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죽음 준비
치매선별검사의 예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기억의 창고에서 연상되는 기억을 불러내어 언어로 표현하고, 이를 문자로 기록하는 과정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뇌의 후두엽과 측두엽, 해마와 편도체, 그리고 전두엽이 유기적으로 작용한다.
인간의 ‘의식’에 대해서는 ‘죽으면 끝’이라는 관점에서부터 ‘죽음 후에도 의식은 존속한다’ 또는‘ 카르마 법칙에 따라 윤회와 환생을 반복한다’는 관점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양자역학적 사고가 발전하면서 의식을 뇌에만 국한하지 않고, 신체 전체와 세포 단위의 통합적 작용으로 보는 견해도 제기된다.
한편, 기억이 없는 언어화나, 내면의 음성이 없는 문자화는 뇌의 인지기능을 단순화하고 상투적으로 만든다. 결국 퇴행을 초래하여 뇌를 무력화하고 치매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의 언어활동이나 문자활동이 사유와 통찰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순히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하거나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것처럼 상투화된다면, 뇌도 여기에 쉽게 적응할 것이다. 이는 마치 전두엽에 갑작스러운 고장이 난 것처럼 보인다.
기억과 언어를 문자화하는 과정은 기억을 불러와 언어로 변환하고, 이를 다시 문자로 기호화하여 외부에 기록하는 절차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복합적 인지활동을 단계별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크다. 개인의 기억을 호출하여 사유와 통찰의 필터링을 거쳐 의미를 산출하고, 이를 언어로 변환하고 문자화하는 활동은 우리의 의식 세계를 심화 발전시킨다.
이러한 논거는 글쓰기나 예술적 창작 활동의 결과물이 우리의 삶에 영감을 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치매 예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을 뒷받침한다.
* 언어와 문자의 복합적 인지활동
(1) 지각(perception)과 기억의 활성화(recall)
뇌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해마(海馬, hippocampus)는 경험과 정보를 저장한다. 기억은 편도체의 감정 기능과 연계되어 장기 기억으로 저장된다. 시청각이나 감각을 통해 특정한 자극이 지각되면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상황이 연결되면서 기억의 창고에서 기억이 호출되고 활성화된다.
(2) 언어화(language)
불러온 기억은 언어화 과정을 거쳐 타인과 공유되고,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형태로 변환된다. 여기에는 주로 좌뇌의 역할이 중요한데, 언어를 생성하고 표현하는 기능은 전두엽의 브로카 영역(Broca’s area)이 담당하며, 언어를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기능을 측두엽의 베르니케 영역(Wernicke’s area)이 담당한다.
(3) 내적 음성(inner speech)
언어화된 내용은 전두엽에서 점검되고 정교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사고(思考)를 언어로 조직화하는 과정이며, 곧 ‘내적 말하기’에 해당한다.
(4) 문자화(writing)
내적 음성은 문자로 기호화된다. 좌뇌의 두정엽은 말소리를 문자로 연결하며, 글자를 선택하여 종이에 쓰거나 키보드에 입력하는 과정을 담당한다.
(5) 외부 기록(communication)
문자화된 결과는 종이나 디지털 매체, 예술적 산물로 남는다. 이러한 외부 기록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 사회적 공유와 문화적 축적을 가능하게 한다.
떠날 준비를 하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고(苦)와 집(集)을 멸(滅)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나르시즘(narcissism)과 스케이프 고트(scapegoat)의 관점에서 풀어내고자 한다.
요즘 유행하는 나르시즘(‘나르시시즘’, ‘나르시시스트’이지만 편의상 ‘나르시즘’, ‘나르시스트’라 칭함)이라는 용어는 사이코패스부터 관심종자, 천재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격을 포괄하는 듯하다. 흔히 나르시즘은 문제의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을 때 좋은 핑곗거리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정도가 심한 나르시스트를 만나는 경우가 자주 있으며, 가족 중에서도 발견된다. 일상생활을 함께하는 사람 중에서 과도한 나르시즘 증세를 보이면 여러 사람이 피곤해진다.
그러나 모든 원인을 나르시즘으로 해석하려 하는 태도는 위험하다. 누구에게나 나르시즘과 에코이즘(echoism)이 존재하며, 이는 특정한 인간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유전과 환경에 따라 차이가 나타나는 문제임을 인정하여야 한다. 나르시즘에는 건강한 영역에서부터 병리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전제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나르시즘 연구의 권위자 크레이그 맬킨(Craig Malkin)은 저서 「나르시즘 다시 생각하기(Rethinking Narcissism)에서 이렇게 말한다.
“건강한 나르시즘은 자아도취와 타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 사이를 매끄럽게 오간다. 그는 빛을 받아 일렁이는 나르키소스의 연못을 찾아가지만, 연못에 비친 자신을 붙잡으려 뛰어들지는 않는다.”
