였다.
옥수수는 벼과 식물이면서 아메리카가 원산지다. 마야문명의 멸망 원인 중 하나가 인구 증가로 옥수수를 지나치게 많이 재배하다 보니 근교약세로 품종이 가뭄에 취약해진 것이라는 학설이 있다. 옥수수는 벼, 밀과 함께 세계 3대 식량작물 중 하나이면서 특유의 생리적 특성을 지닌다. 옥수수는 사탕수수, 콩, 호박과 같이 C4 식물이다. C4 식물은 벼나 밀 같은 C3 식물과는 다르게, 고온건조한 기후에서도 광합성이 효율적으로 일어나는 식물이어서 생산성이 높다. 그만큼 지력의 소모는 더 크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 점을 고려하여 ‘세 자매(Three Sisters) 농법’으로 지력저하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옥수수와 콩과 호박을 같이 심는 방법인데, 콩은 옥수수를 지지대 삼아 자라면서 뿌리에서 질소를 고정하여 지력을 보충해 주며, 호박은 넝쿨로 지면을 덮어 잡초의 증식을 억제하고 토양 표면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옥수수는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는 단성화이다. 옥수수 수염처럼 보이는 것이 암꽃이며, 옥수수 줄기 맨 위에 달린 이삭이 수꽃이다. 옥수수와 같은 식물은 오래전 옛날 발생 초기에는 양성화이면서 키가 작은 식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자가수정에 의한 근교약세(또는 자식약세)를 피하기 위하여 과감하게 자웅동주이화와 타가수정의 전략을 선택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인류가 공룡과 같은 무자비한 포식자는 아님을 알고 나서는, 집단재배에 순응하여 키를 높이고 열매를 키우는 윈윈전략으로 나아가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식물이나 동물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생존 프레임이기도 하다.
1983년 스웨덴 한림원은 옥수수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바버라 맥클린톡(Barbara McClintock, 1902-1992)에게 노벨상을 수여하였다. 그녀는 1953년, 그동안 DNA 이중나선모델이 가진 획일성의 장벽을 허물고, 유전자 가운데 원래 자리를 이탈하여 옮겨 다니는 트랜스포존(transposon) 일명 점핑 유전자(jumping genes)가 존재함을 발견하였다. 이는 물리학에서 원자구조를 설명할 때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일정 궤도를 따라 원운동을 한다는 가설을 무너뜨리고, 전자가 궤도를 도약하기도 하고 구름이나 반죽 상태에서 확률적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에 필적하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옥수수를 통한 흥미로운 발견 중 하나로 크세니아(xenia) 현상이 있다. 식물은 중복수정을 하는 과정을 거쳐 꽃가루의 우성 형질이 멘델의 법칙에 따라 다음 세대(F1)에 전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크세니아는 형질이 당대의 배젖에 발현되는 특이 현상이다. 이로 인하여, 당대에 알록달록한 옥수수 열매가 열리기도 하고, 찹쌀벼를 심었는데 멥쌀벼가 열리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독초
소크라테스(Socrates 기원전 470-399)는 아테네 청년들의 정신을 타락시킨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죽음의 방식으로 독미나리를 선택하였다. 그는 닭 한 마리를 빚졌으니 갚아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생을 마감하였다. 당시에 닭 한 마리의 가치는 의사에게 지불하는 일회 분 치료비에 해당하였다.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이끈 독미나리의 독은 코닌(coniine)이라는 유독성 알칼로이드(alkaloid)로서 중추신경을 마비시켜 호흡정지에 이르게 하는 물질이다. 추리소설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 1890-1976)는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주목, 디기탈리스, 투구꽃, 노란 재스민, 그리고 독미나리의 독에 죽임을 당하도록 설정하였다.
식물이 독성을 가지게 된 것은 포식자 특히 포유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식물의 역사를 들여다 보면, 불리한 환경에서도 나름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포식자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씨앗을 겉에서 속으로 숨기는가 하면, 공룡을 피해 키 높이를 낮추기도 하였다. 식물은 암꽃과 수꽃을 분리하고 근교약세를 피하기 위한 여러 가지 기제들을 만들어내는 한편, 인간사회로 들어가 그들의 작물화 작업에 순응함으로써 상생하거나 타협하기도 하였다. 인간들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식물들을 춘화처리로 기만하기도 하였다. 인위적으로 씨앗의 휴면을 타파하는 것에 더하여, 조직배양과 유전자 변형으로 종의 질서를 훼손하려 하는 시도에 대하여, 식물들은 앞으로 모종의 독성물질과 새로운 방어기제로 저항하게 될 것이다.
