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A-9

제19장 두 도시의 이야기 제20장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by 김진광

제19장 두 도시의 이야기


아인슈타인

“존경하는 교수님께,

무례함을 무릅쓰고 감히 존경하는 교수님께 글을 올립니다.

아들의 장래를 위해 걱정하는 아비의 심정을 너그러이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편지를 드리는 이유는 스물두 살인 제 아들 알베르트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함입니다. 아들은 요즘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는 점과 인생이 궤도를 벗어났다는 생각 때문에 깊은 실의에 빠져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더 견고하게 스스로 벽을 쌓고 있으며, 겸손한 사람들이 그렇듯 가족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짓눌려 있습니다.


실례인 줄 알면서도 교수님께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제 아들이 다시 삶과 일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몇 마디 격려의 글을 보내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하 생략)


1901년,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 오스트발트 교수는 이 편지에 끝내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아버지를 비롯하여 담당 교수뿐만이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때 희랍어 교사였던 요제프 데겐하르트는 ‘넌 결코 아무것도 될 수 없을 거야!’라며 다른 학교로 전학가도록 권고하기도 하였다 한다.


이로부터 4년 후 1905년, 아인슈타인은 특허국 사무실에서 하급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상대성이론을 포함한 세 편의 논문을 「물리학 연보」에 제출하였다. 몇 주 뒤, 이미 제출한 논문을 보충하는 세 장짜리 원고를 보냈는데, 그 안에 E = mc²이라는 공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영국의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 1842-1924)은 자신의 저서 「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Economics)」의 주석란에서 가격과 생산량의 균형이론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을 간단히 그려 넣었다. 이것이 오늘날 경제학 교과서의 기본 틀이 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수리적으로는 미분 개념에 해당하는 ‘한계이론(marginalism)’을 정립하였다. 케인즈의 스승이기도 한 그는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라는 명언을 남겨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즐겨 인용하는 경구가 되었다. 마샬은 자연과학의 성과를 경제현상 분석에 도입하여 사회과학 분석방법의 지평을 열었다. 수요공급의 균형은 연립방정식 체계로 발전하였고, 한계이론 분석에는 미적분 해석방법이 사용되었다. 珍光의 선입견에 의하면, 인류의 역사는 몇 장의 보충 원고와 간단한 주석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음을 웅변하고 싶은 것이다.


질량과 에너지

1800년대 중반까지도 과학자들은 에너지와 질량을 독립적인 두 개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이 둘을 서로 연결하는 서사를 정립하기까지 선각자들의 공로가 있었다.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는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다룬 역사소설로서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가 1859년에 쓴 작품이다. 디킨스는 1850년 5월 28일에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패러데이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친애하는 선생님께,

지난번 조찬 때 선생님이 하신 강의를 일반 대중에게도 설명하실 기회를 가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중략)

또한, 그 강의 내용을 책으로 엮을 수 있다면 무한한 기쁨이겠습니다.”


당시 과학의 세계에는 전기와 자기, 에너지와 질량이라는 거대한 두 도시가 있었다. 디킨스는 그의 소설을 통하여 전기와 자기를 연결할 인물로 패러데이를 꼽았다. 이는 45년 후에 나머지 도시를 연결할 또 다른 인물이 나올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둘 다 변변한 학력이 없었거나, 대학을 다녔음에도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패러데이의 업적은 맥스웰 방정식으로 재정립된다.


1826년 패러데이가 만든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강연회’는 지금까지도 런던왕립협회의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서점에서 책을 제본하는 일에 종사하던 패러데이가 전기장과 자기장의 세계를 연결하였다.


1775년, 프랑스 화학자 라부아지에(Lavoisier 1743-1794)는 금속이 녹슬면 무게가 늘어나고, 공기 중 산소량은 줄어드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의 질량 총량은 불변함을 밝혀냈다. 그는 “우주를 채우고 있는 물질들은 태우거나 압축하거나 자르거나 날카롭게 연마할 수는 있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른 물질과 결합하거나 재조합하며 떠돌아다닐 뿐이다. 그렇지만 질량의 총량은 언제나 그대로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세무직 공무원이면서 농업 전문가이기도 했던 라부아지에는 1794년 프랑스 혁명 기간 중에 유죄판결을 받아 다른 세금 징수원들과 함께 콩코드광장에서 처형되었다.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는 1821년 전류가 흐르는 도체 주위에 자기장이 형성되는 전자기 유도현상을 발견함으로써 전기에너지와 자기에너지의 상호작용에 관한 법칙을 정립하였다. 그때까지 전기와 자기는 서로 관련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패러데이의 성과는 수소혁명을 지향하는 오늘의 과학계에도 많은 시사가 되고 있다. 그는 물의 전기분해의 원리를 밝혀냈으며 이산화탄소와 암모니아의 액화 실험에도 성공하였다.


패러데이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과학자임에도 겸손함과 신앙심을 바탕으로 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그는 자신이 발명한 것에 어떠한 특허도 내지 않았으며 빅토리아 여왕이 수여하는 귀족 작위도 거부하였다. 그는 생각과 발견과 같은 인간의 지적 노력에 보상이 주어지면 가치가 떨어진다고 여겼다.


