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반야 제18장 언어와 문자
제17장 반야
아후라 마즈다
아후라(Ahura)는 빛을 의미하며 마즈다(Mazda)는 지혜를 뜻한다. 조로아스터교의 최고신은 아후라 마즈다다. 그에 의하면 세상은 선한 영, 스펜타 마이뉴(Spenta Mainyu)와 악한 영, 앙그라 마이뉴(AngraMainyu)의 투쟁으로 이루어진다. 조로아스터교는 기원전 1000년 전후의 선지자 조로아스터(Zoroaster 또는 Zarathushtra)의 가르침을따르는 종교다. 수많은 민족신들을 넘어서 그들을 단지 우상으로 여기고, 지혜의 신을 최고신에 올려놓은 경지는 인류의 인지혁명이 낳은최고의 유산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을 통일한 키루스 왕은 히브리 노예들에게 노잣돈까지 주어가며 본국으로 돌아가 파괴된성전을 다시 지으라는 관용을 베풀 수 있었다.
예언자 차라투스트라는 선과 악을 넘어, 궁극적으로 선이 악을 이기는 최고신, 아후라 마즈다의 이름으로 민족신들의 집합소인 만신전(萬神殿 Pantheon)을 무시하고 배제하였다. 그는 자연현상을 주관하던고유명사의 신들 위에 선과 악과 이를 관장하는 ‘지혜’라는 추상명사의 신을 자리매김해 놓았다.
천년이 흐른 후, 사도 바울은 의(義, Righteousness)의 개념으로 선악의 자의성, 개별성, 주관성, 계급성을 넘어서려 하였다. 바울은 선과악과 죄와 벌을 규정한 율법(Law)의 작용으로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Faith)으로 의롭게(justified)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갈라디아서 2: 16).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써 ‘의로워지며(justified to be righteous)’, 세속 법정에서 판사가 판결하듯이 신의 법정에서 ‘의로운 것으로 공인된다(justification)’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의롭게 되는 것(righteousness)이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그리스도가 헛되이 죽은 것이라고 단언한다(갈라디아서 2: 21).
정신문명의 진화와 발전으로 인류에게 선과 악은 양심의 한 편에 널리 자리 잡았다. 그러나 솔로몬에 훨씬 못 미치는 레위인 율사들이 양심의 복잡한 스펙트럼을 판단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양심은 사람에따라, 처지에 따라 그 크기가 다르다. 법률은 강자의 도덕이며 결과로원인을 판단하는 사후약방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구약성경의 사관들에게는 역사적 결과에 의해서 야훼의 의지를 가늠하는 경우가 당연하였다. 그들의 역사에는 절대정신이 있으며, 역사는 신의 뜻이 작용한 결과이며 그러므로 결과는 항상 옳은 것이었다. 야훼를 믿고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사관들에게 역사는 판글로시안 박사의 맹목적 낙관주의(Panglossian optimism)라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아후라가 이란고원을 넘어 인도로 들어가자, 기존의 선한 신 데바(Deva)에 밀려 아후라는 악한 신, 아수라(阿修羅, Asura)가 되었다. 여기에 대승불교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머리 셋에 팔이 여섯 달린 요괴로 변신하였다. 일본 만화에서는 두 얼굴을 가진 아수라 백작으로 형상화되었다.
반야바라밀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페르시아 제국에서 아후라 마즈다가 지혜의 최고신으로 격상되었다면, 인도에서는 아후라와 마즈다를 분리하여 악한 신으로 격하되었다. 아후라는 무신론을 바탕으로 하는 인도 불교에 와서는 한층 더 격하되었다. 위상만을 놓고 보자면 마즈다 즉, 지혜(Sophia)는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최고신의 속성이며, 그노시즘(영지주의 gnosticism)에서는 예수와 동급의 위치로 자리매김하였다.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의 하나인 성령을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표현하고 있으므로, 지혜는 성령을 이루는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무신론을 바탕으로 하는 불교, 특히 대승불교에서는 지혜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지혜를 깨달음이 삶의 궁극적 목표다. 여기서 반야(般若) 사상이 태동하였다.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경전으로 금강경(金剛般若波羅密經)과 반야심경(般若波羅密多經)을 들 수 있으며, 600권 반야경의 앞부분이 금강경, 뒷부분 260자가 반야심경에 해당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금강경은 구마라집의 번역본을 높이 평가하는데 이 중, 반야심경만은 현장법사의 번역을 더 높게 인정하는 것 같다.
금강경은 기원후 1세기에 인도에서 성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반야심경은 그 이후 성립하였다. 珍光의 어설픈 추론에 의하면, 대승불교의 반야심경(般若心經, The Heart of the Perfection of Wisdom Sutra)은 조로아스터교의 선악론은 물론 그리스 철학과 헬레니즘의 스콜라철학과 바울 신학과 신플라톤주의와 영지주의를 포괄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초기 대승불교에 대한 이해는 기원후 1-3세기 정신문명의 집대성을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반야심경의 원문은 산스크리트어로 ‘프라즈냐 파라미타 흐르다야 수트라’이며 이 중에서, ‘프라즈냐 파라미타’를 한자로 음차한 것이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密多)이다. ‘흐르다야(Hrdaya)’는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심(心)이며, ‘수트라(Sutra)’는 경전(經典)을 뜻한다. 반야(Prajna)는 지혜, 파라미타(paramita)는 극치, 완성(perfection) 또는 피안(彼岸), 즉 깨달음과 열반의 세계로 건너간다는 의미로도 해석한다. 이상을 종합하면, 반야심경은 지혜를 완성하기 위한 경전으로서, 입시용 교재에 빗대어 말하자면 「핵심, 지혜의 완성」쯤 될 것이다.
선악의 피안을 넘어 친밧(Cinvat) 다리를 지나고, 스틱스(Styx) 강을 건너, 지혜의 언덕에 도달하고, 열반적정(涅槃寂靜, Nirvana)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인간은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확실한 것은 아무런 노력도 없는 무임승차는 없다는 것이다.
마니교
예수의 죽음 이후 약 300년간에 걸쳐서, 예루살렘은 물론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인도,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일대에서는 유일신을 확정하려는 종교의 폭풍이 몰아쳤다.