주목(朱木)은 동북아시아가 원산지인 상록침엽교목이다. 뾰족한 잎 50그램에 들어있는 탁신(taxin)이면 성인 1명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양이다. 로마군에 저항하던 게르만의 족장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주목 잎에 의한 자살을 택하였다고 한다. 줄기에서는 항암치료에 쓰이는 탁솔(taxol)을 추출한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겨울 눈 덮인 태백산에서,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인 주목 군락과 더불어 바라보는 동해의 일출은 경이롭기만 하다.
디기탈리스(digitalis)는 서남유럽이 원산지이며 종 모양의 꽃을 피우는 2년생 식물이다. 잎 부분에 디기톡신(digitoxin)이라는 강력한 독약 성분을 포함하고 있으며, 적당량을 사용하면 심장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 뇌전증(간질)을 앓았던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가 디기탈리스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1889년의 위대한 작품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에서 코발트 블루가 유난히 강렬하게 표현된 이유는 디기탈리스의 영향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투구꽃은 로마 병사의 투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다년생 식물이며 8월부터 10월까지 화려한 꽃을 피운다. 뿌리에 있는 아코니틴(aconitine)은 치명적이어서, 조선시대에서는 사약(賜藥)의 재료로 많이 쓰였다. 적당량을 사용하면 항염·진통효과가 있다. 한약재에서 덩이뿌리는 초오(草烏)라 하며, 초오 옆 작은 덩이뿌리를 부자(附子)라 한다. 초오가 부자보다 독성이 더 강하다. 주로 신경통의 진통제로 쓰이며, 열을 많이 내므로 손과 발이 찬 사람에게 강심제로도 쓰인다. 예부터 초오나 부자를 잘못 먹어 하루아침에 백발이 되거나 실명한 사례에 대한 기록이 많이 보인다.
1986년 일본에서 ‘투구꽃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인 남성이 투구꽃의 독인 ‘아코니틴’과 복어의 독인 ‘테트로도톡신’을 섞어 사용하여 배우자를 살인한 사건이었다. 투구꽃의 독은 복용 후 10-15분이 지나면 중독증상이 발생하는 데 비해, 복어의 독과 섞이면서 길항작용(拮抗作用 antagonism)을 일으켜 반응을 지연시켰다. 해부 결과, 반감기가 지난 복어의 독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투구꽃의 독뿐이었다. 독약의 효과가 2시간 늦게 나타남으로써 사망원인이 불분명해져 경찰 수사를 미궁에 빠뜨렸다. 그러나 과학수사 끝에 범행수법이 밝혀지고 범인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6천 년 전 수메르인이 양귀비에서 추출한 아편을 사용한 기록이 있다. 옛날부터 지중해 동쪽에서 자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양귀비는 덜 익은 꼬투리에 생채기를 내면 유액이 흘러나오는데, 이것을 아편이라 하며 진통효과 면에서는 이를 따라올 물질이 없을 정도이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비단과 차로 인하여 막대한 무역역조가 발생하자, 영국동인도회사는 인도에서 대량으로 양귀비를 재배하여 여기서 추출한 아편을 중국에 수출함으로써 양국간 무역균형을 맞추려 하였다. 이로부터 1839년 제1차 아편전쟁이 시작되었다.
1803년 아편을 암모니아수(NH₃)로 중화시켜 모르핀을 추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1874년에는 모르핀에 무수초산(acetic anhydride)을 넣고 끓인 후 이를 정제하여 헤로인(heroin)을 합성해냈다.
기타 알칼로이드계 독성물질을 보면, 먼저 키나나무 껍질에서 추출하여 말라리아 치료제나 토닉워터의 주성분으로 사용하는 퀴닌(quinine)이 있다. 담배, 감자, 고추 등 가지과 식물에서 추출하는 니코틴(nicotine), 솔라닌(solanine), 캡사이신(capsaicin)이 있다. 이들은 식물이 곤충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살충 성분의 화학물질이다. 이밖에, 커피콩 등 식물의 씨앗에서 추출하는 중추신경 각성제 카페인(caffeine)과 페루 인더스 산맥이 원산지인 코카나무 잎에서 추출하는 코카인(cocaine)이 있다. 코카인을 암모니아와 물로 가공하면 중독성이 강한 크랙코카인(crack cocaine)을 만들 수 있다. 코카인은 대마초에 이어 두 번째로 널리 사용되는 마약성 약물이다. 씨 없는 수박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세포분열을 억제하여 3배수체를 만드는 데 쓰이는 콜히친(colchicine)은 백합과 식물의 씨앗이나 뿌리에서 추출한다.