패러데이가 죽기 10년 전에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하였다. 다윈의 학설에서는 모든 생명체의 탄생에 신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듯 보였으나, 패러데이 법칙은 모든 에너지는 에너지의 변환만 있을 뿐이며 에너지의 총합은 불변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천지창조에는 신의 손길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가 남긴 말 중에 ‘내 종교에는 철학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과학적 지식이 종교를 설명할 수 없으며 과학적 지식만으로는 인간을 신으로 인도할 수 없다는 그의 생각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무신론에 경도되어 있는 오늘날의 철학자나 과학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맥스웰은 19세기 물리학을 종합한 과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뉴턴과 아인슈타인을 제외하고, 또 한 명의 과학자를 꼽는다면 맥스웰이라고 할 정도로 그의 업적은 중요하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연구실 벽에 뉴턴과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사진을 걸어두었다고 전해진다.


맥스웰 방정식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은 영국의 이론물리학자이자 수학자다. 그는 이전의 과학계의 성과와 전기장과 자기장에 대한 패러데이의 업적을 수학적으로 종합하여 정리하였다. 맥스웰의 방정식은 전자기학뿐만 아니라 열역학, 통계역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가정사에서는 불행했던 맥스웰은 40대인 1879년 지병으로 조용히 생을 마감하였다. 맥스웰보다 7년 연상인 부인은 맥스웰 사후 7년 뒤에 사망하여 남편과 같은 곳에 묻혔다.


맥스웰의 방정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논의되어 온 과학자들의 성과를 전체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1. ▽ • D = ρ … 전기장에 관한 가우스 법칙

2. ▽ • B = 0 … 자기장에 관한 가우스 법칙

3. ▽ × E = - ∂B/∂t …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 법칙

4. ▽ × H = J + ∂D/∂t … 암페어-맥스웰 법칙의 종합

(▽ : nabla, ▽ • : divergence 발산, ▽ × : curl 회전)


▽ : Nabla(나블라, 델 연산자), 3차원 공간에서 각 좌표 방향으로의 편미분을 보아놓은 벡터 연산자

▽ • : Divergence (발산), 한 점에서 얼마나 퍼져 있는지를 나타냄(내적)

▽ × : Curl (회전)라 부르며, 한 점에서 얼마나 회전하는지를 나타냄(외적)


위 식을 말로 설명하면,

1. The source of electric field is charge

전기장의 근원은 전하이다

(D : 전기변위장 C/m², ρ : 전하밀도 C/m³)


2. Magnetic field has no source

자기장은 근원이 없다

(B : 자기장 T)


3. A changing magnetic field produces an electric field

자기장의 변화는 전기장을 유도한다

(E : 전기장 V/m)


4. Electric current and changing electric field produce a magnetic field

전류와 전기장의 변화는 자기장을 만든다

(H : 자기장 세기 A/m, J : 전류밀도 A/m²)


E = mc²

라부아지에와 패러데이, 맥스웰에 의하여 에너지와 질량의 개별적인 속성은 밝혀졌다. 여기에 라이프니츠(Leibniz 1646-1716)의 운동에너지에 대한 개념인 mv²(질량 곱하기 속도의 제곱)이 가세하였다. 이제 질량과 에너지는 하나라는 통찰만 남았다.


이쯤해서 아인슈타인이 나타났다. 그는 1905년 상대성이론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E = 이라는 놀라운 식을 제시한다. 작가 데이비드 보더니스(David Bodanis)는 저서 「E = mc²」에서 ‘질량’은 농축되고 응집된 에너지의 형태이며 ‘에너지’는 어떤 적당한 환경에서 질량이 다른 형태로 부풀어오른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빛의 속도로 나는 우주선의 엔진에 연료를 무제한 주입한다고 해도, 우주선은 빛의 속도를 초월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 어떤 것도 빛보다 빠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추가적으로 주입된 에너지는 어디로 가는가? 에너지는 압축되어 질량으로 변한다. 따라서 우주선은 점차 무거워진다. 반대로, 물질이 해체되어 원자 단계에서 폭발할 때, 빛의 속도의 제곱이 승수(multiplier) 역할을 하여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한다. 질량의 에너지는 태초부터 물질이 축적해 온 거대한 태양에너지의 저수지이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은 사실, 선배 과학자들이 목숨을 걸고 연구해 온 업적들을 정리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E와 M과 mv²이 밝혀졌으니 v(속도) 대신 ‘빛의 속도(c)’를 넣고 등호로 연결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등호로 연결한다’는 것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천재적 상상력과 결단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빌 게이츠가 DOS, Word, Lotus, Database, Navigator, Media Player 등을 끌어모아 스티브 잡스의 Macintosh에 구현해 낸 것이 ‘윈도우’라고 해서, 우리는 빌 게이츠의 공로를 과소평가하지는 않는다. 그릇에 담을 내용물과 그것들을 담을 그릇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두 여성 과학자

앞에서 ‘목숨을 걸고’ 연구해 낸 업적이라고 언급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에너지의 측정을 뉴턴의 관점으로 보면 질량과 속도의 곱 mv로 표시할 수 있다. 그러나 라이프니츠의 견해에서는 에너지는 mv²로 표시된다. 에너지를 mv로 보면 에너지의 시계가 멈출 때마다 신이 태엽을 감아주어야 한다. 반면에, mv²로 측정할 경우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 변환할 뿐 사라지지 않는다. 에너지 시계는 멈추지 않으므로 태엽을 감아줄 필요도 없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훗날 패러데이와 라이프니츠, 헬름홀츠에 의해 자연계에서 일반적으로 성립하는 법칙으로 확인되었다.