기독교 내에서는 삼위일체론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아리우스는 예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주장하여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주도권 싸움에서 득세한 알렉산드리아 교파는 일자무오의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는 이유로 독실한 교부신학자 오리겐을 추방하고, 마리아의 신성을 부인하는 혐의로 콘스탄티노플의 네스토리우스 주교를 유배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인도 쿠샨왕조는 개인 중심이자 현학적인 소승불교를 지양하고 대신, 불교와 그리스 미술을 결합하여 불상과 스투파(탑)를 만들어 보다 대중적인 대승불교를 발전시켰다. 대승(大乘 Mahayana)이란 큰 수레(Great Vehicle)를 의미한다. 깨달음의 수레에는 부처님의 제자나 전문직인 승려들 외에도, 깨달음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탑승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혜를 깨달아가는 천로역정에 동참하는 도반(道伴)을 일컬어 보리살타(菩提薩埵 Bodhisattva), 이를 줄여서 보살이라 부른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만인(萬人) 제사장론(祭司長論)이다.
마니교(摩尼敎 Manichaeism)는 사산왕조(Sassanid, 224-651) 시대에 파르티아 출신 예언자 마니(Mani, 216-274)의 이름에서 유래한 종교다. 조로아스터교에 기독교, 영지주의, 유대교, 그리스 신화, 소승불교가 혼합된 종교로서 극단적인 이원론과 채식주의를 강조하였다. 빛과 어둠, 선과 악의 이원론을 넘어 육체와 영혼의 이원론으로 채식과 금욕, 명상, 수행을 강조하였다. 마니교에서는 예수, 부처, 조로아스터를 모두 예언자로 인정한다. 지식(knowledge)을 쌓을수록 인간의 타락을 막아준다는 점에서 영지주의적이다. 마니교 성직자(선택받은 자)들은 오로지 수도에만 열심하며, 평신도(듣는 자)들이 가져다주는 곡물과 채소와 과일을 하루에 한 번 해가 진 후에 섭취하였다.
마니는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하는 사산왕조 하에서 마니교 신자들과 함께 이단으로 몰려 처형되었다. 소그드인이나 위구르인 상인들 중에 마니교 신자가 많았다. 동서로 이동하는 상인들의 성격상, 중국이나 인도에서는 불교도로 행세하고 유럽 쪽에서는 기독교인으로 행세할 수 있었기에 편리하였다.
여러 가지 자료에 미루어 기원후 250년경은 종교의 전성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기독교 교부신학이 삼위일체론을 확고히 하는 한편,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의 그리스 철학이 기독교와 혼합하여 영지주의를 낳았다. 동쪽에서는 조로아스터교와 불교가 번성하였으며 헬레니즘과 융합하여 간다라 미술과 마니교 등이 파생하였다. 이들을 세부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그리스 신화를 몇백 개 합쳐놓은 것과 맞먹는 백과사전이 될 듯하다.
종교 간 헤게모니 싸움에서 비주류가 되면 이단으로 낙인찍혀 몰락하였다. 레바논 출신 프랑스 작가 아민 말루프(Amin Maalouf, 1949-)의 저서 중에 「데바닷타(提婆達多)」가 있다. 데마닷타는 석가모니의 제자이면서도 새로운 종파를 만들어 석가모니에 대적한 인물이다. 기독교에서 예수를 은화 30냥에 로마 군병에게 넘겼다가 뒤늦게 이를 뉘우치고 자살한 가롯유다에 비교되는 인물이다.
가롯유다는 노예 한 명 값에 해당하는 은전에 눈이 어두웠다기보다는, 메시아 예수에게서 제2의 마카베오(Maccabeus, 기원전 ?-161)를 기대했으나 실망하고 일을 저질렀다고 본다. 예수는 가롯유다에게 “네가 할 일을 어서 하라(What you are about to do, do quickly)”(요한복음 13장 27절)고 명한다. 가롯유다는 변명 한마디 없이 신의 역사에서 악역을 담당한 채 잠들어 있다. 흔히들 배신자를 이야기하면서 가롯유다를 들먹이지만, 정작 배신자들이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변명으로 상대방을 가롯유다로 거명하는 아이러니를 자주 보게 된다. 가롯유다가 가롯유다를 욕하고, 바리새인이 바리새인을 비판하는 시대에서 종교는 침묵하고 있다.
여러 차례 석가모니를 죽이려고 시도하였던 데마닷타는 온갖 오명을 뒤집어쓴 채 배척되었지만, 석가모니는 데마닷타에게 다음 생에서는 붓다(佛陀. buddha: 깨달음을 얻은 자)가 될 것이라고 축복하였다. 아민 말루프는 데마닷타와 마니에 대해 언급하면서 패배자에게 덧씌워진 불명예를 조금은 관대하게 볼 여지가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가롯유다와 뮌처 목사에게도 동일한 잣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밀교인 미트라교(Mithraism)는 페르시아와 인도의 신, 미트라를 숭배하는 종교로서 기원후 2, 3세기에 로마 군대 내에서 광범위하게 유행하였다. 인도·이란 신화에서 미트라는 ‘바루나’와 함께 태양과 창조와 전쟁과 약속의 신으로 등장한다. 미트라는 불교에 와서는 미륵보살(彌勒菩薩)로 변신한다. 로마제국에서 미트라는 전쟁의 신으로 ‘황소를 죽이는 미트라’의 이미지가 강조된다. 미트라 이름만 빌려왔을 뿐, 내용은 거의 그레코로망(Greco-Roman) 버전이었다. 미트라교는 조로아스터와 힌두교를 거쳐 불교 및 그리스·로마 신화와 결합하였다. 미트라교는 초기 기독교와 경쟁하였으나 기원후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되면서 쇠락의 길을 걷는다.
영지주의
그노스티시즘(Gnosticism 영지주의)은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에 기독교, 불교와 헬레니즘의 금욕주의적 스콜라 철학이 융합한 사상으로서 기독교 초기 단계에서 서로 이단을 다투었다. 영지주의가 초기 기독교와 대립한 이유 중 하나는, 영지주의가 로마제국의 마음의 고향인 그리스와 헬레니즘 문화의 본거지인 알렉산드리아를 본거지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 기독교 교부들은 성경 해석에 플라톤 철학의 방법론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플라톤의 영육이원론, 이데아, 로고스(Logos) 등의 사유 기제들은 성경 해석을 깊고 풍부하게 하는 데 탁월하였다. 다만, 이 과정에서 영지주의는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을 왜곡하여 창조주의 위상을 격하하고 예수를 선지자급으로 하대하면서 이단으로 재단되었다.