아편과 같은 마약성 진통제이면서 이와 유사한 합성약품을 오피오이드(opioid)라 한다. 필로폰(methamphetamine), 옥시코돈(oxycodin), 펜타닐(fentanyl) 등이 있다. 이 중, 펜타닐은 모르핀의 70-80배, 헤로인의 30-50배 진통 효과가 강력하다. 2022년 미국에서, 연간 20만 명 이상이 펜타닐 중독으로 좀비 상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알칼로이드는 식물이 포유류나 곤충과 같은 주변의 포식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씨앗이나 잎, 줄기, 뿌리에 생성하는 독성물질이다. 인간이 이를 잘 활용하면 유용한 약이 되겠지만, 습관성에 빠지면 마약이 된다. 금단현상 역시 식물의 노림수일 가능성이 크다. 마약은 식물이 인간에게 보내는 강한 견제구이자 복수다.
자연자본
아랄해(Aral Sea)는 카스피해 동쪽에 위치하는 호수이며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사이에 있다. 한때, 면적이 6만 8천 제곱킬로미터로서 세계 4위의 호수였으나 현재, 우즈베키스탄에 속하는 남아랄해는 거의 말라붙었다. 소금 먼지로 주변 숲들이 사라지고 있으며, 토양은 면화재배용 화학비료와 살충제가 섞이면서 심각하게 황폐화되어 가고 있다.
아랄해에는 두 개의 강물이 흘러 들어간다. 하나는 천산산맥에서 발원하여 키르키즈스탄, 카자흐스탄을 거쳐 호수 북쪽으로 흘러드는 시르(Syr Darya) 강이고, 다른 하나는 파미르고원에서 출발하여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을 거쳐 호수 남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아무(Amu Darya) 강이다.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초승달’과 함께 축복의 땅으로 불리던 ‘트란스옥시아나(Transoxiana)’ 지방이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인가? 아랄해의 문제는 1960년대 소련이 이 지역에 목화를 대량으로 재배하기 위한 관개용수 확보 목적으로 아무 강과 시르 강에 댐을 쌓으면서 시작되었다.
청바지 1킬로그램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8.5톤의 물이 필요하다. 면 티셔츠 1장을 생산하는 데 물 2.7톤이 소요되며, 이는 한 사람이 3년간 마실 수 있는 식수량에 해당한다. 면직물은 모직물이나 화학섬유에 비해 무공해이며 친환경이라고 하지만, 막상 목화를 재배하고 면제품을 생산하는 단계까지 고려해 보면 결코 친환경 제품이 아니다.
면화는 인도의 고원지대가 원산지로 추정된다. 면화는 스스로 씨앗을 멀리 보내는 전략을 고안하였다. 씨앗을 솜털로 감싸 바람과 물에 편승하여 중앙아시아와 중국으로 가고 다음으로 아프리카로 갔다가, 나중에는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가면서 흑인 노예들과 함께 정착하여 커튼 필드(cotton fields)를 형성하였다.
기원전부터 비단길을 통하여, 메소포타미아의 채색토기 및 청동기와 알타이산맥의 금과 이집트의 유리 세공품과 그리스의 올리브유, 중앙아시아의 말이 중국의 비단, 종이류, 차, 도자기와 물물교환으로 활발히 교역되었다. 15세기에 대항해시대가 열리기까지 약 2천 년간, 비단길은 동서를 연결하는 주요 교역로가 되었으며 이 길을 통하여 스키타이인, 월지인, 소그드인, 위구르인, 네스토리안, 아랍 상인들이 중개무역을 담당하였다.
비단의 원재료가 무엇인지에 관한 정보는 오랫동안 보호되었다. 그것이 뽕나무 잎을 먹는 누에 애벌레의 집에서 나온다는 정보를 쉽사리 알기는 어려웠다. 이를 아는 중개무역 상인들은 정보를 철저히 함구하였다. 오늘날과 같으면, 반도체의 생산도면을 숨기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자연생태계가 인간의 경제활동에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자연자본(natural capital)’이라고 한다면, 뽕나무는 자연자본의 가치가 상당히 높은 식물이다.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온대기후에서 자라는 낙엽수임에도 내한성이 높다. 암수딴그루이며 뽕나무 열매인 오디(mulberry)는 숙취 해소와 성인병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뽕나무 잎은 누에의 사료가 됨과 동시에, 서리가 내린 후 말려서 차로 마시면 당뇨병에 좋다고 한다. 뽕나무 줄기나 뿌리의 껍질은 피부염증이나 기관지 질환 치료에 쓰인다. 오래된 뽕나무 줄기에서는 상황(桑黃)버섯이 자란다. 항암과 면역력 강화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기후위기라는 당면 과제에 직면한 인류는 인적 자본과 물적 자본 외에도, 제3의 자본으로서 자연자본을 평가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자연과 삼림은 중요하고도 훌륭한 자본이다.