1726년 프랑스 극작가인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Arouet)는 평민 신분임에도 귀족과 싸움을 벌인 죄로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되었다. 프랑스를 떠나는 조건으로 석방된 아루에는 이름을 볼테르(Voltaire 1694-1778)로 바꾸어 영국으로 건너갔다. 유배생활을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온 볼테르는 천재 과학자이면서 부유한 귀족 출신의 에밀리 뒤 샤틀레(Chatelet) 부인과 만난다. 두 사람은 국경 근처 시레이(Cirey) 성에 과학실험실과 소극장을 짓고 정착한다. 근대 자연과학과 문학의 만남이 시작된 지점이기도 하다. 샤틀레는 에너지란 무엇인가의 문제에 천착하였다. 그녀가 이끄는 ‘시레이’라 불리는 연구팀은 진흙판에 무게추를 떨어뜨리는 실험을 반복한 끝에, E = mv²이라는 라이프니츠의 주장이 옳음을 실험으로 입증하였다.


1749년, 샤틀레는 마흔 살의 나이에 임신을 하게 되자, 그녀는 죽음에 대비하여 그동안 연구해 온 자료들을 정리하고 왕립도서관으로 보낸다. 며칠 후부터 진통은 시작되고 무사히 출산을 하였지만 샤틀레는 출산 후 감염으로 세상을 떠난다. 항생제도 없었고 출혈을 조절하는 약도 없던 시절에, 나이 든 임신에 살아남을 확률은 거의 없었다. 모험적인 과학자 샤틀레 부인이 E = mv²을 입증하고 사망함으로써 150년 후, 아인슈타인은 속도 v 대신 빛의 속도 c를 치환하여 질량∙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완성하였다.


아인슈타인의 E = mc²에 자극받은 과학자들은 이 식을 확인하기 위하여 질량 M의 정체를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뉴질랜드 출신 과학자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1871-1937)는 원자의 내부가 대부분이 빈 공간이며 중심인 원자핵에 양성자(proton)가 존재함을 발견하였다. 그의 제자 채드윅(James Chadwick 1891-1974)은 1932년, 원자핵 속에서 중성자(neutron)의 존재를 발견하였다. 1934년 이탈리아의 페르미(Enrico Fermi 1901-1954)는 중성자를 원자 외부에서 원자의 핵 속으로 밀어 넣는 실험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아직은 가시적인 핵반응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여성 과학자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 1878-1968)는 베를린대학에서 독일 최초의 여성 물리학 정교수이자 카이저 빌헬름연구소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러나 나치정부 하에서 유대계라는 이유로 생명이 위태로워지자 그녀는 스웨덴으로 피신하였다. 네델란드를 거쳐 스웨덴으로 도망하는 과정에서 손에는 단 10마르크만 쥐고 있었다. 1939년 마이트너는 덴마크의 닐스 보어(Niels Bohr 1885-1962) 연구소에서 일하던 조카 로버트 프리시와 함께, 우라늄 핵 속에 중성자를 밀어 넣으면, 원자핵이 진동하여 핵을 붙들고 있는 핵력(nuclear force)을 흩어지게 하며 분열(fission)이 일어남을 증명하였다. 중성자를 얻어맞은 우라늄 원자핵은 바륨과 크립톤으로 쪼개진다. 이 과정에서 원자핵의 질량 일부가 감소하고,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되었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예언한 E = mc²과 정확하게 일치하였다.


이로부터 독일과 미국 사이에 핵무기 경쟁이 시작되었다. 마이트너는 1942년의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길 거부하였으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자 유감을 표명하였다. 마이트너는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그 대신, 독일 시절 마이트너의 오랜 동료이자 애증관계였던 오토 한(Otto Hahn 1879-1968)이 마이트너의 업적을 등에 업고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거의 같은 시기에 태어나고 같은 시기에 사망했던 두 과학자 중에서, 한 남자는 나치정권 아래에서 핵무기 개발에 몰두하였으며, 한 여자는 나치 정부에게 쫓기는 신세로 이국에서 홀로 생을 마쳤다. 마이트너가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한 사건은 훗날 노벨상의 신뢰성과 관련하여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다. 마이트너는 1968년, 영국의 케임브리지 요양원에서 사망하였다. 묘비명은 조카인 프리시(Robert Frisch 1904-1979)가 썼다.


Lise Meitner : a physicist who never lost her humanity

(리제 마이트너 : 휴머니즘을 끝까지 지켜낸 물리학자)


위험한 실험은 여성 과학자들의 몫인가? 퀴리 부인, 마이트너, 샤틀레, 로절린드 프랭클린, NASA의 히든 피겨스들이 음지에서 일하고 상응한 대접을 받지 못하였다.


중수소

1933년, 나치 정부가 들어서면서 E = mc²에 대한 관심은 질량 M에게 향하였다. 원자핵에 중성자를 밀어 넣어 양성자를 흔들어 해체하면, 양성자의 일부가 줄어들면서 거대한 에너지를 방출하고, 동시에 대량의 중성자가 튀어나와 연속적인 핵분열 반응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이미 실험적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에서 하이젠베르크(Heisenberg 1901-1976)를 리더로 하는 일군의 과학자들은 원자폭탄 개발에 열중하였다. 우라늄은 체코슬로바키아와 벨기에령 콩고에서, 중성자의 속도를 제어하는 중수소(重水素 heavy hydrogen)는 노르웨이 공장에서 조달하였다. 위험한 작업에는 강제수용소 여성 포로들이 동원되었다. 실험은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와 라이프치히 물리학연구소에서 진행하였다.