VERITAS VOS LIBERABIT(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1절)에서 ‘진리’를 ‘신을 아는 지식’으로 연결시키지 않고, 어떤 철학, 사상, 소피아, 날리지(knowledge)에 국한시키면 영지주의적 성격을 띨 가능성이 크다. 이 구절이 CIA나 비기독교 대학의 간판으로 사용되면, 사용하는 것은 자유이나 그리스도적이지는 못한 것이 된다.
사도 바울은 영지주의적 조류에 대항하여 영육의 동시 부활을 주장하고,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설파함으로써 조로아스터와 플라톤과 바리새인의 허들을 동시에 넘어섰다. 그 뒤에 일어나는 수많은 이단 논쟁들은 예수의 말씀과 바울 신학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에 불과하였다.
영지주의의 초기 교부들 중에 바실리데스(Basilides, 활동기간 117-138)와 발렌티누스(Valentinus, 100-160)가 있다. 1945년 이집트에서 나그함마디 문서가 발견되면서 그 중에, 콥트어로 쓰인 「진리의 복음서(Gospel of Truth)」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발렌티누스의 저서로 알려져 있다. 발렌티누스는 인간을 세 부류로 나누었다. 첫째는 영의 세계에 속하는 사람들(Pneumatics)로서 이들은 영(spirit)의 지배를 받는다. 그들은 신의 플레로마(pleroma, 빛의 세계)로 되돌아가게 하는 수단인 그노시스(gnosis, 지식)를 받아 구원을 받는다. 둘째는 혼의 세계에 속하는 사람들(Psychics)이다. 혼(soul) 또는 정신(mental)의 지배를 받으며 낮은 단계의 구원을 받는다. 셋째는 물질의 세계에 속하는 사람들(Somatics)이다. 그들은 물질(matter)의 지배를 받아 사멸할 운명이다. 발렌티누스는 「진리의 복음서」에서 아버지(Father), 아들(Son, Logos), 어머니(지혜, Sophia)의 삼위일체론을 주장하였다.
영지주의의 교부들은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기독교에 헬레니즘의 플라톤 철학과 필론(Philo, 기원전 20-기원후 50)의 알레고리 해석을 결합하여 심도 있는 체계를 구축하였으나, 정작 기독교의 본질인 예수와는 점차 멀어졌다.
4법인
지혜의 완성을 위하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반야심경은 어떠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가? 인도 불교는 지혜의 완성이라는 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기승전결을 완성하였다. ‘어느 정도’라고 하는 것은, 지혜의 완성은 인간의 실천 의지와 관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불교의 자비는 전쟁과 살인이라는 현실 앞에서 애써 실눈을 뜨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서 불교가 본격적으로 발흥하던 시기인 5호16국 시대의 전진, 북위, 남조 누구도 전쟁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훗날 몽골제국의 군대 중 가장 잔인하다고 평가되는 훌라구(Hulagu, 1218-1265)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그가 1258년 바그다드에서 저지른 학살은 역대급이었다. 역사가들은 티그리스강이 물속에 던져진 책들의 잉크와 학살된 과학자와 철학자들의 피로 물들었다고 기록하였다.
이것은 신의 긍휼에 의지하여 자신의 비겁함을 은폐하는 기독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상생활에서 저질러지는 수많은 부작위에 의한 작위는 종교를 믿는 인간의 조건이자 한계임을 부인할 수 없다. 모탈리티(Mortality), 그것이 원죄라면 원죄다.
「반야심경에 미치다」에서, 김용옥 선생은 불교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불교의 세계관은 사법인(四法印, Four marks of existence)으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4개의 봉인을 여니,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개고(一切皆苦),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이 나온다.
제행무상 : 모든 행(行 samskara, phenomena)은 영원하지 않다. 영원한 것은 없다. 몽환포영로전(夢幻泡影露電), 꿈도 환상도 물거품도 그림자도 이슬도 번개도 모두가 무상(anicca, impermanence)하고 덧없음을 드러낸다. 제행이 무상하므로 유한한 인간이 할 수 있는 바가 없다. 여기에서 욕심과 집착을 버릴 명분과 노력과 의지가 생겨나는 것이다.
일체개고 :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괴로움으로 가득하다. 이 괴로움이 고(苦 duhkha, suffering)다. 도올 선생의 예시에 따르면, 우주가 팽창하는 것도 고통이요, 식물이 광합성 작용을 하는 것도 고통이며, 삼각산에 인수봉 바위가 서 있는 것도 고통이요, 내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것이 그 자체 고통이다. 고는 욕심과 집착에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이를 벗어나 해탈(解脫 moksha)의 경지를 지향해야 할 근거가 마련된다.
제법무아 : 모든 법(法, 다르마 dharma)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노셀프(no self, anatta)하다. 도덕, 규범, 법칙, 사물, 사건에는 아(我, 아트만 atman)가 없다. 모두 실체(substance)가 없는 것들이다. 구마라집은 다르마를 번역하면서 중국 법가(法家) 사상의 ‘법(法)’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법가의 ‘법’이 주나라 봉건왕조에 대한 향수를 전제로 하는 유가(儒家) 사상을 변증법적으로 비판하고 예(禮)의 개념을 현실화하여 성악설을 결합한 것이라면, ‘다르마’는 ‘법’보다는 더 넓은 의미인 ‘도(道)’의 개념에 가까운 것이라는 도올 선생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본다.
열반적정 : 제법이 무아임을 깨닫게 되면 열반(涅槃 nirvana)에 들어가 고요하고 편안한 삶을 누리게 된다. 열반은 번뇌의 불이 꺼진 상태이므로 고요하고 평온하다. 노이즈와 다이나믹스는 본래의 모습이 아니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어떤 현상도 열반의 본래 모습이 아니다. 물체에 가속을 가하면 힘이 생기므로 힘은 열반과 친하지 않다. 달리는 자동차로는 열반에 들어갈 수 없다.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이다. 평범한 인간은 해탈의 노력보다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치면 극락 왕생의 가르침에 더 친숙하게 된다. 기독교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이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것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가르침과 비견된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실체도 없는 세상에서, 유한한 인간이 열반에 들어가기 위해 용맹정진 외에 할 일은 무엇인가? 다 헛되고 헛된 도로에 불과한데.
사법인에서 행, 무상, 고, 법, 무아, 열반의 개념을 아는 것만으로도 불교의 정체를 대부분 파악한 것 같은 포만감이 든다. 디테일에 강한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사법인 중 제행무상과 일체개고는 동어반복적인 성격도 있어서, 일체개고를 제외하고 나머지를 삼법인이라고도 한다.