푸른곰팡이
1928년 런던의 세인트메리스 병원에서 박테리아를 연구하던 플레밍은 한 달 휴가를 보낸 후 연구실로 돌아왔다. 그는 포도상구균이라는 박테리아를 배양하던 접시의 뚜껑을 닫아두지 않은 사실을 발견했다. 접시에는 푸른색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그 주위에는 황색의 포도상구균이 죽어 있었다. 공기 중에 있는 푸른곰팡이가 포도상구균 박테리아를 효과적으로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1940년에 와서는 푸른곰팡이 균주를 대량 생산하게 되었다. ‘페니실린(Penicillin)’이라 불리는 항생제는 박테리아를 원인으로 하는 질병인 성홍열, 폐렴, 뇌수막염, 디프테리아, 성병 등의 치료에 탁월하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포스터에는 ‘페니실린 덕분에 살아서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글귀가 보인다. 연합군이 페니실린 덕분에 2차 대전에서 승리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적의 약이 되었다.
미생물의 세계에서도 식물이나 동물에 못지않게 먹이사슬과 자연선택이 존재하며, 공격에 대한 여러 가지 방어기제를 동원하고 있음이 관찰되었다. 페니실린이라는 항생제가 박테리아의 세포벽을 뚫고 들어오자, 박테리아는 돌연변이를 통해 내성(antibiotic resistance)을 획득하였다. 여기에 인류는 변종의 내성을 뚫는 차세대 페니실린을 개발하여 대응하고 있다.
미생물을 분류하는 확실한 기준은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다. 크기에 따라 분류해 보면, 다세포이면서 세포핵이 존재하고 포자로 번식하는 곰팡이(fungi, 眞菌類, eumycota)가 있고, 단세포이면서 세포핵이 없고 무성생식을 하는 박테리아(bacteria, 細菌類)가 있다. 바이러스(virus)는 세포라고는 할 수 없으며 스스로 증식하지 못하고 숙주 세포 내에서만 활성화되는 존재이며,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중간에 마이코플라스마(myco plasma)가 있다.
해양생물에 대해서는 먹이사슬에 의한 분류가 이해하기 편리한 것 같다. 먼저 광합성이 가능한 식물성 플랑크톤(phytoplankton)과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 藍藻類)가 있다. 이들은 넓은 의미의 조류(algae)에 포함되는 것으로서, 스스로 먹이를 만드는 최하위 계층의 생명체들이다. 조류는 물속에 살면서 광합성을 하는 온갖 종류의 단세포 생물을 말한다. 이들은 지구상에서 이루어지는 광합성의 절반 이상을 담당한다. 이들은 지구 산소생산량의 절반을 만들어내며 매년 약 100억 톤의 탄소를 흡수저장한다.
조류(藻類)는 4억 7천만 년 전에, 물에서 뭍으로 올라와 육상식물의 조상이 되었다. 이들은 2억 5천만 년 전 페름기의 대멸종 시기에도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식물들은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 온갖 공격수단과 방어기제를 발전시켜 왔다. 식물성 플랑크톤을 동물성 플랑크톤이 먹으며, 동물성 플랑크톤을 크릴새우가 먹는다. 크릴새우를 흰수염고래가 먹으면서 먹이사슬이 형성된다.
이를 진화나 자연선택과 같은 객관화된 용어로 설명할 수도 있고, 창조나 지적설계와 같은 주관적인 용어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의 존재에 관한 논쟁에 관계없이, 식물들은 생존을 위한 투쟁을 일상화해 왔다. 연꽃처럼 씨앗의 껍질을 두텁게 하거나, 면화처럼 씨앗에 솜털을 달거나, 뽕나무와 누에 사이에 전속계약을 맺는 등 실로 각양각색의 전략과 전술을 개발하였다. 이들에게 생존은 그 자체 생명현상의 일부였다. 아무튼, 진화 이론이 창조의 질서를 모두 설명해 줄 수는 없다고 하겠다. 인간이 잡식성이 되면서 충수돌기(맹장)가 퇴화하였다고 해서, 2억 8천만 년 전 소철(Cycad) 화석의 모습이 왜 지금의 소철과 같은지를 완벽하게 설명해 줄 수는 없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