노르웨이 중수공장은 오슬로에서 150킬로미터 떨어진 골짜기에 있었다. 1942년도 중수 생산량은 연간 4,500킬로그램으로 예년보다 20배 이상 증가하였다. 1942년 11월, 영국 정보부는 중수공장을 파괴하기 위해 삼십 명의 공수특전대원들을 비밀리에 투입하였다. 그러나 수송기가 산에 충돌하면서 생존자들은 총살당하거나 고문 끝에 모두 사망하였다.


작가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극적인 묘사를 통해 당시 상황을 짐작해 보기로 하자. 이번에는 노르웨이 출신의 여섯 명의 자원자가 선발되었다. 특수훈련을 받은 그들은 1943년 2월, 낙하산으로 노르웨이에 잠입하여 현지에 대기하고 있던 3명과 합류한 다음, 크로스컨트리용 스키로 수주 동안 산을 넘어 중수공장이 있는 베모르크 협곡에 도착하였다. 협곡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현수교 밑에는 수백 미터 깊이의 바위 계곡이 뻗어 있었다. 대원들은 계곡을 가로질러 공장 근처에 도달한 후, 케이블 배관을 통해 공장 내에 진입하였다. 총 18개의 중수 저장탱크는 가슴 높이의 강철 구조물로 둘러싸여 있었다. 가져온 폭탄을 설치하는 동안, 내심 우호적이었던 공장 직원들은 밖으로 빠져나갔다. 대원들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스키를 타고 유유히 사라진 후, 공습경보와 서치라이트 속에서 배출구로 쏟아져 나온 중수는 계곡의 얼음을 녹이면서 흘러나갔다.


독일군은 중수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고 남은 중수와 장비를 배에 싣고 독일로 운반하려 하였다. 이번에도 지난번 중수공장 파괴 작전에 참여한 바 있는 크누트 하우켈리트(Knut Haukelid)가 이끄는 노르웨이 레지스탕스가 활약하였다. 그들은 중수소를 실은 페리선을 폭파하여 틴쇼 호수에 가라앉혔다. 레지스탕스 중 한 명이 폭파를 확인하기 위하여 최후까지 남아 배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이로써 독일군의 원자폭탄 생산은 상당 기간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아울러, 크로스컨트리가 단순히 동계올림픽의 메달 종목이 아님도 확인되었다. 크누트 하우켈리트는 독일군의 대대적인 색출 작업에도 살아남아 노르웨이 군대의 장교가 되었다.


인류는 노르웨이 레지스탕스에게 큰 빚을 졌다. 전후 청문회에서 하이젠베르크 박사는 당시 중수 500리터만 더 있었더라도, 이미 만들어놓은 원자폭탄을 작동시킬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핵폭탄

중수공장의 파괴로 시간을 번 연합군은 1943년 4월,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비밀리에 미국 뉴멕시코주 로스 앨러모스(Los Alamos)에 연구센터를 가동하였다. 일명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로 미국 육사 출신 레슬리 그로브스(Leslie Richard Groves 1896-1970) 준장이 지명되었으며, 핵물리학자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 1904-1967)가 연구소장직을 맡았다. 1945년 7월 16일 트리니티 핵실험은 성공하였다. 원자폭탄의 별명인 ‘리틀 보이(무게 4.4톤)’와 ‘팻 맨(무게 4.7톤)’은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었고 일본은 즉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다.


그로브스는 중장으로 진급하였으나 아이젠하워 정부와 갈등을 빚고 퇴임하였으며, 키 183센티미터의 오펜하이머는 한때 53킬로그램으로 몸무게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는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에 나오는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라는 구절을 수시로 외우고 다녔다고 하며, 훗날 수소폭탄 개발에 적극 반대하여 모든 공직에서 배제되었다. 행정 책임자였던 채드윅은 그날 이후 죽을 때까지 28년 동안 지속적으로 수면제를 복용했다고 전해진다.


원자폭탄은 독일 나치 정부가 이니셔티브를 가지고 시작하였으나, 미국이 뒤늦게 출발하여 이민 과학자들을 급조하여 완성한 쉽지 않은 결정이자 선택이었다. E = mc² 공식에 따라 소량의 우라늄 m과 중성자의 작용으로도 거대한 에너지를 분출한 결과, 인류는 집단적으로 희생되었으며 방출된 방사선은 대를 이어 장애가 이어지는 참사로 나타났다. 원자폭탄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재량의 경계를 일깨워 준 상징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원자력 발전은 이용하되 원자폭탄은 재앙이다. 원자폭탄은 에덴동산의 선악과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제는 원자력 발전마저도 재생에너지에 자리를 양보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중성자로 양성자를 깨뜨리기는 쉬워졌다. 반대로 양성자를 융합하기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었다. 46억 년 전부터 태양이 수소 원자를 태워 태양계에 햇빛 에너지를 선물해 온 것이라면, 핵분열보다는 오히려 핵융합이 더 자연상태에 부합하는 것은 아닌가?