죽기 전에 버려야 할 첫 번째 항목으로 인간의 나르시즘적 업보를 주제를 정한 것은 남다른 이유가 있다. 나르시즘이라는 잣대를 지금처럼 상대방을 평가하는 데 쓰기보다는 나 자신을 성찰하는 데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내면에 숨어 있는 나르시즘으로 인해 상처 입은 이가 있었다면, 그에게 용서와 화목을 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이를 받아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상대방만 손해일 것이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에 더 이상 밀고 당기고 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나친 나르시즘은 병적이며, 열등감의 또 다른 표현이다. 나르시즘은 ‘슬픈 열대’이기도 하다. 과도한 나르시즘은 건강하지 못하며, 나르시스트가 겪어 온 고단한 역사이기도 하다. 자신의 부족함을 적극적으로 극복하기보다 소극적으로 숨기려 하다 보니, 그것이 습관화되어 인생의 본말이 전도된 채 일상이 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들은 내면 깊숙한 곳에 꼭꼭 숨겨둔 아픔을 지니고 있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 비범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은 자존감의 또 다른 표현이자 성공적인 삶을 위한 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신을 과시하려는 행동은 자신의 부족함을 위장(camouflage)하는 행위다. 그래서 항상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날까 노심초사한다. 이는 비생산적이며 과도한 에너지의 낭비로 이어진다. 그 결과 가까운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고,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릴 여유가 없으며, 나아가 가까운 이를 하대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건강하지 못한 나르시즘과 그 상대방은 마님과 하인의 관계로 전락할 수 있다. 마님의 하인에 대한 사랑은 대등한 위상이 아니라, 마님과 하인이라는 제한된 관계에서만 성립한다. 사디스트에게는 마조히스트가 없으면 불행해진다. 어떻게든 마조히스트를 만들어야 한다. 한편, 자존심에 상처 입은 마조히스트는 매정한 사디스트를 나르시스트로 단정하고, 모든 원인을 그에게 돌린다.
나르시즘 성격검사(NPI-40) 문항과 경험적 사실에서 유추해 보면, 나르시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은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남들의 주목을 즐기며, 상대방을 남들과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또한 멀티태스킹에 약하고, 필요 이상으로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며, 상대방의 말을 건성으로 듣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몸이 아프다고 호소하면 처음에는 병원에 가보라고 대응하지만, 이내 곧 상대방이 아프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상처를 주기 일쑤다. 이는 평소에 자신의 입장을 위장하는 데 과도한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상대방을 진정으로 배려해 줄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멋있게 차려입고 외출 나간 자리에 남겨진 무질서와 지저분함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데 지나치게 에너지를 소모한 후유증이다. 그것을 정리하거나 감내해야 하는 몫은 오로지 가까이서 이를 지켜보는 자에게 남겨진다.
구성원이 다수일 경우에는 왕따나 희생양을 만들어 나르시즘을 전가하거나, 경우에 따라 합종과 연횡을 반복하면서 상황을 비껴가기도 한다. 각자 역할기대가 주어지면, 나르시스트는 개인적 우화(personal fable)의 서사를 가지고 상상적 청중(imaginary audience) 앞에서 연기에 몰두한다. 이와 같이 건강하지 못한 나르시즘은 청소년기에 미처 정리되지 못한 잔재를 안고 살아가는 ‘겉보기 성인’의 병적 성향으로 볼 수도 있다. 자아에 대한 내면적 사유와 성찰 대신, 여러 사람과의 관계에서 축적된 데이터베이스에 근거한 반응만 발달해 있을 뿐이다.
나르시스트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며 끊임없이 사랑과 찬사를 갈망한다. 자기애가 강하여 타인의 감정이나 욕구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종종 상대방을 비난하며 다른 사람의 성취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높은 자존감을 지닌 듯 보이나, 실제로는 내면에 깊은 불안과 공허를 품고 있다.
나르시스트는 자신의 자아와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심리적 도구를 활용한다. 나르시스트는 자신을 우위에 두고, 주변 사람들에게 스케이프고트(scapegoat), 골든 차일드(golden child), 플라잉 몽키(flying monkey)라는 역할을 배정하여 자신의 요구를 따르도록 만든다.
스케이프고트는 나르시스트 앞에서 희생양의 역할을 자임한다. 스케이프고트는 자신이 잘못하지 않은 일에도 책임을 지게 되며, 이는 심리적 폭력으로 이어진다. 나르시스트는 자신의 어려움이나 실패를 스케이프고트에게 전가하고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다. 스케이프고트는 대체로 감정을 억제하고 상황을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
골든 차일드는 나르시스트에게 이상적인 자녀이자 자랑거리로 여겨진다. 이들은 부모나 중요한 인물에게 칭찬과 애정을 받으며, 자신이 하는 일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늘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고 타인의 기대에 맞추려 한다. 그 결과 성인이 되었을 때 자아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사회적 관계에서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다.