간다라
중국에서 반야경의 원조는 도행반야경으로 알려져 있다. 후한(後漢) 말기에 월지국(月支, 月氏)의 지루가참(支婁迦讖)이 중국에 들어와 179년경에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을 번역하였다. 지루가참에서 ‘지’는 월지국을 뜻하며, ‘루가참’은 Lokaksema의 음역이다. 지루가참은 구마라집 보다 200년 이상 앞서며 현장법사보다 500년 가까이 앞선다. 지루가참 이전에 안식국(安息國 Parthia)의 왕자 안세고(安稅高)를 고려하더라도, 반야경의 산스크리트어 표음문자 체계를 표의문자인 한자(漢字)로 번역하는 난제를 찾아낸 효시가 지루가참이라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사에서 월지는 본의 아니게 동서양을 아우르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민족이었다. 어쩌다가 월지가 고대 문명사의 한복판에 뛰어들게 되어 무슨 일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월지와 흉노의 관계는 다른 장에서 상술한 바 있다. 월지는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서쪽 기련산맥(祁連山脈) 기슭에 살고 있다가 흉노의 공격을 받아 주요 세력이 서쪽으로 이동하였다. 한무제(漢武帝) 시절 기원전 121년, 위청과 곽거병 장군이 흉노를 대파하자 흉노는 옛날 월지의 땅, 기련산을 잃으면서 다음과 같이 탄식하였다고 한다. 사마천 「사기」의 주석서인 사마정(司馬貞)의 「사기색은(史記索隱)」에 따르면, ‘서하구사(西河舊事)’라는 시에서 “失我祁連山 使我六畜不蕃息 失我燕支山 使我嫁婦無顔色(기련산을 잃으니 육축이 번식할 수 없게 되었고, 연지산을 잃으니 부녀자 얼굴에 기색이 없게 되었다)“라고 노래하였다. 연지산을 부녀의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인 ‘연지’에 비유하여 슬픔을 중첩적으로 표현하였다.
조선족 출신으로 문명교류사의 대가인 정수일(鄭守一 1934- 2025) 선생은 한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복역한 바가 있다. 그의 아랍인 신분의 이름 ‘무하마드 깐수’의 ‘깐수’가 실크로드의 길목인 하서주랑(河西走廊) 감숙성의 ‘감숙(甘肅)’에서 따왔다는 사실이 연지산의 연지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흉노는 비록 월지에게서 빼앗은 땅이지만 한나라에게 기련산맥을 내어줌으로써 연지산의 ‘연지(燕支)’와 아내를 일컫는 ‘연지(閼支)’와 여인들의 화장품 ‘연지(煙肢)’를 한꺼번에 잃은 셈이다. 정수일 선생은 남과 북의 틈바구니에서 이름을 속여가며 살아야 하는 사정에서도, 실크로드에 대한 애정을 잊지 않고 마침내 비단길을 한반도까지 연결하는 데 성공하였다.
월지는 서진하여 그리스 영향권이었던 소그디아나(Sogdiana)와 박트리아(大夏 Bactria)를 점령하고 트랜스옥시아나(Transoxiana) 지역에 새로운 왕국을 건설한다. 트랜스옥시아나는 시르(Syr) 강과 아무(Amu) 강 사이 비옥한 지역으로서 결과적으로 월지는 풍수지리에서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초승달, 트랜스옥시아나, 기련산맥은 중앙아시아의 3대 명당 자리로 알려져 있는데, 월지는 이 중 두 곳을 차례로 차지하면서 알렉산더 제국의 헬레니즘을 실현한 주인공이 된 셈이다. 대월지 왕국은 쿠샨왕조(Kushan Dynasty)의 제4대 카니슈카왕(Kanishka ?-150)에 와서 북인도를 통합하여, 한나라, 로마제국, 파르티아와 함께 유라시아 4대 강국으로 전성기를 누린다. 쿠샨왕조에서는 대승불교와 그리스 문명을 융합하여 주화와 불상과 탑(塔, stupa)을 제작하는 등 포용과 관용의 불교문화가 극성을 이루었다. 지루가참이 반야경을 들고서 중국에 들어온 게 이때다. 반야경의 성립 시기는 기원후 50년경 전후로 보이며 신약성경 특히 도마복음의 성립 시기와 비슷하다.
색시공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현장이 번역한 반야심경에 의하면, 관음보살이 반야바라밀(깨달음의 완성)을 위해 다니실 때에 우주를 지배하는 오온(五蘊 색수상행식, 色受想行識)이 모두 공(空)함을 깨달았다.
관자재보살은 기원후 1세기 이후 쿠샨왕조의 간다라 대승불교에서 미륵보살과 함께 태어난 주인공이다. 자비와 구제의 보살로서 산스크리트 원어는 ‘아발로키테슈바라’이며, 구마라집이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로 번역한 데 비하여 250년이 지나 현장법사는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로 번역하였다. 관자재보살이 원어에 충실한 번역이라면 관세음보살은 자비와 구제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번역이라 할 수 있다. ‘I am who I am’으로 천성천하 유아독존이신 부처와 더불어 ‘세상의 소리를 관찰할’ 줄 아는 보살들이 도열해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보살은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로서 깨달음을 얻은 자다. ‘부처’가 전문적인 수행자들의 독점물이었다면, ‘보살’은 중생이면 누구나 다다를 수 있는 경지를 보장한다. 보리살타는 ‘보디사트바(bodhisattva)’의 음역으로 깨달음(bodhi 覺)을 얻은 중생(sattva 有情)을 뜻한다. 그러므로 보살이 부처님의 제자인 사리자(舍利子)에게 감히 설법을 하는 그림이 나올 수 있다.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색은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 수상행식도 역시 그러하다.
빛이 물질(matter)에 닿으면 물질은 빛의 스펙트럼 중 일정한 색깔을 반사한다. 인간은 물질이 반사하는 일정한 색깔을 통하여 물질을 인식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색깔을 내는 모든 물질들이 다 공(空)하고 허(虛)하며 무(無)하였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게 헛되다. 물질 세계뿐 아니라, 감각으로 느끼는 것(受), 생각하는 것(想), 행동하는 것(行), 판단하는 것(識)이 모두 덧없음을 드러낸다.
이탈리아 출신 양자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는 우주라는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단지 사건(event, occasion)의 연속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밑에서 깨달은 연기(緣起)의 법칙에 따라, 인연(因緣)이 없으면 일어날 존재도 없으며 공(空)할 뿐이다.
