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D 1-5

제1부 대한민국 죽음사용설명서

by 김진광

제2장 죽음의 매뉴얼


6. 통증 관리


고통 없는 죽음은 죽음을 앞둔 환자의 가장 큰 관심사이다. 고통은 곧 통증을 의미한다. 통증의 전달경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통증의 전달경로

자극 -> 통각수용기(nociceptor) -> 척수(dorsal horn) -> 시상(thalamus) -> 변연계(limbic system) -> 대뇌피질(cerebral cortex)


말초신경: 자극이 발생하는 최초 지점

척수: 감각 신호가 증폭·조절되는 중계 지점

시상: 감각 정보를 대뇌로 전달하는 관문

변연계: 편도체와 해마를 통해 감각을 정서적 정보로 변환

대뇌피질: 통증을 인식하고 평가


말초신경에서 자극이라는 감각 정보가 발생하면, 이는 척수에서 조절 증폭된 후 뇌의 변연계로 전달된다. 감각 정보는 변연계의 편도체(amygdala, 공포∙불안)와 해마(hippocampus, 기억)에서 정서적 정보로 변환되어 대뇌피질로 전달된다. 대뇌피질에서는 통증의 강도∙위치∙성질을 인식하고 위험성을 평가하며 행동을 결정한다. 감각과 정서와 인지 과정을 거치면서 객관적 ‘느낌’이 주관적 ‘아픔’으로 변환되므로, 통증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이다. 마약성 진통제는 주로 척수에서 작용하며 신경전달물질(Substance P, Glutamate)을 감소시켜 통증 신호가 뇌로 전달되는 것을 차단한다.


우리가 통증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오로지 고통 없는 죽음을 실현하기 위해 통증 완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말기환자에게 가장 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질환은 1위 뼈 전이암, 2위 췌장암, 3위 위∙간∙폐암, 4위 신경계 질환(말기 신경종양, 척수종양), 5위 말기 심혈관∙호흡기∙신부전 질환 순이다. 앞에서 볼 수 있듯이, 통증과 관련된 질환의 70~90%는 말기 암 환자와 연관된다.


영국의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가 발표한 2025년도 「죽음의 질(quality of death index) 보고서」에서는 ‘말기환자의 마약성 진통제(opioid) 접근성’을 국가별로 평가하고 있다. 죽음의 질 종합평가지수를 보면, 1위 영국, 2위 호주, 6위 미국, 9위 대만, 18위 일본, 26위 한국이 차지하였다. 26위 이하 국가로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이 포함된다. 이는 의료기술의 발달과 죽음의 질이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의사’라는 직업을 선호하는 나라에서 죽음의 질 수준이 하위권에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만, 일본, 한국의 오피오이드 접근성을 평가한 자료에 따르면, 대만은 아시아에서 오피오이드 접근성이 가장 높으며, 국가 차원의 완화의료 정책과 공급망 체계가 확립되어 있고, 의료진 교육과 환자 처방 체계가 안정적인 운영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은 전국적으로 오피오이드 사용이 가능하지만, 지역별 접근성이 불균등하고, 문화적 요인(진통제 사용에 대한 보수적 태도)의 영향으로 접근성이 부족하다고 평가된다.


한국은 최근 몇 년간 오피오이드 처방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으나, 마약류 규제와 의사의 법적 책임 회피 경향, 마약류에 대한 사회적 인식 문제로 말기환자의 접근성이 제한적이다. 또한 의료진 교육 및 처방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이 지적되며, 제도는 발전 중이지만 실제 환자 접근성은 중위권 수준으로 평가된다.

대만, 일본, 한국의 비교 자료는 말기환자의 고통 없는 죽음을 실현하기 위해 호스피스 기관의 수와 마약성 진통제의 적절한 사용이 결정적임을 시사한다.


WHO(국제보건기구)가 권고한 진통제 사다리(analgesic ladd er)에 따르면, 마약성 진통제는 경구 투여를 우선하며, 통증 강도에 따라 비마약성 진통제 -> 약한 오피오이드 -> 강한 오피오이드로 단계적으로 증량한다. 필요시 보조제(NSAIDs)를 병용할 수 있으며, 과도한 통증 시에는 단계를 생략할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용 마약류 진통제 안전사용 기준」에 따르면, 마약류 진통제의 최초 처방은 단기(7일 이내)를 원칙으로 하며, 추가 처방도 가급적 1개월 단위로 관리하고 최대 3개월을 초과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를 MME 기준으로 보면, 초기 용량은 가능한 적은 용량을 사용하며, 증량이 필요한 경우 하루 최대 50 MME까지 서서히 증량할 수 있다. 하루 90 MME를 초과할 경우 환자 재평가를 실시하고 통증 전문가에게 자문할 것을 권장한다.