수소 스펙트럼

원자폭탄으로 E = mc²의 위력이 증명되자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우주로까지 확장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그때까지도 태양은 구성성분의 66퍼센트 이상이 철(Fe 鐵 원자번호 26)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다. 우라늄과는 달리 철은 가장 안정적인 원소 중 하나여서, 이를 해체하여 에너지를 방출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세실리아 페인(Cecilia Payne 1900-1979)은 영국 출신의 여성 천체물리학자로서, 별의 주성분이 수소와 헬륨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1925년 그녀는 미국의 레드클리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그녀의 논문은 지금까지도 천문학 사상 가장 뛰어난 논문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그녀는 별에서 오는 빛의 스펙트럼 분석을 통하여, 별의 주요 성분이 90%는 수소이고 나머지 10%는 헬륨이라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이것은 태양도 예외가 아니어서 3분의 2 이상이 철 성분이라는 종래의 가설은 뒤집어졌다.


보더니스가 우화적으로 예시한 바에 따르면,

종래 t h e y s a i d i r o n a g a i n에서 ‘철(iron)’이 별의 주성분임을 주장하였다면, 페인은 iron(철) 대신, hydrogen(수소)을 발견하였다. t h e y s a i d i r o n a g a i n


별의 주성분이 철에서 수소로 바뀌자, 별의 생성 발광 소멸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네 개의 수소 핵이 수천 킬로미터 두께의 태양 중심부에서 압축되면 그것들이 결합하여 두 개의 헬륨 핵으로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핵의 질량을 측정해보니, 수소 핵이 4라면 헬륨 핵은 3.993이 되어 질량이 0.7 퍼센트 적어짐을 확인하였다. 잃어버린 0.7 퍼센트가 에너지로 변하여 빛에너지로 방출된다.


태양은 매초 400만 톤의 수소 핵융합을 일으키므로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는 셈이다. 지구는 이 맹렬한 태양의 불꽃에 의해 양육되고 따뜻하게 보호받아 왔다. 그러나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수소 연료가 다 소모되고 헬륨 더미만 남으면 핵융합의 과정은 멈출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현상에 필요한 탄소, 산소 등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프레드 호일(Fred Hoyle 1915-2001)은 물질이 안으로 압축되면 내부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서 핵융합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보일의 법칙(Boyle’s Law)은 일정한 온도에서 기체의 압력과 부피가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샤를의 법칙(Charles’s Law)에 의하면 기체의 온도와 부피가 비례한다. 두 개의 법칙을 통합하면, PV/T = P´V´/T´(P: 압력 V: 부피 T: 온도)로 표시할 수 있다. 여기서 부피(V)가 일정한 상태에서 압력(P)이 높아지면 온도(T)는 비례하여 상승한다.


프레드 호일의 주장으로 보일 샤를의 법칙은 우주로 확장이 가능해졌다. 오랫동안 우주먼지가 뭉치고 축적되어 밀도가 올라가면 내부 중심부의 온도는 표면의 온도에 비해 급격히 올라간다. 태양은 내부 폭발 과정에 의해 중심부 온도가 2천만 도에서 1억 도까지 상승할 수 있다. 올라간 온도는 수소가 타고난 헬륨 더미를 태워 탄소, 산소, 규소, 철 등 또 다른 원소를 만들어낸다. 별들은 내부 파열에 의하여 점점 커지다가, 연료를 다 소모하고 나면 마지막 불꽃을 분출하고 블랙홀로 붕괴된다.


아인슈타인의 생각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빛이 중력장이 큰 곳에서는 휘어진다는 사실을 밝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고정적이지 않음을 주장하였다. 이는 관측 실험으로 확인되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이론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우주공간은 지금 이 시간에도 팽창하고 있다는데 그렇다면 시간은 무엇인가?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흐르는 연속체인가?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물체의 속도는 관측자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시간의 함수인 속도가 그러할진대 시간 자체도 변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시간의 객관성이 무너지면서 시간의 연속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시간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이 만나는 지점이 형성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상력이 질량과 에너지의 관계에서 핵무기를 만들어내더니, 빛의 휨에서 물체의 속도가 상대적임을 밝혀내고 마침내 시간과 공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자연과학이 더 이상 과학자들만의 점유물이 아님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바야흐로 뉴턴의 만유인력과 다윈의 자연선택에 큰 구멍이 뚫린 셈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양자역학의 발전과 함께 신의 창조신화와 지적설계론에 심각한 도전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이 인간의 교만으로 인한 바벨탑에 그칠 것인지, 우주와 생명의 비밀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길이 될 것인지는 앞으로의 과정을 지켜볼 일이다.


제20장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시간의 구름

탁자 위에 놓인 시계가 바닥에 놓인 시계보다 더 빠르게 간다. 산과 평지에서 각각 오랫동안 살다가 두 친구가 만났을 때, 이들의 손목시계의 시간이 서로 달라진다. 지구 표면에서 위로 더 멀리 올라갈수록 시계가 더 빠르게 흐른다.


이탈리아 출신의 이론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베리(Carlo Rovelli 1956-)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The Order of Time)」의 주석에서, 시간의 개념을 다섯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 시간은 ‘사건들의 연속’이다.

둘째 시간은 사건과 사건 사이의 ‘간격’이다. 누군가 내일까지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고 하면, 그 내일은 간격으로서 시간의 경계를 의미한다.

셋째 시간은 ‘간격의 지속’이다. 흔히 인생은 짧다고 할 때, 인생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시간의 간격의 지속을 말하는 것이다.