무상정등각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礙 無有恐怖 究竟涅槃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기애 무유공포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보살은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고 두려움이 사라지며 전도몽상(顚倒夢想)에서 벗어나 마침내 열반(涅槃)에 들어간다. 모든 붓다(Buddha 佛陀, 부처, 깨달은 자)는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성취한다.
열반은 니르바나(Nirvana)에서 음차한 단어로서 불길이 꺼져 적멸(寂滅)한 상태를 말한다. ‘아뇩다라삼막삼보리’에서 아뇩다라(anuttara)는 무상(無上), 삼막삼보리(samyak sambodhi)는 정등각(正等覺)이다. 더 이상 위가 없는 깨달음의 경지를 말한다.
차라투스트라가 아후라 마즈다라를 지혜의 신을 최고신으로 내세운 데 반하여, 불교는 인류에게 깨달음의 긴 여정을 요구함으로써 신 없이도 종교가 되었다. 특히, 대승불교는 깨달음에 천착하여 선악과 영육의 경계를 넘어서려 한 점에서 탁월하였다. 힌두교를 넘어 조로아스터교와 그리스 철학이 결합하여 인간이 인간의 문제를 신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해 보려 시도하였다. 그것이 결국은 인간의 교만함으로 귀결된다 하더라도 그러하다. 불교에서 사용하는 중요한 용어는 모두 ‘깨달음’에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리사바하
揭帝揭帝 般羅揭帝 般羅僧揭帝 菩提僧莎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
가테가테 파라가테 파라상가테 보디스바하
(가세가세 언덕저편으로 넘어가세 언덕저편으로 어서 넘어가세 깨달음이여 영원하소서)
반야심경의 마지막은 깨달음의 찬송이라 할 수 있는 주문으로 끝난다. 불교에서 ‘깨달음’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지식이나 지혜를 넘어서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기독교에서도 성령(Holy Spirit)을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설명한다(에베소서 1:17). 영지주의에서 Sophia는 선지자 예수와 동급이며, 조로아스터교에서 지혜는 최고신이다. 불교에서 깨달음은 마하반야, 반야바라밀다, 보리살타, 붓다, 무상정등각(覺) 곳곳에 숨어 있다. 신도 없이 혼자서 기꺼이 깨달음의 천로역정에 들어서는 선각자들 앞에서 흉내바둑이나 두고 있는 자가 있다면, 감히 인간에 대한 모독을 당장 멈추라고 말해주고 싶다.
제18장 언어와 문자
로제타스톤
로제타스톤(Rosetta Stone)은 1799년 나폴레옹 시절, 이집트 주둔 프랑스군이 발견하였으며 지금은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기원전 19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로제타 스톤은 알렉산더 제국의 후계자 중 한 명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대한 용비어천가로 가득하다. 비문이 그리스어와 함께 이집트 상형문자 2종(신성문자와 민중문자)으로 기록되어 있다. 로제타스톤은 해독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이집트 문자의 난제를 풀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Ptolemaic dynasty 기원전 305-30)인가? 알렉산더 왕이 이집트와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일찍 사망하자, 제국은 50년간 디아도코이(Diadochi 후계자) 내분에 빠져들어간다. 4차에 걸친 전쟁이 끝나고 제국은 마케도니아, 이집트, 아시아의 세 왕국이 각축하는 체제로 굳어졌다. 이 중 이집트를 지배한 왕조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다. 로제타 스톤의 비문은 사제들이 프톨레마이오스 5세에게 바치는 헌사였으니, 그는 기원전 180년 29세의 나이에 요절하였다. 훗날, 이 왕조에서 클레오파트라 7세(Cleopatra 기원전 69-30)가 파라오가 되어 로마제국의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 장군을 상대로 미인계를 쓸 즈음에, 이집트는 이미 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한 상태였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기원이 마케도니아였으므로 헬라어(그리스어)가 기본이었다. 로제타스톤 역시 그리스어 비문을 바탕으로 하여 여기에 2종류의 이집트 상형문자로 병기한 것이었다. 로제타스톤 발견 이전에 이슬람 학자들이 이집트 상형문자의 해독에 관심을 보였으나 뚜렷한 성과를 거주지 못하였다.
로제타스톤의 상형문자 해독은 어느 프랑스인의 발상의 전환으로 비교적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장프랑스아 샹폴리옹은 1822년 로제타스톤의 번역본을 발표하였다. 그리스 문자는 소리글자(표음문자)이며 이집트 문자는 상형문자이면서 뜻글자(표의문자)다. 표음문자를 표의문자를 사용하여 번역할 경우에는, ‘뜻’으로만 해독할 것이 아니라, ‘음’으로도 해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번역의 포인트였다.
샹폴리옹은 어려서부터 언어분야에서 비범하였다. 고교시절 발표한 논문 한 편으로 이미 대학교수가 낙점되었다. 그의 천재적 상상력은 상형문자를 일종의 발음기호로 단순화하는 역발상으로 나타났다. 그는 로제타스톤의 상형문자를 읽어내자마자 실신하여 닷새만에 깨어났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샹폴리옹은 로제타스톤을 해석한 것으로 영웅이 되었지만, 이에 못지않은 천재들은 로제타 비문을 비롯하여 원래의 문장을 지어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양에서도 이름없는 천재들이 실존하였다. 그들은 한자를 빌어 심오한 불경을 번역하기도 하고 지도층을 대상으로 야한 시를 짓기도 하였다. 민족적 주체성에 투철했던 그들은 중국의 한자를 통째로 베껴쓴 것이 아니라, 내용을 전달하는 데에는 한자의 뜻을 빌리고, 그 나라 민족의 고유한 형태와 운율을 완성하는 데에는 한자의 음을 이용하였다.
표음문자인 산스크리트어로 적힌 불경을 표의문자인 한자로 번역할 경우에도 마찬가지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였다. 구마라집을 비롯한 선구자들은 불경의 중요 용어나 개념을 표기함에 있어서, 산스크리트 원문과 뜻이 비슷한 한자로 나타내려고 시도하였다. 여기에 번역자의 사상과 철학이 들어간다. 예컨대, 구마라집은 ‘루파(rupa, form)’을 ‘색(色)’으로 해독하였으며, ‘슈니야타(sunyata, emptiness)’를 ‘공(空)’으로 해독하였다. 그밖에 대부분의 글자는 원문의 발음에 충실하여 비슷한 발음의 한자로 표기하였다. 이 점에서 로제타스톤과 미묘한 일치가 있다.
후한(漢字)의 대학자인 허신(許愼 기원후 58-147)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한자를 만드는 여섯 가지 원리가 있다.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가 그것이다.