* 통증 강도별 실무 기준

경도 통증 : 비마약성 진통제(아세트아미노펜, NSAIDs)와 비마약성 약물 치료 병행, 오피오이드 사용하지 않 으며, 효과가 불충분할 경우 상위 단계로 전환

중증도 통증 : 약한(속효성) 오피오이드(코데인 등)와 보조제와 비약물 치료 병행, 하루 50 MME까지 점진적 증량 가능

중증 통증 : 강한 오피오이드(모르핀, 옥시코돈 등)와 보조제를 병행. 시작은 최소 유효용량 원칙을 따르며, 정기적 재평가를 통해 내성, 부작용, 기능 개선을 확인. 하루 90 MME 초과 시 환자 재평가 및 전문가 자문 필요

**MME(morphine milligram equivalents) : 모르핀을 기준으로 밀리그램당 효과를 환산한 값


* 오피오이드별 표준 환산값(MME)

모르핀(morphine) : 1(경구 모르핀 10 mg= 10 MME)

옥시코돈(oxycodone) : 1.5(경구 1 mg= 1.5 MME)

코데인(codeine) : 0.15(경구 1mg= 0.15 MME)

펜타닐 패치(fentanyl patch) : 25 ug/hr= 약 60 MME/일

펜타닐 주사(fentanyl injection) : 100 ug IV = 약 10 MME

**1ug(마이크로그램)= 1/1,000 g


모르핀은 양귀비(opium poppy)에서 추출한 아편을 정제한 천연 알칼로이드(C₁₇H₁₉NO₃)이며, 옥시코돈은 아편에서 얻은 코데인이나 테바인(thebaine)을 기반으로 합성한 반합성 오피오이드(C₁₈H₂₁NO₄), 펜타닐은 N-페닐프로필아민 유도체를 출발물질로 하여 실험실에서 제조한 합성 오피오이드(C₂₂H₂₈N₂O)이다.

옥시코돈은 모르핀의 1.5배, 펜타닐 패치(25ur/hr 기준)는 모르핀의 약 60배(1일 기준), 펜타닐 주사(100ug IV 기준)는 모르핀의 약 10배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는 오피오이드 남용에 대한 경계와 우려가 강화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오피오이드 과소 처방이 문제로 지적된다. WHO가 말기환자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마약성 진통제의 적극적인 사용을 권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의사의 ‘마약 공포증(opioid phobia)’은 말기환자의 접근성을 현저하게 저하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국가별 오피오이드 사용량을 비교해 보면, 미국은 한국의 수십 배, 유럽은 10배 수준이며, 대만과 일본은 수 배에 달한다. WHO가 말기환자에게 권장하는 진통제 투여량은 MME기준으로 1일 80~120mg이나 한국은 30~50mg에 그치고 있다. 말기 암 환자에 대한 조사자료에 의하면, 사망 전 30일 평균 MME는 1일 기준 45mg에 그치고 있으며 처방된 진통제의 20~30%가 미사용 잔여량으로 처리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OECD 최하위권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 병원이 모르핀 투여에 인색한 원인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마약의 부작용(범죄, 중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환자 가족이 마약은 ‘임종 직전의 약물’이라는 오해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현행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상 의료진에게 부과되는 과도한 책임 부담이다.


한국의 마약류 관리법은 환자의 ’ 안전과 오남용 방지‘를 목표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의료진에게 법적, 행정적 부담을 과도하게 부과한다. 이로 인해 말기환자에 대한 ’ 통증관리‘가 소홀해지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한다. 의료기관은 마약류의 출납과 보관을 실시간으로 관리해야 하며, 유출 시 의료진이 직접적인 책임을 진다. 또한 처방전 기재와 보존 의무나 투약 이력 확인의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상의 자격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마약류 사용에 대한 의료진의 의학적 부담감 역시 오피오이드 접근성을 가로막는 중요한 원인이다. 마약류 사용으로 인한 조기 사망, 의존성(dependence), 중독(addiction), 내성(tolerance), 호흡억제, 저혈압, 가려움증 등의 부작용이 보고될 때마다 의료진은 움츠리며 처방에 더욱 소극적이 된다. 연명의료에는 열심이면서도 통증 관리에는 소극적인 의료 현장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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