넷째 시간은 ‘특별한 순간’을 가리킨다. 누군가와 이별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면,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다. 다섯째 시간은 시간을 ‘측정하는 변수’를 말한다. 가속도(a)는 속도(v)를 시간(t)으로 미분한 것이다.


카를로 로베리의 책 제목은 그리스 자연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기원전 610-546)의 기록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원문 그대로 해석하면 ‘시간의 순서’ 정도일 것인데, 역자는 과감하게 시간을 흐르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증거를 찾기 위해 책을 끝까지 읽게 유도한다.


珍光은 생각한다. 먼 옛날에 청춘 남녀가 우연히 만나 다음 날 해 질 무렵, 강가에 있는 버드나무 밑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였다고 하자. 이튿날 남자가 버드나무 밑에서 하루 종일 기다렸으나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남자는 같은 장소에서 기약 없이 기다린다. 여자의 집도 주소도 모른다. 연락을 할 방법도 없다. 남자는 순간적으로 시간의 무한루프에 빠진다.


주인의 퇴근길마다 기차역에 마중 나가는 일을 낙으로 삼던 하치(Hatch)는 어느 날,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할 일을 잃어버리고 멘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 과거 유기당했던 기억이 있는 하치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차역이라는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할 수밖에 없다. 니체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처럼 인생도 무한 반복하여 원운동을 하는 존재로 상정하였다.


이제 우주는 암흑구름으로 채워져 있고 원자는 전자구름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알려진 조건 하에서, 인간은 디지털 공간의 무한 확장을 꿈꾸고 있다. 이 시대는 수많은 가능성과 비관론이 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珍光은 평소 AI에 무관심하다가, 우연히 동네에서 열린 시연회에 한 번 참석해 보았다. 사진 한 장으로 단숨에 명화를 그려내고 그럴듯한 동영상을 만들어낸다. 몇 마디 대화의 기록으로 작사 작곡을 하여 들을 만한 노래를 만든다. 학생의 리포트 수준에서 나아가, 프로포설은 물론 학위 논문까지 쉽게 해결해 준다고 한다. 소설 창작까지 가능하다고 하니 의료행위나 판결문은 비교적 간단한 작업이 될 것이다. AI는 육체노동뿐 아니라 고급 두뇌운동까지 대신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구세대인 珍光은 여전히 고집을 부리고 있다. DOS 상태에서 벗어나 반강제적으로 Windows의 성채에 갇힐 때부터 노예 상태를 경험한 바가 있는데, 지는 해를 바라보고 강물에 삽을 씻어야 할 나이에, 복제인간을 상대하여야 할지 말지 망설임과 두려움이 착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AI를 부르고 있다. AI는 인간의 인지혁명의 끝판왕으로 대미를 장식할 기세다.


상대성

열역학 제2 법칙은 열이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일방통행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물리학에서 가역반응을 허용하지 않는 유일한 법칙이라고 한다. 열이 역행을 불허하고 한쪽으로만 흐르면 이것은 자연의 무질서도를 증가시키며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엔트로피는 고립된 상황에서는 결코 감소하지 않는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S ≧ 0 델타

S(Entropy 무질서도)는 0과 같거나 크다.


볼츠만(Ludwig Boltzmann 1844-1906)은 열은 분자의 동요라고 정의하고,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무질서도가 과거보다 미래에 더 증가하는 것에 불과하며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볼츠만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방정식이 새겨져 있다


S = k log W

(S: 엔트로피, W: 미시상태의 수, k: 볼츠만 상수)(k = 1.380650524 × 10⁻²³ J/K, J: Joule, K: 절대온도)


시간은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특징으로서의 중요한 잣대를 하나 더 잃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이 질량(중력)에 의해 휜다는 것을 주장하기 10년 전에, 시간이 속도에 의해 늦춰진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전자가 일반 상대성이론이고 후자가 특수 상대성이론이다. 많이 움직이는 사람일수록 멈춰 서 있는 사람보다 시간이 더 천천히 흐른다. 많이 움직이는 사람은 더디게 늙고 그가 기르는 식물의 싹은 더 늦게 돋아난다.


지구에서 4광년 떨어진 행성에 A가 있다고 하자. 지구에 있는 내가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A는 4년 전의 A다. 지구에 있는 내 시계를 기준으로 보는 4년 후 A는 A의 시계로는 8년 후가 아니라, 10년 후가 될 수 있다. 이는 지구와 행성의 질량의 차이에 따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주에서는 ‘현재’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으며 시간의 간격만 존재할 뿐이다. 시간의 간격은 화성은 15분, 프록시마 b는 8년, 안드로메다 은하는 수백만 년에 이른다. 인류는 시간의 간격 위 어느 한 점에 서 있으며,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다. 그 시간의 간격이라는 것도 리미트 무한대의 공간 속에서는 0에 수렴할 뿐이다. 珍光이 쓰고 있는 이 책 속에서 표기하고 있는 수많은 시점들도 술이부작(述而不作)을 변명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영겁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하얀 토끼에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영원’이냐고 물으니, 하얀 토끼는 1초만으로도 영원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1겁(劫 kalpa)은 1천 년에 한 방울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내는 시간이거나, 1백 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선녀의 치맛자락에 바위가 닳아 사라지는 데 필요한 시간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전생에 쌓은 5백 겁의 인연으로 옷깃을 스칠 수 있으며, 1천 겁의 인연이 쌓이면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고, 2천 겁의 인연으로 하루 동안 길을 동행하게 되며, 3천 겁의 인연으로 하룻밤을 한 집에서 자게 된다고 한다. 부부의 인연은 전생에서 7천 겁의 선행이 쌓여 만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하룻밤 인연을 너무 쉽게 생각하면 ‘겁’을 오남용한 셈이 된다.