‘상형’은 사물의 구체적인 형상을 보고 그려낸 글자로서 ‘화성기물(畵成其物)’이라고 한다. 日, 月을 들 수 있다.
‘지사’는 추상적인 개념을 나타낸 것으로 上, 下를 들 수 있다.
‘회의’는 두 개 이상의 글자를 조합하여 다른 의미를 나타낸 것으로 수풀 林, 쉴 休를 들 수 있다.
‘형성’은 뜻을 나타내는 부분과 음을 나타내는 부분을 조합한 글자로서, 한자 전체의 80~90퍼센트를 차지한다. 매화나무 梅, 강 江이 있다. 형성 문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표의문자인 한자가 그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표음문자라는 보충적 기능을 사용하였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전주’는 하나의 상징을 다른 글자에 옮겨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경우를 말한다. 늙은이 노(老)와 헤아릴 고(考)에서 보는 것처럼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있는 사람(老)을 상징하는 한편, 노인은 깊이 생각할 줄 안다(考)는 의미를 가진다.
‘가차’는 기존의 글자가 다른 뜻으로 전용되면서 기존의 뜻을 살리는 글자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보리를 뜻하는 래(來)가 올 래(來)로 뜻이 바뀌어 쓰이자 보리를 뜻하는 맥(麥)이 가차되었다. 불탈 연(然)이 그러할 연(然)으로 바뀌자 불탈 연(燃)이라는 글자가 새로 만들어졌다.
한자문화권에서 외국어를 번역하는 노우하우의 전통은 다방면에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중국을 끈질기게 괴롭히던 북방민족 흉노에 대해서, 그들을 부르는 발음 ‘Hun’을 살리면서도 나쁜 이미지를 덧씌우는 글자를 차용하여, ‘흉노(匈奴: 오랑캐 흉, 노예 노)’라고 표기함으로써 중화 중심주의적인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한자 주변국에서는 표의문자인 한자를 빌어 자국어 발음으로 된 시나 제문, 음악을 표현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이것은 불경의 한자 번역과는 반대로, 표의문자를 이용하여 표음문자를 표기한 사례에 해당한다. 오히려 그리스어를 이집트어로 표기한 로제타 스톤과 유사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신라의 향가와 일본의 만엽집을 들 수 있다. 고유문자가 없는 여건에서, 그들은 뜻을 나타내는 ‘실질 형태소(形態素)’는 같은 뜻을 가진 한자로 표기하고(訓借), 나머지 어미나 조사 등 ‘문법 형태소’는 자국어와 같은 발음을 가진 한자를 차용하여 표기하는(音借) 방법을 사용하였다. 만엽집의 경우 가타카나(假名)가 9세기에 들어서야 만들어졌기 때문에, 만엽집이 쓰여질 당시의 문법 형태소의 발음을 알기 어렵다는 점에서 해독을 어렵게 한다. 만엽집은 향가에 비해 물량도 많고 그만큼 연구할 게 더 많아 로제타스톤만큼 관심이 크게 집중된다. 만엽집의 시를 쓴 주인공들이 망명한 백제인들이라는 주장도 있다.
신라 향가와 일본의 만엽집(萬葉集)은 공히, 7세기와 8세기를 전후하여 성립한 작품으로서 한반도와 일본은 밀접하게 교류가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신라의 향가는 7세기 진평왕(579-632)부터 9세기 헌강왕(875-886)에 걸쳐 만들어졌으며, 만엽집은 4,500여 수 대부분이 향가보다 약간 늦은 7세기 후반부터 8세기 후반에 걸쳐 성립하였다. 만엽집의 형태소가 당시 백제의 언어와 유사하여, 신라 향가를 해석하듯이 만엽집을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도 발표된 바 있다.
삼국유사
일본에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술모임인 ‘삼국유사연구회’가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1959년 미시마 아키히데(三品彰英)에 의해 창설되어 지금은 무라카미 요시오(村上四男) 교수가 이끌고 있는 동연구회는 총 다섯 권으로 된 삼국유사 역주본 「삼국유사고증」을 간행한 바 있다.
그들은 왜 50여 년이 넘는 긴 기간 동안, 남의 나라의 역사서를 공들여 파헤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먼 옛날 조상 국가인 한반도의 삼국시대에 대한 향수가 원인 중 하나가 아니었을지 아전인수로 생각해 본다. 그들의 기타구니(北國)에 대한 집착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여 거의 수구초심에 가깝다. 일본의 장래에 대한 여러 가지 비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저변에 살아남아 있는 인문학의 깊이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한국 인문학의 짧고 얕음을 탓하여야 할 것 같다. 삼국유사를 위한 참고서적으로는 을유문화사가 펴낸 「삼국유사(일연 지음, 이민수 번역)」을 주로 하고, 북한학자 리상호가 번역한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를 참조하였다.
일연(一然, 1206-1289)의 본명은 전견명(全見明)이며 고려말 충렬왕 때의 승려였다. 경북 경산 출생으로 1227년에 승과(僧科)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을 포기하고 부모 봉양을 하며 고향을 지키다 1281년에 삼국유사를 저술한 바 있다. 2022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삼국유사는 사서(史書)가 아니라 유사(遺事)이다. 그러므로 사서 편찬의 기본 원칙인 ‘술이부작(述而不作)’에 얽매이지 않는다.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은 다음 네 가지 정도가 있다.
첫째는 역사를 날짜순으로 기록하는 편년체(編年體)로서 조선왕조실록이 대표적이다.
둘째는 기전체(紀傳體)로서 사마천이 처음 시도한 방식이다. 인물을 중심으로 서술하되 본기(本記), 세가(世家), 표(表), 지(志), 열전(列傳)의 형식을 가진다. 사마천의 사기, 사마광의 자치통감,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있다.
셋째는 기사본말체(紀事本末体)로서 역사를 사건 별로 나누어 원인과 결과를 서술하는 방식이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이 있다.
넷째는 강목체(綱目体)로서 역사를 시간순으로 서술하는 것은 편년체와 같으나, 특정 사건에 제목인 강을 두고 세부 사항을 목으로 정리하는 서술 방식이다. 안정복의 동사강목(東史綱目)이 있다.
