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D 1-3

제1부 대한민국 죽음사용설명서

by 김진광

제2장 죽음의 매뉴얼


3. 뇌사


이에 따라 장기이식의 경우, 사망 시점은 심폐사의 시각이 아니라 뇌사판정위원회가 뇌사 판정을 내린 시각으로 변경된다. 의학적으로 뇌사가 심폐사 이전에 발생한다 하더라도 의료 현장에서는 뇌사 판정을 위한 시간이 소요되어 뇌사 시점이 심폐사 시점보다 더 늦어질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장기기증의사가 확인되면 연명의료를 지속하면서 뇌사판정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뇌사 판정 이후 장기 적출이 이루어질 때까지의 시간은 인공호흡기와 약물에 의해 생명 유지가 기술적으로 연장된 상태로, 이는 실질적인 생명 유지가 아니라 생리적 기능의 기계적 지속이며 죽음의 연장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한국은 장기이식과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보험이나 상속 등 주요 법적 사안에서는 여전히 심폐사 기준을 사망의 원칙적 기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뇌사는 장기이식을 위해 시간을 버는 제도’라는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오해라고 할 수 있다. 심장이 뛰는 동안만 장기이식이 가능하며, 심폐사에 이르면 대부분의 장기가 손상된다. 뇌사를 사망의 기준으로 인정할 수 있다면, 현대 의학은 인공적인 장치를 동원해 뇌사 후 일정 시간 동안 심장과 폐의 기능을 유지하여 장기 적출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뇌사라는 개념은 장기이식 기술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존재한 의학적 사망 기준으로, 뇌 기능이 완전히 비가역적으로 소실되면 비록 심장이 뛰고 있어도 사망으로 보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뇌사 판정은 일반적인 사망(심폐사) 보다 더 늦게 이루어진다. 심폐사는 심장이 멈추고 호흡이 정지되며 동공 반사가 없음을 확인하는 정도로 수 분내에 즉시 진단이 가능하다. 그러나 뇌사의 경우는 6시간 간격으로 두 차례에 걸쳐 뇌사 판정이 이루어지고, 뇌사판정위원회의 최종 결정까지 총 12~24시간이 소요된다.


뇌사를 장기이식 제도와 직접 연결시키는 발상은 한국과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기발한 것이다. 이는 법이 의료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상황에서 병원의 이해관계와 행정관료의 법기술이 결합하여 사실상 편법적 장치가 만들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뇌사를 독립된 사망의 한 형태로 인정하고 장기이식과 별개의 사안으로 다루면 될 일이나,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지체되고 있다.


뇌사를 사망으로 인정하는 나라는 미국, 영국을 비롯하여 중국, 인도, 콜롬비아, 모로코 등 대부분의 국가들이다. 일본과 한국만이 ‘장기이식을 목적으로’ 뇌사를 사망으로 간주하는 ‘조건부 사망’이라는 예외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의료기술의 발달을 앞세운다는 한국에서 인간의 생명과 죽음에 관한 결정은 정확하면서도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방치와 부작위가 곧 방조와 유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4. 시신기증과 장기기증


한국은 유난히 죽음의 현장에서 매뉴얼 중심 행정에 집착한다. 억울한 죽음이 발생하여 뉴스에 보도되어야만 관련 지침이 수정되는 것이 현실이다. 살아있는 몸조차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죽은 몸이 제대로 대접받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과한 기대일지도 모른다. 의과대학의 연구와 교육을 위해 기증된 시신과 장기기증자의 시신이 진정한 ‘사일런트 멘토(silent mentor)’로 예우받는 날은 과연 올 수 있을 것인가.


한국에서 연간 시신기증자 수는 약 3,000명이며 뇌사판정을 받은 장기기증자 수는 약 450명으로 알려져 있다. 기증받은 시신을 안치할 공간은 부족한 반면, 장기기증자 수는 장기이식 대기자가 약 5만 명에 이르는 현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하루 평균 6.8명이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한다. 생전에 본인이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음에도 가족의 반대로 기증이 불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시신 훼손에 대한 우려는 전적으로 장기기증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들의 설명 부족과 관리 미흡에서 비롯된 문제다. 도대체 누가 장기기증이라는 신념과 결단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가.


2017년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장기기증자 시신 처리를 가족에게 떠넘겼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일주일 만에 1,000명 이상이 장기기증 의사를 철회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24세 아들의 장기적출이 끝난 뒤 병원 측은 협약을 맺은 병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부친에게 시신을 직접 이송하라고 하였다. 부친은 장례식장 구급차를 직접 부르고, 병원 직원의 도움 없이 아들의 시신을 차량에 옮겼다. 구급차 안에서 그는 아들의 시신이 흔들리지 않도록 꼭 붙잡은 채 이동하여야 했다.