플라잉 몽키는 나르시스트의 사적 이익을 위해 조력자로 활동한다. 이들은 나르시스트의 비밀을 감추거나, 그가 주변에 끼친 피해를 은폐하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타인에게서 정보를 얻어 나르시스트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나르시스트의 이기적 목적을 실현하는 데 기여한다.
나르시즘에 관한 논의들을 살펴본 결과, 珍光은 다음과 같은 점을 깨닫게 된다. 나르시즘의 피해를 호소하는 근저에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며, 설령 나의 잘못이 있더라도 그 원인은 너에게 있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 이들은 남 탓을 이야기하며 ‘내 탓이오’라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또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는 구절을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단정한다.
인간에게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이기적이며 악마적인속성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현생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일 수 있다. 나르시스트와 스케이프고트, 골든 차일드, 플라잉 몽키의 역할은 엄격히 구분된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동양의 성인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고 가르쳤고, 타인의 고통을 자기 일처럼 여기라고 일깨웠다. 그러나 필부들은 이를 실천하기 어렵기에 역설적으로 이런 말들이 전해져 내려오는지도 모른다.
나르시즘에 대한 경고는 조상들의 언어 속에서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우리는 일상 언어에서 “저 사람은 남 탓만 한다”, “그 성격은 관 속에 들어갈 때까지 못 고친다“, ”저 인간은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안 되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문제는 나르시스트와 이를 둘러싼 역할들이 고정된 배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는 지독한 나르시스트일 수 있고, 다른 상황에서는 스케이프고트가 되기도 하며, 골든 차일드로 낙점되면 한동안 들뜨기도 하고, 플라잉 몽키의 역할을 비굴하게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임무 교대는 수시로 일어난다.
그럼에도 나르시즘이 심한 부류의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珍光도 한때 가까운 사람 중 한두 명을 지독한 나르시스트라 분류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흔히 말하는 나르시스트의 성향과 백 퍼센트 일치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나르시즘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이를 유난히 자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열등감에 대한 춘화처리가 덜 되어 있는 탓일 가능성이 크다. 나르시즘의 후과는 대부분 후천적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나르시스트 중에는 ‘결정무능력자(決定無能力者)’가 많은 것 같다. 그들은 어려서 잘못된 결정에 대해 강력한 응징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항상 남 탓을 준비해야 한다. 결정을 마냥 미루다 보면, 소가 뒷걸음치다 우연히 횡재를 하는 경우도 있다.
결론은, 나 또한 언제든지 상황에 따라 나르시스트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상대방을 나르시스트라 비판할 자격이 생긴다. 피해의식만을 강조하며 스케이프고트 역할을 자임하는 것도 결국 남 탓이 될 수 있다. 스케이프고트의 역할이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역사 속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스케이프고트였다. 세례 요한은 예수를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외쳤다. 어린 양은 아자젤(azazel), 곧 스케이프고트의 다른 이름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장에서 우선적으로 나르시즘을 거론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과정에서 나르시스트가 되어 남에게 끼친 상처뿐 아니라, 스케이프고트가 되어 남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 놓은 업보까지도 모두 털어내고 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지나간 카르마를 털어내어 빈 의자(empty chair)를 마련해 놓아야 새로운 카르마를 빈 그릇에 담을 수 있다. 그 많은 업보를 짊어진 채 저 세상으로 건너가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은 마치 집문서와 돈궤를 움켜쥐고 죽음의 강을 건너려는 욕심쟁이와 다를 바 없다.
珍光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개인정보포털’과 금융결제원의 ‘계좌정보 통합관리서비스’를 이용하여 꼭 필요한 것만을 남기고 인터넷 회원가입, 휴면계좌, 휴면카드, 자동이체, 오픈뱅킹 등을 일제히 정리하였다. 해지가 안되는 경우에는 가입 내역을 확인하여 처리하였다. 휴대폰 앱은 개별적으로 탈퇴 처리하였다.
유튜브 등에 구독신청한 내역을 찾아 정리하고 있다. 혹시 댓글(comment)을 남긴 흔적이 있으면 아낌없이 청소하고 있다. 기타 은행예금, 보험, 부동산 관련 서류는 소유자 및 계약자를 배우자 명의로 하여 무소유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국민건강보험)와 장기기증서약서(한국장기조직기증원, KODA)를 작성하여 가입카드를 지갑에 보관하고 있다. 지갑 속에는 은행카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증(카드), 장기기증 등록증(카드), 지하철무료승차권(카드), 공공도서관 출입증(카드), 원고작성용 USB와 비상시 현금이 들어 있다.
그밖에 책들과 서랍 속의 각종 쓰레기들은 배우자의 눈을 피하여 날 잡아 한꺼번에 정리할 예정이다.
(계속)