삼국유사는 역사를 신화나 설화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관심 있는 사건과 자료만을 중심으로 주제별로 나누고 그 안에서 사건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 어느 하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굳이 삼국유사의 서술 방식에 이름을 붙이자면, 9개의 편목(編目)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편목체(編目体)라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는 사대주의적이고 불교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쓴 1281년은 몽골제국과의 30년 전쟁에서 패배하여, 고려 왕의 이름에 ‘충(忠)’을 앞세우고 태자를 북경에 볼모로 보내어야 했던 시절이다. 몽골이 중앙아시아와 유라시아 국가들에 자행한 무자비한 횡포를 생각하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사대주의적이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신채호(申采浩 1880~1936) 선생이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어용적인 역사서에 가려지고 왜곡되어 있는 사실을 바로잡기보다는 그보다 먼저, 한국 고대사에서 태부족인 신화나 설화, 유사 자료 그 자체이며 여기에 숨겨져 있는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삼국유사는 이 갈증을 어느 정도 채워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인정된다.
처용가
「삼국유사」 기이(紀異)편 ‘처용랑망해사(處容朗望海寺)’에 신라 향가(鄕歌) ‘처용가’가 실려 있다. 9세기 통일신라 말 작품이다.
향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조선총독부의 한국어학자 오쿠라 신페이(小倉進平 1882-1944)로부터 출발하였다. 그는 향가의 한자 사용법이 일본 만엽집의 한자 사용법과 유사함을 발견하고 비교적 쉽게 향가를 해석하였다. 이는 프랑스의 언어학자 샹폴리옹(Champollion 1790-1832)이 로제타스톤(Rosetta Stone)의 3개 언어를 해석하면서, 고대 이집트어 상형문자를 뜻글자가 아닌 소리글자로 취급하는 발상의 전환으로 성공한 것과 비슷한 이치라 할 수 있다.
삼국유사 향가 14수 중 처용가를 해석해 보기로 한다. 처용가는 조선시대 「악학궤범」에 처용가의 한글 해석이 일부분 붙어 있음으로 인해 비교적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東京明期月良(동경명기월량)
夜入伊遊行如可(야입이유행여가)
入良沙寢矣見昆(입랑사침의견곤)
脚烏伊四是良羅(각오이사시랑라)
二肹隱吾下於叱古(이힐은오하어질고)
二肹隱誰支下焉古(이힐은수지하언고)
本矣吾下是如馬於隱(본의오하시여마어온)
奪叱良乙何如爲理古(탈질량을하여위리고)
동경 밝은 달에
밤새도록 노닐다가
방에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네 개이러라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 것인고
본디 내 것이었지만
빼앗긴들 어찌하리
처용가의 해석과 관련하여 조선시대 1493년에 편찬한 국악 이론서인 악학궤범(樂學軌範)에 한글 고어(古語)로 된 가사가 일부 적혀 있다.
동경 발근 다래
새도록 노니다가
드러 내 자리를 보니
가라리 네히로새라
아으 둘흔 내해어니와
둘은 뉘해어니오
향가를 적는 문자인 향찰(鄕札)은 실질적인 형태소는 한자를 훈차(訓借)하고, 어미나 조사와 같은 문법적이고 형식적인 형태소는 한자를 음차(音借)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삼국유사 기이(紀異) 무왕(武王)편에 나오는 서동요(薯童謠)를 보면
善花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夜矣卯乙抱遣去如
양주동, 김완진, 유창균, 홍기문의 학설을 참조하여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번역하면,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시집가 놓고 서동이를 밤에 몰래 안으러 간다네”
위 시에서 형식 형태소를 괄호하여 분리해내면,
善花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夜(矣)(卯乙)抱(遣)去(如)
* 主隱=님은, 密지=몰래, 嫁랑=시집가서, 置고=놓고, 薯童房을=서동방을, 夜의=밤에, 卯乙=몰래, 抱견=안으러, 去여=가네
만엽집(萬葉集)
구마라집은 소리글자(표음문자)인 산스크리트 문자로 된 불경을 뜻글자(표의문자)인 한자로 번역하면서, 중요한 용어에 대해서는 음차 또는 훈차를 병행하였다. 지혜를 뜻하는 ‘프라즈나(prajna)’를 ‘반야(般若)’로, 구도자를 뜻하는 ‘보디사트바(bodhisattva)’를 ‘보리살타(菩提薩埵)’로 번역한 것은 음차이고, ‘아발로키테슈바라’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또는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로 번역한 것은 훈차(訓借)에 해당한다.
한편 일본의 민요집인 만엽집(萬葉集)은 고유문자인 카타카나(假名)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자의 음만을 빌리거나 훈과 음을 모두 빌리는 형식으로 표기하였다.
만엽집에서 많이 알려져 있는 2513수와 2514수를 살펴보면,
(2513)電神 小動 刺雲 雨零耶 君將留
천둥이 울리고 / 구름도 끼고 / 비라도 내려야 / 그대 붙잡으련만
(2514)雷神 小動 雖不零 吾将留 妹留者
천둥이 울리고 / 비가 오지 않아도 / 난 머무르리라 / 님이 머물라고 하면
예나 지금이나 여성은 운명적인 만남을 중요하게 여긴다. 혹시 만남이 잘못되더라도 누군가에게 탓을 할 자리가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남성은 상대방의 자유의지에 의미를 둔다. 그래서 결과가 잘못되더라도 자기책임이다. 이런 의미에서 2513은 여성의 작품이고, 2514는 남성의 작품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아담은 이브가 선악과를 먹으라고 하면 먹는다. 유혹의 내러티브의 결과로 운명과 의지에 관계없이 노동과 출산의 고통이 남녀에게 같이 주어졌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고려가요’를 낮잡아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라고 폄하하였다. 그러나 신석기시대 이집트의 정형화되고 기하학적인 벽화가 구석기시대 알타미라 동굴의 다이나믹한 그림을 보고 나무랄 아무런 이유가 없다.
793수는 모두 음차로만 구성되어 있다.
余能奈可波
牟奈之伎母乃等
志流等伎子
伊與余麻須萬須
加奈之可利家理
能: 의, 波: 은, 等: 도, 子: 서
요노나카와(よのなかは 이 세상이란)
무라시키모노도(むらしきものと 허무한 것임을)
시루도키시(しるときし 알고 나서)
이요요마스마스(いよよますます 가면 갈수록)
가나시카리게리(かなしかりけり 슬픔만 더하는구나)
언어의 탄생
최근 새로운 정부에서 국가 주도의 소버린(sovereign) AI를 염두에 두고 거대언어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을 구축하려는 논의가 뜨겁다. 대규모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정신활동의 도구이자 산물인 언어에 대한 통찰이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일찍이 프로이센의 정치가이자 언어학자인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 1767-1835)는 각 나라의 언어들에서 형태별로 차이가 나는 것을 발견하고 그 특성을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먼저 고립어(isolating language)가 있다. 단어(word)는 불변이나 어순이나 억양의 변화로 의사를 전달하는 언어이다. 중국어, 베트남어, 현대 영어가 여기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아유미화(我有美畵)’에서 주어와 목적어를 바꾸어 ‘美畵有我’로 하면 전혀 뜻이 달라진다.