죽음을 둘러싼 이러한 풍경들은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니다. 퇴직 후 제법 침통한 심정으로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찾아간 고용센터에서 마주하는 직원의 무심한 태도, 연명의료사전의향서를 신고하러 간 건강보험공단 직원의 기계적 응대, 사회복지 실습 현장에서 경험한 양가(兩價) 감정들은 이미 일반적으로 목도하는 장면들이다. 해부학 실습 현장에서 의과대학 학생들이 웃고 떠드는 사진이 공개된 적도 있고, 시신이 중개인을 통해 상업적 목적으로 거래된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환자와 가족은 죽음의 현장에서 종사하는 이들에게 과도한 감정이입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감정노동자에게 감정의 과잉은 정서적 소진을 가속화하여 직장 수명을 단축할 것이다. 감정이입의 결핍에서 느껴지는 냉담함과 어색한 분위기, 불편한 파시즘을 마주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환자와 실직자와 고령자는 최소한의 예의와 친절을 원한다.


아무튼 2017년의 사건을 거치며 다양한 대책이 마련되었고, 그 결과 시신에 대한 예우는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장기기증자와 시신기증자에 대한 지원 체게가 강화되고, 병원과 관련 기관의 책임 범위도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기증자와 유족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방향으로 사회적 인식이 성숙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시신기증과 장기기증에는 사람마다 다양한 인생관과 가치관이 반영되겠지만, 이 문제에 대해 국가는 시신에 대한 존엄성과 예우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육신이 자연으로 돌아가기 전에 살아있는 누군가에게 시신이나 장기의 형태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바람직한 일이며, 이와 함께 장례 절차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 또한 존재한다.


죽음의 현장에서 종사하는 자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은 후에도 영혼(혹은 의식)은 존속하다는 믿음이 있으면, 지금처럼 장례 절차를 무심하게 흘러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나중에 임사체험이 가능해진다면 그때 가서 확인해 볼 일이다.


시신기증은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고 있다. 동법 제1조에서는 사인(死因)의 조사와 병리학적ㆍ해부학적 연구를 적정하게 함으로써 의학 교육 및 의생명과학 연구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시신기증은 장기기증과 달리 국가 통합 관리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으며, 각 의과대학이 개별적으로 기증자를 관리한다. 등록기관이 수령할 수 없는 경우에는 다른 기관으로 이관할 수도 있으며, 생전 등록이 없어도 유족이 기증 의사를 밝히면 수령이 가능하다.


생전에 시신기증을 서약한 경우의 구체적인 절차는 다음과 같다. 유족은 사망 후 사망진단서(또는 시체검안서)를 발급받아 장례식장 안치실에 시신을 안치한 뒤 등록 기관에 연락한다. 기관이 ‘수령 가능’이라 판단하면 유족과 운구 일정 및 방식을 협의한다. 유족은 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하여 조문을 받은 후 발인 날 기증기관으로 시신을 인도할 수 있다. 또는 장례 절차를 개시하지 않고 곧바로 기증기관으로 시신을 인도할 수도 있다. 기증기관은 기증 서약서와 사망진단서를 확인하고, 이 시점부터 시신을 보관·해부·연구에 사용한다. 사용 기간이 종료하면 기관은 시신을 화장하여 유골을 가족에게 인도하거나 병원이 운영하거나 위탁한 납골당, 추모공원, 수목장에 안치하며, 정기적으로 유가족을 초청해 합동 추모식을 개최하기도 한다.


시신기증의 혜택은 금전적 측면과 비금전적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금전적인 혜택으로는 장례식장 임대료, 입관⋅염습⋅수의 비용 등 수백만 원에 달하는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 비금전적 혜택으로는 고인을 기리는 추모공간, 기념비, 감사장 등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정신적 가치가 포함된다.


장기기증은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며, 생전에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의 장기기증 희망등록 시스템에 등록함으로써 효력이 발생한다. 珍光은 이미 등록을 마치고 장기기증 카드와 사전연명의향서 카드를 지갑 속에 휴대하고 다닌다. 장기기증을 등록한 경우에는 뇌사가 법적 사망으로 인정된다. 뇌사 상태가 확인되면 전문 코디네이터가 배정되어 기증 가능한 장기의 종류와 적합성을 평가하고, 기증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전용 수술실에서 장기 적출 수술을 진행한다. 생전에 등록이 되어 있더라도 유족이 명시적으로 반대하면 기증은 이루어질 수 없다.


한국에서는 장기 매매가 금지되어 있으므로 장기기증으로 인한 금전적 보상은 원칙적으로 없다. 다만 기증 전 진료비, 장례식장 이용료나 운구비 등 5백만 원 상당의 지원과 지자체의 별도 지원서비스가 있다. 비금전적 혜택으로는 기증자 기념비, 추모식, 감사패 등 다양한 예우가 제공된다. 珍光이 특히 주목하는 점은 장기 적출 수술 과정에서 의료진이 고인을 존중하는 의식을 비교적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처럼 죽음이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시신이 의료진으로부터 일정한 예우를 받는다는 사실은 죽음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인 ‘친절한 죽음(good death)’의 관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다만 고령자의 경우 장기기증이 실제로 가능한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으나, 각막 기증은 연령 제한이 80세까지 허용되며, 의학적 상태가 양호하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장기기증을 위해 중환자실 체류 시간이 길어지고 인공호흡기 유지 비용, 혈압유지 약물 비용, 각종 모니터링 비용 등이 증가할 수 있으나, 뇌사 판정 과정에서 시간 지연으로 발생하는 비용과 뇌사 판정 이후 장기 적출까지의 비용은 국가 또는 이식 관련 기관이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며, 이는 제도적으로도 정당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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