珍光은 생각한다. 사람이 숨을 거두기 직전에, 일생 동안 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임종을 마주하고 있는 유족에게는 찰나의 시간에 불과하겠지만, 죽음을 마주한 어떤 당사자에게는 이것이 천국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기나긴 지옥이 될 수도 있다고 상상해 본다.


21세기 인류가 뉴턴의 절대시간에서 벗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시간을 넘어 양자역학의 불확정적 시간으로 들어갔음에도, 비과학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시간에 대한 탐구는 진전이 거의 없어 보인다. 다케우치 가오루(竹內 薰 1960-)는 시간의 본질에 관하여 정리한 책 「시간론」을 내놓았다.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형이상학 서설」에서 ‘공간과 시간은 인간이 가진 감성의 형식적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하였다고 한다. 이를 현대적으로 풀이하면 공간과 시간은 뇌가 외부 세계를 이해하기 쉽게 해주는 개념틀이며, 물리계에 실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생명체는 심장이 네 번 뛸 때마다 한 번씩 호흡한다고 한다. 일생 2억 번의 숨을 쉰다고 할 때, 심장박동수는 8억 번이 된다. 결국, 덩치가 작은 생명체나 큰 생명체나 모두 일정한 심장박동수에 도달하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심장박동의 시계 앞에서는 누가 더 오래 산다고 말할 수 없다.


소리는 1초에 330 미터를 가고 빛은 1초에 3억 미터를 간다. 빛이 소리보다 약 90만 배 더 빠르다. 반면 우리의 뇌는 시각 정보보다 청각 정보의 처리 속도가 더 빠르다고 한다.


독실한 아리우스파 기독교인이었던 뉴턴은 ‘신은 시간도 공간도 아니다. 하지만 영겁으로 지속하고 모든 곳에 존재한다. 신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므로 시간과 공간을 구성한다’고 ‘절대시간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발표 이후, 시간은 관측자마다 서로 다르다는 ‘상대시간’이 대세가 되었다.


아인슈타인이 질량과 에너지를 연결하는 방정식 E = mc²를 발표함에 따라 질량은 물론 빛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였다. 우주는 결국 빛으로 설명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면, 내 주위의 공간은 납작해 보이고 내 주위의 시간은 멈춘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1942-2018)은 ‘시간의 화살’ 가설을 제시하여, 시간을 엔트로피(무질서의 정도)와의 관계에서 바라보고 있다. 열역학적으로 시간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른다고 보았다.

우주를 변하지 않는 법칙 내에서 설명하려 하다 보니, 종전까지는 시간을 속도와 중력의 관점에서 바라보다가 이제는 열과 엔트로피의 관점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사물과 사건

로벨리를 비롯한 양자역학자들은 시간의 고유 개념인 유일성, 방향성, 독립성, 현재성, 연속성을 부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사건들의 네트워크로 봄으로써 시간을 해체하는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사물’은 시간 속에서 계속 존재하고 ‘사건’은 네트워크 안에서 존재한다. 이제 과학자들은 인문학을 넘어 시와 예술의 영역에 개입하게 된 것이다.


사물과 사건에 관한 박성현 시인의 관점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돌’이나 ‘비단 이끼’, ‘검은 구름’, ‘커피’, ‘아스팔트’, ‘일곱 늙은이’는 사물이고, ‘갑오농민전쟁’, ‘한국전쟁’, ‘419혁명’, ‘518민중항쟁’, ‘다락에서 낮잠을 잔 일’, ‘아버지 몰래 밤새도록 거리를 쏘다닌 일’, ‘진달래꽃을 꺾어 화첩을 만든 일’은 사건이다. ‘만물조응’, ‘상승’, ‘장소를 위한 시’, ‘끝과 시작’, ‘자아비판에 대한 찬사’, 혹은 ‘비대칭’, ‘방향을 빌려와서’, ‘오감도’는 추상의 영역이지만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사과를 씹는다 개가 앉아 당신을 쳐다본다 사과를 씹으면서 개의 목덜미를 만지는 얼굴은 어제의 당신과 똑같다 어제의 나도 사과를 씹으며 당신을 쳐다보는 개의 목덜미에 손을 얹는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낮과 밤의 밝은 주황이 점멸한다”


“스튜디오는 북촌 방향으로 휘어지고 시간은 같은 자리를 반복한다 사과를 움켜진 손가락은 사과가 회전하는 방식 짓무른 날씨는 오후의 햇볕 속으로 들어간다 신체의 일부를 강탈당한 채 사과는 어제의 개를 쳐다본다”

- 박성현 시집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 중 ‘사과의 회전’