교착어(agglutinative language)는 단어 중에서 어근(語根 root)은 그 형태가 변함없으나, 어미(語尾 ending)와 조사(助詞 postposition)가 변화하여 의사를 전달한다. 한국어, 일본어가 있다. ‘먹다’가 ‘먹’이라는 어근은 유지한 채, ‘먹었다(과거형)’, ‘먹는다(현재형)’ 등으로 변형된다.
굴절어(inflected language)는 단어의 어근 자체가 변화하거나 접사가 변화하여 여러 문법적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다. 그리스어, 히브리어, 라틴어, 러시아어, 영어, 독일어, 아랍어, 산스크리트어가 있다. run의 과거형이 ran이 되고, beauty의 형용사가 beautiful이 된다.
언어에 대한 접근은 형태론에서 음운론과 통사론으로 발전하고 있다. 음운론(音韻論)은 언어의 소리를 연구하는 분야로서 자음과 모음의 음소(音素 phoneme), 억양, 성조, 리듬 등을 대상으로 한다. 촘스키(Noam Chomsky 1928- )가 주도한 통사론(統辭論 syntax)은 개별 단어가 문장을 이루어 가는 방법을 다룬다. 여기에 수학 이론을 도입하여 최적해를 구하는 접근으로까지 시도하고 있다.
촘스키의 유명한 예문 중에 ‘Colorless green ideas sleep furiously’가 있다. ‘무색의 초록색’, ‘초록색의 생각’, ‘생각이 잠을 잔다’, ‘맹렬히 잔다’와 같이 문장의 의미가 모순투성이지만, 문법적으로는 오류가 없다. 촘스키의 이론은 인지심리학과 언어철학, 인지과학과 융합하여 발전해 나가고 있어 AI 분야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AI 시대에서는 인류가 쓰는 언어를 새롭게 조명할 필요성이 있다. 거대언어모델(LLM)을 만들기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단적으로 라임(rhyme 운율)이 없이는 힙합 가사를 쓸 수 없다. 라임은 시(詩)를 쓰거나 감상하거나 번역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현재로서는 각 나라의 언어 형태에 따라 운율과 느낌이 달라, 언어가 다르면 자유롭게 시를 감상하거나 번역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유감일 뿐이다. AI의 발달은 이러한 문제들을 충분히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상, 아마츄어의 언어학 개론에 더하여 珍光은 50퍼센트 이상의 상상력을 첨가하여 부연 설명을 해보고자 한다. 동물은 식물의 전체형성능(totipotency)을 포기한 대신에 감정과 ‘움직임’을 얻어냈다. 이것은 창조주의 섭리가 아니더라도 동물 나름으로 충분히 시도해 볼만한 것이었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생명체는 어차피 죽게 되어 있기 때문에(mortality) 어차피 죽음이 숙명이라면, 종자번식이나 영양번식의 수동성에 만족하지 않고 중요한 기능 하나를 포기해서라도 스스로 움직여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더 쾌락적이고 행복할 수 있다.
이에 수반하는 여러 가지 위험은 동물 스스로 감수해야 할 몫이었다. ‘움직임’에 대한 부산물로 ‘더 심화된 기억과 신호’가 생겨나고 이것들이 발달하여 ‘언어’가 탄생하였다. 식물도 각자의 방식으로 초보적인 신호를 보내기는 하지만 언어는 식물에게는 없는 기능이다.
여기에 더하여 인간은 동물의 선택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려 하였다. 호모사피엔스는 육체와 별도의 존재인 ‘영혼’을 선택하였다. 영혼이 자유롭게 활동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뇌피질’이 주어지고 대뇌피질의 부산물로 ‘문자’가 탄생하였다.
이 정도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영혼 대신 ‘더 차원이 높고 새로운 영’으로 신과 교섭하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희생의 대가는 무엇일까? 그것이 육체를 버려야 하는 것이라면, 신과 통화하고 신의 가족이 되고 싶은 인간은 언제든지 적어도 육신을 버릴 용기와 결단은 있어야 할 것이었다. 죽음에 뒤따르는 고통과 통증은 주관적이어서 통제 가능하다. 인류 역사에 그런 인간이 최소한 한 명이 있었다는 소문이 있다.
한나라의 언어가 탄생하여 국가 간 경계를 넘나들며 교류하는 현상을 보면 자못 흥미롭기만 하다. 다음은 거의 모든 역사와 사생활의 역사를 기록한 바 있는 빌 브라이슨(William McGuire Bryson)의 저서 「언어의 탄생」을 참조하였다.
샴푸 shampoo는 힌디어에서, 덤불 chaparral은 바스크어에서, 간부회의 caucus는 인디언어에서, 케첩 ketchup은 중국어 또는 동남아시아 언어에서, 감자 potato는 아이티 원주민어에서, 소파 sofa는 아랍어에서, 산간벽지 boondocks는 필리핀 타갈로그어에서, 구호 slogan은 게일어에서 기원한다.
sp로 시작하는 단어에는 ‘축축함’이라는 뜻이 있다. spray 물보라, splash 물을 튀기다, spit 침을 뱉다, sprinkle 물을 끼얹다, spatter 물을 튀기다, spill 물을 흘리다, spigot 물마개가 있다. fl로 시작하는 단어는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flee 도망치다, flounce 몸부림치다, flicker 불이 깜박이다, flap 펄럭이다를 들 수 있다. ash로 끝나는 단어는 ‘갑작스러운 동작’을 표시한다. flash 번쩍이다, dash 돌진하다, crash 충돌하다, bash 후려갈기다, smash 박살내다, slash 긋다가 있다.
라틴어에서 온 영어에는 street 거리, pillow 베개, wine 포도주, inch 인치, mile 마일, table 탁자, chest 가슴이 있다. 스칸디나비아어에서 온 영어에는 freckle 주근깨, leg 다리, skull 두개골, meek 온순한, rotten 썩은, clasp 걸쇠, crawl 기다, dazzle 눈부시다, scream 비명, trust 믿다, lift 들다, take 취하다, husband 남편, sky 하늘이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