시간을 넘어 사과가 회전하는 모습에서, 시인이자 수학자였던 해밀턴(Rowan Hamilton 1805-1865)의 나블라 연산자(nabla operator) 혹은 천재 수학자 가우스(Gauss)의 적분(integral)이 떠오르는 것은 이미 시와 과학이 만나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돌이나 금방 사라지고 마는 소리나 바다를 가로지르는 파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면 세상은 작동할 수 없다. 세상이 원자와 같은 작은 입자나 장(field)의 일시적인 요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세상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이 사건의 네트워크라고 생각하면 세상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쟁이나 폭풍우는 사물이 아니라 사건이다. 산 위의 구름도 사물이 아니라 사건이다. 공기 중의 습기가 응결된 것을 바람이 산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가족도 사건과 관계의 총체로 볼 수 있다. 인간은 음식, 정보, 빛, 언어가 들어오고 나가는 복잡한 프로세스로서의 사건이다. 세상을 존재보다 변화, 실체보다 관계로 이해하여야 한다. 이제는 원자의 형태도 슈뢰딩거의 방정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방정식도 사물이 아닌 사건을 다루고 있다. 사물 자체도 잠시 동안 변함이 없는 정적인 사건에 불과하다. 이후에는 암흑먼지로 돌아간다.

엔트로피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고 말하기 전에, ‘나는 의심한다 고로 생각한다(Dubito ergo cogito)’라고 말하였다. 데카르트가 생각하기 전에 먼저 의심하라고 이야기한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명제이다. 합리적 의심은 역지사지의 첫걸음이다.


로벨리의 신선한 어프로치에 조금 더 들어가 보자. 지구는 태양에서 도착한 뜨거운 광자 한 개당 열 개의 차가운 광자를 방출한다. 뜨거운 광자 한 개의 에너지가 차가운 광자 열 개의 에너지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뜨거운 광자 한 개는 차가운 광자 열 개보다 엔트로피가 작다. 그러므로 태양은 낮은 수준의 엔트로피를 꾸준히 공급하는 가장 큰 후원자라 할 수 있다.


태초에 우주는 수소로 가득했다. 은하를 떠돌아다니는 거대한 수소구름이 중력으로 수축되고 수백만 년에 걸쳐 응축되었다. 이들이 높은 온도로 가열되어 마침내 점화하면, 수소를 태워 헬륨으로 만드는 핵융합 과정이 일어나고 별은 빛난다. 핵융합은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통로가 되었다.


수소가 타고 남겨진 잔재인 헬륨 역시 우주먼지의 응축과 가열과 점화의 과정을 거쳐, 더 높은 준위의 원소들을 생성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Fe(철)와 같은 비중이 높은 원소들은 별의 중심부에 쌓여 회전하면서 자기장을 형성한다. 이들은 외부로부터 우주선을 막아주고 생명이 발생할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엔트로피로 바라본 우주는 과학적 발견에 대한 희열보다는 불교에서 지혜를 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맹인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처럼, 새로운 발견을 하면 할수록 우주와 생명의 경이로움에 무릎을 꿇게 만드는 것 같다. 볼츠만은 왜 하필 두이노(Duino)에서 자살하였으며, 그로부터 6년 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는 왜 「두이노의 비가(The Duino Elegies)」를 쓰게 되었을까?


珍光은 거듭 생각한다. 과학의 발달과 함께 인류는 심리적인 시간은 물론 물리적인 시간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 있는 듯하다. 칸트가 말한 것처럼, 시간과 공간이 외부 세계를 필터링하기 위한 뇌의 개념 틀에 불과하다면, 시간과 공간은 ‘색즉공 공즉색’의 경지에 들어간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과학과 철학과 예술과 종교가 합력하여 시간과 공간을 이야기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거기에 양자역학의 유물론적 무신론이 가세하는 것도 나무랄 바는 아니다. 어찌 보면, 자연과학이 우주와 생명을 설명하기에는 스스로 힘에 부쳐 인문학에 보내는 SOS일 수도 있다.


앨리스와 어린 왕자

모자 장사가 말했다

“네가 나만큼 시간을 잘 안다면 시간을 낭비한다고 말하진 못할 거야 시간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앨리스가 대꾸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모자 장사가 경멸하듯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

“모르는 게 당연하지 넌 시간에게 말을 걸어 본 적도 없잖아”

앨리스가 조심스럽게 말을 받았다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음악 공부를 할 때는 시간, 그러니까 박자를 맞춰야 한다는 건 알아요”

모자 장사가 말했다

“아 그래서 그렇구나 시간은 맞는 걸 싫어하는데 들어봐

네가 만약 시간이랑 사이좋게 지내면

시간은 네가 바라는 대로 시계를 맞춰 줄 거야

예를 들어 아침 아홉 시에 수업을 시작한다고 쳐

넌 시간에게 슬쩍 귀뜸만 해주면 돼

그럼 시계가 눈 깜짝할 사이에 돌아간다구

바로 점심 먹을 시간으로 말이야”

앨리스가 생각에 잠겨 말했다

“정말 근사하겠네요 하지만 그땐 배가 고프지 않을 텐데요”

모자 장사가 말했다

“처음엔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네가 원하면 계속 점심 시간에 머물 수도 있어”


「어린 왕자」에서 생텍쥐페리(Saint Exupery 1900-1944)는 시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그 시간 때문이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는 거야”


선구적인 과학자들이 시간을 일련의 사건들과 네트워크라고 보는 시각은 일종의 파격이었다. 그러나 동심의 세계에서는 파격에 파격을 넘어, 시간을 물건이 아닌 사람으로 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급기야, 어린 왕자에게 시간은 길들여짐이고, 길들임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함으로써 과학의 세계를 넘어섰다. 천진무구한 인간의 영감과 상상력이 자연과학의 차원을 넘어서는 일은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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